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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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31대 국가정보원장
남재준
南在俊 | Nam Jae-j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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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44년 10월 20일 (79세)
충청남도 대덕군 북면
(現 대전광역시 대덕구)[1]
본관
영양 남씨[2]#
재임기간
제15대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2002년 4월 10일 ~ 2003년 4월 4일
제36대 육군참모총장
2003년 4월 7일 ~2005년 4월 7일
제31대 국가정보원장
2013년 3월 22일 ~ 2014년 5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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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아버지 남교목, 어머니 이순재
형제자매
4남 4녀 중 차남
형 남일진
동생 남우진, 남형진
배우자
김은숙
자녀
슬하 2녀
학력
대전대흥초등학교 (졸업)
대전중학교 (졸업)
배재고등학교 (졸업)
경남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 석사)
종교
불교
경력
제31대 국가정보원장
충남대학교 군사학부 명예교수
서훈 내역
보국훈장 통일장
보국훈장 천수장
보국훈장 국선장
보국훈장 삼일장
군사 경력
임관
육군사관학교 (25기)
복무
대한민국 육군
1969년 ~ 2005년
최종 계급
대장 (대한민국 육군)
최종 보직
육군참모총장
주요 보직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수도방위사령관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
제6보병사단
수도방위사령부 참모장
제1야전군사령부 작전처장
제1야전군사령부 작전과장
제7보병사단 제3보병연대
참전
베트남 전쟁


1. 개요
2. 생애
2.1. 군인 시절
2.2. 국정원장 시절
2.3. 국정원장 경질 후
3. 국정원장 재직 시절 범죄
3.1.1. 재판
3.3.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자 정보 불법 취득 사건
3.4. 가석방
3.5. 사면
4. 선거 이력
5. 소속 정당
6. 여담
7. 저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 육군의 전 군인, 전 정무직 공무원,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국가정보원장, 충남대학교 군사학부 명예교수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2. 생애[편집]


1944년 10월 20일 충청남도 대덕군 북면(현 대전광역시 대덕구)에서 아버지 남교목(南敎穆, 1919 ~ )과 어머니 전주 이씨 이순재(李順宰, 1920 ~ )[3] 사이에서 4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대전대흥초등학교와 대전중학교, 배재고등학교졸업하고 1965년 육군사관학교(25기)에 입교했다.

1969년 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소위로 임관했다.


2.1. 군인 시절[편집]


군인 시절의 남재준은 뚝심있고 강직한 성품이었다고 평가받는다. 육사 출신이었지만 하나회에 가입하지 않은 탓에 영관급 장교 시절의 대부분을 보낸 대한민국 제5공화국 시절 막대한 인사 불이익을 받아왔다. 소령에서 중령으로 진급할 때는 육군사관학교 + 보병임에도 불구하고 무려 4차 이상에 진급했고, 대령 진급도 3차에서 할 수 있었다. 보통 3,4차 진급은 다음 계급으로 진급할 생각은 하지 말라는 의미나 다름없다. 新東亞 2013년 8월호 기사

아무리 하나회 출신이 아니라고 해도 이 정도 수준으로 진급에서 밀리는 케이스는 흔치 않았다. 사실 그는 정권에 밉보인 상태였고,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신군부가 벌인 12.12 군사반란 당시, 정병주 육군 특전사령관의 비서실장으로 반란군과 총격전으로 맞서다 사망했던 김오랑 중령[4]이 그와 육사 동기였다.[5] 이 사건이 터졌을 당시 남재준은 소령 계급으로 육군대학 교관을 맡고 있었고, 친구가 사망한 직후 강의 도중 군의 정치개입을 강력히 성토했을 뿐만 아니라,[6] 자주 김오랑 중령의 무덤을 찾아가 울분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즉, 육군 내부의 청년장교들 중 전두환 반대파였기 때문에 단단히 찍혔던 것. 新東亞 2004년 10월호 기사[7]

이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며, 대대적인 하나회 숙청 작업이 실시되었다. 덕분에 숱한 고위급 장성들이 갈려나갔으며, 그 반사이익으로 군사정권 시절 영관급 장교였을 땐 매번 진급에서 물을 먹던 남재준도 기사회생,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김영삼 정부에서부터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남재준은 중령, 대령 진급을 3-4차로 밀리던 것과 달리 중장까지의 진급을 1차에 하였고, 그것도 6사단장, 육본 인사참모부장, 수도방위사령관, 합참 작전본부장 등 요직[8]만을 지냈다. 모든 진급을 1차에 끝냈다고 알려져 있으나 대장 진급은 동기인 김종환(1군사령관, 합참의장), 서종표(3군사령관)가 2001년에 이미 진급했지만 남재준은 2002년 상반기가 돼서야 진급했다. 남재준은 연합사 부사령관을 지냈고 2003년에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에 취임하게 된다.[9]

노무현 정권 당시 육군참모총장으로 재직 중 그 유명한 병영생활 행동강령을 시행하고, 2003년 즈음에는 폐타이어로 축성되어 있던 '전국의 모든 전투진지'를 진지공사 할 때 콘크리트 블록이나 흙벽돌 등으로 재구축하라고 지시했다. 전자의 경우 육군 내 각종 가혹행위나 구타 등의 부조리를 청산하고 후자 역시 겉으로 보기엔 환경보호에 앞장섰다며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일선 부대에서 시멘트, 흙, 지푸라기 등을 섞어 만드는 흙벽돌의 경우 내구성이 헝편없어 매년, 심지어 비만 오면 금이 가고 무너지는 등 부작용이 있다.[10] 군 전통의 악습 '보여주기'의 병폐가 좋은 의도를 말아먹은 셈. 재밌는 건 당시 현역 장병들에게 '쌩 노가다 시키고(진지재구축) 고참병들 권위 깎는다(행동강령)'고 평가절하 당하곤 했었다.

2004년 말 본인이 연관된 장성 진급 비리 관련 연루 의혹 등이 국방부 군검찰 등에서 제기된데다가 청와대 주도의 군 인사가 일어나면서 이를 두고 청와대 - 국방부 - 육군본부 - 기무사 간의 갈등관계가 일어났을 정도였다. 결국 이런 문제들이 터지면서 전격적으로 사의를 표하고 2005년 상반기 인사에서 전역했다.[11][12]

2005년 대장 예편 후 서경대학교 군사학과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이후 충남대학교 군사학부 명예교수를 역임하며 교육계에 잠시 몸담은 적이 있다. 2007년 남재준 대장 인터뷰 이때 있었던 육군사관학교 특강에서 "생도들은 내가 부러운가? 나는 생도들이 너무 부럽다. 생도들은 얼마든지 육군 참모총장이 될 수 있지만, 나는 다시는 생도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꿈이 있는 생도라는 신분에 감사해라"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 발언이 끝나자마자 생도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고 한다.

현역 고급 군인이 골프치는 것을 비판했다고 언론사편으로 보도된 적 있다. "골프를 치는 것은 개인 사생활인 만큼 공과 사를 구분하면 그만" 참모총장 임명때의 MBC뉴스, 2003년, "대한민국 군대의 장교가 주중 내내 골프를 화제로 삼고 주말엔 골프장을 찾는다면 차라리 골프선수가 되지 왜 군인이 되었는지 모르겠다"주간경향, 2014년.


2.2. 국정원장 시절[편집]


위와 같이 군인으로서는 매우 높은 평가[13]를 받고 있으나, 퇴임 후 정치적 행보 특히 국정원장 재직 시절에 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다.

전역 이후 2007년부터 남재준은 이른바 친박인사로 분류되어 왔다. 그 결과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2013년 국가정보원 원장에 취임하였다. 그가 지휘하는 국정원은 여러차례 국내정치에 파장을 불렀는데, 이 중 하나로 먼저 남북 정상회담 회담 대화록 유출사건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7 남북정상회담시에 NLL포기를 김정일에게 약속했다"는 일부 정치인의 주장을 돕기 위해서 남재준은 국정원에 비밀로 보관되어 있던 남북 회담 대화록을 공개한 것. 이는 외교적으로 큰 문제를 야기했으나, 결과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그런 발언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만 증명되었고, NLL포기발언을 했다는 허위사실을 주장한 정치인(김무성, 정문헌) 들이 후에 줄줄히 사과하거나 법적 처리됨으로써 # # 일단락되었다. 남재준 자신은 친권력적인 검찰에 의해 무혐의 처리되어 법적 책임에서 벗어났으나, 국정원을 정쟁의 한가운데로 끌어들였다는 비난을 받았다. 아울러, 자기 수틀리는 대로 외교기밀을 마구 떠벌리고 다니는 결격자가 고위 공직을 해먹는 나라라는 이미지를 심어줌으로써 한국 외교의 전반적인 신뢰성을 실추시켰다는 평가가 있었다.

남재준 재임기에 국정원이 벌인 가장 큰 과오는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이다. 이 사건은 국정원이 탈북 화교인 유우성을 북한 보위부의 지령을 받은 간첩으로 조작하려다 결과적으로 관련자 모두 무죄를 받고, 증거를 조작한 국정원 요원들이 처벌된 사건이다. 거기에 이 사건 때문에 북중국경 부근에서 활동하던 국정원 현지 요원들이 중국 방첩기관에 줄줄이 신분이 노출되어 이후 대북 정보수집에 차질을 빚었다고 한다.

또한 북한붕괴론확증편향되어 매년 북한이 붕괴될 것이라고 국정원발 통신으로 주장했으나[14] 실제로는 북한은 붕괴하기는 커녕, 전력을 증강시키면서 버젓이 도발을 벌이고 있었고, 국정원은 이런 북한 내부의 정보는 깜깜이었다. 국정원이 숙청 혹은 처형되었다고 밝힌 북한 인사들 중에서 어떤 이들은 몇 달 후 공개석상에 버젓이 나타나기도 했다.[15] 때문에 사고가 경직된 군 출신이 국정원을 맡는 게 과연 합당하냐는 회의론도 있었다.

특히 지나치게 호전적이라서 김정은의 암살도 실행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다녔는데, #, 한 국가의 정보수장을 지낸 사람이 이런 식의 정제되지 못한 발언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유우성 간첩 의혹 사건이 대법원에 의해 국정원의 조작으로 판명되자, 책임론이 불거졌고, 결과적으로 후임자도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2014년 5월 경질되었는데... 실상은 놀라운 반전이 있었다.


2.3. 국정원장 경질 후[편집]


2016년 말에 불거진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에서, 남재준 원장의 실질적인 경질 사유가 드러났다. 남재준 원장은 비선실세에 관한 보고서를 청와대에 올렸다가 이틀 만에 전격 경질된 것이었다. 즉, 간첩의혹사건에 원장으로서의 책임은 허울 좋은 명분이었을 뿐이었다.

조응천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증언에 따르면, 남재준 원장은 국정원 내에서 박관천과 친분있는 인물의 명단을 내놓으라는 청와대의 지시를 거부했다. 남재준은 "(국정원)인사는 (국정원장인)내가 하는 것이다. 정윤회 관련 정보를 내놔라. 내가 청와대에 들고 간다."고 했다. 그렇게 청와대에 비선실세 관련 보고서를 낸 지 이틀 만에 경질당한 것.비선실세 의혹을 최초로 고발했던 세계일보 기사

그리고 2017년 1월 인터뷰에서 “국정원에 사찰은 고사하고, 검증 기능마저 제한돼 있었다”면서 “내가 만약 정윤회·최순실 (농단을) 알았다면 총이라도 들고 청와대 들어갔을 것”라고 발언했다. 남재준 "최순실 농단 알았다면, 총 들고 청와대 들어갔다"월간중앙 인터뷰 전체내용[16]

남재준은 노무현 정권 당시 육군참모총장으로서 군인사와 관련하여 청와대와 날을 세운 적 있었다. "왜 정치권이 군인사에 개입하는가. 군인사의 결정권자는 참모총장이다."라고 주장했다. 당시 노무현은 대통령으로써 국군 통수권자였기에 사실 말이 안 되는 말이다.[17] 그말인즉슨 대한민국의 모든 국군의 상관이라는 말인데 저 말은 넒게 보면 하극상이 될 수도 있다.

심지어는 진급심사 기간중인 2004년 8월 31일에는 계룡대 육군본부에서 군 장성과 영관급 참모 20여명이 모인 가운데 노무현정부의 군 개혁정책에 대한 입장을 피력하며 “이런 식으로 하면 군인들은 다 굶어죽으란 이야기냐. (고려무신정변인) ‘정중부의 난’이 왜 일어났는지 아는가. 무인들을 무시하고 문인을 우대한 결과 아닌가”라고 발언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그의 발언은 일각에선 ‘사실상 군사 쿠데타를 암시한 것 아니냐’는 해석까지 있었다. 그러나 이에 남 총장은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며 진화에 나섰고, 군 당국이 진상조사에 나섰지만 진실규명 없이 흐지부지 종결됐다. 노무현은 못마땅해 하면서도 결국 참모총장인 남재준의 손을 들어줬다. 이렇듯 정치권과 날을 세웠음에도 남재준은 참모총장의 임기를 모두 채우고 전역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에서 그의 일관된 강직한 소신은, 이틀 만에 경질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낳았다.

남재준 육군참모총장 시절 청와대와 군 인사 등을 포함해서 갈등을 빚었다. 육군참모총장과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충돌은 상당히 상징적인 사건인데, 문민통제 항목에서 볼 수 있듯 정치권이 군인사에 개입하는 것이 당연하며 군인사의 최종 결정권자는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다. 군의 문민통제 원칙은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되어있을 정도로 기본적인 민주주의 원칙 중의 하나이다. 군 인사를 육군참모총장이 결정한다는 사상 자체가 군부독재 시기를 미화하는, 아니 군부독재의 시스템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모습이라는 것은 시각도 있다. 단,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재준 전 국정원장에게 부정청탁(이 사람을 준장으로 진급시킬 수 있게 좋게 봐달라)을 한 것을 남재준이 거절하였을 뿐이다.

국정원장이라는 직책의 성격상 대통령과 자주 독대를 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할 기회를 거의 갖지 못했다고 한다. 국정원장으로서의 인사권 행세도 문고리 3인방의 외압 때문에 제대로 하지 못했으며, 심지어 직원들에게 면이 제대로 서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쯤 되면 완전히 바지원장이었던 것. 당시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알자회 때문에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2.4. 19대 대선 출마[편집]


19대 대선 출마를 선언했고, 예비후보 등록을 마쳤다.

한때 新 새누리당에 입당하여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한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조원진이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추대되면서 무산되었다.

결국 4월 13일 통일한국당의 대선후보로 출마하면서 무소속 출마는 아니게 되었다.

'나는 대한민국이다!'라는 특이한 슬로건을 내세웠다.

또, [[의회해산#s-3|국회 해산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우리나라 헌법의 전문을 한번이라도 읽어 보았던 사람, 혹은 국회 해산 문서에 들어가 본 사람이라면 말이 안된다는 것을 알수 있다. 현행 헌법하에서 국회를 해산시키려면 헌법을 위반하는 수밖에 없다. 아니면 국회 해산이 가능하도록 개헌을 하든지..

여담으로 본인의 선거공보물의 표지 맨 위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 시절에 어떤 군인을 진급시켜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정치권이 군 인사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며 거절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2017년 4월 29일에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지지하며 대선 레이스에서 도중 사퇴했다.

그런데 사퇴 후에도 광주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되었다고 주장하였다.


3. 국정원장 재직 시절 범죄[편집]



3.1. 국정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사건[편집]




  • 남재준은 특수활동비 상납 혐의(국고손실, 뇌물공여)와 현대기아차에게 대한민국재향경우회 산하 기업에 26억원대의 일감을 밀어주라고 요구한 혐의(직권남용)를 받고 있다.






  • 2020년 4월 9일 특활비 상납 파기환송심 재판이 시작되었다. 앞서 1, 2심에서 무죄로 판단했던 일부 국고손실 혐의와 뇌물 혐의를 유죄로 봐야 한다고 대법원이 결론 내리면서 파기환송 됐다.




3.1.1. 재판[편집]




3.2. 국가정보원·국방부 여론조작 사건[편집]




  • 2018년 11월 6일 항소심에서도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 받았다. #

  • 2019년 3월 14일 대법원은 남재준의 상고를 기각하여 3년 6개월 실형을 확정했다. 이로써 국립묘지 안장 혜택은 물 건너갔다.[18] [판결] '2013년 국정원 댓글수사 방해' 남재준·장호중 실형 확정


3.3.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자 정보 불법 취득 사건[편집]



  • 2018년 11월 22일 검찰은 징역 3년을 구형했다. #

  • 2019년 1월 4일 1심 법원은 '혼외자 첩보를 검증하라고 명시적·묵시적으로 승인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

  • 2020년 2월 4일 항소심 선고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변론이 재개되었다. #

  • 2020년 6월 30일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19] [판결] '채동욱 혼외자 등 뒷조사 혐의' 남재준 前 국정원장, 항소심도 "무죄"



3.4. 가석방[편집]


2022년 5월 30일 가석방되었다. 尹정부 첫 가석방에 남재준·이병기 전 국정원장 포함 국정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사건/재판/남재준·이병기·이병호·이헌수·이원종으로 같이 재판받던 이병기이헌수도 가석방되었다. 이원종은 애초에 무죄였으며 이병호는 형기가 많이 남아 이번 가석방에서 제외되었다.


3.5. 사면[편집]


2022년 윤석열 정부 특별사면으로 사면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면을 결정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장관문재인 정부 시절 각각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 3차장을 맡아 당사자를 감옥으로 보냈던 사람들이다.


4.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종류
소속정당
득표수(득표율)
당선여부
비고
2017
제19대 대통령 선거[20]

파일:통일한국당(2016년) 흰색 로고타입.svg

후보 사퇴
2017년 4월 29일 후보직 사퇴[21]


5. 소속 정당[편집]


소속
기간
비고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svg

2007 - 2012
정계 입문

[[새누리당|
파일:새누리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12 - 2013
당명 변경

[[무소속|
무소속
]]

2013 - 2014
공직 취임으로 인한 탈당

[[새누리당|
파일:새누리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14 - 2016
복당

[[자유한국당|
파일:자유한국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17
당명 변경

[[무소속|
무소속
]]

2017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

파일:통일한국당(2016년) 흰색 로고타입.svg

2017 - 2018
입당
정계 은퇴

[[국민참여신당|
]]

2018 - 2019
당명 변경

[[무소속|
무소속
]]

2019 -
탈당[22]


6. 여담[편집]


  • 제19대 대선 당시 통일한국당(現 국민참여신당)에 입당했지만 대선 후 별다른 활동이 없던 통일한국당을 다른 세력이 인수해버렸다.[23] 확실한 것은 국정원 시절에 저지른 범죄로 인해 실형이 확정되어 피선거권이 박탈되었다. 아마 이후 탈당한 것으로 보인다.

  • MB와 목소리가 비슷하다는 의견도 있다.

  • 복역 중 모친상을 당해 3박 4일간 일시석방 되었다. #

  • 시크릿 파일 위기의 장군들에서는 악역으로 나오며 윤광웅과 엄청나게 대립한다.

  • 6.25 전쟁 당시 불린 군가인 충성가가 애창곡이라고 한다. 이 노래는 한동안 잊혔으나 국정원장으로 취임한 지 얼마 안 된 2013년 12월 송년회에서 남재준이 부르면서, 점차 태극기 부대의 애창곡이 되었다.

  • 육군훈련소 인분사건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는데 육군훈련소장이었던 허평환 소장을 경고조치 한 적이 있었다.


7. 저서[편집]


  • 옥중에서 쓴 군인 남재준이 걸어온 길 - 양문출판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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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송정공파(松亭公派) 17대손 진(鎭) 항렬. 영양 남씨 25세손. 본인은 항렬자를 쓰지 않았지만, 형 이름이 남일진(南一鎭)이고 동생들의 이름이 각각 남우진(南宇鎭)·남형진(南亨鎭)이다.#[3] 이강한(李康漢)의 딸이다.[4] 당시 소령. 이후 중령 추서[5] 시간이 지나고도 친구 무덤에 찾아가서 울분을 토했던 걸 보면 꽤나 친했던 모양이다.[6] 당시 그가 육군대학 교관이었다는 것은 유능한 장교였음을 방증한다. 육대 교관 중 한직도 물론 있지만, 정규과정 장교를 직접 대면하고 강의해야 하는 육대의 소령급 교관은 예나 지금이나 요직이다.[7] 전두환에 대한 증오가 나이를 먹어서도 식지 않았는지 남재준은 국정원장이 되자마자 가장 먼저 전두환 은닉재산을 추적해 데이터를 모아 검찰에 넘겨줘서 터트리게 만들었다. 이 덕분에 노태우는 추징금을 완납했고 전두환은 끝내 납부하지 않았으나 대신 그의 차남을 노역신세로 만드는 데 성공.[8] 수방사령관과 합참 작전본부장은 대장 진급에 파란불이 들어왔다고 봐도 좋을 만큼 중장 보직 중 최고의 요직들이다. 많은 대장들이 합참 작전본부장직을 중장 때 거쳐갔다.[9] 당시 3군사령관인 서종표 대장을 꺾고 참모총장이 되었다. 1군사령관이었던 김종환 대장은 합참의장이 되었다.[10] 흙벽돌이란 게 원래 처음부터 흙 종류도 잘 골라야 하고 흙과 시멘트와 돌 비율 정확히 맞춰 화로불에 구워야 단단한 벽돌이 나온다. 즉 준비와 재료에 대한 이해수준이 높아야 되는데, 여기에 대한 이해는 없이 예산과 재료를 배정한다. 때문에 보통은 진지 근처 아무 흙 갖고 햇볕에 말려서 만드는 수준이 된다. 제작 중에 습한 날씨가 되면 마르지 않고 스스로 무너지는 수준인데 비까지 오면 당연히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게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같은 TV프로에도 나오고 지금까지도 매년 친환경 진지 구축이라고 프로파간다를 타고 있는 흙벽돌 진지의 실체다.[11] 당시 핵심 수사진은 국방부 검찰단 보통검찰부장이었던 남성원 소령과 고등검찰관이었던 최강욱 소령 등이었는데, 윤광웅 국방부장관 및 주요 군 수뇌부가 이 사건에 대해 정치적 이유로 수사를 제약한다는 점을 들어 집단 사퇴서를 제출하였고, 이들은 결국 이후에 보직해임되었다.[12] 당시 수사를 맡은 최강욱 변호사는 정봉주의 전국구에서 당시 일을 이야기하며 남재준을 매우 부정적으로 묘사했다. 판단은 알아서.[13] 논란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그렇게 행동해야 했던 분명한 이유가 있었던 게 대부분이라 무조건적으로 비판하기도 애매한 게 현실.[14] 하지만 이러한 보고들이 박근혜의 '통일대박론'에 비위를 맞추기 위해 실제 내용과 다르게 왜곡 조작. 것으로 드러났다. #[15] 사실 틀렸다고 까기는 애매하다. 폐쇄적인 북한 사회 특성상 북한 측에서 대놓고 공식발표를 하지 않는 한, 100% 확신할 수가 없다. 때문에 언론이 아닌 국가 정보기관의 대북정보관련 공식 발표는 "~으로 보인다."는 강한 추측성 어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딱 부러지게 말하는 것은 소스가 잡힐 위험이 있기 때문에, 내부판단으로 100%든 50%든 간에 공개 발표를 완전히 단정지어 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읽는 쪽에서도 그걸 고려하고 읽어야 한다.[16] 전문을 보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문서에 적힌 말과 행동들을 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 해당 내용은 본인의 주장을 실은 인터뷰 기사다.[17] 일단 육군에 대한 군인사, 군조직에 관한 사항을 담당하는 군정권은 육군참모총장에게 있는게 맞다. 하지만, 헌법 상 국군통수권은 군정권과 병력출동권한인 군령권을 포괄하는 훨씬 높은 권한이므로 남재준 총장의 말은 말이 되지 않는다.[18] 금고형 이상 선고시 군인연금 및 국립묘지 안장 등 전직 군인 예우 박탈됨[19] 다만 서천호 전 국정원 2차장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국정원 직원 두 명은 각각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과 벌금 5백만원을 선고받았다.[20] 전임자 박근혜 탄핵 인용에 따른 파면으로 인한 궐위에 의한 선거[21]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와 단일화[22] 이후 소식은 알 수 없으나, 대선 후보 사퇴 이후 탈당했을 가능성도 높다.[23] 이때 안홍준도 같이 입당하여 당 대표가 되었는데, 그도 비슷한 시기에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