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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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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방송인이자 개그맨으로, 1984년에 KBS 2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뒤 유머 1번지에서 맹활약했다. 동작그만을 시작으로 김미화와 같이 쓰리랑 부부를 통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뒤 쇼 비디오 쟈키, 코미디 세상만사, 봉숭아 학당 등 다양한 개그 프로그램들에서 맹활약한 결과 1990년에 백상예술대상에서 코미디언 연기상을 받았다. 심형래, 최양락 등에 가려져 있어 그렇지 김한국 또한 8-90년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톱스타였다.
1988년에 아내 최경수와 결혼한 뒤 30년 넘도록 행복한 부부 생활을 하고 있으며, 하나뿐인 아들도 출가시켰고, 현재는 손주도 있는 할아버지가 되었다.
2. 소개[편집]
동작그만에서 단독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유명해졌다. 다만, 초반에는 고참병인 메기병장을 담당했던 이상운이 훨씬 더 인기가 좋았다. 직각적이고 FM스러운 김한국보다는 뺀질거리고 장난치고 허세쩌는 이상운에게 시청자들은 더 정이 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운이 제대 설정으로 일찍 하차한 것과 달리 김한국은 이등병부터 병장까지 전부 연기하면서 오랫동안 코너를 지켰고 동작그만은 오직 김한국에 의한, 그리고 김한국을 위한 코너가 되었다. 김한국이 제대를 하는 것으로 이탈한 후에는 주인공 자리를 김정식에게 물려줬다.
개그맨 활동 이외에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연기를 하기도 했는데, 영화의 경우 대표적으로 1991년 영화 흑설에서의 춘화 역을, 드라마의 경우 2010년 MBC 드라마 나는 별일 없이 산다에서의 공사장 역을 맡아 연기하였다.
참고로 가수 장호철과 초등학교 친구 사이라고 하며,[5] 그 덕분에 화교가 운영하는 중국집에 가서 중국어로 짜장면 달라고 하면 화교인 사장이 반가워하면서 한가득 짜장면을 더 줘서 김한국의 친구들이 포식했을 정도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90년 초반, 한 토크 프로그램에서 대만에서 나온 이 노래를 부르던 장호철 모습을 보여주며, 장호철 본인과 친구인 김한국이 나와 방송에서 하던 이야기다.
쓰리랑 부부가 인기를 끌면서 상당히 친근하고 순한 이미지를 쌓았고, 외모도 잘생기고 젠틀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서운 선배였다고 한다. 어느 정도냐면 모든 방송사를 아우르는 군기반장으로 유명한 김정식 다음으로 무섭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 중고등학교 미술부/미대도 의외로 옛날엔 선후배 관계가 엄했다. 특히 80학번 60년 생 세대는 고교 미술부는 물론 대학까지 구타도 성행하던 시절. 더군다나 국민대 공업디자인학과는 80년대까지는 여성 비율이 10% 미만인 극 남초 학과었다. 군대도 80년대 화염병과 쇠파이프가 난무하던 시대에 서울 기동대 전의경 출신. 당시 기수는 124기였고, 전의경 군복무 환경이 2011년 이전까지 사람잡는 똥군기를 자랑했던 걸 생각하면...
그러나 마냥 후배들을 괴롭히는 속칭 똥군기의 주역은 아니었고, 잡을 땐 잡고 풀어줄 땐 풀어주는 전형적인 리더 스타일의 선배였다고 한다. 따르는 후배들이 많아 술과 밥 잘 사주기로 매우 유명했다고... 이봉원이 큰 손으로 후배들에게 베푸는 습관도 다 김한국에게 배운 거라고 한다. 물론 심형래나 임하룡에게도 많이 얻어먹긴 했는데 두 선배는 비싼 걸 안 사줬다고... 이봉원의 증언에 의하면 80년대에 심형래 따라가면 짜장면 먹고[6] 임하룡 따라가면 백반 먹고 김한국 따라가면 뷔페 먹는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김한국이 후배들에게 지갑을 잘 꺼냈다고 한다. 김한국이 2000년이 넘어서 집을 샀는데 그때 안 쓰고 모았으면 지금쯤 건물 몇 채는 가졌을 거라는 아내의 투정은 덤.
이후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서 나온 김한국의 썰들을 들으면 상당한 마초스런 일화가 많았다. 김미화와 쓰리랑 부부를 나이트에서 공연하다 취객 하나가 야구방망이로 자신을 때리자[7] 곧바로 제압해서 대기실까지 질질 끌고 갔다는 썰이나, 이봉원 등의 후배한테 화통하게 양주를 쏘는 일화, 코미디언들끼리 술내기에서도 독한 고량주를 한병씩 들이키며 가오로 끝까지 버틴다는 일화 등[8] 확실히 보면 남자다운 리더스타일의 성격인 듯 하다.
2022년 겨울에 MBC 출신 동료 코미디언 이경실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서 밝힌 바에 의하면 운전면허증을 따지 않았다고 한다. 고령의 나이 때문에 반납한 것도 아니고 아예 처음부터 면허를 따지 않았던 것이다. 사유는 할머니의 유언 때문이라면서 할머니가 "가마는 양반이 끄는 거 아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기사. 또한 이보다 앞서서 젊었을 때에도 면허가 없어서 항상 대중교통을 이용했다고 한다.
3. 활동 내역[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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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로필상 1961년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실제로는 1960년 생이다. 과거 1980년대 인터뷰 기사나 KBS 2기 공채 합격 후 나온 기사에 1960년 2월 24일 생으로 되어 있다. 빠른 생일이라 59년 생들과 친구이고, 대만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던 가수 장호철과 초등학교 동창이다. 장호철은 그런데 1958년 생. 아마도 1년 늦게 입학을 한 듯 하다. 그밖에 자신보다 나이 많고 동작그만을 함께 했던 김진호, 오재미 역시 본인보다 나이가 많지만 공채 기수에서 앞서서 그런 것도 있고 해서 술 한잔 하면서 친구처럼 지낸다 하며, 동갑내기인 이상운 역시 모두 친구처럼 지낸다. 도리어 한살 어린 이경래하고까지 친구처럼 지낸다. 그런데 이경래 역시 자신보다 한 살 어린 최양락이나 빠른 1961년 생인 MBC 출신의 김정렬과 친구를 먹는 걸 보면 당시에는 1~2살, 많게는 3살까지도 친구로 지내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사실 당시에는 높은 유아사망률로 출생신고를 늦게 하는 경향이 많았고, 전산도 없던 때라 행정서류가 많이 틀리기도 했고, 학교를 2년까지 늦게 또는 일찍 들어가곤 했으며, 3월 1일 기준으로 입학을 하다 보니 나이와 학년이 불일치하는 일이 다반사였기 때문.[2] 前 SBS 아나운서와 동명이인이며, 축구선수로 짧게 뛰었다. 현재는 결혼.[3] 입학 당시는 산업미술전공[4] 개그콘테스트[5] 대만에서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를 리메이크한 가수다. 장호철의 아버지는 중국어를 열심히 배워서 어릴 적부터 그에게도 배우게 해서 중국어를 상당히 잘했다고 한다.[6] 심형래와 같은 꽁트 코너를 하던 개그맨 후배들을 중국집에 데리고 가서 짜장면을 사 줬는데, 단역을 하던 여자 신인 후배 한 명이 탕수육을 시켰다가 다음날 그 코너에서 잘렸다고 한다. 물론 화가 난 심형래가 잘랐다는 이야기. 심형래는 버는 돈이 얼만데 고작 짜장면이라니...[7] 쓰리랑 부부의 소품이 야구방망이인데, 김미화가 든 방망이를 뺏어서 장난이랍시고 김한국의 머리를 내리쳤다고 한다.[8] 고량주는 낮아도 30도 높으면 최대 50도까지 하는 독한 술로, 보통 희석해서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