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베이징 천안문을 사랑해

덤프버전 :



이 문서는 나무위키의 이 토론에서 리다이렉트 '천안문을 사랑해', '나는 베이징의 천안문을 사랑해', '나는 북경의 천안문을 사랑해'를 삭제하고, '我愛北京天安門'을 리다이렉트로 추가하기(으)로 합의되었습니다.
타 위키에서의 합의내용이 더위키에서 강제되지는 않지만 문서를 편집하실때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마오쩌둥
관련 문서




나는 베이징 천안문을 사랑해
我爱北京天安门(간체자)
我愛北京天安門(번체자)
I Love Beijing Tiananmen
발매일
1970년
장르
동요, 프로파간다
작사
진궈린/김과림(金果临)
작곡
진웨링/김월령(金月苓)
노래방
파일:금영엔터테인먼트 심볼.svg
10353[1]
파일:TJ미디어 심볼.svg
72460

1. 개요
2. 특징
2.1. 작사자 진궈린
2.2. 작곡가 진웨링
3. 노래의 탄생 배경
4. (한국 한정) 잘못 알려진 사실
5. 가사
7. 기타
8.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문화대혁명 시절 중국에서 작곡된 체제 선동가동요이다. 가사는 마오쩌둥을 태양 같은 존재로 찬양하는 내용이다.[2]
원곡 [3]
동요 버전 1
동요 버전 2. 맨 위의 영상과 비슷한 박자의 버전이다.

동요 버전은 실제로 학교에서 가르치기도 한다.


2. 특징[편집]


파일:진웨링진궈린.png
2009년의 진웨링과 진궈린의 모습
이 곡의 작사자는 1970년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인 진궈린(김과림, 金果临)이라는 어린이이며 작곡자는 상하이시 제6 유리공장의 견습공이었던 19세의 여성인 진웨링(김월령, 金月苓)이었다. 진궈린과 진웨링은 사촌 관계이다.[4] 그러나 이 둘이 이 노래를 만들며 서로 소통한 적은 없다고 한다. 이 노래가 나오고 나서야 서로가 작사가, 작곡가인 것을 알았다는 모양이다. 이 둘은 노래가 나온 뒤 약 10여년 동안 로열티도 받지 못했으나, 이 곡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이후 1980년대 이 곡의 상금을 받고 음악 작가 협회에도 가입하며 이 곡의 로열티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아이러니한 점은 둘 다 노래를 쓸 당시에는 천안문 광장을 방문해 본 적도 없었다. 진궈린은 1982년에, 진웨링은 1972년에 처음 천안문 광장에 방문했다. 둘 다 당연히 잘 살아 있다. 2013년에는 처음으로 둘이서 같이 천안문 광장을 배경으로 한 사진을 찍고, 2019년 9월에도 건국 70주년 사진전에 동반 참석하며 인터뷰를 하는 등 이 노래에 여러모로 애착이 깊은 듯하다.


2.1. 작사자 진궈린[편집]


파일:진궈린.jpg
진궈린
진궈린은 1969년 11월 29일 상하이시 창더로 제2초등학교 5학년에 재학하던 당시 이 곡의 가사를 만들어냈다. 이후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진웨링과 달리 음악의 길이 아닌 평범한 삶을 걸었으며 5·4농장에 5년 동안 일한 뒤에 부모가 일하던 공장에 들어가서 20여 년 동안 근무했다. 이후에는 사업을 하다 파산한 뒤에, 일반 회사에 들어가 일했다. 진궈린은 1982년에 출장을 가는 김에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 처음으로 가보았다고 한다. 링크


2.2. 작곡가 진웨링[편집]


파일:진웨링.jpg
진웨링
진웨링은 문화대혁명 뒤인 1977년에 유리공장을 퇴사하고 중앙 음악 학원에 진학해서 나중에 유명한 작곡가 및 지휘자로 명성을 날리게 되는 탄둔[5]이나 천좌황[6] 등과 함께 배우고 졸업 후에는 중국의 음향 전문업체인 명창편 상하이 공사에 근무하는 등 음악편집 일에 힘썼다. 1999년에 그의 근황에 대해서 보도된 바에 의하면 진웨링이 작곡한 서정 가곡은 약 200~300곡에 달하고 전국적인 음악 콩쿠르에서 여러 번 입상한 적도 있다고 한다.


3. 노래의 탄생 배경[편집]


이 노래는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 마오쩌둥을 찬양하고자 문화대혁명 시절 작곡된 가곡으로, 인민들이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도록 쉬운 리듬, 1옥타브 범위의 음역으로 만들어졌다. 첫 번째 소절의 경우 베드르지흐 스메타나의 오페라 '입맞춤'의 제1막 아리아의 영향이 짙다. 영상

작곡 직후인 1970년 9월 상하이시가 보급한 음악서적 "홍위병 가곡"의 상권에 실려 출판되었으며 1971년에는 CCTV에서 방송되면서 메스컴을 타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1972년에는 중앙신문전영[7]노동절을 맞아 베이징시 어린이들이 모여 열린 야유회 장면을 담은 선전 영화에서 이 곡을 '나는 베이징의 천안문을 사랑해(我爱北京天安门)'이라는 제목을 붙여 삽입하였고, 같은 해 중국 국무원 문예 담당 부서에서 출판한 "새 전선 군가모음집 1권(战地新歌 第一辑)"에 이 곡을 실음으로써 본격적으로 인민을 상대로 보급되기 시작한다.

또한 특유의 동요풍 멜로디로 인해 아동 합창단이 단골로 부르기도 했다. 문화대혁명 시기 우후죽순으로 나온 기성 가곡들이 마오쩌둥 어록의 내용에서 따온 마오쩌둥을 숭배하는 가사나 행진곡 스타일의 곡조로 하나같이 틀에 박혔지만, 이 곡은 상대적으로 개성이 있어 인기를 끌었는데, 동요풍의 멜로디 특성상 어린이들을 이념적으로 선동하기 위해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무용, 율동, 기악, 아코디언이나 금관 악기 연주등 다양한 버전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1979년 당시 부총리였던 덩샤오핑미국을 방문했을 때에는 미국의 어린이들이 중국어로 이 곡을 합창하면서 덩샤오핑을 환영했다. 또한 1984년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중국 방문에 앞서서 베이징시에서 공연한 미국 예술단이 처음 선보인 합창이 바로 이 노래였다.


미국 어린이 합창단이 덩샤오핑을 환영하기 위해 부르는 모습이다.


4. (한국 한정) 잘못 알려진 사실[편집]





한국 웹상에서는 상기한 홍콩 97혐중 게임이라는 이유와 천안문 6.4 항쟁을 생각나게 한다는 이유 때문에, 이 곡이 중국에서 금지곡으로 검열 된다는 소문이 있고 天安門 天安门 法輪功 李洪志 Free Tibet 劉曉波처럼 중국인 차단용 방패로 쓰기도 하고 음성 채팅을 지원하는 게임에서 핵을 쓰거나 중국어로 소음 공해를 일으키는 중국인 유저들을 퇴치하는 이른바 중국인 역관광 용도 주문처럼 쓰기도 한다. 때문에 천안문이 단순 영 좋지 않은 사연을 이유로, 천안문 언급만 해도 중국인들이 그 자리에서 발작하거나 신비해 진다고 소문을 이상하게 퍼트린 바람에 이 노래를 중국인들에게 틀면 '천안문 6.4 항쟁'을 연상하여 격렬하게 싫어한다고 잘못 알려진 경우가 많다. 거기다 얼마나 잘못 알려졌으면, 우리나라 댓글 반응 중에 "이 노래를 틀면 내 기분이 좋아진다"는 말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사실상 웃자고 한 일종의 에서 '원효대사 해골물'급 부적이 되어 버린 것.

당연하게도 이는 말도 안되는 헛소리이며 당장 가사만 봐도, 공산당의 비판과 천안문 항쟁에 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거니와 오히려 천안문과 마오쩌둥에 대한 찬양만 수두룩하다. 검열 정책이 상당히 엄격한 바이두에 항목이 개설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우쿠 등지에도 동요 버전의 동영상이 멀쩡히 존재하며, 홍콩 97에 쓰인 장옌쥔 버전을 찾기 힘든 건 사실인데 원래 동요로 유명한 곡이라 동요 검색결과에 가려서 묻힌 건지 아니면 정말로 검열하고 있는 건지는 아무도 모른다.[8] 이 곡 자체가 체제 선동을 위해 만들어진 동요인데, 잡아가는 것 자체가 압도적인 모순이자 넌센스이며 북한으로 치면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를 트는 순간 바로 아오지 탄광행으로 끌려 간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요즘 젊은 중국인들은, 천안문 사태가 알려줘도 뭔지 아예 모를 뿐더러 대놓고 말해도 모르는 중국인들이 대다수라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의 철저한 검열과 은폐로 인해 아예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되버린 셈이라, 중국인들에게 8964를 언급해도 천안문 사태를 직접 겪은 세대가 아니면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전혀 이해를 못한다. 따라서 "중국인들이 이 노래를 싫어하는 것은 천안문 사태 때문이다"가 사실이라면, 천안문 광장은 진작에 철거 되고 천안문 노래 조차 역사와 존재 자체를 진작에 불 태우고 남았어야 했으나 그러긴 커녕 아직 까지도 천안문은 멀쩡히 있고 해당 노래를 중국에서는 아이들 가르치는 동요로 계속 쓰고 있기에 말이 안될 뿐더러 더더욱 설득력이 떨어진다.

물론 중국인들이 혹여나 싫어하는 반응을 보이면 검열과 무관하게 본인들 동요 노래를 조롱하는 걸 인식하거나 혹은 보이스 테러로 인식해 시끄러워해서 그런 것이지, 천안문 항쟁을 떠올려서 그런 경우는 거의 없으며 이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들려준다고 광주 항쟁을 떠올리는 한국인이 거의 없는 것과 같다. 노래 자체가 손발이 오그라지는 유치한 가사와 멜로디, 그리고 중국인들이 한국인 조롱을 목적으로 치면 새마을 노래육군 we 육군을 틀고 조롱하는 것과 똑같은 느낌이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인식과는 다르게 중국의 젊은 세대도 부모 세대에게 들어사 알거나 인터넷 접속[9], 유학으로 인한 해외거주 등으로, 천안문 항쟁과 폭압적 진압에 대해 어느정도 알고 있으나 모르는 척 하는게 신상에 이롭기에 모르는 척 하는 것이다. 오히려 진짜 강력한 건 자유의 꽃(自由花, 1993)[10] 이거나, 정말로 중국인들에게 효과가 있는 노래는 중화민국 국가반공복국가 같은 대만發 노래, 특히 반공 노래가 최고라는 의견이 있으며 이 둘은 가사마저 노골적으로 마오쩌둥이나 중공을 비판하는 가사이기에 중국인들이 실시간으로 펄쩍 뛰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의견이 있으나 이 마저도 확실하지는 않다.

즉, 무개념 중국인들을 참교육 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되 해당 노래 '나는 베이징 천안문을 사랑해' 자체를 틀지 말자. 중국인들이 착해지기는 커녕, 이 노래에 호감이 가는 순간 나도 모르게 친중파가 되어 버리는 꼴이다.
정 중국인들을 엿먹이고 싶다면 공산당이 없어야 신중국이 있다를 틀어주자.


5. 가사[편집]


중국어 원문(정체자)
중국어 원문(간체자)
한어병음
한국 한자음
한국어 해석
외래어표기법에 따른 발음
我愛北京天安門
我爱北京天安门
Wǒ ài Běijīng Tiān'ānmén,
아애북경천안문
나는 베이징 천안문을 사랑해요
워 아이 베이징 톈안먼
天安門上太陽昇
天安门上太阳升
Tiān'ānmén shàng tàiyáng shēng
천안문상태양승
천안문 위로 태양이 떠요
톈안먼 상 타이양 성
偉大領袖毛主席
伟大领袖毛主席
Wěidà lǐngxiù Máo zhǔxí,
위대령수모주석
위대한 지도자(영수) 마오 주석께서
웨이다 링슈 마오주시
指引我們嚮前進。
指引我们向前进。
Zhǐyǐn wǒmen xiàng qiánjìn.
지인아문향전진
우리를 앞으로 이끄셔요.
즈인 워먼 샹 첸진.

이 이후엔 음만 바꿔서 계속 루프시킨다.

가사를 잘 보면 칠언시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 운자가 맞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칠언절구라고 부를 수는 없다. 자세한 건 한시 문서를 보면 알 수 있다.


6. 인터넷 밈[편집]



이 1970년대 선전가요를 국제적인 으로 등극시킨 주역은 다름아닌 희대의 괴작 게임 홍콩 97. 이 곡을 '나는 베이징 천안문을 사랑해. 천안문태양이 뜨네' 부분만 루프시켜서 게임 내에서 하나밖에 없는 배경음악으로 사용했다. 음악이 이거 단 하나밖에 없는데다 끊기는 구간도 없기 때문에 게임을 켜는 순간부터 끌 때까지 계속 들어야 한다. 해당 곡을 부른 가수는 장옌쥔(张燕军, Zhang Yanjun, 장연군)이다. 천웨링(陳嶽榮, Jin Yueling, 진악령)이 불렀다는 설도 있지만 천웨링은 존재하지도 않은 사람일 뿐더러 정보조차 나오지 않는다. 작곡자 진웨링의 발음과 한어병음이 비슷한 것으로 보아 거짓으로 보인다.




특유의 발랄함 때문에 역재생하면 오히려 소름끼치게 변하는데, 역재생의 일부분이 새드 사탄의 브금에 쓰였다.

외국에서는 비슷한 의미로 마오쩌둥 찬양가인 하늘의 붉은 태양(天上太阳红衫衫, Red sun in the sky)을 각종 소셜 크레딧 등과 관련해 중국 밈에 쓰고 있다.


같은 슈퍼 패미컴 게임인 록맨 X3사운드폰트로 한국인이 리믹스한 버전. 한국에서는 이 버전 역시 원본 못지않게 자주 쓰이지만, 그 때문에 원 출처를 잊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국 시간 기준 2023년 7월 13일, 게임 브금을 밈들과 매시업하는 것으로 유명한 SiIvaGunner에서 온갖 게임과 밈들로 합쳐진 퓨전 콜라보를 업로드했다. 다만 최후반부에서 문제의 혐짤 때문에, 얼마 안 가 연령 제한이 걸려서 로그인을 해야 볼 수 있다.


6.1. 스타크래프트 유즈맵[편집]


파일:다른 뜻 아이콘.sv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스타크래프트 1 유즈맵에 대한 내용은 나는 베이징의 천안문을 사랑해(유즈맵) 문서
나는 베이징의 천안문을 사랑해(유즈맵)번 문단을
나는 베이징의 천안문을 사랑해(유즈맵)#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7. 기타[편집]



대만에서 패러디한 곡도 있다.
我愛北平天安門
나는 베이핑의 천안문을 사랑해
天安門上爭自由。
천안문에서 자유를 위해 싸우네
偉大領袖蔣中正
위대한 영수 장제스께서
教導我們要反共。
우리를 반공으로 이끄시네
我愛北平天安門
나는 베이핑의 천안문을 사랑해
天安門上爭民主。
천안문에서 민주를 위해 싸우네
偉大領袖蔣中正
위대한 지도자 장제스께서
教導我們要反共。
우리를 반공으로 이끄시네
我愛北平天安門
나는 베이핑의 천안문을 사랑해
天安門上爭人權。
천안문에서 인권을 위해 싸우네
偉大領袖蔣中正
위대한 영수 장제스께서
教導我們要反共。
우리를 반공으로 이끄시네
我愛北平天安門
나는 베이핑의 천안문을 사랑해
天安門上爭民主。
천안문에서 민주를 위해 싸우네
偉大領袖蔣中正
위대한 지도자 장제스께서
教導我們要反共。
우리를 반공으로 이끄시네
我愛南京中華門
나는 난징의 중화문을 사랑해
中華門上太陽昇。
중화문 위로 태양이 떠오르네
偉大領袖蔣中正
위대한 지도자 장제스께서
指引我們向前進。
우리를 앞으로 이끄시네
我愛南京中華門
나는 난징의 중화문을 사랑해
中華門上太陽昇。
중화문 위로 태양이 떠오르네
偉大領袖蔣中正
위대한 지도자 장제스께서
教導我們要反共。
우리를 반공으로 이끄시네




한국의 노래방에도 수록되어 있다. TJ미디어에는 72460번으로 수록되어 있고, 금영은 2001년에 수록되었는데 코러스 시리즈~USB 1.1 필통에 한해 10353번으로 수록되어 있다.

8. 관련 문서[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17 19:47:45에 나무위키 나는 베이징 천안문을 사랑해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코러스 시리즈~USB 1.1 필통에 한해 수록되었다.[2] 따라서, 중국인에게 이 노래를 들려주면 겁을 먹긴 커녕 오히려 애국자 취급 받는다.[3] 이 버전이 홍콩 97에 배경음악으로 등장했다.[4] 이 둘의 어머니도 서로 친자매, 아버지도 서로 친형제여서 사실상 친형제처럼 지냈다고 한다.[5] 일본 영화 그린 데스티니와 HERO의 영화음악을 작곡하고 그래미상과 아카데미 상을 수상한 것으로도 유명하다.[6] 1947년 4월 14일 상하이 출생으로 베이징 중앙 음악원 피아노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1985년에 미국 미시간 주립대학교 음악 예술 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까지도 중국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중이다.[7] 선전영화를 찍는 기관으로 현재도 CCTV의 계열사로 남아있다.[8] 홍콩 97에 쓰인 곡은 동요에 비해 연음 구성과 박자가 약간 다르다.[9] 중국 공산당이 엄청난 통제를 한다 하지만, VPN을 사용해서 잘만 해외 게임 서버에 접속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듯이 빠져나갈 구멍은 언제나 있어왔다. 게다가 공안에게 감시를 당하되, 사용 허락을 받아주는 전용 VPN이 있기에 VPN 자체가 금지인 것도 어느덧 옛말이 되었다.[10] 원곡: 중화민국 가요 - 선원(水手, 1992) 작사: 저우리마오(周禮茂) 이승빈도 언급한 내용이다. 참고로 이승빈은 중국 북경 유학 경험이 있으며 등교시 맨날 천안문을 보고 다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