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우에

덤프버전 :

분류

파일:니우에 휘장.png 니우에 관련 틀
[ 펼치기 · 접기 ]





니우에
Niue | Niuē
파일:니우에 기.svg
파일:니우에 휘장.png
깃발
휘장
상징
노래
Ko e Iki he Lagi
(천국의 하느님)
위치



수도
알로피(Alofi)
면적
261.46㎢
인문환경
국가
파일:뉴질랜드 국기.svg 뉴질랜드
공용어
영어, 니우에어
인구
1,681명(2022)
인구밀도
6.71명/㎢
종교
기독교 96.4%[1]
무종교 3.3%
기타 종교 0.3%
정치
정치체제
입헌군주제 산하의 자치정부, 단원제, 의원내각제
국왕
찰스 3세 뉴질랜드 국왕
총독(Governor General)
신디 키로(Cindy Kiro)[2]
총리(Premier)
돌턴 타겔라기(Dalton Tagelagi)
경제
GDP
$1000만(2003)
1인당 GDP
$5,800(2003)
GDP(PPP)
$2430만(2011)
1인당 GDP(PPP)
$15,066(2011)
화폐
뉴질랜드 달러
외교
남북수교현황
대한민국: 2023년 5월 29일 수교[3]
북한: 미수교
ISO 3166-1
NU
도메인
.nu
시간대
UTC-11[4]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iue-CIA_WFB_Map.png


1. 개요
2. 인구
3. 정치
4. 교통
5. 외교
6. 특징



1. 개요[편집]


오세아니아 사모아 동남방의 작은 섬으로, 영어로는 Niue. 1974년 이후 뉴질랜드가 국방을 전담하며 1988년부터는 독자적인 외교권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쿡 제도와 마찬가지로 보통 뉴질랜드의 자치령으로 취급되지만 엄연한 하나의 국가이다. 수도는 알로피(Alofi), 면적은 262㎢로 대략 경기도 고양시와 비슷하며, 인구는 1,190명 (2014년 인구조사) 이다. 인구밀도가 km²당 6명 정도로 매우 낮은 편이다. 사람이 먹고 살기에는 자연환경이 특별히 나쁜 건 아니지만 인구의 대다수가 더 나은 일자리를 구하려고 뉴질랜드로 가서 살기 때문이다.

약 1000년 경부터 원주민이 거주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1774년 제임스 쿡 선장이 내항하였으며, 1900년 니우에 국왕의 요청에 따라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가 1년 뒤인 1901년 쿡 제도의 일부로 뉴질랜드의 속령이 되었다. 그러다 1974년 뉴질랜드와 연합하여 자치정부를 가진다는 새 헌법을 채택하고 뉴질랜드 시민권을 받게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오늘날에는 뉴질랜드 왕국의 구성국 지위에 있다.

섬 주민들은 사모아인의 혈통을 잇는 니우에인이 대부분이며 통가인과 사모아인에 매우 가깝다. 니우에 주민들은 뉴질랜드 시민 대우를 받으며, 농업과 축산업이 주 산업이며 주요 수출품은 라임과 코프라이다. 니우에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국적은 모두 뉴질랜드 국적이다.


2. 인구[편집]


2011년 니우에 인구조사에 따르면 니우에의 인구는 1,611명 이었으며, 2014년 인구는 1,190명으로 추정된다.

니우에의 인구는 더 나은 삶을 찾아 뉴질랜드로 이주하는 사람이 많아 출생률 저하와 더불어 해마다 감소하는 편이다. 1960년대만 해도, 니우에의 인구는 5,000명을 넘었으나, 1970년대 초반부터 인구감소가 시작되면서 인구가 1,190명(2014년 추정)까지 줄어들었다.

인구 감소가 너무 심해서 니우에섬 전역에 여섯개의 초등학교가 있었으나 하나만 남기고 폐교될 정도이다. 뉴질랜드 정부에서는 인구감소를 막기 위해서 니우에에 남은 거주민 한명당 연간 11,000 뉴질랜드 달러[5]를 지원하고 있다.[6]


3. 정치[편집]


니우에는 입헌군주제의회가 존재하는 속령으로,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다.

니우에의 의회는 국민의 직접선거로 선출된 14명의 지역구 의원과, 6명의 비례대표 의원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임기는 3년이다.

20명 의원들이 전원 무소속이다. 이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정당 그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1987년에 창당된 니우에 인민당이 존재했으나, 내부갈등으로 2003년에 해산되었다. 니우에 인민당의 마지막 총선이었던 2002년 4월 21일 총선에서는 20개 의석 중 14석을 점유했다.

4. 교통[편집]


니우에 내부에서의 교통은 주로 도로 교통으로 이루어진다. 해안을 따라 마을이 존재하기 때문에, 섬을 한바퀴 도는 해안 도로가 존재한다. 그 외에 수도인 알로피에 로버트 경 부두(Sir Robert's Wharf)가 위치하여 가 드나들고, 섬의 서쪽에는 니우에의 유일한 공항인 니우에 국제공항이 있다.

1970년 12월에 개항한 니우에 국제공항에는 유일하게 에어 뉴질랜드가 취항하는데, 니우에와 뉴질랜드오클랜드를 잇는 항공편 하나를 운항 중이다. 일주일에 2번 왕복을 하며, 수요일토요일에는 오클랜드에서 출발하여 니우에로 가는 비행편이, 화요일금요일에는 니우에에서 출발하여 오클랜드로 가는 비행편이 존재한다. 1990년에 니우에 항공이 세워졌었고 오클랜드와 니우에를 보잉 737로 운항했는데 수요가 원체 없어 항공편 수를 줄이다가[7]1992년 말 항공유 구매에 대한 은행 보증을 거부한 이유로 라이센스가 취소되며 항공사가 폐업되었다.


5. 외교[편집]


2018년 기준 니우에와 외교관계를 수립한 나라는 21개국위키백과 영문판 - 니우에의 외교관계. 그 중에서 일본은 2015년 5월 15일에 니우에를 독립된 주권국가로 승인했다(수교는 동년 8월 4일). 중국과의 치열한 태평양 외교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목적 등으로 해석된다. 그래서 2015년 이후에 일본에서 발행된 세계지도에는 니우에가 뉴질랜드령이 아닌 독립된 국가로 나온다. 중국과 니우에는 2007년 12월 12일에 수교했다. 한국도 아래와 같이 2023년 5월 29일 니우에와 수교하면서 니우에를 정식 주권국가로 승인했다고 볼 수 있다.


5.1. 대한민국[편집]


니우에는 한·태평양도서국 정상회의 및 외교장관회의를 통해 대한민국에 꾸준히 수교를 제의하고 있었다. 한국의 미수교국인 쿠바, 시리아, 코소보가 다른 나라와의 이해관계 때문에 수교에 어려움을 겪는 것과 달리 딱히 니우에와는 그런 장애물이 없지만, 한국의 외교 정책에서 니우에를 비롯한 태평양도서국이 그간 후순위에 있었기 때문에 성사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23년 5월 29일 한·태평양도서국 정상회의를 계기로 양국 정부가 마침내 수교를 체결하였다. #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과 달튼 타겔라기 총리가 첫 한·니우에 정상회담을 가졌다. #

니우에 관련 영사 업무는 주뉴질랜드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담당한다.


6. 특징[편집]


니우에의 특이한 점 중 하나가 일요일에는 모든 공공시설이 휴일이라는 점인데, 경찰서나 교도소 등도 예외는 없다. 그래서 교도소에서는 주말이면 수감자가 일제히 퇴소했다가 월요일에 다시 입소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TV 방송국도 휴일인지라 TV가 안 나온다. 일요일은 국민들은 물론 관광객들까지도 하루종일 느긋하게 멍때리는 게 일과라고 한다. 말 그대로 '진짜 쉬는 날'. 하지만 요즘은 식당도 하는 경우가 많으며, TV도 뉴질랜드 본토를 통해 볼 수 있다.

2003년에 니우에 정부에서는 모든 주민들에게 무선 노트북을 지원했다고 한다.

그 동안 퍼시픽 게임에서 금메달을 하나도 따지 못했다가 여자 론 볼즈에서 첫 금메달이 나왔다. 이 나라 축구 대표팀은 2경기를 해서 모두 졌는데 타히티에 14:0, 파푸아뉴기니에 19:0으로 졌다.

EEZ 전체가 해양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0 15:02:41에 나무위키 니우에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이 중 대부분은 전체 인구의 약 75%를 차지하는 회중주의(회중교회) 개혁교회 교단인 니우에 회중 기독교 교회이다.[2] 뉴질랜드 총독이기도 하다.[3] 2023년 5월 29일 박진 외교부 장관과 돌턴 타겔라기 니우에 총리 겸 외교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한-니우에 수교식을 개최했다. #[4] 뉴질랜드와는 서머타임 적용하면 무려 하루, 미적용 시 23시간이라는 시차가 난다.[5] 2016년 3월 초 환율 기준 약 897만원.[6] 하지만 2011년 기준 니우에 바깥에서 사는 니우에인은 22,000명에 이른다.[7] 말엽에는 9인승 비치크래프트 킹 에어 기로 파고파고만 운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