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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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성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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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등번호 5번
백승룡
(2005~2008)

김회성
(2009~2010)


이양기
(2011~2014)
한화 이글스 등번호 53번
김사연
(2008~2010)

김회성
(2011)


임익준
(2012)
임경훈
(2013)

김회성
(2014)


박한결
(2015)
한화 이글스 등번호 6번
이창열
(2014)

김회성
(2015~2017)


오선진
(2018~2021.6.25.)
한화 이글스 등번호 24번
박준혁
(2017)

김회성
(2018~2020)


임종찬
(2021~2022.6.21.)




한화 이글스 전력분석원
김회성
金會成 | Kim Hoe-Seong

출생
1985년 12월 4일 (38세)
대전광역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대전신흥초 - 한밭중 - 세광고[1] - 경성대
신체
193cm[2], 90kg[3]
포지션
3루수, 1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9년 1차 지명 (한화)
소속팀
한화 이글스 (2009~2020)
병역
경찰 야구단 (2012~2013)
프런트
한화 이글스 전력분석원 (2021~)
등장곡
EXO - Power
응원가
한명숙 - 노란 샤쓰의 사나이[4]
김태우 - High High[5]
미국 민요 I've Been Working on the Railroad[6][7]
The Rival - Run Run[8]

1. 개요
3. 은퇴 이후
4. 플레이 스타일
5. 여담
6. 연도별 주요 성적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한화 이글스 소속의 야구선수.


2. 선수 경력[편집]


김회성의 선수 경력



3. 은퇴 이후[편집]



함께 은퇴한 윤규진과 함께 2021 시즌부터 한화 이글스의 전력분석원 보직을 받았다. 이양기 때부터 신임 코치들을 육성하기 위한 일종의 신입사원 연수 과정삼아 전력분석원의 말단 직원으로 일하게 하면서 코치에게 필요한 데이터에 대한 교육하는 식으로 신임 코치들을 공급하고 있는데, 운좋게 기존 코치 자리에 있던 이동걸이상훈이 이 과정을 끝내고 코치 자리로 이동하게 되었고 빈 자리를 메꾸게 되었다.

이후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여러 선수들의 결혼식에 참여하면서 한화 관계자와 대화가 오고갔고 거기서 전력분석원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193cm의 거구에서 나오는 파워 하나는 진퉁으로, 2011년 안타 7개중 3개가 2루타, 2개가 홈런으로 방망이에 공을 맞추기만 하면 장타를 뽑아낼 능력이 있다. 또한 장신을 이용하여 1루, 3루 수비를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 하지만 BQ와 센스가 떨어져 신인 시절부터 뇌와 몸이 따로 노는 플레이를 자주 보여줬으며, 15시즌 어처구니 없는 슬라이딩으로 부상을 당하며 이탈했던 회콜피온 사건은 이러한 떨어지는 센스를 대표하는 플레이였다. 그리고 이 이상으로 유리몸이라는 치명적인 결점을 가지고 있었다.

장타력은 항상 매력적으로 평가받는 선수였다. 통산 타율이 2할을 턱걸이로 넘기는 데도 불구하고 통산 장타율은 4할에 가까울 정도로 안타 중에서 장타의 비율이 높다. 붕붕이 일것이라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선구안도 괜찮은 편이었는데 통산 타율이 .212에 불과한 반면 통산 출루율은 .316으로 타출갭이 1할을 넘어간다. 컨택도 의외로 컨택률이 항상 70%를 넘기는 등 좋다고 말하기는 힘들어도 1군에서 통용되지 못할 수준은 아니였다. 다만 김회성의 세부 컨택률을 보면 그가 백업에서 더 못올라온 이유를 알 수 있는데, 보통 변화구에 약점이 있는 선수도 시간이 지나면 변화구에 대한 컨택능력이 어느정도 올라오는데 커리어 동안 단 한번도 변화구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결국 타율 커리어 하이가 .259이며 자리를 잡고 난 이후에도 타율은 2할 초반대에서 형성되었다. 즉 준수한 선구안과 강한 파워라는 확실한 장점을 가졌음에도 변화구에 대한 대처 능력 때문에 타율을 끌어올리지 못했고, 이 때문에 백업 이상으로 올라오지 못했다. 야만없이지만 만약 이 선수의 타율이 5푼만 높았어도 한 팀의 주전으로 손색이 없었을 것이고, 1할 높았다면 나름 한 팀의 레전드가 되었을 것이다.

수비의 경우 군 제대 직후까지만 하더라도 끔찍한 수준이었으나 2015 시즌부터는 그럭저럭 쓸만해졌다는 평을 받았지만 가끔 실책성 플레이와 정신줄을 놓은 경기력으로 한화팬들의 속을 뒤집어놓기도 했다.

이러한 성적은 사실 프로 입단 당시의 기대치를 생각하면 기대 이상의 커리어이긴 했다. 아마추어 시절 성적이 굉장히 안 좋았던 탓에 애초에 기대치가 거의 없었다. 그런 선수가 장타력 하나만을 무기로 어떻게든 프로에서 살아남으면서 프로 1군 수준의 수비력을 가지게 되었고, 1군에서 장타력만이 아닌 출루율을 장착하면서 1군과 2군을 왔다갔다 하는 수준이 되었다. 김회성이 팀에 입단한 09년은 2군 구장조차 없었던 시절이고[9] 이 시절에 2군과 1군을 왔다갔다 해온 선수 대부분이 팀의 육성능력 부족으로 수비력 향상조차도 없이 은퇴해왔음을 생각하면 얼마나 뼈를 깎는 노력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15년 간신히 주전 3루수 송광민에게 비벼볼만한 성적까지 올라왔지만 이게 커리어의 고점이었고, 부상이 많은 선수들이 보통 그렇듯이 에이징 커브가 빨리 찾아오면서 그대로 은퇴하게 되었다.

사실 김회성의 진짜 문제는 단 한번도 풀타임, 아니 멀쩡한 몸으로 1년동안 선수 생활을 해본 해가 거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의 유리몸이라는 것이다. 이 선수의 내구력은 팬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심각했는지 심수창의 증언에 따르면 웃다가 담에 걸려서 1군에서 말소된 적도 있다고 한다.

맨 윗 문단의 대학 시절 성적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대학 4년간의 통산 타율부터 이미 멘도사 라인이며, 대학 3학년의 플루크에 가까운 2할 5푼을 제외하면 2할조차도 못 넘기는 수준이었다. 그 해의 충청도 팜이 전국의 모든 팜 중에 가장 부실하다는 충청팜에서도 역대급으로 선수층이 부실했던, 김회성 본인에게 있어서 기적에 가까운 환경이 아니었다면 프로에 올 수 없었던 선수였다. 심지어 그는 고졸도 아니고 대졸이며 거기에 1년 유급까지 했다! 거기에 수비조차도 그의 군 입대 전의 플레이를 기억하는 팬들이라면 모두 도저히 프로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수준의 수비였음을 기억할 것이다. 정말 재능이 없는 선수였다면 아무리 노력을 했다 하더라도 어떻게든 1군에 통용될만한 수준까지 타격을 끌어올리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야구에 만약은 없기에 의미 없는 가정이나, 만약 김회성이 선수 생활동안 뼈를 깎는 노력을 받쳐줄 내구력과 유연성이 있다면 좀 더 빠르게, 군 제대 직후인 2015년 정도에 이미 자리를 잡았을 수도 있다. 어떤 의미로는 프로 선수에게 있어서 몸의 튼튼함이라는 재능도 굉장히 중요한 재능이라는걸 보여주는 선수이기도 하다. 타격의 약점 같은 것은 개선의 여지라도 있지만 내구성은 타고난 것이라 개선하기도 어려우므로.


5. 여담[편집]


  • 인성적인 측면에서 훌륭한 선수이다. 팀 내에서 알아주는 노력파인 데다 성격도 온순하다. 팬 서비스도 좋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훈련 때문에 피곤한 상황에서도 태도가 달라지지 않는 등 후배들에게도 평가가 좋다고 한다. 거쳐가는 감독들마다 안타까워하며 계속 기회를 주고 키워보려하는 것에 이 이유도 한 몫을 한다. 한용덕 감독도 오히려 너무 착해서 문제라며 더 이기적이 되라고 조언을 하기도 했고 2018 시즌 후반기 가능성을 보이자 "정말 잘 되길 바랐던 선수" 라고 설명했을 정도다. 한용덕 감독 자신도 연습생 출신으로 모진 노력 끝에 레전드의 반열에 들고 현재의 위치에 선 만큼 더 감정이입이 되었을 듯하다.

  • 한화 이글스의 치어리더 이하윤 치어리더와 사촌지간이다. 고모의 딸이 이하윤이라고.

  • 2019년 5월 4일 경기에서 김회성이 끝내기 안타를 친 것을 보고 한 어린이 팬이 기쁨의 눈물을 흘린 장면이 잡혔는데, 이후 한화 구단 측에서 이 어린이 팬 윤준서 군과 연락해 김회성의 친필 사인이 적힌 유니폼과 사인볼을 전달해줬다고 한다. #

  • 같은 팀의 트레이닝 코치였던 김회성과 동명이인이다.

  • 호수비를 하거나 타격을 잘 하면 회정,정우성 등으로 좋게 불리지만 못 할 때는 한화 이글스 갤러리에서 김회충이라고 까인다. 2015년의 희한한 플레이[10]로 잘하든 못하든 회콜피온, 전갈, 스콜피온 킴이란 별명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2018시즌 10월 9일 오른쪽 귀를 30바늘이나 꿰맸음에도 불구하고 홈런을 치는 등 경기에서 활약해 빈센트 김 고흐라는 별명도 생겼다.


6. 연도별 주요 성적[편집]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wRC+
2009
한화
20
28
.143
4
2
0
0
1
3
0
4
.214
.250
22.0
2010
11
17
.000
0
0
0
0
0
0
0
2
.000
.105
-75.2
2011
37
49
.143
7
3
0
2
6
5
0
8
.327
.263
56.9
2012
군복무(경찰 야구단)
2013
2014
59
140
.236
33
8
1
6
18
21
0
18
.436
.321
76.8
2015
83
225
.209
47
10
2
16
35
36
2
38
.484
.321
93.5
2016
28
45
.200
9
0
0
1
8
12
0
11
.267
.345
63.5
2017
54
85
.235
20
4
0
3
13
10
0
15
.388
.343
85.9
2018
58
85
.259
22
5
0
4
17
15
1
14
.459
.364
98.8
2019
58
104
.231
24
4
0
3
18
7
2
11
.356
.302
82.2
KBO 통산
(9시즌)
408
778
.213
166
36
3
35
116
109
5
121
.402
.316
79.5


7. 관련 문서[편집]



[1] 공주고, 속초상고에서 전학.[2] 프로야구 선수시절은 너무 큰 키는 징그럽다고 190cm로 적어서 냈다고 한다. 이대형과 같은 케이스[3] 95kg이었지만 최근 인터뷰에서 90kg로 감소했다고 했다.[4] (오빠야 나온나) 김회성~ 핸썸가이~ 김회성~ 워어어어~ 김회성~ 나는 좋아~ 김회성~ 맘에 들어~(x2)[5] 한화 핸섬가이~ 이글스 김회성~ 이글스의 승리 위해 파이팅~ 한화 핸섬가이~ 이글스 김회성~ 이글스의 승리 위해 날려버려라~[6] 한화 김회성 안타~ 날려주세요~ (안타!) 한화 김회성 홈런~ 승리를 위해~ (홈런!) (×2)[7] 한때 꽤 유명했었던 나츠미 STEP!에 사용된 그 브금 맞다.[8] 홈! 런! 김회성~ 오오오~ 오~오오~(×2) 한! 화! 승리위해~ 홈! 런! 김회성~ 오오오~ 오~오오~ 오오오~ 오~오오~[9] 한화의 2군 구장인 서산 야구장은 2012년에야 생겼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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