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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푸/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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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문서: 까르푸
1. 개요[편집]
홈플러스 자회사 홈플러스스토어즈가 프랑스 까르푸의 한국 현지법인이던 시절을 다루는 문서이다.
2. 역사[편집]
한국까르푸 1호점이었던 부천시 중동점의 모습.
1994년 현지법인 '한국까르푸' 설립 후 1996년 부천 중동신도시에 국내 진출 1호점인 중동점[4] 을 개장한 이후 신도시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장되었다. 서울에서는 중계동에 처음 오픈하였는데 사실 이 건물은 까르푸 건물이 아니라 콘티낭(Continente) 한국점포 부지였는데, 건물 완공 몇달전 프랑스 본사에서 콘티낭과 까르푸가 합병하면서 현지법인인 한국콘티낭이 까르푸에 사업을 넘겨주었고, 2000년에 법인까지 합병했다. 원래 까르푸가 중계동에 지으려고 갖고 있던 땅은 건영옴니백화점 앞의 대규모 공터였는데 현재는 브라운스톤 오피스텔이 들어서있다. 본사는 2003년경부터 서초 강남교보빌딩이었다가 2005년 서울 시흥점으로 이전했다.
서울 면목점과 부산 해운대점 등 5개 점포는 1997년부터 (주)대우 무역부문 유통사업팀이 하이퍼마켓을 차릴 부지였는데, 외환위기 이후 대우그룹 구조조정으로 1999년에 넘겨받은 것이다.
당시 대한민국에 할인점이라는 개념이 막 생겨날 때 등장하였다. 월마트나 코스트코와 달리 점포도 많았고, 더군더나 신도시를 중심으로 많은 점포가 등장했다. 할인점의 개념자체가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할인점이라는 이름조차 생소하였던 시기였고, 경쟁사로는 4개의 점포를 운영하고 있었던 이마트 정도였다.[5] 까르푸는 할인점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았던 한국 시장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여 직접 투자로는 국내진출 외국기업으로는 사상 최고액인 1조 2천억 원을 한국 땅에 쏟아 부으며 매장을 확대시켜 나아갔다. 국내 수익금과 본사 자금을 지속적으로 한국에 재투자하여 2001년에는 '최고 외국인 투자기업상'을 받을 정도였다. 2000년 말까지 19개 매장을 열어 1위인 이마트와 선두자리를 다투었으며 한국 진출 10년 만에 매장 32곳에 직원 수 7,000여명을 거느리는 대형 유통업체로 성장했다.
계산원를 파견용역형태로 돌렸던 회사이다. 원래 모국인 프랑스에선 이게 금지되어 있지만, 여기선 그래도 되니까. 1997년부터 파견근무형태로 계산원을 부려먹기 시작한다. 홈에버로 바뀌면서,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이 바로 여기부터였다.
까르푸가 한국에서 영업하던 시절의 점포중 3곳. 위치는 사진에 나와있는대로다. 현재는 모두 홈플러스로 바뀐 상태. 그리고 안산에는 홈플러스가 3개나 있었다.
2.1. 한국 시장 철수[편집]
대한민국에선 2006년 9월 27일에 한국까르푸 법인을 이랜드그룹으로 팔며 철수했는데, 그 이유는 아래와 같았다.
- 1998년의 외화 밀반출 사건의 여파로 인한 불매 운동여기 참조
- 토종 업체들의 공세에 밀렸다.(이마트와 롯데 마그넷(롯데마트)의 물량 전에서 패배)
- 채소 코너가 부실했다.[7]
- 납품 업체를 지나치게 푸대접하여 납품 기피 현상까지 벌어졌다.
- 그 외 매장 구색 등 한국 실정과 너무 달랐다.[8]
당시는 IMF 구제금융 시기였는데, 임원들이 앞장서서 외화를 밀반출했다는 혐의 덕분에 불매 운동에 제대로 불이 붙어버렸었다. 거기다가 추석 선물 배달 사고의 병크와 각종 불공정 행위로 고객들이 손절을 안한 게 이상할 정도였다.
또한 구제금융 시기 외국계 할인 마트를 견제하기 위해 토종 업체들의 공세가 있었는데 여기에 엉성하게 맞대응한 것. 양쪽 다 최저 가격으로 승부했는데 이런 식의 치킨 게임은 양쪽 다 순이익을 감소 시킨다.
그리고 왜 채소 코너가 부실했냐면, 외국인보다도 채소를 많이 안 먹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참고로 한국인 1인당 채소 소비량은 2000년 기준으로 187kg 세계 1위. 였으며, 프랑스보다 62kg 더 먹었다. 하지만 육류 코너가 특히 규모가 컸다. 얼마나 컸을 정도면.. 자체 상품으로 까르푸 양념 갈비(호주산) 팩도 만들어서 내놓았을 정도. 하지만 대한민국은 쌈 문화라 당연히 채소를 찾기 마련이었고, 더구나 한국 요리는 생각보다 채소의 비중이 크다. 당장 김치의 종류만 보더라도... 그걸 간과한 것이다. 지금도 까르푸였다가 홈플러스로 바뀐 곳에 가보면 채소 코너가 공산품 코너에 비해 작은 것을 알 수 있다.[9]
게다가 매장 디스플레이 공간 등도 한국인의 체형 등과 맞지 않았다. 매대는 원래 그 나라 여성의 평균 키에서 -30cm를 하는 것이다. 또한 창고를 따로 운영하는 소매업인 국내 기업과는 달리 외국계 할인 마트는 대부분 도매업이라 물류 센터 겸 창고이자 매장이라서 지게차를 써야 해서 높이가 2m 이상인 것도 이런 이유이다.[10][11] 반면에 화재 등에 대비 안전 시설을 충분히 갖추고 대피동선 등도 제대로 갖추었는데 이게 한국적(?)인 현실과 안 맞았던 것.[12] 안전 시설은 물론 1층 매장을 대피가 용이하도록 시원시원하게 배치했다. 물론 이젠 비상 계단은 그러다가 걸리면 엄청난 벌금형이 나오며 홈플러스 같은 경우, 평소엔 보안 팀에서 잠그며 화재 알람이 울려야지 열리게 끔 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보면 월마트와 함께 현지화에 완벽하게 실패한 사례이며, 같은 외국계이면서 한국 시장도 생각하는 '글로컬' 전략을 내세운 홈플러스와 비교됐다. 소비자들의 특성을 무시하고 본사 기준으로만 운영하다가 말아먹었다. 나중에 이랜드에서 까르푸를 인수한 다음에 매장을 점검해보니, 전부 프랑스식 Y자 콘센트여서 황당했다는 일화도 있다.[13] 콘센트까지 한국 규격 무시하고 프랑스 부품으로 채워넣을 정도 였으니, 다른건 볼 것도 없다. 2000년대 중반부터 국내업체와의 경쟁을 위해 매장을 리뉴얼 하는 등 뒤늦게 한국 소비자의 취향에 맞추려 노력하는 모습도 일부 있었으나 한번 빼앗긴 고객을 되찾지 못하고 철수하였다.
마지막 원인으로, 납품 업체의 고혈을 쥐어 짜는 것은 까르푸나 국내 대형마트나 다를 것이 없지만, 당시 까르푸 납품업자나 직원, 알바들의 경험담으로는 까르푸는 소위 말하는 갑질이 국내 다른 대형 마트보다 심각했다고 한다. 특히 까르푸 말기인 2005~2006년에는 급기야 (주)CJ를 비롯한 납품업체들이 협의하여 납품 거부를 했었을 정도였다. 그래서 한동안 CJ 백설표 설탕과 프레스햄인 스팸을(한국에서는 CJ에서 라이센스 생산) 까르푸에서는 살 수 없었다.
그 외에 회사 내부에서도 안 좋은 사건들도 종종 일어나는데, 2005년 7월 25일 민주노총 전국서비스산업연맹과 까르푸노조 측이 면목점에서 발생한 직장 내 성희롱 사건들을 열거한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냈다. 인권위 측은 8월 중순부터 4개월간 조사를 했으나 진정인과 참고인, 피진정인의 진술이 엇갈린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이에 노조 측은 2006년 3월 3일 서울행정법원에 고소하여 9월 12일에 일부 승소를 받아냈으나 한국까르푸 측이 이에 불복하고 항소했다. 노조 측도 민주노동당 여성위원회 등과 함께 '까르푸(현 이랜드) 성희롱 사건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만들어 11월 8일 공개질의서를 냈고, 14일에는 회사 측이 항소를 취하했다.(참고1, 참고2, 참고3)
결국 각종 논란 끝에 2006년 9월 27일에 철수했으며, 신흥 유통재벌 이랜드그룹이 인수전에서 롯데쇼핑을 제치고 한국까르푸를 채가면서 이랜드리테일(홈에버)로 바꾸었다가, 또 홈에버도 처참하게 망하면서 2008년 5월 홈플러스에 매각되었다. 참고로 이랜드리테일 법인은 '홈플러스테스코'를 거쳐 '홈플러스스토어즈'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다가 2019년 10월 쯤 홈플러스랑 완전히 합병되었다.[14]
사실 한국에 투자한 금액 대비 두둑한 인수 금액을 받고 넘긴 이유는 중국 시장에 올인하기 위한 투자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한국에서 철수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3. 역대 대표이사[편집]
- 베르나 엘루아 (1994~1998)
- 프랑크 비텍 (1998~2001)
- 마크 욱생 (2001~2003)
- 필립 브로야니고 (2003~2006)
4. 지점[15][편집]
현재는 거의 모두 홈플러스와 홈플러스 스페셜 매장이 되었다.[16]
5. 슬로건[편집]
Happy Price, Carrefour
후레쉬 대한민국, 까르푸
6. TV 광고[편집]
7. 여담[편집]
- 가격표 확인을 하는 계산대 남직원들은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다녔다. 그들의 주업무가 반품 회수, 가격표 확인, 고객이 1+1 상품 1개만 갖고 올 때 가지고 오기, 포장용 박스 채우기 등 기동성을 요구하는 일이었기 때문.
- 까르푸 시절 매장입구 옆에 조그맣게 비구매 고객전용 출구가 있었으나, 홈플러스로 넘어간 지금은 모두 철거되었다.[68]
- 같이 현지화에 실패한 월마트와는 달리 까르푸는 새 점포를 개점할때 마다 본사 방침대로 한국 규격에 맞는 220V 콘센트가 아닌 프랑스식 Y자 콘센트를 설치했었다. 그래서 나중에 이랜드그룹이 인수하고 모든 까르푸 매장을 점검해보니 전부 프랑스식 Y자 콘센트여서 황당했다는 일화가 있다. 나중에 이걸 다 바꾸는 것 역시 이랜드가 책임지게 되었다.
- 진열대를 높게하고 장사했던 탓인지 기존 홈플러스 매장과 비교해보면 유독 까르푸였던 매장만 천장고가 높게되어있다.
- 유희열의 원맨밴드 토이의 4집 수록곡 '거짓말 같은 시간' 뮤직비디오에서 깨알같이 등장한다. 정확히 말하면 까르푸 일산점.
- 사실상 까르푸의 후신인 홈플러스는 자회사가 아닌 손자회사로 봐야된다. 홈플러스가 바로 까르푸를 인수한게 아닌 한번 이랜드그룹을 거치고 홈플러스로 넘어왔기 때문.
- 최규석 작가의 웹툰 송곳의 주요 배경이 되는 프랑스계 유통회사 '푸르미'가 한국 까르푸를 모티브로 했을 가능성이 높다.
8. 관련 문서[편집]
9. 참고 문헌[편집]
[1] 현재의 홈플러스 스페셜 시흥점이다. 현재 본사 자리에는 마벨리에 뷔페가 입점한 상태다.[2] 2002년 시절 사이트는 이 곳으로.[3] 홈에버로 개점한 지점도 이 문단에 포함됩니다.[4] 이후 홈에버 중동점이 되었고 얼마 못가 홈플러스 중동점으로 바뀌고 계속 영업을 했으나, 2018년 10월 14일 영업을 종료한 뒤 철거되어 현재는 그 자리에 신중동역 랜드마크 푸르지오 시티가 들어섰다.[5] 이마트는 1993년, 홈플러스는 1997년, 롯데마트는 롯데마그넷이란 이름으로 1998년, 월마트의 한국 진출도 1998년으로 1996년 당시엔 정말 4개의 이마트 점포가 한국 대형마트(할인점)의 전부였다. 물론 상기하였듯 홈플러스와 롯데마트 그리고 미국에서 온 월마트까지 줄줄이 나오면서 한국에서 대형마트의 인지도는 90년대 후반에 폭증하였지만.[6] 공교롭게도 홈플러스 안산점은 전국 홈플러스 3호점이며 삼성과 영국의 유통업체인 테스코의 합작으로 지어진 큰 의미가 담긴 점포다. 하지만 현재 홈플러스 안산점은 부지 매각으로 인해 2021년 11월 12일 폐점을 한 상태이다.[7] 이건 서양인의 식습관에 맞춰서 상품을 팔아서 생긴 일로, 미국계 월마트도 그랬다.[8] 이랜드가 까르푸를 인수해서 홈에버로 변경할때 매장들을 둘러봤는데 전기플러그 모양이 전부 프랑스식의 Y자 플러그여서 몹시 당황했었다고 한다.[9] 하지만 까르푸 월드컵몰(현 홈플러스 월드컵점)은 채소 코너가 다른 까르푸 점포에 비해 매우 컸다. 그래서인지 월드컵점이 다른 점포에 비해 유독 장사가 잘 되었었고 현재도 홈플러스 매장 중 매출 1위를 달리는 초우량 점포로 자리잡았다.[10] 이런 점포 덕분인지 몰라도 홈플러스 인수 이후 몇몇 까르푸 출신 매장들이 창고형 매장을 결합한 홈플러스 스페셜로 용이하게 전환되었다. 이는 월마트가 이마트 트레이더스로 전환된 것과 비슷한 케이스.[11] 사실 이것은 코스트코도 마찬가지이지만 거기는 가격이 깡패니...[12] 외환 위기 직후는 경제 상황에 올인 했던 때라서 안전 같은 것은 내다 버렸던 시절이었다. 비상 계단을 물품 적재소로 쓰는 것은 당시 한국의 대형 매장이라면 당연시했을 정도.[13] 같은 외국계 할인점이었던 월마트는 그래도 한국 규격에 맞게 220V 콘센트를 사용하였다고 한다.[14] 월마트도 이마트에 인수되면서 한동안 별개의 법인(신세계마트)으로 잔존하였다가 훗날 합병되었다.[15] 홈에버로 개점한 지점도 이 문단에 포함됩니다.[16] 일부 지점은 폐점 후 오피스텔로 재건축되거나 다른 업체에 매각되었다.[17] 現.홈플러스 강동점.[18] 착공과 공사는 모두 홈에버로 시작하였다. 다만 중간에 홈에버가 홈플러스에 매각되어 개장은 홈플러스로 했다.[19] 現.홈플러스 스페셜 가양점.[20] 두 점포는 심지어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도 9호선 가양역으로 출구 번호만 다르다(...)[21] 現.홈플러스 신도림점.[22] 공사 당시에는 까르푸였으나, 포항점이랑 같은날에 홈에버로 개점하였다. 그리고 홈에버에서 마지막으로 개점한 지점이기도 하다.[23] 現.홈플러스 스페셜 시흥점.[24] 現.홈플러스 중계점.[25] 원래는 이곳이 콘티낭(Continente) 부지였는데 건물 완공 몇달전 프랑스 본사에서 콘티낭과 까르푸가 합병되어 개점은 까르푸로 했다.[26] 現.홈플러스 방학점.[27] 現.홈플러스 월드컵점. 당시 지점명이 월드컵몰'점'이 아니라 월드컵몰이었다.[28] 現.홈플러스 스페셜 목동점.[29] 現.홈플러스 면목점.[30] 수도권 홈플러스 매장 중 유일한 단층매장이다. 이유는 바로 아래가 유수지이기 때문에 단층으로 밖에 짓지를 못한다.[31] 現.이마트 사상점.[32] 본래는 이 곳이 콘티낭(Continente) 매장이였는데 프랑스 본사에서 콘티낭과 까르푸가 합병되었으나, 매출 부진으로 3년만인 2003년에 일찌감치 폐점 후 이마트에서 인수하였다.[33] 現.홈플러스 서면점.[34] 現.홈플러스 장림점.[35] 現.홈플러스 스페셜 해운대점.[36] 現.홈플러스 동촌점.[37] 現.신전뮤지엄.[38] 現.홈플러스 내당점.[39] 現.홈플러스 계산점.[40] 現.홈플러스 인하점.[41] 개장 당시는 남구. 2018년에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42] 現.홈플러스 구월점.[43] 現.홈플러스 대전탄방점. 기존 홈플러스 대전둔산점과 지점명이 중복되어 대전탄방점으로 변경.[44] 現.홈플러스 유성점.[45] 現.홈플러스 문화점.[46] 現.홈플러스 일산점.[47] 개장 시 일산구였다가 2005년 분구.[48] 現.홈플러스 중동점.[49] 現.홈플러스 스페셜 분당오리점.[50] 現.홈플러스 야탑점.[51] 現.홈플러스 원천점.[52] 개점 시 팔달구였다가 2003년 영통구로 분구.[53] 現.홈플러스 스페셜 안산고잔점. 기존 홈플러스 안산점과 지점명이 중복되어 안산고잔점으로 변경.[54] 사진[55] 現.홈플러스 안양점.[56] 現.홈플러스 병점점.[57] 現.홈플러스 울산북구점. 기존 홈플러스 울산점과 지점명이 중복되어 울산북구점으로 변경.[58] 現.공실.[59] 그러나 홈플러스에게 인수된 후 문경점과 상권이 중복된다는 이유로 폐점되었다.[60] 現.홈플러스 포항점.[61] 現.홈플러스 스페셜 순천풍덕점. 기존 홈플러스 순천점과 지점명이 중복되어 순천풍덕점으로 변경.[62] 現.홈플러스 스페셜 전주완산점. 기존 홈플러스 전주점과 지점명이 중복되어 전주완산점으로 변경.[63] 現.홈플러스 스페셜 천안신방점. 기존 홈플러스 천안점과 지점명이 중복되어 천안신방점으로 변경.[64] 現.홈플러스 스페셜 청주성안점. 기존 홈플러스 청주점과 지점명이 중복되어 청주성안점으로 변경.[65] 광주에 들어오려는 시도는 여러차례 있었다. 1999년 광천동(現.웨딩그룹위더스)과 상무지구(現.스카이랜드타워,신환빌딩,모텔이 있는 블록)에 부지를 매입해서 2001년 오픈을 목표로 점포를 열 계획이였지만 광주시청으로부터 10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교통개선비용을 청구받아서 포기했고, 2002년에 시도한 방림동(現.명지로드힐)의 경우에는 아예 교통영향평가도 통과하지 못했다. 2003년에는 부도로 문을 닫은 나산클레프(북구 유동 87-1)를 인수했는데 원래 용도가 대형마트인지라 심의는 쉽게 통과했지만 주변 상권이 빈약한 탓에 유동점 단독으로는 광주에서 경쟁력이 낮다는 판단 하에 다시 매물로 내놓았다. 결정적으로 2004년에 있었던 광주월드컵경기장의 수익시설 운영권 낙찰에 실패하면서 열 받았는지 아예 광주 진출 포기를 선언해버렸다.(...) 해당기사 결국 까르푸는 한국에 철수할때까지 광주에 진출하지 못했다. 코스트코가 광주에 안들어오는 이유가 있다
까르푸를 인수한 홈에버가 유동점을 재추진해 건물을 단장했는데 홈에버 매각으로 인해 또 흐지부지되었고, 홈에버를 인수한 홈플러스는 가까운 곳에 위치한 계림점과 팀킬을 의식하고 아예 손도 안대고 매각해버렸다. 나산클레프 건물은 10년 넘게 폐건물 상태로 방치되다 결국 철거되고 현재는 대광로제비앙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섰다.[66] 부산광역시, 울산광역시를 제외한 경남 전 지역[67] 이쪽은 처음부터 홈플러스 명의로 개점했다.[68] 비구매 고객전용 출구에만 도난방지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입구엔 보안요원이 지키고 있었다.
까르푸를 인수한 홈에버가 유동점을 재추진해 건물을 단장했는데 홈에버 매각으로 인해 또 흐지부지되었고, 홈에버를 인수한 홈플러스는 가까운 곳에 위치한 계림점과 팀킬을 의식하고 아예 손도 안대고 매각해버렸다. 나산클레프 건물은 10년 넘게 폐건물 상태로 방치되다 결국 철거되고 현재는 대광로제비앙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섰다.[66] 부산광역시, 울산광역시를 제외한 경남 전 지역[67] 이쪽은 처음부터 홈플러스 명의로 개점했다.[68] 비구매 고객전용 출구에만 도난방지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입구엔 보안요원이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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