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중순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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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nachi.jpg

1. 이름
2. 생애
3. 역사
3.2. 자바 해전 (이후)
3.3. 코만도르스키 해전
3.4. 레이테 만 해전


1. 이름[편집]


제3제국의 정당 이름인 나치와 한글 표기는 같지만 상관없다. 일본 해군 중순양함 명명법에 따라서 와카야마현에 있는 나치(那智)라는 산 이름을 본따 지어졌다.로마자표기는 Nachi이기 때문에 독일의 Nazi와 구분된다.


2. 생애[편집]


기공 : 1924년 11월 26일
진수 : 1927년 6월 15일
취역 : 1928년 11월 28일
침몰 : 1944년 11월 5일
제적 : 1945년 1월 20일


3. 역사[편집]



3.1. 자바 해전[편집]


자매함들과 함께 남방작전에 참가했고, 1942년 2월 27일부터 벌어진 자바 해전의 주력으로 참가했다. 양측의 편성은 아래와 같다.

일본 해군
연합군 해군
중순양함 나치
중순양함 하구로
경순양함 진츠
경순양함 나카
구축함 14척
중순양함 익세터
중순양함 휴스턴
경순양함 데 로이테르(기함)
경순양함 자바
경순양함 퍼스
구축함 9척
숫자로는 연합군이 뒤지지 않았으나, 지휘관이 네덜란드인이라서 휘하의 영국, 미국, 호주 군함들을 통솔하려면 통역관이 필요했다. 중순양함의 8인치포 숫자도 일본군이 20문인데 비해 연합군은 익세터 6문, 휴스턴 6문(3문이 더 있지만 공습으로 파손)이라 화력에서 열세였다.

오후 4시에 서로를 발견한 양측은 4시 16분부터 전투를 시작했지만 일본군 제2수뢰전대(기함 진츠)와 구축함들은 집중포화를 받고 퇴각했고, 제4수뢰전대(기함 나카)와 구축함들의 공격은 모두 빗나갔고, 나치와 하구로의 집중포격도 모두 빗나갔으며, 연합군의 포격도 모두 빗나갔다(...) 이런 식으로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다가, 결국 하구로가 연합군 중순양함 익세터에 명중탄 1발을 냈고, 기관부에 손상을 입은 익세터는 퇴각한다. 그리고 하구로는 어뢰로 연합군 구축함 1척도 격침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건, 수십발의 어뢰와 수백 발의 포탄을 퍼부었는데도 명중탄은 어뢰 1발과 포탄 1발이라는 것이다. 그나마 다른 배들은 어뢰라도 쏴봤지만, 나치는 어뢰발사에 실패하는 바람에 뇌격전에 참가할 수 없었다. 덤으로 하구로의 탄약고에 있던 수병 중 2명은 열사병으로 사망했다.

익세터의 후퇴를 엄호하기 위해 연합군은 구축함들을 투입했고, 일본군 역시 구축함으로 맞서면서 양측은 포격전을 벌인다. 이 전투로 연합군 구축함 엘렉트라가 격침되고 일본군 구축함 아사구모가 대파(이후 스크랩)되었다. 이후 20시 52분에 연합군과 일본군은 다시 조우, 포격전과 뇌격전을 벌이지만 양쪽 모두 한 발도 명중시키지 못한다.

전투 이후 이동하던 연합군 함대였지만, 연합군 기뢰밭에 잘못 들어가는 바람에 21시 25분, 구축함 쥬피터를 상실한다.

28일 새벽 두 함대는 다시 조우했고, 나치와 하구로는 포격전을 벌이는 척하면서 어뢰를 투사, 드디어 연합군 경순양함 데 로이테르, 자바를 격침시킨다. 그러나 나치와 하구로의 승조원들이 연합군 함선을 격침했다는 것이 기뻐하며 만세를 부르느라 잔여 연합군 함선들이 도주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뒤늦게 나머지 함선들을 찾기 시작했지만 추격을 하기에는 늦은 뒤였다.

이 해전에서 중순양함 나치와 하구로는 포탄 2000발, 어뢰 24발을 탑재하고 출동했지만, 전투 종료 후에는 나치가 포탄 70발, 어뢰 4발만 남았고 하구로는 포탄 190발, 어뢰 4발만 남았다. 그러나 명중탄은 익세터의 기관실에 하구로가 명중시킨 포탄 1발과, 데 로에테르, 자바, 구축함 코르테니어를 격침시킨 어뢰 3발밖에 없다. 포탄 3발이 더 명중했지만 불발탄이니 뭐(...) 2수뢰전대와 4수뢰전대의 어뢰 명중률이 0%인 것과 비교하면 그나마 나은 수치이긴 하지만 이래선 답이 없다. 일본군도 이 문제를 자각했기에 장거리 어뢰 발사를 자제하게 되었다. 여담으로 산소어뢰가 이렇게 괴멸적인 명중률을 자랑한 이유는 원거리에서 어뢰 발사를 해본 적이 없어서, 장거리 발사에 어떤 문제점이 수반되는지 몰라서라고 한다.

더 자세한 내용은 영문위키 자바해 해전, 일본어 위키 수리비야 해전 참조.


3.2. 자바 해전 (이후)[편집]


자바 해전 이후, 조금 작은 해전 몇 개가 더 있으므로 여기서 설명한다. 참고로 순다 해협 해전과 2차 자바 해전은 나무위키에서 1차 자바 해전과 함께 동일항목으로 묶여 있다.

순다해협 해전
2월 28일, 중순양함 휴스턴이 경순양함 퍼스, 구축함 에버센과 함께 기동하던 중 일본군 상륙부대와 만나 벌어진 전투.

일본 함대의 편성은 아래와 같다.
항공모함 류조
수상기모함 치요다
중순양함 모가미, 미쿠마, 스즈야, 쿠마노
경순양함 나토리
구축함 12척
기뢰부설함 1척
수송함 58척.
수적 열세가 너무 심했기에 연합군 함대는 전멸했지만, 여기서 미군 중순양함 모가미급 중순양함 모가미가 중대한 실수를 범한다. 휴스턴을 잡으려고 어뢰를 발사했는데, 그게 일본군 수송선 3척과 기뢰부설함 1척, 그리고 일본군 육군 소속의 강습상륙함 신슈마루를 격침시킨 것. 덕분에 상륙부대 사령관인 이마무라 히토시는 바다에 빠졌다가 겨우 살아났고, 일본 해군은 그에게 잘못했다고 사과해야 했다(...)

2차 자바해 해전
중순양함 익세터가 구축함 3척과 함께 자바 섬을 탈출하던 중 3월 1일에 일본 함대와 만나 벌어진 해전으로, 묘코급 중순양함 4척과 다수의 구축함들을 만나 집중공격을 받고 격침된 해전이다. 엑서터와 함께 있던 구축함들 중 2척은 해전에서 격침되고, 1척은 탈출했지만 류조 함재기들의 공습으로 격침당했다.

그러나 일본군의 탄약낭비는 이 해전에서도 반복되었다. 묘코급 중순양함 아시가라와 묘코가 주포 포탄 1171발을, 나치와 하구로가 288발을 소모해서 나온 게 위의 전과다. 기관부에 피해를 입은 엑서터 1척을 잡기 위해 4척의 중순양함이 덤벼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지경이다. 그나마 명중된 어뢰는 엑서터가 항행불능이 된 후에 명중한 1발이다.

여담으로 자바해 해전과 2차 자바해 해전, 순다해협 해전을 통틀어 일본군이 발사한 어뢰는 188발이고, 명중탄은 4발이다. 좀 맞춰라!

자바해 해전 이후 나치는 사세보에서 수리를 받은 후 쿠릴 열도를 순찰하였고, 알류산 공격에 참가한다. 이후에는 키소와 타마와 함께 5함대에 소속되어 쿠릴열도 순찰 등을 맡는다.

3.3. 코만도르스키 해전[편집]


1943년 3월 26일, 알류산 열도의 일본군 보급선을 자르기 위해 출격한 미군과, 그것을 막기 위해 나선 일본군 사이에 벌어진 해전.

자세한 내용은 코만도르스키 해전 참조.
양측의 편성은 아래와 같다.

일본 해군
미국 해군
중순양함 나치
중순양함 마야
경순양함 타마
경순양함 아부쿠마
구축함 4척
중순양함 솔트레이크 시티
경순양함 리치몬드
구축함 4척
수적으로는 일본군이 절대로 우세했지만, 제1수뢰전대(기함 아부쿠마)와 휘하 구축함들은 연료 절약을 위해 보일러를 하나만 돌리다가 미군과 조우한 탓에 전투준비가 늦어졌으므로 전투의 주역은 나치와 마야가 되었다. 그러나 미군의 포격으로 나치의 전기 공급이 끊어지면서 일시적으로 무력화가 되었고, 겨우 수리를 끝낸 후 다시 포격전에 들어갔다가 미군 구축함의 포격으로 1번 포탑이 날아가면서 다시 혼란에 빠진다(...) 마야는 솔트레이크 시티에게 명중탄 6발을 냈지만 상당수가 장갑을 뚫고 바다로 빠지는 바람에 피해는 예상보다 적었다고.

그러나 포격전 와중에 솔트레이크 시티의 기관부가 멈추고 만다. 조작 실수로 바닷물이 연료탱크에 들어갔고, 이게 보일러로 들어간 탓이라고 한다. 그래서 미군은 연막으로 솔트레이크 시티를 보호한 후, 구축함들에게 돌격명령을 내린다. 미군 구축함들은 일본 함대를 막기 위해 어뢰 5발을 쏘며 돌격했지만, 일본군은 그걸 보고 후퇴한다. 이후 솔트레이크 시티는 보일러를 수리한 후 무사히 귀항한다.

해전 자체는 무승부로 끝났지만, 이후 일본군의 알류산 열도 보급선은 끊어졌고 잠수함에 의존해야 했으므로 전략적 승리는 미군의 것이었다. 미군과 일본군 모두 자신들의 승리를 주장했지만, 미군 지휘관인 찰스 맥모리스 제독은 니미츠의 참모로 발탁되었으며, 일본군 제5함대의 지휘관인 호소가야 보시로는 패배의 책임을 지고 예편당했다. 미군이 이겼네

그리고 영문위키에 따르면, 나치는 이번에도 명중탄을 내지 못했다. 일본어 위키에서는 나치가 포격으로 솔트레이크 시티를 일시적으로 정지시켰다고 하지만, 미군의 주장은 바닷물을 보일러에 유입시키는 실수를 하는 바람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하므로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어쨌든 이 해전에서 나치는 주포 포탄 832발, 마야는 904발, 솔트레이크 시티는 832발을 발사했지만 양측 모두 결정적인 손해는 입히지 못했다. 어뢰도 다를 바가 없어서 일본군이 어뢰 43발, 미군이 어뢰 5발을 발사했지만 명중탄은 1발도 없다. 미군은 수적 열세를 딛고 승리했으니 그러려니 해도, 일본군은(...)

나치 저거 안 되겠어 포격전을 왜 이렇게 못해?

자세한 내용은 영문 위키 코만도르스키 해전일본어 위키 코만도르스키 해전 참조.

한글로 된 내용은 ##를 참조.

해전 이후, 나치는 사세보로 돌아가서 수리를 받았고, 카스가 섬의 일본군을 구하려고 출항하지만 미군 잠수함의 어뢰를 맞는다. 그러나 이 어뢰는 불발탄이었으므로 나치는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 후에는 제5함대 사령관 가와세 시로의 결단으로 구축함 6척과 교환되어 마야와 함께 남쪽으로 떠나게 된다. 이 구축함들은 기무라 마사토미가 벌인 카스가 섬 구출작전에 유용하게 쓰인다.


3.4. 레이테 만 해전[편집]


레이테 만 해전에서는 시마 함대의 일원으로 출격했으나 별다른 성과는 거두지 못했고, 간신히 살아서 후퇴하던 모가미급 중순양함 모가미를 들이받는다. 모가미는 결국 침몰했고, 나치도 마닐라에서 수리를 받지만 10월 29일에 미군의 공습을 당해 폭탄을 맞았고, 수리가 늦어진다.

나치는 1944년 11월 5일에 마닐라 만에서 3회에 걸쳐 미 해군의 공습을 당한다. 첫 번째 공습에선 무사했지만 두 번째 공습에서 폭탄 5발과 어뢰 2발을 맞았고, 세 번째 공습에서는 20발의 폭탄과 16발의 로켓탄과 5발의 어뢰를 맞고 침몰했으며, 807명의 전사자와 220명의 생존자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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