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조 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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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78대 천황
니조 덴노
二条天皇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77px-Emperor_Nij%C5%8D.jpg

출생
1143년 7월 31일
사망
1165년 9월 5일 (향년 22세)
재위기간
제78대 천황
1158년 9월 5일 ~ 1165년 8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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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もり(ひと(모리히토, 수인)
부모
부황 고시라카와 덴노
모후 미나모토노 이시코
배우자
요시코 내친왕
후지와라노 무네코
자녀
로쿠조 덴노
젠시 내친왕
손에 법친왕
연호
헤이지(平治) (1159~1160)
에이랴쿠(永暦) (1160~1161)
오호(応保) (1161~1163)
조칸(長寛) (1163~1165)
에이만(永萬) (1165~1166)


1. 개요
2. 생애
2.1. 황태자 책봉의 뒷이야기
2.2. 즉위, 그리고 아버지와의 권력 쟁탈전(헤이지의 난)
2.3. 아버지에게 승리했지만, 아버지보다 먼저 죽다
3. 여담



1. 개요[편집]


일본의 제78대 천황. 고시라카와 덴노의 장남이었다.

2. 생애[편집]



2.1. 황태자 책봉의 뒷이야기[편집]


1155년, 도바 법황이 총애했던 고노에 덴노의 뒤를 이어 아버지인 마사히토 친왕이 고시라카와 덴노로 즉위하자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사실 황위 계승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던 도바 법황은 자신이 탐탁찮게 평가한 아들 마사히토(고시라카와)쪽보다는 그 아들인 모리히토(니조)쪽을 총애하여 후계자로 점찍고 있었다. 하지만 고노에 덴노가 도바의 기대보다 어린 나이에 죽는 바람에 손자인 모리히토를 바로 황위에 올리기엔 아직 너무 어린 상황이 되었고, 공가 측으로부터 친아버지가 살아있는 상황에서 그를 패싱하고 그 아들을 즉위시키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반대 의견이 강하게 올라왔기 때문에 뜻을 접게 되었다.

결국 고시라카와 덴노의 즉위를 도바 법황이 받아들이긴 했지만, 그 역할을 어디까지나 모리히토에게 천황 자리를 넘겨주기 위한 징검다리 정도로 봤고, 모리히토의 지위를 강화해주기 위해 고시라카와 덴노의 즉위식이 열리기도 전에 황태자 책봉을 먼저 강행했다.

2.2. 즉위, 그리고 아버지와의 권력 쟁탈전(헤이지의 난)[편집]


1158년 8월, 호겐의 난의 승자가 된 부황 고시라카와 덴노의 양위를 받아 15세의 나이로 천황이 되었다. 그러나 이후 조정은 니조 덴노를 지지하는 측과 인세이를 행하는 고시라카와 상황을 지지하는 세력으로 나뉘어 서로 대립하게 되었는데, 사무라이들의 힘을 빌어 스토쿠 상황을 상대로 승리했던 고시라카와 상황이 또다시 인세이를 반복하려하자, 친정(親政)을 생각하고 있었던 니조 덴노와 그 인근 세력들이 반발하여 양측간에 갈등이 커졌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더해 고시라카와 상황 측의 지지층 내부에서도 상황의 지지자인 신제이와 그에 대항하는 후지와라노 노부요리(藤原信頼)가 대립하게 되었다. 결국 후지와라노 노부요리는 신제이에게 불만이 있었던 카와치 겐지미나모토노 요시토모(源義朝)[1]의 병력을 끌어들어 헤이지의 난을 일으키고 정권을 장악하려 했으나[2] 결과적으로 니조 덴노 편에 서서 반격을 개시한 이세 헤이케의 수장 타이라노 키요모리의 승리로 끝났다.

2.3. 아버지에게 승리했지만, 아버지보다 먼저 죽다[편집]


헤이지의 난이 끝난 이후 형식적으로는 고시라카와 상황과 니조 덴노의 2중 권력 체제가 되었지만, 후지와라노 노부요리와 인세이 측을 지지한 카와치 겐지가 몰락하면서 아무래도 권력의 추가 니조 덴노 측으로 기울 수 밖에 없어진 바, 니조 덴노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였던 키요모리가 점점 세력을 키우며 훗날 헤이케 정권이 들어서게 되는 배경이 되었다. 물론 니조 덴노가 살아있는 시점까지는 아직 공가의 견제도 있어 권력의 정점까지 키요모리가 오르지는 못했다.

한편 권력으로부터 멀어진 고시라카와 상황은 대신 불교에 심취하여 1164년렌게오인(蓮華王院)이란 절을 창건했는데, 낙성 기념식을 하는 날 아들인 니조 덴노에게 행차와 포상을 요청했지만 니조는 이를 일언지하에 거부했다. 이에 고시라카와 상황은

"아아, 어쩌면 저리도 미울까"(ヤヤ、ナンノニクサニ)

라고 한탄하며 앙심을 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만약 이때 니조 덴노가 고시라카와 상황의 요청을 받아들여 낙성식에 행차하고 두 부자가 화해하는 기미가 있었다면 이후 역사의 흐름이 달라질 수도 있었다는 풍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니조 덴노 측에서는 사찰에 기부된 장원과 소령을 바탕으로 불교의 힘을 빌어 고시라카와 상황이 인세이의 부활을 획책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단순히 그렇게만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니조 덴노의 붕어 이후 고시라카와 상황의 행보로 볼 때 니조 덴노 측의 추측이 사실과 다르다고 보기도 힘들다.

천황 친정을 꿈꾸던 니죠 덴노는 1164년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인해 태어난지 겨우 1년이 지난 장남 노부히토를 급하게 황태자로 책봉하고, 1165년 8월 3일에 양위했는데, 그로부터 겨우 1개월 가량이 지난 같은 해 9월 5일에 붕어했다.

헤이지의 난이라는 부자간 권력 쟁탈전에서의 승리도 무색하게 니조 덴노가 향년 22세로 너무 일찍 붕어하게 되면서 헤이지의 난 이후 사실상 권력을 잃었던 고시라카와 상황이 권력 회복을 획책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3. 여담[편집]


  • 인물됨은 당대에 아버지인 고시라카와 덴노보다 훨씬 낫다는 평을 받았지만, 동시에 죽을 때까지 아버지와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에 효도에는 등돌린 천황이라는 비아냥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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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훗날 가마쿠라 막부를 창시하는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아버지였다.[2] 실제 일시적으로 니조 덴노가 노부요리에 의해 다이리에 유폐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물론 정작 인세이를 추구하던 고시라카와 상황 역시 노부요리에 의해 같이 유폐됐다는 것이 웃음포인트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