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부활절 연합예배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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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전개


1. 개요[편집]


박정희 유신 정권 시기였던 1973년 빈민구제와 민주화 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한 개혁적 개신교인들이 내란음모를 꾸몄다는 이유로 탄압당한 사건.


2. 전개[편집]


당시에는 와우 시민아파트 붕괴사고광주대단지사건 등 도시 빈민 문제가 아주 심각했다. 수도권도시선교위원회를 설립한 박형규, 권호경 등은 '빈민도 시민의 일원이다. 빈민도 하나님의 자녀다'라는 신념에 따라 판자촌을 중심으로 도시빈민 선교활동에 관심을 기울이던 중 남산 야외음악당[1]에서 열린 부활절 기념예배를 민주화의 필요성을 알릴 절호의 기회로 이용하기로 했다. #

1973년 4월 22일 그들은 ‘신도여, 부활하신 왕, 주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 꽃피우자’, ‘민주주의는 통곡한다’ 등의 플래카드와 ‘민주주의의 부활은 대중의 해방이다’라는 내용의 전단을 준비하고 부활절 예배에 참석하였으며 새벽 연합 예배에 참석하고 귀가하던 교인들에게 일부를 배포하였다. 그런데 전단을 입수한 박정희 정권은 이 사건을 '내란음모예비'로 규정하고 1973년 7월 6일 서울지검 공안부는 서울제일교회 목사 박형규(50)·동교회 전도사 권호경(32)·전 신민당 조직국 제2부 차장 남삼우(35)·이종란(27) 등 4명을 해당 혐의로 구속하였다. ##2

같은 해 9월 25일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는 박형규·권호경에게 각각 징역 2년을, 남삼우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하고 이종란에게는 징역 1년을 선고하였다. 그러나 선고 이틀만인 9월 27일 서울형사지방법원은 박형규·권호경·남삼우에 대한 보석을 결정했다. 1973년 4월 남산 야외음악당 개신교 부활절 연합예배 사건은 반유신운동이 최초로 표면에 떠오른 사건이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사건은 기독교가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 뛰어든 사건이라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이 사건 이후 박형규는 민주화 운동의 전면에 나서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되는 등 수 차례의 옥고를 겪으면서 문익환·계훈제·백기완 등과 함께 민주화 운동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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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0년 철거 후 잔디공원으로 쓰이다가 주차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