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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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남성 앵커

첫 남성 주말 앵커

1대
김준석


2대
김홍

파일:김준석기자.jpg
金俊錫
1951년 9월 24일 ~
1. 개요
2. 활동
3. 진행 프로그램
3.1. 뉴스
3.2. 그외 진행 및 출연 프로그램
4. 수상
5. 특종


1. 개요[편집]


전 CBS 아나운서, KBS 보도국 기자.


2. 활동[편집]


경기도 고양시 출신으로 서울 보성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였다.

1978년 CBS에 아나운서로 입사했으나 1980년 언론통폐합으로 인해, KBS로 이직하였고 이후 기자로 전직한다. 취재기자였던 그가 본격적으로 앵커활동을 하기 시작한 것은 1984년 봄 KBS의 아침뉴스인 <KBS 645>의 외신코너를 원고 없이 3~4분간 했는데 이를 눈여겨 본 윗선의 지시로 그 다음날부터 정식 보조앵커로 나섰다고 한다. 당시 윗선의 부름에 그는 "내가 무슨 밉보일 말을 했나" 싶었는데 다음날부터 외신담당 보조앵커를 맡으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같은해 가을부터는 정식 앵커를 하기 시작했으며 그렇게 KBS에서의 29년 기자생활 중 20년을 앵커로서 살아왔다. 앵커 이미지가 강하다 보니 그를 아나운서로 착각하기도 한다.

물론 아예 취재기자 활동을 안한 것은 아니고 KBS 뉴스 홈페이지에서 그가 리포트 하는 영상을 쉽게 검색해서 볼 수 있다. 1994년에는 남북의 창 PD를 맡기도 했고[1] 1995년 지방선거 당시 서울시장 후보자 토론회 때 다른 KBS 보도국 간부들과 함께 질문자로 나서기도 했다.

앵커로 활동하면서 아쉬움이 없던 것은 아닌데 KBS의 웬만한 뉴스를 다 진행했으나 아침/심야방송 전문 앵커라는 이미지가 강했으며 정작 메인뉴스인 KBS 뉴스 9과는 인연이 없었다.[2] 그나마도 1991년 일요일에 <KBS 일요 9>을 잠깐 진행한것과 1997년 7월 류근찬 앵커의 눈병으로 하루 진행한 것이 전부였다. 아쉬움이 남을 법도 하지만 그러나 그는 "훌륭한 선후배들이 많았기 때문"이라며 한사코 고개를 저었다.

2009년 정년퇴직을 하고 이후에는 프리랜서 신분으로 타 케이블 방송사 프로그램을 진행하거나, 뉴스해설가로 KBS 아침 라디오 프로그램 뉴스브리핑 코너에 고정출연하기도 했다.


3. 진행 프로그램[편집]



3.1. 뉴스[편집]


  • KBS 뉴스센터 645
  • KBS 뉴스센터 945
  • KBS 저녁 뉴스
  • KBS 뉴스광장 (1991년 10월 7일~1992년 4월 4일(1차), 1995년 5월 23일~1998년 5월 2일(2차), 2009년 7월 22일[3])
  • KBS 뉴스 9 (1991년 5월 26일~7월 7일[4], 1997년 7월 9일[5])
  • KBS 뉴스라인 (1998년 5월 4일~2001년 11월 2일, 2002년 8월 19일~23일)
  • KBS 일요 뉴스타임 (2005년 5월 8일~2009년 4월 19일)
  • KBS 뉴스 12 (2005년 12월 1일~2009년 4월 17일)
  • KBS 뉴스토크 (2014년 6월 3일, 5일[6])


3.2. 그외 진행 및 출연 프로그램[편집]


  • KBS 2TV 생방송 KBS 저널 (2002년 11월 3일~2005년 5월 1일)
  • KBS 한민족방송 출발 동서남북
  • TBS 서울매거진 (2010~2011년)
  • 소비자TV 소비자 쟁점토론 (2010~2011년)
  • KBS 제1라디오 안녕하십니까 윤준호입니다 - 뉴스브리핑 (?~2018년 5월 25일)
  • KBS 제1라디오 KBS 공감토론 (2017년 12월 9일~14일)
  • KBS 1TV 특집대담 - 한반도 정세, 새판짜기 시작되나 (2018년 3월 7일)
  • KBS 광복절 특별기획 – 격동의 기록, 해방정국 1년 (1994.8.14.방송)[7]

4. 수상[편집]


  • 한국기자상 - 김일성 주석 사망 첫 보도 (1995년)
  • 96 베스트 드레서 앵커부문 (1996년)
  • 제9회 바른말 보도상 (1999년)
  • 제34회 한국방송대상 앵커상 (2007년)


5. 특종[편집]


1994년 7월 8일 김일성 북한 주석의 사망을 세계 최초로 보도한 기자이다. 사회부 시절 취재했던 아마추어 무선(HAM)의 협조를 얻어 북한 평양방송을 직접 녹취, 정오 방송에서 사망 소식을 알리는 코멘트가 나온 10초 뒤 뉴스센터를 연결해 1보를 터뜨렸다. 이 보도는 이듬해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한국기자상을 받았으며, 또한 내외통신의 북한방송 독점 관행을 깨뜨린 사건으로도 기록된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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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는 아래 문단에 서술되어 있는 김일성 사망 특종과도 관련이 있다.[2] 비슷한 커리어를 쌓은 황상무 앵커가 결국 뉴스 9까지 찍고 나갔던 것과 비교해보면 아쉬운 대목이다.[3] KBS 노조 파업으로 인한 임시진행[4] 일요일에만 진행했다.[5] 류근찬 앵커가 눈이 불편하면서 대타 진행을 했다. 류근찬 앵커는 다음날 안경을 착용한 상태로 뉴스를 진행했다.[6] KBS 양대노조 파업으로 인한 대타 임시진행[7] https://www.youtube.com/watch?v=CZbgiCsgsJI[8] 자료출처 - 기자협회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