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토모 유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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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토모 유토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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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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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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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AFC 아시안컵




나가토모 유토의 기타 정보





파일:나가토모 유토.jpg

FC 도쿄 No. 5
나가토모 유토
長友(ながとも 佑都(ゆうと | Yuto Nagatomo

출생
1986년 9월 12일 (37세)
일본 에히메현 사이죠시
국적
[[일본|

일본
display: none; display: 일본"
행정구
]]

신체
170cm / 체중 68kg[1]
주발
오른발 (양발)
포지션
레프트백[2]
소속
유스
히가시 후쿠오카 고교 (2002~2004)
메이지대학 (2005~2007)
프로
FC 도쿄 (2008~2010)
AC 체세나 (2010~2011)
인테르나치오날레 (2011 / 임대)
인테르나치오날레 (2011~2018)
갈라타사라이 SK (2018 / 임대)
갈라타사라이 SK (2018~2020)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2020~2021)
FC 도쿄 (2021~ )
국가대표
142경기 4골[3] (일본 / 2008~ )
SNS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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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선수 경력
2.2. 국가대표 경력
3. 플레이 스타일
4. 기록
4.1. 대회 기록
4.2. 개인 수상
5. 여담
6. 같이 보기



1. 개요[편집]


일본 국적의 FC 도쿄 소속 축구 선수. 포지션은 레프트백이다.

인테르 소속이었던 2014-15 시즌에는 팀의 부주장을 맡기도 했다.


2. 선수 경력[편집]



2.1. 클럽 경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나가토모 유토/클럽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2. 국가대표 경력[편집]


파일:Japanese bong won lee.jpg

2008 베이징 올림픽조별예선 에서부터 국가대표에 모습을 드러낸 나가토모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크게 활약하여 세계 레벨의 윙백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면서 유럽 축구 관계자들의 눈에 띄게 되고, 세리에 A 입성의 계기를 마련했다.

2010년에 벌어진 일본과 아르헨티나와의 평가전에서는 리오넬 메시를 지워버리며 일본의 승리에 기여했고, 2011년 AFC 아시안컵에서는 구멍난 일본 수비진에서 혼자 날아다니며[4] 사실상 이번 대회의 MVP라는 평가를 받기까지에 이른다. 실제로 4강 한일전만 보더라도 이청용은 나가토모에게 완전히 지워지면서 전반전이 끝나자마자 교체당해 결국 양팀 통틀어 최하평점을 받았고, 차두리는 나가토모의 오버래핑에 뚫리며 어시스트를 내주고 말았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도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왼쪽 풀백으로 기용되었는데, 탈탈 털린 일본 대표팀 내에서 오른쪽 풀백인 우치다 아쓰토와 더불어 그나마 선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체면치레를 했다.

2017년 11월 10일, 브라질 대표팀과의 친선경기를 통해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로선 7번째 센추리 클럽을 달성하였다. 이 경기에서 임시로 주장을 맡았지만, '주장은 하세베 마코토'라고 겸양하였다. # 이 여세를 몰아 러시아 월드컵 본선 조추첨에선 일본국가대표팀을 대표하는 인터뷰 영상을 촬영하였다. Welcome to Russia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일본 대표팀에 선발되었고 전경기 선발 출장하였다. 아시안 마르셀루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공수 양면에서 엄청난 활약을 하며[5] 일본 대표팀의 16강 진출을 이끌며 자신의 통산 2번째 월드컵 16강 진출을 달성했다.

2019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에서도 최종 엔트리에 올라 조별리그 3차전을 제외한[6] 전 경기에 선발 출전하여 일본의 준우승에 기여했다. 사실상 일본의 베테랑 선수들이 대거 빠지고 신인 선수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세대 교체 시즌에 유일하게 나가토모 혼자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고[7] 노련미 어디 안간다는 것을 증명하듯 공수 측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도 부동의 왼쪽 풀백으로 출장하며 분전하고 있지만 본인의 노쇠화 및 일본 국대의 저하된 경기력이 맞물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본선에 진출한다면 마지막 월드컵이 될 가능성이 높은데, 일본 국대에서도 더 늦기 전에 풀백 대체자원을 발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8]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일본 대표팀에 승선하였고, 첫 경기 독일전에 승리하면서 3번의 대회에서 본선 승리를 차지한 유일한 선수가 되었다. 이후 코스타리카에게 허무하게 졌지만 또 다른 대어 스페인을 잡아내며 아시아 역사상 처음으로 조 1위로 원정 16강을 달성했다. 대회 내내 전반전에 웅크리고 버티는 과정에서 수비적으로 힘써주고 후반전에 공격력이 우수한 미토마 카오루와 교체되고 있다. 그러나 16강에서는 팀이 선제골을 넣었음에도 동점골을 허용하고 질질 끌리더니 승부차기에서 패해 탈락했다. 그래도 유럽의 거함 둘을 격침하는 성과를 거두며 마지막 월드컵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3. 플레이 스타일[편집]




빠른 발과 강철 같은 체력으로 역습 시 상대 풀백이 오버래핑한 뒷공간을 노려 침투하는 것이 트레이드 마크인 측면 수비수. 주 포지션은 풀백으로, 주발은 오른발이지만 왼쪽에서 주로 뛰는 역발 풀백이다.[9]

공격 시 상대 측면을 부수는 칼날 같은 타이밍의 오버래핑과 라인 브레이킹은 양질의 스루 패스를 제공하는 일본산 미드필더들과 시너지를 일으키며 역대 아시아인 풀백 중에서도 최고 레벨의 오버래핑과 라인 브레이킹을 자랑한다.[10] 공격력 뿐만 아니라 후술한 것처럼 수비력까지 골고루 갖추어 빅리그인 세리에A에서 꾸준히 활약하며 아시아 역대 최고의 왼쪽 수비수로 평가받는다.

앞서 언급한 대로 빠른 발과 체력을 바탕으로 한 기동력과 활동량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100m 런닝 기록은 10.8초로 준족이고, 이러한 스피드를 90분 내내 유지하는 체력을 갖추고 있다. 또한 키는 크지 않지만 여타 일본 선수들에 비해 단단한 체격이라 몸싸움에서도 쉽게 밀리지 않는다. 기술적인 면에서 탑급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지만, 이를 뛰어난 운동능력과 피지컬로 커버한다.







세리에 A 출신 수비수답게 저돌적인 수비는 물론, 지능적인 더티플레이에도 능한 선수라, 위와 같이 상대 선수를 살인태클을 쓰면서도 카드는 전혀 수집하지 않는 비범함을 보여준다. 여러모로 일본에선 찾아보기 힘든 스타일이었다.

다만 나이가 들면서 체력과 피지컬이 전에 비해 떨어져서 오버래핑 후 복귀 및 커버 능력이 떨어져 수비적인 불안감이 높아졌다. 원래도 공격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성기 때는 주력과 체력이 좋아서 조금 공간을 비워놓아도 그 곳으로 공이 오면 득달같이 돌아와서 커버할 수 있었으나 30대 이후에도 여전히 공간을 비우고 전방압박이나 협력수비에 열을 올리다보니 최근에는 본인이 맡은 지역에서 열리는 공간을 커버하지 못하고 뚫리는 모습을 곧잘 보여주고 있다.

공격 시 단점이 하나 더 있다면, 낮게 깔아차는 컷백의 질은 일품이지만, 높게 띄우는 런닝 크로스나 얼리 크로스는 그냥 적당히 차올리는 경향이 강하다. 애초에 오른발잡이[11]가 왼쪽 풀백에 뛰면서 생기는 한계이기도 하다. 그래도 인테르 이적 이후 감독의 특명으로 집중훈련을 받아서 향상되긴 했지만 그래도 아쉬운 점이었다.[12]


4. 기록[편집]



4.1. 대회 기록[편집]







4.2. 개인 수상[편집]


  • J리그 디비전 1 베스트 XI: 2009
  • AFC 올해의 아시아 국제 선수: 2013
  • AFC 아시안컵 토너먼트의 팀: 2019
  • AFC 아시아 월드컵 올타임 XI: 2020[13]
  • AFC 아시안컵 올타임 드림 XI: 2023[14]


5. 여담[편집]


  • 메이지대학 정치경제학부 재학 시절 교직과정을 이수했는데, 졸업논문은 영국 문화 연구였다.



  • 세리에 A에서 첫 골을 넣고 하비에르 사네티와 같이 한 인사 세레머니가 유명세를 탔다.

  • 인테르의 행사 때, 인테르 팬들에게 너네 뛰지 않으면 AC 밀란이라고 하기도 했는데, 사실 이건 원래 인테르에서 자주 쓰던 응원 챈트 중 하나다. 나가토모가 유독 이 챈트를 좋아한다고 한다.

  • 나가토모가 인테르에서 활동하던 시절에는 일본 축구 커뮤니티와 넷상에서 관련 유행어실질 나가토모(実質長友)라는 것이 있었다. 당시 빅리그 명문클럽의 위상에 걸맞는 활약을 보이던 인테르에 자국인 일본인 선수가 입단한데다 주전 선수로서 경기에 뛰기까지 하니 일본 국내 미디어와 팬들의 관심이 어마어마했는데 이게 좀 지나쳐서 인테르의 골에 직/간접적으로 나가토모가 연관돼있기만 하면 '실질적으로 나가토모가 넣은 골이나 마찬가지다'라는 식으로 당시 일본 국내 세리에A 중계 해설진들을 비롯해 일본 언론들이 연신 띄워주며 떠들어댔기 때문이다. 억지로 띄워주는 탓 때문에 일본 국내의 축구 팬들도 이러한 발언에 피로감을 느끼게 되었고 어느순간 부터 유행어가 되어 나가토모가 출전하지 않은 시합은 물론, 나가토모와 전혀 관계가 없는 쌩뚱맞은 팀이 골을 넣기만 해도 '실질 나가토모'라는 식으로 사용되었다.일본 축구 커뮤니티에서 사용된 오래된 밈이지만 선수로서 말년을 바라보는 현재 FC 도쿄에서 가끔씩 나가토모가 중요한 역할을 하면 실질 나가모토라는 표현이 튀어나기도 한다.

  • 나가토모의 고향인 에히메현의 천체 관측관 직원 한 사람은 스스로 발견한 소행성(등록 번호 158241) 이름을 Yutonagatomo라고 등록하며 팬심을 과시하기도 했다.

  • 2015년 4월부터 자국 일본에서 본인 이름을 그대로 딴 나가토모 유토 축구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으며, 같은 시기 주식회사 Cuore를 개업하여 CEO로써의 사업도 벌이고 있다. 사업 분야는 스포츠, 요식, IT 등으로 제법 다양하다.

  • AKB48의 에이스였던 오오시마 유코가 나가토모의 열렬한 팬이다. 그의 축구 인생을 다룬 다큐멘터리에 나레이션 성우로 참여했을 정도. 그래서인지 나가토모는 2010년 12월 16일 후지TV의 인기 프로그램 '와랏테 이이토모'[15]의 '텔레폰 쇼킹'에 그녀가 출연했을 때 화환을 보낸 적이 있다.[16]

  • 2016년 12월 24일 장거리 연애 끝에 배우 타이라 아이리와 결혼했다. 무려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의 경기장 한복판에서 청혼을 했다는 점과 예비 신부를 저의 아모레라고 불렀다는 점 등 여러 가지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후 아이리는 배우 생활을 정리하고 이탈리아로 이주해 유토의 내조에 전념하고 있으며 둘 사이에 3명의 아들이 태어났다.

  • 국내에서는 조나탕 비아비아니에게 패스달라고 소리치다가 답답해하는 움짤이 유명하다. 비아비아니 문서에도 있는 움짤이다.

6.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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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등번호
한글 이름
일어 이름
생년월일
출장

클럽
GK

가와시마 에이지
川島永嗣
1983년 3월 20일
93
0
파일:Strasbourg.png RC 스트라스부르 알자스

곤다 슈이치
権田修一
1989년 3월 3일
24
0
파일:shimizu-s-pulse-jap-logo-B42753A7A5-seeklogo.com.png 시미즈 S펄스

타니 코세이
谷晃生
2000년 11월 22일
0
0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ShonanBellmare.png 쇼난 벨마레
DF

우에다 나오미치
植田直通
1994년 10월 24일
16
1
파일:NîmesOlympique.png 님 올랭피크

무로야 세이
室屋成
1994년 4월 5일
16
0
파일:하노버 96 로고.svg 하노버 96

나가토모 유토
長友佑都
1986년 9월 12일
127
4
파일:FC Tokyo emblem.png FC 도쿄

토미야스 타케히로
冨安健洋
1998년 11월 5일
24
1
파일:아스날 FC 로고.svg 아스날 FC

사카이 히로키
酒井宏樹
1990년 4월 12일
66
1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50px-UrawaReds.png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이타쿠라 코
板倉滉
1997년 1월 27일
5
1
파일:FC 샬케 04 로고.svg FC 샬케 04

요시다 마야
吉田麻也
1988년 8월 24일
109
11
파일:Sampdoria.png UC 삼프도리아

나카야마 유타
中山雄太
1997년 2월 16일
5
0
파일:Zwolle.png PEC 즈볼러

하시오카 다이키
橋岡大樹
1999년 5월 17일
2
0
파일:K._Sint-Truidense_V.V.png 신트트라위던 VV
MF

엔도 와타루
遠藤航
1993년 2월 9일
30
2
파일:VfB 슈투트가르트 로고.svg VfB 슈투트가르트

시바사키 가쿠
柴崎岳
1992년 5월 28일
51
3
파일:CD 레가네스 로고.svg CD 레가네스

하라구치 겐키
原口元気
1991년 5월 9일
63
11
파일:1. FC 우니온 베를린 로고.svg 1. FC 우니온 베를린

카마다 다이치
鎌田大地
1996년 8월 5일
15
4
파일: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로고.svg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미나미노 타쿠미
南野拓実
1995년 1월 16일
31
16
파일:리버풀 FC 로고.svg 리버풀 FC

이토 준야
伊東純也
1993년 3월 9일
26
5
파일:Genk.png KRC 헹크

미요시 코지
三好康児
1997년 3월 26일
5
2
파일:Antwerp.png 로열 앤트워프 FC

모리타 히데마사
守田英正
1995년 5월 10일
5
1
파일:CD Santa Clara New.png CD 산타 클라라

타나카 아오
田中碧
1998년 10월 10일
2
0
파일:포르투나 뒤셀도르프 로고.svg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아사노 타쿠마
浅野拓磨
1994년 11월 10일
24
5
파일:VfL 보훔 로고.svg VfL 보훔

도안 리츠
堂安律
1998년 6월 16일
20
3
파일:PSV_Eindhoven logo.png PSV 에인트호번
FW

오사코 유야
大迫勇也
1990년 5월 18일
51
24
파일:Vissel Kobe.png 비셀 고베

오나이우 아도
オナイウ阿道
1995년 11월 8일
2
3
파일:ToulouseFC.png 툴루즈 FC

후루하시 쿄고
古橋亨梧
1995년 1월 20일
8
3
파일:Celtic.png 셀틱 FC
출처: 일문 위키피디아 / 마지막 수정 일자: 2021년 9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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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선수 이름
출전 횟수
첫 경기
마지막 경기
1
엔도 야스히토
152회
2002.11.20
(vs 아르헨티나)
2015.1.23
(vs 아랍에미리트)
2
나가토모 유토
131회
2008.5.24
(vs 코트디부아르)
2021.11.16
(vs 오만)
3
이하라 마사미
122회
1988.1.27
(vs 아랍에미리트)
1999.7.5
(vs 볼리비아)
4
오카자키 신지
119회
2008.10.9
(vs 아랍에미리트)
2019.6.25
(vs 에콰도르)
5
가와구치 요시카쓰
116회
1997.2.13
(vs 브라질)
2008.11.19
(vs 카타르)
6
하세베 마코토
114회
2006.2.10
(vs 미국)
2018.7.2
(vs 벨기에)
7
요시다 마야
113회
2010.1.6
(vs 예멘)
2021.11.16
(vs 오만)
8
나카자와 유지
110회
1999.9.8
(vs 이란)
2010.9.4
(vs 파라과이)








[1] 일본 축구 협회 공식 프로필[2] 주 포지션은 레프트백이지만 라이트백도 소화가 가능하다.[3] 2022년 12월 5일 기준[4] 4강 한일전, 그리고 결승 호주전에서는 어시스트까지 기록했다.[5] 조별리그 2차전 세네갈전에서 1어시스트를 기록했다.[6] 토너먼트 진출을 확정지은 상태라서 장시간 휴식 보장을 하기 위함이었다.[7] 요시다 마야도 있긴 하지만 이번 아시안컵에 발탁된 선수들중 2010년 남아공 월드컵때부터 꾸준히 출전하여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위상을 전세계에 각인시킨데 기여한 선수는 나가토모밖에 없다.[8] 나카야마 유타같은 수준높은 퀄리티의 대체자원이 없는건 아니며 실제로 2022 카타르 월드컵 국가대표로 선출되기도 하였으나, 아킬레스건 파열로 인해 출전이 불발되었다. 무엇보다 현재 주장으로 있는 요시다 마야가 비록 주장이긴 하지만 나이까지 최고참은 아니라서 요시다를 보좌하며 팀 스피릿 유지 차원에서 차출되는 경우인 셈이다. 물론 나이로 최고참은 가와시마 에이지이지만 사실상 가와시마는 경기에 출전하는 필드 플레이어라기보다는 플레잉 코치 역할로 차출되는 상황이라 실질적 필드 플레이어로서의 최고참은 나가토모이기 때문이다.[9] 라이트백과 3-4-3에서의 윙백도 소화 가능하다.[10] 2011 AFC 아시안컵 4강 한일전에서 남아공월드컵을 통해 각성하며 약점이 없어보이던 차두리를 연장전포함 120분내내 괴롭히며 차두리 본인과 대한민국 축구팬들을 충격에 빠트리게 한 경기가 대표적. 전후반 내내, 연장전에서까지 팔팔하게 뛰어다니며 한국 수비진의 오른쪽을 말 그대로 박살을 내어놓았다. 소속팀인 인터 밀란은 물론이고 국가 대표팀 경기에서도 맹활약 하는 등 클럽과 국대 모두에서 경기력이 좋았던 선수였다.[11] 왼발 사용빈도도 양발잡이에 가깝게 높은 편이나, 위력이 오른발에 비해 확실히 떨어진다.[12] 주세페 바레시 수석코치를 끼고서 훈련을 하는지라 나가토모가 크로스로 어시스트를 하면 가장 기뻐한 것도 주세페라고 한다.[13] 옵타 선정[14] 팬 투표[15] 1982년 ~ 2014년 26년 동안 주 5일 1시간씩 생방송을 했던 유명 예능 프로그램이다. 타모리가 진행을 맡았다.[16] 이 코너는 그 날 출연자가 다음날 출연자를 전화로 추천하는 형식의 코너인데, 스타가 출연할 때마다 지인, 관계자들이 화환을 보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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