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슨 프레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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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 DADDY V

파일:Big_Daddy_V_pro.png
본명
Nelson Frazier, Jr
별칭
Mabel[1]
King Mabel[2]
Viscera[3]
Nelson Knights[4]
Big Daddy V
출생일
1971년 2월 14일
사망일
2014년 2월 18일 (향년 43세)
신장
206cm[5]
체중
221kg[6]
출생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그린스보로(각본상 뉴욕 할렘)
피니쉬 무브
비세라 드랍
섹스 드라이브[7]
비셰그라[8]
월윈드 오브 러브[9]
엘보 드랍
게토 드랍
유형
자이언트 + 몬스터
테마곡
The Hustling King (1993~1996)
Better Than Last(1998~2000, 2005~2006)
Love Machine(2006~2007)
Calling All Cars(2007~2014)
커리어
WWE 하드코어 챔피언
월드 태그팀 챔피언
XWF 헤비웨이트 챔피언 WWC 유니버설챔피언

1. 개요
2. WWF 입성과 메이블 시절
3. 다시 WWE로 컴백, 비세라 시절
4. 세계 최대의 러브 머신, 비세라
5. 빅 대디 V
6. 여담
7. 필모그래피
8. 빅 대디 V를 든 사람들
9.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본명은 '넬슨 프레지어 주니어'. 1971년생으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그린스보로에서 태어났고, WWE 소속 프로레슬러로 활동했으며 2014년경 심근경색으로 타계했다.

2m가 넘는 거구이며 몸무게도 220kg가 넘는 그야말로 엄청난 덩치의 소유자로, 전형적인 빅맨답게 느릿느릿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대신, 이를 강력한 힘으로 메꾸는 스타일이다. WWE 데뷔 전엔 Pro Wrestling Federation 이하(PWF)에서 활약했고 두번의 태그팀 타이틀 경력이 있다.

빅 쇼마크 헨리에게도 밀리지 않을 정도의 짬을 먹은 중견 빅 맨에다가[10] 특히 빅 쇼를 능가하는 몸무게와 육중하고 위엄이 넘치는 풍채가 인상적이며, 특히 그 체구로 스피닝 사이드 슬램은 물론 스피닝 힐 킥까지[11] 구사하는 의외의 유연성까지 겹쳐서 접수까지 잘 해주는 등 장점도 분명히 있긴 하나 이런 장면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덩치나 힘만 어필하다보니 경기력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체중과 나이 때문에 빅맨에게 보이는 체력적인 문제가 눈에 크게 띄는 편이었다.


2. WWF 입성과 메이블 시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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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에 프로레슬링에 입문했으며, 초창기에는 '넬슨 나이트'(Nelson Knight)라는 링네임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다가 같은 해에 WWF(현 WWE)에 데뷔를 하고 난 뒤에는 '메이블'이라는 새로운 링네임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1년 뒤 WWF 레슬매니아 10에서 같은 흑인레슬러인 와 함께 태그팀 타이틀을 획득하기도 한다. 모와 다닐때는 태그팀명이 Men on mission이었고, 매니저로 같은 흑인인 오스카를 뒀었다.

이후 WWF 킹 오브 더 링(1995)에서 우승을 하면서 다시 '킹 메이블'로 링네임을 고치고 메인급으로 올라서게 된다. [12] 그 후 WWF 섬머슬램(1995)에서 당시 WWE 챔피언인 디젤을 상대로 타이틀 도전에 나서지만 타이틀 획득에는 실패한다. 그 당시 그의 체중은 568파운드(약 258kg)으로 빅 대디 V 시절때보다 훨씬 더 무거웠다. 이때 디젤은 이 경기에서 잘 쓰지도 않은 플란챠를 썼다.

그리고 WWF 서바이버 시리즈(1995)에서 언더테이커와의 캐스켓 매치에서 패배한 후,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1996년에 방출당하게 되고 다시 3년간 각종 인디 단체에 전전하게 된다.


3. 다시 WWE로 컴백, 비세라 시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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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F 로얄럼블(1999)에서 맨카인드의 미스테리 상대로 다시 메이블로 돌아왔으나 언더테이커에게 세뇌당한 선수들의 스테이블인 미니스트리 오브 다크니스의 당시 멤버들인 애콜라이츠(파룩, 브래드쇼), 미디언의 공격을 받고 끌려가면서 세뇌당한다. 그 뒤 RAW에서 괴상한 분장과 함께 '비세라'라는 이름으로 미니스트리 오브 다크니스의 멤버로 가입하고 악역으로서의 어느정도 포스를 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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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괴기스럽고 강력한 괴물 캐릭터의 면모를 보여주긴 했지만, 딱히 전보다 특색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서인지 이 기믹도 결국 1년 뒤 단물이 쏙 빠지면서 2000년 4월 하드코어 챔피언 밸트를 석권한 걸 제외하고 다시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2000년대 중반 다시 방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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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동안 뜸하다가 2004년 스맥다운 5주년 특집을 앞두고 스테이블 옛 동료였던 강그렐과 함께 옛 상관이었던 언더테이커를 공격하면서 다시 컴백을 하게 되었다. 그 다음 스맥다운에서 2대1 핸디캡 매치로 언더테이커에게 패배 후, 강그렐과 함께 다시 모습을 감추다가 강그렐은 다시 인디단체를 돌기 시작했고, 비세라는 로우에서 복귀한 뒤 WWE 백 래쉬(2005)에서 트리쉬 스트래터스를 매니저로 대동하면서 케인과 대립을 시작한다.[13]


4. 세계 최대의 러브 머신, 비세라[편집]



충격적이게도 '월즈 라지스트 러브머신'(The World's Largest Love Machine)이라는 과거 섹슈얼 쵸콜릿 시절의 마크 헨리갓파더를 연상시키는 느끼하고 능글맞은 호색한 캐릭터로 완전히 전환하고는 다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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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F 시절에 활동했던 갓파더의 상위호환 격인 이 당시 기믹이 상당히 파격적이여서 그가 맡았던 캐릭터 중에서는 가장 성공적이라고 평가받았고, 수많은 팬들에게 그의 모습이 강하게 각인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비록 위상은 자버와 미드카더를 오가는 위치에 불과했지만 워낙 기믹이 노골적이고, 자극적인데다 단순하다보니 매니아들로부터 컬트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는 이 캐릭터를 계기로 마침내 오랜 무명생활을 끝내고 나름대로 자리를 잡게 되는 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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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여색을 탐하는 거구의 플레이보이 캐릭터'에 걸맞게 수많은 디바들을 상대로 작업을 걸고, 원조 키스캠을 진행하는 등 기믹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링 아나운서인 릴리안 가르시아에게 다가와 러브스토리를 진행하기도 했는데, 처음엔 릴리안이 좀 경계하다가 조금씩 자주 엮이기 시작하며 WWE 벤전스(2005)에서 릴리안이 청혼을 했지만 갑자기 갓파더가 여성들을 데리고 등장하면서 비세라는 릴리안을 뒤로한채 가버린다.

한동안 발 비너스와 태그팀으로 활동했고, 어느순간 태그팀이 조용히 해체된 후 2006년에 다시 릴리안 가르시아에게 접근하는데, 릴리안은 과거 자신의 청혼을 거절한 걸 언급하며 비세라를 뒤로하고, 그러다 우연히 찰리 하스의 실수로 릴리안 가르시아가 다치는 일이 생기며 비세라가 칠리 하스를 공격하며 대립이 형성되고, 둘간의 대립에 릴리안 가르시아가 비세라의 사모안 드롭에 당하며 비세라 & 찰리 하스는 나몰라라 하며 악역전환하며 릴리안 가르시아는 들것에 실려간다.비세라는 발 비너스와는 더이상 다니지 않고, 그뒤론 한동안 찰리 하스와 태그팀으로 활동했다.



거기다 가장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것은 그가 사용하는 기술들이었는데, 특히 위의 gif에서 보다시피 그의 피니쉬인 '비세그라'는 굉장히 쇼킹하고 성인지향적인 피니쉬 무브로 리키쉬의 스팅크 페이스와 함께 사상 최악의 굴욕기로 악명이 높았다. 실질적은 위력은 거의 없다시피했지만, 무엇보다도 당하는 상대방의 멘탈을 완전히 파괴하는 굴욕기라는 점에서 그걸 커버하고도 남았다. 그렇다보니 어느정도 입지가 있는 메인이벤터들에겐 위상 보호 차원에서 사용하지 않았고, 능욕을 당해도 크게 타격이 없는 자버나 미드카더들을 괴롭히는 용도로만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 밖에도 싯아웃 쵸크밤을 시그니쳐 무브로 썼는데, 이 역시 기믹을 고려해서 '섹스드라이브'라는 별도의 기술명을 붙였다.

이 당시 비세라는 메인 이벤터들과 하이 미드카더들을 띄워주는 역할로 많이 쓰였는데, 비세라가 미드카더들 중엔 사실상 최강자급으로 통했지만, 메인 이벤터들과 하이 미드카더들한텐 패함으로써, 비세라를 상대로 승리하는 선수들은 푸쉬를 받는 선수로 봐도 무방했다. 예외라면 푸시를 제법 받았던 스니츠키와 톰코는 비세라를 한번도 이겨보지 못했다.

또 이 당시엔 백스테이지에서 먹방도 종종 찍었는데, 종이봉지에 담긴 들을 먹고 있는가 하면,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먹으려는데 크라임 타임이 몰래 훔쳐가는 바람에 빡친 비세라가 누가 훔쳐갔냐며 욕을 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개성 넘치는 강렬한 캐릭터로 활동하던 그는 점차 반응이 시들해지자 ECW로 이적하게 되고, 새로운 캐릭터를 준비하기 위해 잠시 공백을 가진다.


5. 빅 대디 V[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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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는 2007년 7월 ECW에서 빅 대디 V라는, 좀비영화 랜드 오브 데드대장 좀비 '빅 대디'에서 따온 괴물 기믹으로 맷 스트라이커를 매니저로 대동하고 다시 등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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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상의를 탈의하여 완전히 드러난 그의 엄청난 살집과 흉물스럽기까지 한 문신들, 그리고 무지막지하게 육중한 풍채가 그야말로 공포스러운 위압감을 풍겼으며, 이렇게 한동안 자버들을 무차별적으로 때려부수고 다니며 무패행진을 이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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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당시엔 피니쉬 무브엘보 드롭게토 드랍, 스피닝 사이드슬램을 썼는데, 220kg이 넘는 엄청난 거체 때문에 단순한 기술인데도 임팩트가 어마어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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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부기맨, 타미 드리머를 쓰러뜨리고 케인마저도 쓰러뜨리며 그야말로 ECW에선 도저히 대적할 자가 없는 최강의 최종보스 포스를 뿜었고 회사 내부에서도 그를 거물급 선수로 키우겠다고 공언을 해서 이번에야말로 큰 푸쉬가 주어지나 싶었으나 WWE 노 머시(2007)에서 ECW 챔피언인 CM 펑크와 타이틀 매치에서 DQ패하게 된다. 이 후 2008년 간간히 마크 헨리와 같이 태그 팀으로 다녔으나, 급성 폐렴으로 인해 결장하게 되고 결국 2008년 말 또 다시 방출된다.

이후 전일본 프로레슬링 및 여러 인디단체를 돌아다니다가 안타깝게도 2014년 2월, 테네시멤피스에서 심근경색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6. 여담[편집]


  • 생전에 당뇨고혈압을 앓고 있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아내의 도움과 저염, 저당식으로 식단을 조절한 결과 100파운드(약 45kg)의 몸무게 감량과 정상적인 혈압수치로 되돌리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실제로 현역 시절의 모습과 말년에 인디 단체에서의 모습을 비교하면 눈에 띄게 체중이 감량된 것을 알 수 있다.

  • 프로레슬링 입문 전엔 목수[14]로 일했다고 한다.

  • 사후 화장되었으며 처리된 뼛가루는 아내가 펜던트 500개 분량으로 나누어 그와 친분이 있던 지인들, 주변인들에게 선물로 줬다고 한다.

  • 사망 1년 후 그의 아내인 카산드라 프레지어는 WWE가 남편을 포함한 다른 선수들에게 만성 외상성 뇌병증 및 뇌진탕의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인지시키지 않았고 남편의 죽음에 WWE가 사실을 은폐한다고 주장하며[15] WWE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했으나 넬슨의 사망과 만성 외상성 뇌병증 간의 관련성을 입증하지 못해 패소한다. 다만 판결과는 별개로 실제로 넬슨은 심각한 단기 기억 상실과 편두통,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한다.

  • 1993년부터 2008년까지[16] 상당한 시간동안 WWE에서 활동해왔기 때문에 명예의 전당 후보로 종종 거론되는 편이다.

  • 험악한 인상과는 다르게 유쾌한 성격이었다. 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영상을 찍은 선수 중에 빅토리아와 서로 농담을 즐길 정도로 친절한 사람이었음을 밝혔다.

  • 위의 빅토리아와의 일화와 더불어 사후 많은 동료들[17]이 추모글로 그의 명복을 빔과 동시게 그와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언급하는 것으로 미루어 봤을 때 동료들과 전반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 사망하기 몇 년 전 요절한 랜스 케이드가 생전에 비세라랑 친했는데 케이드는 자기 딸로 하여금 아버지가 약물 때문에 죽은 사례가 되지 않길 바랐다고 한다.

  • 빅 대디 V로 활동하기 전 엔 한여름에도 경기할때 가죽 옷을 입거나 외투를 걸친다던지, 긴팔을 입는건 기본에 심지어 한 여름에도 검은 옷을 입기도 했다. 그로 인해 여름엔 엄청 힘들었을 것 같다는 반응도 있다.

  • 양팔의 문신들은 빅 대디 V가 되면서 새긴것으로 보이는데, 과거 메이블이나 비세라 시절엔 팔이 드러나는 상황이 오더라도 팔에 문신이 없었다.

7. 필모그래피[편집]


  • The Legend of Awesomest Maximus: 지노르모스 역
  • Wrong Side of Town: 애니멀 역[18]


8. 빅 대디 V를 든 사람들[편집]


신장이 2m를 넘고 체중역시 200kg을 훌쩍 넘어가는 초대형 거구라 선수들이 과시용으로 들어 보이기도 한다. 다만 그 상징성이나 선수로서의 입지가 빅 쇼에 비해 많이 부족해서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9. 둘러보기[편집]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선정 올해 최악의 대립
맥마흔 일가 vs 디 제네레이션 X
(2006)


케인 vs 빅 대디 V
(2007)


케인 vs 레이 미스테리오
(2008)


파일:external/www.steelchairmag.com/KingoftheRing2015.jpg
1995년 WWF 킹 오브 더 링 우승자
오웬 하트

메이블

스티브 오스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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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WF 입단 전&활동 초기[2] 90년대 중반 뉴제너레이션 시절 킹 오브 더 링에서 우승한 후 사용한 링네임.[3] 99년 언더테이커의 미니스트리 집단에 가입한 시절 기믹. 2005년 WWE 복귀 후 닉네임은 그대로였으나 미니스트리가 재차 해체된 후 RAW에서의 기믹은 완전 딴판이었다.[4] 2002년 TNA에서 론 킬링스의 보디가드 캐릭터로 잠깐 등장할 때의 링네임[5] 프로필상의 과장된 신장. 일본에서 203cm인 아케보노와 경기하기전 페이스 오프때 비슷하거나 살짝 더 작아보였고, 역시 실제신장이 206cm인 사이코 시드와 페이스 오프때도 육안으로봐도 더 작아보였다.[6] 빅 대디 V 시절때의 체중. 전성기시절 많이 나갈 때는 250kg을 넘기기도 하였다.[7] 원기술명은 투 핸디드 쵸크밤.[8] 러브머신 기믹 시절 사용했던 전설적인 기술로, 정신적인 데미지가 더 큰 피니시 무브. 어쩔 때는 신체적 데미지도 주기 위해 비세라 드랍을 시전한 직후에 바로 비셰그라를 쓰기도 했다.[9] 스피닝 사이드 슬램.[10] 사실 프로레슬링 입문 시기로 따지면 넬슨 쪽이 더 먼저다.[11] 물론 일반적인 하이플라이어들처럼 높이 점프해 도는 수준까지는 아니다. 정형돈이 레슬링 특집 때 구사한 타점 낮은 스피닝 힐 킥과 비슷하게 차는데 정형돈의 체구로 스피닝 힐 킥을 하는 것도 대단한데 그보다 훨씬 큰 넬슨 프레지어가 스피닝 힐 킥을 구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경악스러운 장면이다.[12] 당시 언더테이커와의 경기에서 메이블은 레그드롭을 잘못 사전하여 그의 엉덩이가 언더테이커의 얼굴을 그대로 깔아뭉겠고 결국 언더테이커는 코뼈가 부려지면서 한 동안 흰색 마스크를 쓰고 경기에 임해야 했다. 경기 후 메이블이 사과를 하면서 마무리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이 PPV는 역대 킹 오브 더 링 중 최악으로 꼽힌다. WWF 레슬매니아 XI 등 최악의 PPV가 곳곳에 존재했던 1995년의 작품 중 하나이다.[13] 아시다시피 역대 최악의 각본인 케인 리타 커플에서 리타와 앙숙관계인 트리쉬와의 대립이 이어지던 시기였다. 게다가 이 시기에는 리타가 에지와 바람이 나 매트 하디가 방출되면서 선역임에도 불구하고 역반응을 매우 심하게 받던 시절이기 때문에 네 사람 중 케인만 환호를 받는 이상한 대립 상황이 유지되었다.[14] 정확히는 소목장[15] 간단히 말해 카산드라는 남편이 뇌손상 후유증으로 인해 사망했다고 주장한 것이다.[16] 중간에 잠시 TNA 등에서 활동했긴 했다.[17] 케빈 내쉬, 크리스 매스터스, MVP, 차보 게레로 등 많은 선수들이 추모글을 남겼다.[18] 해당 영화엔 바티스타와 RVD 또한 출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