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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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宗漢
1844년(헌종 10) 6월 10일 ~ 1932년 10월 16일
조선 말기의 문신, 개화파, 일제강점기의 조선귀족. 조흥은행(現 신한은행) 창업주. 본관은 장동 김씨, 자(字)는 조경(朝卿 또는 祖卿), 아호는 유하(游霞)이다. 김상용(金尙容)의 12대 종손이다.
1844년 6월 10일 경기도 수원도호부(현 수원시)에서 종3품 거창도호부사(居昌都護府使)를 지낸 아버지 김계진(金啓鎭)과 어머니 안동 권씨 권용경(權用經)의 차녀 사이의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870년(고종 7) 식년시 진사시에 3등 19위로 입격하였으며#, 1876년(고종 13) 식년시 문과에 병과 24위로 급제했다.# 젊어서 개화파 관료로 정계에 투신했으며 이 때 안중근의 부친과 친분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1894년 갑오개혁 때도 김홍집 친일 내각에 들어가 개혁을 주도하였다. 그는 아관파천이 일어났을 때도 다른 개화파들처럼 제거당하지 않고 여전히 고위직에 머물러 있었다.
그는 1907년 정미 7조약 이후 친일 단체를 결성하여 한일 병합을 위한 여러 활동을 벌였다. 1909년 일본의 신토를 숭상하는 친일 단체 신궁봉교회(神宮奉敎會)를 조직했고, 그해 국민 연설회에도 참가했다. 1910년 경술국치 때 일본 제국에게 조선귀족 남작 작위를 받았다.
1932년 10월 16일 88세까지 장수한 뒤 사망하였으며 그의 작위는 그의 손자인 김세현이 계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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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4년(헌종 10) 6월 10일 ~ 1932년 10월 16일
1. 개요[편집]
조선 말기의 문신, 개화파, 일제강점기의 조선귀족. 조흥은행(現 신한은행) 창업주. 본관은 장동 김씨, 자(字)는 조경(朝卿 또는 祖卿), 아호는 유하(游霞)이다. 김상용(金尙容)의 12대 종손이다.
2. 생애[편집]
1844년 6월 10일 경기도 수원도호부(현 수원시)에서 종3품 거창도호부사(居昌都護府使)를 지낸 아버지 김계진(金啓鎭)과 어머니 안동 권씨 권용경(權用經)의 차녀 사이의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870년(고종 7) 식년시 진사시에 3등 19위로 입격하였으며#, 1876년(고종 13) 식년시 문과에 병과 24위로 급제했다.# 젊어서 개화파 관료로 정계에 투신했으며 이 때 안중근의 부친과 친분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1894년 갑오개혁 때도 김홍집 친일 내각에 들어가 개혁을 주도하였다. 그는 아관파천이 일어났을 때도 다른 개화파들처럼 제거당하지 않고 여전히 고위직에 머물러 있었다.
3. 친일 행적[편집]
그는 1907년 정미 7조약 이후 친일 단체를 결성하여 한일 병합을 위한 여러 활동을 벌였다. 1909년 일본의 신토를 숭상하는 친일 단체 신궁봉교회(神宮奉敎會)를 조직했고, 그해 국민 연설회에도 참가했다. 1910년 경술국치 때 일본 제국에게 조선귀족 남작 작위를 받았다.
4. 사후[편집]
1932년 10월 16일 88세까지 장수한 뒤 사망하였으며 그의 작위는 그의 손자인 김세현이 계승하였다.
5.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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