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남북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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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南男北女
2. 영화 남남북녀
3. TV프로그램 애정통일 남남북녀


1. 南男北女[편집]


우리나라에서, 남자는 남쪽 지방 사람이 잘나고 여자는 북쪽 지방 사람이 고움을 이르는 말.

조선 후기 문신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이 1871년에 지은 임하필기에는 다음과 같이 수록되어 있다.

세상 사람들이 남남북녀를 남방은 남자가 잘나고 북방은 여자가 잘났다는 뜻이라고 말하는데, 사실은 함관(咸關)[1]

의 남쪽과 북쪽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다. 관북의 여자들은 체구가 크고 살갗이 희며 베 짜기를 잘하여 상납을 바치는데, 항시 양기를 피하여 흙집에서 베 짜는 일을 한다. 한 해에 2단을 짜는데 그 값이 돈으로 치면 수백금에 해당한다. 시집을 갈 때가 되면 살림이 넉넉한 자는 치마를 4, 5벌이나 갖추고 가마 위를 면포로 덮어씌운다.


조선시대 남부 지역의 유생들의 중앙직 진출이 가장 두드러지고 북쪽의 평양개성에는 명기(기생)들이 많아서 남쪽은 남자가 성하고 북쪽은 여자가 성하다는 의미로 '남남북녀'라고 한다는 설, 북쪽에서는 부지런해야 살아남기에 여성이 부지런하다는 것에서 나온 설도 있다. 함경도는 여자가 장사를 잘하고, 평안도는 여자도 농사를 잘한다는 이미지도 있었다.

조선 중기까지는 이곳은 외침을 심하게 받아 인구가 적었고 북쪽이 안정되지 못해 무역도 어려워 척박하였다. 그래서 삼남지방 사람들을 모아 이주시켰다. 색향과 같은 이야기는 아직 이 지역이 발전하지 못했기에 나오기 힘든 것이었다. # 조선 중기에도 계월향, 홍랑 같은 인물의 전설이 내려왔으나 남쪽에도 논개, 이매창 같은 사람이 유명했다. 송시열 같은 1600년대의 인물이 서북 지방의 여성은 매우 건강하고 민첩하다며 여군 창설을 주장한 기록이 있던 정도다. 조선 후기에도 춘향 같은 유명한 여성의 이야기가 남쪽에서 유명했으나 진주가 미인이 많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정도 말고는 언급의 빈도가 줄어들고, 평양이나 강계 같은 북쪽의 도시들이 더 언급이 늘어난다. 변강쇠로 유명한 가루지기처럼 말그대로 남남북녀의 상황을 다룬 이야기도 등장했다. 평안도 출신인 옹녀는 평안도와 황해도 사람들에게서 쫓겨난 후 삼남의 남자가 더 좋다는 언급을 하고, 경상도 출신인 변강쇠는 경제적인 이유로 평안도와 황해도를 목적지를 하여 올라가던 도중에 그 중간 즈음에서 결혼한다는 식의 이야기인 것이었다. #

경제적으로는 조선 후기 들어 평안도 일대가 발전하기 시작했고, 함경도도 이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사정이 나아진다. 과거 급제자가 영조 이후 가장 많은 곳이 평안도 정주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사대부가 없는 북쪽 사람들은 상업을 천시하지 않아 장사에 몰두하고, 청나라가 안정되며 무역이 활발해지게 되었다. 이에 풍류를 즐기려는 시도가 활발해져 평양과 강계는 색향 이미지가 덧씌워지게 된다. 다만 정치적 권력은 북방이 발전할 때면 명문가에게만 주로 주어진 지 오래로, 이미 한양의 양반들이 그나마 권력이 있던 남부 지방의 사람들마저 몰아낼 시기라 얻을 여지가 별로 없어 흥선대원군 시기까지 제대로 권력을 얻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남성이 상대적으로 밀렸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

평안도는 일제강점기쯤 되면 여자들이 느긋하고 꾸미기에 집중하고 헤픈 씀씀이의 편견이 있는데, 그건 평양이나 강계의 기생에 해당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 일제강점기 메밀꽃 필 무렵으로 유명한 이효석의 《모던걸 멜론》이라는 작품에서는 함경도인 회령도 "물 맑은 두만강을 끼고 난 곳이기 때문인지" 살결 고운 미인이 많다는 묘사가 있다. 1925년 3월 27일 동아일보 기사에서도 함경도 성진도 피부빛이 곱다는 등의 묘사가 등장한다.

이 논문에 따르면 한국인의 유전자 미토콘드리아 DNA[2]는 65%의 표본이 북방계(표준편차 0.25)역시 고구려의 후예, Y 염색체[3]는 83%(표준편차0.14)의 표본이 남방계였다고 하니 남남북녀는 과학적으로 일리있는 말이었다. (선호도가 높은 쪽이 자손을 많이 남겼을 테니.) 그러나 배우자를 선택하는 기준을 생각해보면 선호도의 결정요인 중 외모는 소량의 비중만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남북분단이 된 현대 대한민국에서 남남북녀라고 하면 남한 남자북한 여자에 빗대서 말하는 경우가 많다. 남남북녀로 검색해보면 아래의 프로그램 관련 내용이나 북한 여성 결혼업체 관련 내용만 주루룩 나온다.

아닌 게 아니라 한국 남자들 중에는 북한 여성이 세련되게 꾸미지는 않았(못했)지만 원판은 평균적으로 예쁜 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1967년만 해도 남쪽 남자와 북쪽 여자[4]의 로맨스를 다룬 영화가 나오는 등 환상이 있었고#, 시대가 지나 왜 남남북녀가 나오지는 모르지만 말 자체는 들어본 사람들은 있어 이것을 북한과 연관짓는 시각도 생겨났다. 남한에서 TV 등 미디어에서 간접적으로 접하는 북한 여성의 모습은 소위 '미녀 응원단'이나 '은하수 관현악단'처럼 북한에서 평균 이상의 외모를 보여주는 경우가 많아서 어느 정도 편견이 반영되기 때문인 듯 하다. 사실, 결혼이라는 것은 어차피 개개인의 사생활이므로 누구와 결혼하든지 남들이 왈가왈부 할 일은 아니다.

사실, 이런 경우는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가 섞인 경우이다. 러시아크림 반도를 합병하면서 이에 대한 국제적인 비난 여론을 조금이라도 무마하고자, 나탈리아 포클론스카야 같은 미녀를 검사장으로 임명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현재 북한에서 가장 인기있는 그룹인 모란봉악단도 똑같은 의도로 결성했다.

요컨대 일제강점기 이전의 언급을 보면 북쪽 여자는 꾸미기를 좋아하는 편견과 희다는 관념이 많이 나온다. 아름다운 기생의 이미지도 어느 정도 뒤섞인 모습도 있다. 키가 크다는 언급도 있으나 이 당시에도 키가 큰 것을 미인으로 여겼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분단 이후 평양 등지와 접촉이 불가능해져 평양 미인 등은 찾지 못하게 되고 중부·남부의 그나마 미인으로 유명했던 도시와 대구 같은 새로운 도시에도 미인에 관한 속설이 퍼지게 된다. #

북한에서도 이런 주장을 알기는 하지만, 강계는 이제 미인의 도시가 아니라 전기의 도시라고 하는 등 별로 좋아하지 않는 눈치다. # 평양은 꾸미기를 좋아하고 느긋하다는 관념도 북한이 들어서며 "평양시는 광복 전 비문화적이고 기형적인 상업도시로부터 광복 후에 화려한 문화도시로 전변되었다."라고 조선향토대백과가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2010년대 들어 한류로 북한 사람들이 다시 꾸미기 시작했는데, '자본주의 날라리풍' 이라며 체제 위협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이 말하길, 통일된 후로는 남남북녀 커플 혹은 부부가 많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한다. 결혼을 포기한 남한 노총각들이 동남아 여성을 대신해 말도 통하고 같은 민족인 북한 여성들과 결혼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실제로 북한이탈주민 여성들 중에 남한 남성과 결혼한 부부도 굉장히 많다. 일부 탈북자도 북한 여성이 통일된 후엔 상향혼을 노리고 더 잘 사는 한국 남성이나 중국 남성을 택할 확률이 높다고 볼 정도다.[5]

그러나, 반대로 남한 여성과 북한 남성 커플은 거의 없을 가능성이 크다. 고난의 행군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 남한 여자보다 키가 작을 것이라는 인식마저 있으나 이 문서를 보면 저 때 태어난 사람이라도 163~165cm 정도로 2~4cm은 크다. 158cm설은 과장된 설로 추정되고, 수천만이 굶어죽은 대약진 운동 시기에 태어난 중국인 남성도 166cm은 되니 161cm 정도의 여성 급은 되기 어렵다.

하지만 왠지 한국 드라마에서는 남한 여성과 북한 남성 간의 로맨스가 더 자주 묘사되는 편이다. 가부장적 이미지도 강한데 2010년대 이후의 최근에는 혜산시 문서를 보면 여성이 경제권을 쥐며 북한 남성의 권력이 약해지는 양상도 생기는 모습도 보인다. 북한도 2019년쯤이면 남자가 시장에서 아기를 업고 돌아다니는 것이 실제로 카메라에 찍힌다. 선전용이 아니라 북한 학자가 몰래 줌을 당겨 찍는 것이다. # 통일은 온다면 더 늦은 시기에 올 것이니 북한 90년대 후반 출생은 짝을 구하는 대신, 더 나중 세대의 북한 남성은 키가 좀 커도 돈이 적어서 결혼을 못할 가능성이 크다.

기본적으로 여성은 짝을 구할 때 외모뿐만이 아니라 경제력 등 부가적인 요소들도 보다 꼼꼼히 따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기보다 절대적/상대적으로 더 잘 살거나 아무리 못해도 그냥 자기와 사는 수준이 비슷한 사람과 사귀거나 결혼하기를 원하는 경향이 높지, 더 못 사는 사람과 사귀거나 결혼하려고 드는 경향성은 낮은 편이다. 이건 한국같이 경제수준이 괜찮은 나라는 물론 후진국 여성들에게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6] 그래서 더 잘 사는 남한 여성들이 자기들보다 경제수준이 훨씬 떨어지는 북한 남성들과 짝을 맺는 것을 감수할 가능성이 떨어진다. 이건 젊은 세대의 한국 남성들에게도 점점 통용되는 이야기다. 대한민국의 청년 세대들은 이전 세대보다 결혼에 있어서 상대가 될 여자의 경제수준 등 부가적 요소들도 좀 더 꼼꼼히 따지는 경우가 많다.

노총각이 아닌 남한의 젊은 남성들은 통일 후에도 대부분 남한 여성과 결혼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건 남북통일이 될 때의 이야기이니 북한 여성과 결혼하고 싶은 노총각들은 현실이 아닌 그저 꿈이라고 생각하자. 그리고 애초에 한국에서 어느 지방 여자가 더 예쁜지 나누는 것만큼이나 의미가 없다. 가장 외모를 가꾸기 힘든 상황에 놓인 여성들이라 비교가 잘못됐다. 어여쁜 남한 여성을 저기에 데려다 놓으면 똑같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적는 내용이다. 그리고, 결혼은 어디까지나 개개인의 자유다.

애초에 북한군 사병은 화장을 못한다. 시작부터 간부로 시작하여 화장에 대해서도 북한군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자유를 만끽하는 수준인 한국 여군과는 그 처한 상황이 차원이 다르다. 심지어 북한군 사병 여군부대는 못하는 수준을 떠나 아예 화장품 자체가 없으며 화장을 하고 안하고 얼마나 심각한 차이가 나는지, 여자친구나 여자 형제, 어머니가 있는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2. 영화 남남북녀[편집]


파일:영화 남남북녀 포스터.jpg

2003년 개봉한 조인성, 김사랑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
영남대학교, 계명대학교에서 이 영화를 촬영한 적이 있었다.


3. TV프로그램 애정통일 남남북녀[편집]


TV조선의 예능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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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함경남도 함주군 덕산면과 홍원군 용운면 사이에 있는 재. 북쪽에 차유령이 있음. 함경산맥 남서단에 위치함[2] X 정자의 미토콘드리아는 수정 후 파괴되므로 난자의 미토콘드리아 DNA만 남는다. 그래서 여성의 모계 혈통을 추적할 수 있다![3] 남자만 Y 염색체를 가지고 있으므로 부계혈통을 추적할 수 있다.[4] 여자는 평안도 출신 실향민이다. 남자는 경상도 출신이다. #[5] 북한 여자 중엔 실제로 한족 남성과 결혼해 집에 돈을 부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북한 뿐만이 아니라 후진국에선 자기 나라 사람들보다 좀 더 잘 사는 선진국 남성과 결혼해 상향혼을 노리거나 집안 경제사정에 보탬이 되게 하려는 마음으로 국제결혼을 택하는 사람들도 있다.[6] 특히 한국 여성의 경우 맞벌이를 해도 결혼할 때 남자의 재산을 중요하게 보고 결혼과 초기 살림에 보태는 비용도 여성보다 남성이 훨씬 많이 내는 편이다. 괜히 "집은 남자 혼수는 여자" 라는 인식이 있는게 아니다. 따라서 최소 한국에서 중간 수준 가는 경제력조차 없을 대다수 북한 남성들은 한국 여성의 선택을 받을 가능성이 아득히 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