니키 쇼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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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 쇼레이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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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의 前 축구선수


파일:Nicky-Shorey.jpg

이름
니키 쇼레이
Nicky Shorey
본명
니콜라스 로버트 쇼레이
Nicholas Robert Shorey
출생
1981년 2월 19일 (43세) /
잉글랜드 럼포드
국적
[[영국|

영국
display: none; display: 영국"
행정구
]]
([[잉글랜드|

잉글랜드
display: none; display: 잉글랜드"
행정구
]]
)
신체
175cm
직업
축구선수(레프트백 / 은퇴)
소속
선수
레이턴 오리엔트 FC (1999~2001)
레딩 FC (2001~2008)
아스톤 빌라 FC (2008~2010)
노팅엄 포레스트 FC (2009~2010 / 임대)
풀럼 FC (2010 / 임대)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 (2010~2012)
레딩 FC (2012~2013)
브리스톨 시티 FC (2013~2014)
포츠머스 FC (2014~2015)
FC 푸네 시티 (2015)
콜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16)
헝거포드 타운 FC (2016)
국가대표
파일: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2경기 (잉글랜드 / 2007)

1. 개요
2. 클럽 경력
3. 국가대표 경력
4. 플레이 스타일
5. 은퇴 이후
6. 여담




1. 개요[편집]


잉글랜드의 前 축구 선수.

레딩 FC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으며, 이를 바탕으로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에도 승선 한 바 있다.


2. 클럽 경력[편집]



2.1. 레딩 FC[편집]


파일:GGZG2377.jpg

레이턴 오리엔트 FC의 연습생을 거쳐 프로 데뷔에 성공했다. 첫 시즌엔 7경기 출전에 성공했고, 두번째 시즌인 2000-01 시즌에 9경기를 치른 후, 2001년 2월 레딩 FC로 이적했다.[1]

레딩 이적과 동시에 3년 반의 계약을 맺은 쇼레이는 정작 해당 시즌은 레딩 1군 경기에 출전하지 않은 채 시즌을 끝 마쳤다.

그리고 차기 시즌인 2001-02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1군 경기에 나섰고, 시즌 38경기에 출전하면서 레딩 1군 멤버로 자리 잡게 된다. 그리고 해당 시즌에 세컨 디비전에 있던 레딩은 2위를 기록했고, 차기 시즌엔 퍼스트 디비전으로 승격했다.

승격 시즌인 2002-03 시즌에도 변함없이 주전으로 활약한 쇼레이는 시즌 48경기 2골을 기록하면서 레딩의 레귤러 멤버 중 하나로 완벽히 자리잡게 된다.

2003-04 시즌엔 선수 생활에 큰 위기에 처한 시즌이였는데, 2004년 3월 스토크 시티 FC와의 경기 후 발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쇼레이는 병원 진료를 받았고, 병원에선 최악의 경우 발을 절단 해야 될 수도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그렇게 쇼레이는 급하게 치료에 들어갔고, 2주간 병원에서 집중 치료를 받은 뒤에는 3개월 가량 자택에서 절대 안정을 취하면서 치료에 전념했다.

다행히 이후 상태가 서서히 호전되어서 최악의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던 쇼레이는 그 후 서서히 몸 상태를 끌어올렸고, 2004년 8월 7일 열린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와의 경기에 나섰다. 그렇게 오랜만에 복귀전을 치렀고, 성공적으로 복귀했다.

그렇게 다시 주전으로 나선 쇼레이는 2004-05 시즌에 48경기 3골을 기록하면서 건재함을 증명했다.

2005-06 시즌엔 소속팀 레딩이 놀라운 시즌을 보냈는데, 압도적인 공격력으로 리그 우승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니키 쇼레이 역시 좋은 활약을 선보이면서 팀이 프리미어리그로 향하는데 크게 일조를 하게 된다. 해당 시즌에 니키 쇼레이는 44경기에 나서며 2골을 기록했는데, 모두 프리킥으로 득점했기 때문에 그의 날카로운 킥력과 동시에 많은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기도 했다.

니키 쇼레이는 이 시즌 인상적인 활약을 바탕으로 PFA 올해의 팀에도 선정 되는 등 생애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그리고 맞이한 프리미어리그에서의 첫 시즌인 2006-07 시즌도 니키 쇼레이는 좋은 활약을 꾸준히 선보였다. 특히 언더독이라 불리며 약팀으로 평가 받은 승격팀 레딩은 탄탄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돌풍을 일으켰고, 강등권이 아닌 8위에 오르며 중위권 이상의 성적을 거두면서 모두를 놀라게 했다.

2006-07 시즌의 니키 쇼레이는 37경기에 나서며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했고, 수준급의 오버래핑과 날카로운 크로스 등으로 EPL에서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이를 바탕으로 생애 처음으로 스티브 맥클라렌이 이끌던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에도 승선하게 된다.

니키 쇼레이의 잉글랜드 대표팀 승선은 레딩에게도 놀라운 일이였는데, 100년이 훨씬 넘는 레딩 구단의 역사에서 잉글랜드 A대표팀에 승선해서 경기에 출전한 선수는 니키 쇼레이가 처음이였기 때문이다.

여튼, 이 해의 니키 쇼레이는 팀의 돌풍과 잉글랜드 대표팀 승선, 팀 올해의 선수상 2위[2] 등 지난 시즌에 이어 그의 전성기가 지속되고 있었다.

시즌이 끝나고는 그의 활약에 여러 EPL 클럽들이 그를 영입하고자 했고, 어릴적 팬으로 자랐던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도 쇼레이를 영입하고 싶어했다.

쇼레이 역시 처음엔 이적 의사가 없어보였으나 게속 되는 이적제안에 더 큰 팀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이적 의사를 뒤늦게 나타냈으나 이미 팀은 프리미어리그 잔류를 위해 그의 이적건은 닫아놓은 상태였다.

그렇게 팀의 잔류한 니키 쇼레이는 2007-08 시즌에도 변함없이 주전으로 나서며, 36경기에 출전했으나 팀은 풀럼 FC한테 득실차에 밀리며 매우 안타깝게 강등당하고 만다.

팀이 강등당하자 니키 쇼레이의 이적 명분을 막을 바 없어진 레딩은 그의 이적을 허용했고, 얼마 안 가 프리미어리그 팀인 아스톤 빌라 FC로 이적이 확정되었다.

니키 쇼레이는 레딩에서 8시즌을 보냈으며, 296경기 12골을 기록하고 팀과 작별했다.


2.2. 아스톤 빌라 FC[편집]


레딩을 떠나 아스톤 빌라로 이적했던 니키 쇼레이는 빌라 생활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리그에선 붙박이 주전으로 나서지 못했으며, 비록 유에파컵 등에 꾸준히 출전했지만 입지가 좋지 못했다. 그렇게 첫 시즌을 보낸 니키 쇼레이는 2009-10 시즌에도 여전히 입지가 좋지 못했고, 결국 출전 기회를 위해 챔피언쉽에 속한 노팅엄 포레스트 FC와 프리미어리그의 풀럼 FC로 임대를 다녀왔다.


2.3.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편집]


그렇게 빌라에서 2시즌을 보낸 쇼레이는 2010-11 시즌에 130만 파운드의 이적료로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로 완전 이적하게 된다.

WBA에선 빌라에서보다 상황이 좀 더 나았고, 한때는 붙박이 주전으로 나설만큼 다시 예전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었다. 그렇게 WBA에서 어느정도 폼을 회복한 채 2시즌을 보낸 쇼레이는 2012-13 시즌을 앞두고 다시 한번 이적하게 된다.


2.4. 레딩 FC 2기[편집]


행선지는 다시 한번 프리미어리그 승격에 성공한 친정팀 레딩 FC였다.

2008년 팀을 떠난 후 오랜만에 팀에 복귀한것이였고, FA 신분이였기 때문에 레딩과 1년 계약을 체결하면서 컴백했다.

레딩에서는 이안 하트와 함께 출전 시간을 분배하면서 출전했고, 리그 경기 절반인 17경기에 나서며 시즌을 마감했다.
날카로운 왼발은 여전히 좋았지만, 과거와 다르게 오버래핑 뒤 수비 복귀나 활동량이 급격히 떨어졌으며, 더 이상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기엔 좋지 않은 몸 상태이기도 했다.

그렇게 팀은 또 다시 강등당했고, 쇼레이 역시 레딩과의 1년 계약이 마무리 되며 팀을 떠났다.


2.5. 포츠머스 FC[편집]


이후엔 2013-14 시즌을 앞두고 3부리그 팀인 브리스톨 시티 FC와 계약해서 14경기에 나섰으나 시즌 도중 4부리그에 속한 포츠머스 FC로 이적했다.

포츠머스에선 해당 시즌에 21경기에 나섰으며, 다음 시즌인 2014-15 시즌에도 20경기 가량 나섰지만 서서히 그의 긴 선수생활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포츠머스 생활을 정리하고 2015년엔 인도의 푸네 시티로 깜짝 이적해서 잠깐 활약했다.

그리고 2015-16 시즌엔 3부리그에 속한 콜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 계약을 맺으면서 잉글랜드로 다시 복귀했고, 15경기에 나서면서 시즌을 마감했다.

2016-17 시즌엔 하부리그에 속한 헝거포드 타운 FC으로 이적해서 3경기에 나선 후 길고 길었던 그의 현역 선수생활을 마무리 지었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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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 시즌에 프리미어리그에서 수위급 활약을 펼친 니키 쇼레이에 대한 잉글랜드 대표팀 말이 서서히 나오기 시작했고, 2007년 5월 25일 잉글랜드 B팀에 차출되어 나서면서 그 기대감을 키웠다.

그리고 다음 날인 2007년 5월 26일엔 스티브 맥클라렌의 잉글랜드 A대표팀에 차출되면서 승선했고, 2007년 6월 1일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에 나서면서 본인과 레딩 소속 선수로는 역사상 처음으로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 이름을 올렸다.

2007년 8월 22일,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에도 나서면서 본인의 2번째 대표팀 경기를 치렀으나,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대표팀에 승선하지 못한 채 은퇴했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전성기 시절 EPL에서 오버래핑에 이은 정확성 높은 왼발 크로스로 명성이 자자했다.

킥력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왼발이 필요한 상황에선 항상 쇼레이가 세트피스와 프리킥을 전담했다.


5. 은퇴 이후[편집]


2018년 10월 팀 동료였던 글렌 리틀과 함께 하부리그 팀인 윈게이트 앤 핀츨리 FC의 공동 감독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1달도 안되어 개인 사정을 이유로 글렌 리틀에게 온전한 전권을 맡기고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2019년 레딩의 아카데미 스카우터를 거쳐 2022년 3월부터 질링엄 FC의 수석 스카우터로 일하고 있다.

6. 여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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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적료 2만 5천 파운드[2] 1위는 이바르 잉기마르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