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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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출생
1971년 ~ 2007년?[1]
가족
아버지 김일성, 어머니 제갈순복

1. 개요
2. 생애
3. 여담



1. 개요[편집]


북한김일성의 사생아.

김일성의 개인 안마사인 제갈순복이 낳은 자식이라고 한다.

2. 생애[편집]


1982년 한국으로 망명한 김정일의 처조카 이한영에 의해 세상에 처음으로 알려지게 되는 인물이다.[2] 이한영이 쓴 '김정일 로열패밀리'에 따르면, 이한영과 만날 때는 '장현'이라는 가명을 쓰며 장성택의 조카행세를 하였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그 아들 김정일이 이 시기에 김정남을 얻었기 때문에, 삼촌과 조카가 동갑이다.

그런데 윗동네에서는 김일성에 대한 신앙을 해칠 수 있는 사생아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 김현을 보통은 소련에서만 살게 하다가 북한에 들어올 경우 평양 밖으로는 못 나가게 조치하고 주민들에게는 김현의 존재를 철저하게 숨겼다. 김현은 김일성사생아이긴 했지만 김일성의 아들로서 김정일과 비슷한 대우를 받았다. 김일성은 김현을 꽤 아껴서 처음에는 김경희에게 김현의 양육을 맡겼다고 한다.

그 후에 김현은 1979년 2월 모스크바에서 자신과 동갑내기 조카인 김정남과 같이 지냈고, 그 해 9월부터 모스크바에서 공부했으며 김일성은 김현의 생모 제갈순복을 김현의 이모로 둔갑시키고 김현의 성도 장씨로 위장하여 장현이란 이름으로 모스크바에서 지냈다.

그의 존재에 대해서는 이한영 외에는 김정일의 유흥을 위해 수차례 평양을 방문한 일본 마술사 '프린세스 텐코' 가 평양에 가서 김일성을 닮은 소년을 봤다고 증언하였지만 당시에는 이한영이 김현의 존재를 밝히기 전이라 헛소리로 치부돼서 싹 묻혔다.

그러다가 북한에 들어왔는데, 김일성이 살아생전에는 그렇게 호의호식을 하다가 김일성이 사망하고 김정일이 북한의 제 2대 독재자가 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김정일은 김현에게 어떠한 직위도 허락하지 않아 김현은 무직 상태가 되었고 더군다나 항간에 알코올 의존증 환자에 마약중독자라는 소문까지 퍼졌다.

이전까지는 이런 인물도 있다는 수준이었으나 2009년 6월, 이미 8년 전인 2001년 경에 김정일의 명으로 이유도 없이 갑자기 총살되었단 설이 들어왔다. 검증 가능 방법이 없으니 처형설이 정설처럼 퍼져 있었으나 2015년 생존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 북한 관련 뉴스들은 확인이 불가능하고, 북한도 이런 허위사실이 퍼지는 것이 한국과 서방에 정보혼선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는지 적극적으로 해명을 하지 않아 이런식의 카더라가 많이 퍼져 있었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 경우가 상당히 많다.

다만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한직을 전전하는 신세인 것은 분명해 보이는데 최근 김정은의 지시로 외교부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한다. 애초에 김현이 동갑 조카인 김정남과 매우 절친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뭔가 의미심장한 구석이 있어보인다. 김현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랑 동갑내기인 조카와 같은 꼴을 당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몸을 낮춰야 할 것이다. 김정은은 자신의 이복형 뿐만 아니라 김현을 사실상 입양해 기른 고모부도 썰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백두혈통 직계 왕족을 처형 같은 형식으로 제거하는 일은 북한에서 좀처럼 찾기가 힘들기도 하다. 김정철처럼 후계자 경쟁에서 밀려났더라도 평양에서 조용히 은거하고 있으면 딱히 괴롭히는 것도 없고 넉넉한 재산도 쥐어주는 편이다. 평양에 가둬놓고 감시를 하기에도 너무나 위험하고 존재감이 컸던 김평일조차 김정일, 김정은으로 정권이 바뀌면서도 죽이지는 않고 해외 외교 공관에서 조용히 지내면 크게 터치를 하지 않을 정도로 가족에 대해서는 권력 몰수 이상의 숙청은 하지 않는 것이 김씨 일가의 일반적인 방식이다. 장성택 같은 경우 김경희의 남편으로, 김정일의 매제이자 김정은의 고모부가 되지 촌수는 매우 가깝지만 엄연히 김씨 일가의 구성원이 아닌 인척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제거된 것이다. 물론 김정남이나 이한영처럼 수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정도로 선을 넘으면 결국 제거대상이 되기는 하지만 이 경우에도 총살 같은 정식 사법절차가 아니라 암살 같은 형식으로 조용히 처리를 한다. 김정남과 이한영의 경우 장성택과 달리 북한 내에 있지 않고 외부에서 돌아다니고 있었기에 더더욱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김일성의 경우에는 가족 이외에도 항일운동이나 한국전쟁을 함께하면서 동고동락한, 목숨을 맡겨도 된다고 믿을만한 심복들이 많았지만 수령 우상화 작업 이후로는 수령이 최용건, 김책 같은 인물들과 같은 상호 신뢰에 기반한 수평적 인간관계를 갖게 되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버렸고 김일성 사후 차기 세대로 가면서 북한 간부 사회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그 김영남 조차도 자신이 김씨 일가의 조언자라기 보다는 수족 초과의 가치가 없다는 점을 한 순간도 잊지 않고 처신해서 지금까지 최고 권력자로 장수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김씨 일가와 간부 사회의 심리적 거리감은 어마어마한 수준으로 멀어져버린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반대로 말하자면, 김씨 일가는 스스로를 고립시킨 것이라고 말할 수 있고 권력의 위기의 순간이 오면 일가 내의 권력 경쟁이란 것은 아무 의미가 없고 결국 서로 뭉치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2023년 현재 김정은도 역시 자신에게 겁내지 않고 직언을 당당하게 할 수 있고 진심으로 협력해줄 수 있는 주변 인물들이 오직 가족인 김여정, 김정철, 리설주 정도 뿐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원래는 이런 역할을 고모부 장성택이 제대로 해주고 있었는데도 은혜도 모르고 죽여버렸으니...[3] 이렇게 김씨 일가의 셀프 고립이 심해질수록 백두혈통 인원을 중시하는 경향은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2015 ~ 2016년 경 이름을, 김정은을 보위하는 성채가 되겠다는 뜻인 김성은(金城恩)으로 개명하고 김정은에게 절대 복종을 맹세했다고 한다.

하지만 2022년 탈북자 출신의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에 따르면 2007년 3대 세습을 앞두고 김정일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기사 이렇게 서로 상반된 정보가 나오고 있어 김현의 운명은 아직 미지수이다.


3. 여담[편집]


김정남이 생전에 김현과 동갑이다보니 김현의 조카임에도 촌수를 초월하여 친구처럼 지냈었다고 한다.

와세다 대학 교수 시게무라 도시미쓰는 2008~2009년 사이, 김정은은 이미 식물인간이 되었고 김정일의 알려지지 않은 4번째 아들이 수령이 될 것이라고 설레발치다가 자신의 주장이 모두 비껴나가자 이번엔 말을 바꿔 김현이 사실 김정은이라고 주장한 바가 있지만, 이 양반의 북한 관련 파격 주장 대다수가 헛소리라서 일본 방송에서도 한때 열심히 부르다가 계속되는 헛발질에 섭외가 많이 끊겼으며 국내 연구자들도 신뢰성이 낮은 인물이라고 까고 있는 상황이다.

남한의 배우와 동명이인이고 출생연도도 같다. 그러나 본명이 아니며 성별은 여자로 그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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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사가 확실치 않다.[2] 김일성보단 아들인 김정일의 여성편력이 매우 유명하며, 김일성이 김정일에게 "넌 주변에 여자가 너무 많아!"라고 꾸짖었다는 증언이 알려져 있다. 어쨌든 김일성은 공식적으로 결혼을 두번했고, 김정일처럼 이혼 경력도 없다. 이외에도 냉전시절 혼외자를 낳았다느니 첩을 두었다느니 하는 여러 카더라도 존재하지만, 그건 북한뿐만 아니라 어느 국가 정치가들을 둘러싸고 도는 이야기므로 딱히 김일성만 그런건 아니며, 대부분은 검증되기도 어려운 내용들이다.[3] 장성택의 최측근 인사였다가 탈북한 노희창 씨도 "김정은이 장성택을 죽여버리는 바람에 자신에게 항상 좋은 말만 해주는 부하들의 진심도 믿을 수가 없게 되었다." 라고 증언을 하였다. 실제로 좋든 싫든 김정은이 엇나가고 잘못하고 있을 때 방향을 바로 잡아줄 수 있었언 유일한 장성택은 김정일을 오랫동안 보좌해온 경력으로 노련한 정치 커리어를 쌓아놓은 참모 역할이나 다름없었고, 결국 장성택도 김씨 일가 가족이니까 조카에게 잘 되어야 한다고 잔소리를 하는 것이 김정은 본인한테도 도움이 되는 길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