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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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만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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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BC 로고.svg 코미디대상 대상[1]
서경석
(1999년)

김용만
(2000년)


박경림
(2001년)
파일:MBC 로고.svg 방송연예대상 대상
박경림
(2001년)

김용만
(2002년, 2003년)


이경규
(2004년)

파일:백상예술대상로고(1).png
파일:baeksangartsawards4.png
TV부문 남자 코미디연기상
제36회
(1991년)


제37회
(2001년)


제38회
(2002년)

심현섭
(개그콘서트)

김용만
(일요일 일요일 밤에)


강성범
(개그콘서트)




파일:한국갤럽 CI.svg
올해를 빛낸 예능방송인ㆍ코미디언 1위
신동엽
(2003년)


김용만
(2004년)


유재석
(2005년)
※ 매해마다 한국갤럽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올해를 빛낸 예능방송인ㆍ코미디언 1위'를 선정.[2]




김용만의 출연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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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만
金容萬 | Kim Yong Man


파일:김용만 1.jpg

출생
1967년[1] 11월 30일 (56세)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묵동[2]
(現 서울특별시 중랑구 묵동)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본관
안동 김씨 (安東 金氏)[3]
신체
177cm[A], 78kg[A], B형[A]
가족
1남 2녀중 첫째
아버지 김장식[4], 어머니(1945년생)[5], 여동생 2명
배우자 이남정(1969년생, 1998년 결혼 ~ 현재)
아들 김도현(1999년생)
학력
서울묵동국민학교 (졸업)
중랑중학교 (졸업)
경희고등학교 (졸업)
서울예술전문대학 (방송연예과 / 전문학사)
성균관대학교 (연기예술학 / 학사)
종교
개신교[6]
병역
대한민국 해군 해군홍보단 (292기) 수병 만기전역
소속사
뭉친프로젝트 (대표)
데뷔
1991년 제1회 KBS 대학개그제 (공채 7기)
서명
파일:김용만 서명.jpg
링크
파일:다음 카페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동네축구형 용마니) 파일:유튜브 아이콘.svg(뭉친프로젝트 MC PC방)[7]

1. 개요
2. 생애
4. 논란 및 사건사고
4.1. 상습 불법 도박 사건
4.2. 복귀
5. 1대 100 참여
6. 수상 경력
7. 여담



1. 개요[편집]


용만이의 가장 큰 장점은 포용력이다. 용만이와 함께 할 때 나의 플레이가 가장 잘 살았다.

이경규


대한민국코미디언, MC, 방송인.

2000년대 초반, 신동엽과 함께 한국 예능의 정점을 찍은 인물이다.[8]


2. 생애[편집]


이경규와 더불어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대표하는 MC였다.

1991년 5월 5일, 제1회 KBS 대학개그제에서 대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참고로 그와 함께 대상을 탔던 사람은 양원경. 동기로는 감자골 4인방인 김국진, 박수홍, 김수용, 유재석, 남희석, 윤기원, 최승경, 이영재#개그맨 등이 있다.

한바탕 웃음으로 등 KBS 개그 프로그램에서 모습을 보였으나, 희극인실 선배들과의 마찰로 김국진, 김수용, 박수홍 등과 함께 자진 방출의 길을 택했다. (일명 감자골 4인방 사건) 이후 김국진과 미국으로 도피성 유학을 마치고 MBC로 복귀했다.

데뷔 초에는 개그맨으로도 꽤 웃겼다. 그러다가 데뷔하고 조금 지나고부터 PD들이 콩트 뿐만 아니라 진행하는 코너나 역할을 조금씩 시켰다. 또 감자골 사건으로 유학을 가게 되고 돌아와서 꽁트연기를 안 한지 너무 오래 되었던데다 방송의 특성상 바로 다시 개그 프로그램을 하기 어려운 입장이 되었다. 이러자 개그맨으로서는 출연요청이 잘 오지 않게 되었고 금방 적응할 가능성이 높은 MC 쪽으로 점점 가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테마게임 등에서 MC 자질이 드러나며 발탁된다. 특히 MBC로 복귀 후 김국진과 함께 21세기위원회의 MC를 맡게 되었고, 이 프로그램이 당시 1997년 외환 위기 시대상과 절묘하게 맞물린 흥행으로 인해 그가 다시 유명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2000년대 초중반에 브레인 서바이버 MC, 대단한 도전 MC 등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MBC 굴지의 예능 MC로 발돋움한다. 당시 MBC 예능을 쥐락펴락했던 이경규에게는 좌용만 우형기가 있었으며, 단독 MC로도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당시 이휘재, 남희석보다 높은 등급의 MC였으며 신동엽과 비슷한 등급이었다. 당시 유재석, 강호동은 MC로 명함도 못 내밀던 시절이다. MBC 방송연예대상을 몇 차례나 수상하며 승승장구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한 해씩 걸러가며 이경규와 김용만이 대상을 나눠먹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타 방송국에서는 그다지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으며 특히 KBS 와는 껄끄러운 사이가 지속되었다. 예를 들어 KBS의 퀴즈 프로그램인 1대 100의 초대 MC를 맡았으나 1년 만에 손범수로 교체되었다. 이후 강병규를 대신하여 비타민의 진행을 정은아, 전현무와 함께 맡으면서 다소 나아졌다. 그리고 2012년에는 이야기쇼 두드림의 메인 MC도 맡으면서 KBS에서도 고정 프로그램이 2개로 늘어났다.

2009년 후반기에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를 하차(스튜디오 녹화 폐지)했던 것을 비롯해 출연하는 방송 수가 줄어들면서 입지가 좁아지는 중인 듯 했으나, 일밤에서 다시 한 코너를 맡았고, MBC 연예정보프로인 섹션TV 연예통신2013년 3월 17일까지 진행했다.

날방송의 대가라는 이미지가 있었다. 스튜디오에서 화면 보면서 입으로 끝내는 프로그램을 주로 맡기는 했다. 그리고, 연기에도 도전하면서 논스톱5와 몸으로 뛰었던 SBS 작렬 정신통일흑역사라 스스로 웃기려 들기보다는 몇몇 개성이 강한 사람들을 (이경규, 박명수) 띄워주고 보완해주는 데 뛰어나며, 발음이 정확하고 순발력이 뛰어나 교양과 오락을 겸한 인포테인먼트 계열 예능 MC로는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연말 시상식에서 단골로 MC를 맡는 것도 이 때문이다. 파트너가 아무리 못해도 옆에서 김용만이 받쳐주면 그럭저럭 무사히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물론 김용만을 붙여줘도 답이 없는 경우도 종종 보이는데, 이런 경우 그 사람은 MC로서는 완전히 답이 없다.라고 보면 된다.

그렇다고 김용만 본인이 개그맨으로서 웃기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각 잡고 웃기려면 얼마든지 웃길 수 있지만, 남을 띄워주고 보완하는 데 더 능숙할 뿐이다. 일밤에서 방영했던 코너 <건강보감>에서는 '같이 등장하는 다른 모든 MC들과 심지어 게스트들에게까지 갈굼당하는 남자' 기믹을 훌륭하게 소화하며 웃음의 50% 이상을 책임지기도 했다. 나름대로 한 시대를 지배했던 MC답게 능력은 출중하다 할 수 있으며, 진행 능력으로만 따지면 손꼽히는 인물이다. 이런 진행능력을 가장 잘 발휘한 게 브레인 서바이버. 지금 관점에서 보면 사실상 세바퀴를 혼자서 진행한 셈이다. 중구난방 개판 오분 전이 되기 십상이었던 코너를 잘 끌고 간 원동력은 김용만의 신들린 진행 능력이었다.

선우용녀, 양희은, 이경실 등 세바퀴도 고정 게스트들이 기가 셌다고 하지만 브레인 서바이버는 당시에 고정으로 노사연, 조형기, 김흥국, 선우용녀나 양희은과 비슷한 세대의 대선배 연예인들도 자주 한두 명씩 게스트로 나올 만큼, 더 강하면 강하지 절대 덜하진 않았다. 게다가 당시 김용만은 30대 중후반으로, 2010년대 초 40대였던 세바퀴 진행자들의 나이보다 더 어렸다. 그럼에도 혼자 40~50대 선배 연예인들, 20대 어린 연예인들 할 것 없이 잘 소통하면서 진행했다. 진행능력이 역대급이란 말은 과장이 아니라 진짜다. [9]

부업 활동이 활발하며 외식사업으로 '닐니리 맘보'라는 국수집을 경영하고 있다. 본인 말로는 시원하게 말아 먹었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럭저럭 잘 되고 있다고 한다. 국수 체인점 치고는 국수 인심이 좀 후한 편이라, '많이 드시길 원하시는 분은 미리 말씀해주세요.'라고 가게에 써 붙여져 있다. 같이 나오는 김치(비빔국수에 들어간다)는 좀 달짝지근한 편이다. 그 외에 여행사도 했는데 막 기를 펼 시점에 신종플루 등 손대는 일이 많았지만, 크게 성공하지는 못한 듯하다.

절친이자 형인 김국진과는 MBC 이적 이후 서로 간의 리즈 시절과 슬럼프 기간이 정확하게 교차하는 묘한 관계가 있다. 과거 테마게임 때인 김국진의 전성기 시절 김용만은 그늘에 가려지는 느낌이었다. 더구나 김용만이 목발을 해야 할 정도로 큰 부상이 있어서 방송을 쉬기도 했고 연예계를 떠날 생각도 했을 정도다. 반면 김국진이 여러 가지 문제로 방송을 접었을 때인 2000년대 초반에 김용만은 최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후 2000년대 후반 김국진이 방송을 복귀하면서 재기에 성공할 때 김용만은 부진하는 느낌이다. 참고로 김용만이 아래 사건으로 섹션TV 연예통신 MC 자리에서 하차하자, 그 자리에 김국진이 들어가기도 했다. 2010년 MBC 뉴스데스크 40주년 특집 방송에서는 두 사람이 특별 MC로 함께 나온 적이 있다.

하지만 이는 김용만과 김국진이 서로 동고동락한 관계로 시작한 절친으로 서로 물심양면 도와주는 관계로 이끌어주다 보니 공교롭게 묘한 교차점이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김용만이 어려웠던 1990년대 중후반 시절에는 김국진이 김용만에게 당시 4000만 원이라는 큰 돈을 빌려주는 것도 아니고 아예 그냥 주면서 은퇴를 강력하게 만류한 덕분에 김용만이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일어서게 되었다고 하며, 김국진의 2007년 복귀 당시에도 사실 MBC 예능국에서 영향력이 컸던 김용만이 상당히 힘을 써준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과거 잘나갔던 개그맨일지라도 오랜 휴식 뒤 무릎팍도사 출연과 동시에 서브코너 라디오스타에 중간투입임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메인으로 앉혀 복귀시키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10]

2012년에 들어선 새로 맡은 프로그램만도 4개였다. KBS의 이야기쇼 두드림, SBS세대공감 1억 퀴즈쇼, JTBC닥터의 승부, MBC승부의 신. 기존의 섹션TV 연예통신, 비타민, 스타부부쇼 자기야와 더불어 2012년에 맡고 있는 지상파 메인 MC만도 각 국에서 2개씩 6개. 이 분의 저력을 알 수 있는 수치라고 하겠다. 특히 1억 퀴즈쇼의 경우에는 생방송에도 불구하고 방송 경험을 바탕으로 정말 안정적인 진행을 보여주고 있었다. 2012년 말에 들어서 새로 맡은 프로그램 4개 중 2개가 종영되었다.


3. 활동[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용만/활동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논란 및 사건사고[편집]



4.1. 상습 불법 도박 사건[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2013년 연예인 불법도박 사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013년 3월, 불법 프로토 사이트를 통해 상습적으로 스포츠 도박을 한 혐의로 대한민국 검찰청의 조사를 받았다. 조사 결과 김용만은 2008년부터 5년 동안 약 13억 원 상당의 금액을 베팅했으며 조사에서 혐의를 대부분 시인한 김용만은 자숙 의사를 밝혔다. 이후 출연 중이던 모든 방송 프로그램들에서 하차 수순을 밟았으며 녹화된 분량도 대부분 편집된 뒤 방영됐다.

그리고 졸지에 같이 출연하던 이들까지 함께 강제 하차당하는 불상사도 일어났다. 비타민의 정은아, 이야기쇼 두드림의 노홍철, 김C, 이해영 등 나머지 진행자들이 김용만이 하차하면서 함께 하차가 결정났다. 특히 정은아는 비타민을 처음부터 진행한 안방마님이나 다름없었는데도 KBS가 봄개편과 맞물려 분위기를 쇄신하겠다며 뜬금없이 정은아를 하차시키고 은지원을 투입시킨 것에 구설수가 있었다. 이에 전국언론노조 KBS본부(KBS 제2노조)에서 이를 항의했다.

2013년 5월 7일, 징역 1년을 구형받았고 2013년 6월 27일 선고 공판에서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2013년 10월에는 KBS와 EBS 출연정지 명단에 올랐고 2013년 12월에는 MBC의 출연정지 명단에 올랐다. #


4.2. 복귀[편집]


2015년 7월 27일자로 FNC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하면서 방송복귀가 임박한 듯하다. 지상파 프로그램은 출연금지가 되더라도 본인이 워낙 쌓아놓은 MC역량이 있다보니 스튜디오 촬영을 많이 돌리는 종편이나 케이블을 통해 조심스러운 복귀가 예상되었다.

2015년 11월부터 방송되고 있는 케이블채널 O tvN 쓸모있는 남자로 복귀했으며, 노홍철과는 달리 의외로 김용만의 복귀에 우호적인 네티즌들이 꽤 많은 편이다. 시간도 만 2년이 넘은 데다 공판 때도 혐의를 모두 인정하는 등 참작할 만한 모습을 보여줬고, 무엇보다도 이 도박 파문 사건 전에는 어떠한 사건사고도 일으키지 않았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방송파에서 진행하다가 드디어 2016년 7월 7일 MBC 심의위원회에서 이수근과 함께 출연정지가 해제되었다. 관계자에 따르면 "김용만과 이수근 모두 사건 이후 오랜 시간 자숙, 충분히 반성했다고 판단해 심의위원회가 출연 제한 해제 결정을 내린 것 같다"고 설명했다. # 다만 그 전인 2016년 1월 MBC에서 방송된 "어게인 - 인기가요 베스트 50" 편에서 자료화면으로 등장한 적이 있었다.

2016년 8월 4일 KBS와 EBS에서도 출연정지가 해제되었다.

쓸모있는 남자 이후 tvN 렛미홈, MBN 사랑해 등 부진한 모습을 계속 이어오다가 JTBC 패키지로 세계일주 - 뭉쳐야 뜬다로 복귀 이후 정점을 찍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11] 시청률도 3% 이상 꾸준히 찍고 있고, 더군다나 같이 출연하고 있는 김성주, 안정환, 정형돈 등과의 호흡이 너무나도 잘 맞기 때문에 시청자들 입장에서도 편하게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것이다.

현재는 뭉쳐야 찬다, 뭉쳐야 쏜다로 바뀌었는데 그곳에서도 상당한 예능감으로 잘하고 있다고 한다. 이후 KBS 해피투게더에도 출연이 확정되면서 지상파에도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울러 1대 100 10주년 특집에 1인으로 참가하면서 완전한 복귀가 이루어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5. 1대 100 참여[편집]


1대 100의 초대 MC였으며 전술했듯이 1년 만에 하차.

1대 100 10주년 특집이 열린(2017.05.02) 481회 방송분에서 1인 자격으로 10년 만에 참여했다. 그날 그는 같이 활동하고 있는 조동아리와 감자골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패자부활전에서 감자골의 멤버 중 아끼는 멤버를 선택할 때 김수용을 골랐는데(나머지 두 사람은 김국진, 박수홍)그 이유는 이 둘에 비교하면 현재 방송 활동이 잦지 않아서라고 한다.[12]

이 대결에서 그는 6단계에서 7대 우승자인 박지선의 도움으로 통과했으며 적절한 찬스 사용으로 9단계에서 최후의 3인과 접전을 펼쳤다.(847만 원을 받는 우승자 결정)

참고로 박지선은 그가 진행했던 '1억 퀴즈쇼'에서 박영진과 같이 출연해 우승 상금 1,180만 원을 받아 간 전력이 있으며 이전 녹화분인 MC 그리 편에서 김용만 편 최후의 1인은 4단계까지 생존했다.
481회 결과
LV.


+
T
C
비고
1
100
2
2
2


2
98
0

2

거꾸로 문제
3
98
32
96
98


4
66
18
72
170


패자부활전
27
52명 중 25명 부활(생존자 48→73명)
5
73
16
80
250
100

6
57
30
300
550
C

7
27
21
252
802


8
6
3
45
847
2
[13]
9
3
2
-
☆☆☆

[14]


6. 수상 경력[편집]


날짜
시상식명
수상 부문
작품
1991년
5월 5일
KBS 대학개그제
대상
-
1996년
12월 29일
MBC 코미디대상
MC부문 특별상
일요일 일요일 밤에, 테마게임, 인기가요 베스트 50
1998년
12월 29일
MBC 코미디대상
남자 우수상
일요일 일요일 밤에, 테마게임, 21세기위원회
1999년
-
제11회 한국방송프로듀서상
진행자부문 출연자상[15]
-
12월 29일
MBC 코미디대상
남자 최우수상
일요일 일요일 밤에, 테마게임, 전파견문록, 21세기위원회, 칭찬합시다
2000년
12월 29일
MBC 코미디대상
대상
일요일 일요일 밤에, 전파견문록, 21세기위원회
2001년
3월 29일
제37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남자 코미디연기상
일요일 일요일 밤에
2002년
12월 29일
MBC 방송연예대상
대상
일요일 일요일 밤에, 섹션TV 연예통신, 느낌표,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2003년
12월 29일
MBC 방송연예대상
쇼 버라이어티부문 최우수상[16]
일요일 일요일 밤에, 섹션TV 연예통신, 느낌표,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대상
2004년
12월 29일
MBC 방송연예대상
시청자가 뽑은 최고 인기상
일요일 일요일 밤에
쇼 버리이어티부문 최우수상[17]
일요일 일요일 밤에, 섹션TV 연예통신, 느낌표,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2005년
12월 29일
MBC 방송연예대상
PD상
일요일 일요일 밤에, 섹션TV 연예통신
2006년
7월 14일
서울시장
표창
-
2007년
12월 29일
MBC 방송연예대상
PD상[18]
일요일 일요일 밤에, 섹션TV 연예통신
2008년
8월 26일
이웃돕기 유공자 포상식
국무총리 표창
-
2009년
12월 30일
SBS 연예대상
최우수 MC상[19]
TV로펌 솔로몬, 스타부부쇼 자기야
2010년
12월 30일
SBS 연예대상
예능 10대 스타상
스타부부쇼 자기야
2019년
12월 2일
KBS 연예대상
베스트 챌린지상
(옥탑방의 문제아들 팀)
옥탑방의 문제아들


7. 여담[편집]



  • 브레인 서바이버를 시작으로 참 잘했어요 1대100 작렬 정신통일 [20] 대한외국인등 퀴즈프로그램을 많이 맡았다.

  • 성공한 뒤 용산구에 거주한 지 오래됐다고 하며 국립중앙박물관과 가까운 아파트라고 한다.

  • 규라인에 소속되어 있다. 한때 2000년대 초~후반 모두 대부분 이경규와 같이 했는데, 2015년에 재기하고는 이경규와 함께 하는 모습이 없다[21]고는 했지만, 한끼줍쇼 등에 일회성 출연하면서 이경규와 많이 엮인 모습을 보여줬으며 여전히 케미는 좋은 편이다.

  • 사적으로는 30년간 조동아리의 리더역할을 해 왔다. 선천적으로 술을 못 먹는 개그맨들끼리의 모임으로 지석진, 김수용, 표영호, 유재석과 함께 오랜기간 관계를 지속했었다. 신인때는 방송녹화만 끝나면 매일 만났다고 하며, 항상 정해진 카페에서 파르페나 쉐이크를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고 한다. 원래는 10년간 조동아리라는 명칭이 없었다가, 각자 성공하고 경력이 쌓인 뒤에도 24시간 카페에서 밤에 만나 밤을 새워 아침까지 수다를 떨었는데, 그때부터 스스로를 아침 조라는 한자를 써서 조동아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나마 김용만이 그 중에서는 술을 입에 댈 수는 있는 편이지만 맥주 두어잔이면 바로 취기가 올라온다고 한다. 다른 멤버들은 잔도 아니고 맥주 한두모금이면 현기증을 느껴서 선천적으로 못 버티는 정도다.

  • 원톱 진행자였던 리즈시절에는 센 이미지가 있었는데, 실제 성격은 오히려 여리고 예민한 편이었다. 이경규랑 여러 프로그램을 하며 대립하는 상황극을 많이 했는데, 막상 사석에서는 이경규가 어쩌다 한번 혼내면 오히려 별말없이 혼나던 편이었고, 대상을 받은 이후에도 이경규의 심부름 비슷하게 PD에게 의견전달 같은것을 했다고 한다. 이경규가 해외촬영에서 진지하게 화를 내며 무리한 요구를 한다며 제작진에게 따지라고 했을때도 시키는대로 했다가 마찰이 커질뻔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 잘 알려진 대로 (축구를 좋아하는) 축구광이다. 토트넘 핫스퍼피스컵 참가 차 국내에 왔을 때 연예인 축구단 '미라클'과 친선 경기를 벌이고 난 뒤 찍은 사진에 나온다.[22] 이 일을 계기로 토트넘을 응원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 연예계에서 꼬인 족보의 가해자 겸 피해자이다. 군대동기이자 1살 위(학교는 2년 위)인 지석진과 제대 후에도 계속 친구를 하는 바람에 족보를 꼬이게 했다. 이후 지석진과 친분이 있던 1살 형인 개그맨 동기 김수용[23][24]과도 친구를 했고, 이를 통해 김수용의 친구이자 1살 형인 김보성과도 친구를 했다. 김보성은 싫어했지만 김용만의 압박으로 당했다.

  • 하지만 반대로 본인도 이런 억지 친구먹기의 피해자가 되었는데, 개그맨이 된 이후로 절친해진[25] 타방송사의 동갑 개그맨 표영호와 친구가 된 뒤 피해가 생겼다. 바로 표영호와 억지로 친구를 먹은 동기 홍기훈 때문이다. 홍기훈은 표영호보다 1살 어렸지만 개그맨이 된 직후 신인때 도저히 표영호를 형이라 부르기 싫다[26]며 표영호에게 억지로 친구를 하자고 강요했고, 싸움꾼 출신인 걸로 유명한 홍기훈[27]의 기에 눌려 표영호가 이를 수용했다고 한다. 결국 이로 인해 나중에 표영호로 인해 타방송사 개그맨이자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김용만, 지석진과 친분이 생길때 "내가 표영호와 친구니 당신들도 친구를 하자"면서 또 강요했고, 곧 "용만이", "석진이"[28]라고 부르게 되었다[29]. 결국 김용만 본인이 본인보다 한두살 많은 사람에게 반말을 하던 원죄가 자신에게 돌아온 것이다.[30] 이후 오랜 세월 불만이 쌓였는지 술을 못 마시는걸로 유명한 김용만, 표영호, 지석진이 40살이 넘은 어느 날, 평생 거의 안 먹던 술을 한잔씩 먹고 "그동안 우리보다 어린 홍기훈이 반말하는거 열받으니 오늘 불러서 까자"[31]고 단합을 했고 실제로 술기운에 홍기훈을 불렀지만, 얼마있다가 등장한 홍기훈 특유의 사나운 눈빛에 쫄아서 어물어물 힘없이 항의를 했는데, 홍기훈이 비웃으며 "니네가 젊을때 나랑 친구하기로 해놓고 나이먹고 왜 딴 소리냐"고 반격하자 풀이 죽어 흐지부지 흩어졌으며, 그 후로도 홍기훈을 만나면 계속 반말을 들으며 산다고 한다.

  • 브레인 서바이버(혹은 브레인 서바이벌)의 진행자를 맡으면서 후반부에 나오는 퀴즈인 떡 먹은 용만이 찾기의 모델로 등장했는데, 몇몇 사람들에게 고유명사화 되었다. 무한도전여드름 브레이크 특집에서 정준하가 그 유명한 "그 빡빡이들이 계속 이리 섞이고 저리 섞였었다. 차이나 타운은 온통 빡빡이야!"라고 하소연하자 정형돈이 "아~ 옛날에 떡 먹은 용만이 찾기처럼?"이라고 대답했다.

  • 대한민국 해군 낙도홍보단(현 해군홍보단) 소속 연예병 출신으로, 낙도 위문 공연 가는 도중에 타고 가던 배가 풍랑에 난파해서 다른 장병들과 무인도에서 떨다 구조된 적도 있다고 해군지(해군에서 발간하는 격월간 기관지)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적 있다. 해군 입대 동기는 지석진이었으며 후임으로 김건모김경민이 있었다. 장윤정의 히트곡 '어머나'를 작곡한 작곡가 윤명선은 김용만과 동갑이었으나 선임이었던 김용만이 후임이었던 본인을 잘 대해주어서 전역 후에도 존댓말을 쓰고 있다고 한다. 해군 모병 홍보영상에도 등장했다.

  • 양식 조리기능사 자격증 보유자다. 그 때문인지 올리브에서 '요상한 식당' 요리 예능 프로를 찍었고, 백종원의 3대 천왕에서는 돼지고기 목살로 스테이크를 만들며 요리 실력을 발휘했다.

  • 뭉쳐야 뜬다에서 아들의 대학 합격 소식에 눈물을 보이는 모습이 보여졌는데, 알고 보니 아들이 버클리 음대에 입학했다고 한다.기사 전공은 비트 메이커라고 작곡의 한 범주라고 한다.

  • 시집을 읽고 시를 쓰는거를 즐긴다고 하며 그리고, 조동아리 중 나이트클럽에서 여성들에게 가장 압도적으로 인기가 많던 사람이 김용만이었다고 한다. 의외로 다른 멤버들은 김용만에 비해 인기가 없었다[32]고 한다. 이건 지석진이 방송에서 말한 것인데, 가장 인기가 없던 사람이 유재석이었다고 한다.

  • 무당에게 참교육을 시전한 적이 있다. 미스터리 특공대 10화에서 각시바위를 취재했는데, 여기서 편집된 부분이 2010년 MBC 세바퀴에서 그의 증언으로 나왔던 것. 군인 귀신에게 빙의되었다고 주장하는 무당이 필승 구호를 쓰는 걸 보고 왜 해군이 물에 빠져죽냐, 혹시 육군 아니냐, 군가를 불러달라고 했더니 군가가 아닌 "앞으로" 동요를 불렀다고 한다.

  • 2019년 6월 13일에 첫방송을 한 JTBC 뭉쳐야 찬다의 '어쩌다FC' 멤버로 출연 중이다.

  • 모든 연예인들은 한 번쯤은 만원의 행복에 출연해야 한다고 얘기했지만 정작 본인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33]

  • 성균관대학교 학사 3학년으로 학사편입을 했는데, 정재환이 권유하여 편입을 했다고 한다. 그 뒤 정재환의 권유로 공부를 시작했다고. 사실 서울예대 정도면 모든 학과가 입학난이도가 피똥 싸도록 힘든 편이고 필수 제출서류 중 활동증빙자료에 적힌 수상경력도 경력이라(...) 성균관대에서도 바로 받아줬을 가능성이 크다. 방송연예대상을 받은 사람을 떨어뜨렸다면 그거야말로 입시비리

  • 2022 월드컵에서 일어날 결과를 모조리 맞추는 신기에 가까운 능력을 보여주었다. #


[1] 1살 연상이자 동기인 김수용과 반말을 하는 사이인데, 후배지만 본인보다 형(빠른 나이 고려하면 2년)인 지석진한테도 반말을 한다. 지석진과 군대 동기라 군대 특성상 친구로 지낸 게 사회에서도 이어진 것이며, 지석진과 김수용도 데뷔 전 친분이 있어서 그냥 김용만이 다 친구를 했다고 한다. 족보를 많이 꼬이게 해서 결국 김수용의 국민학교 친구이자, 본인보다 1살 형일 뿐만 아니라 연예인으로도 몇년 선배인 김보성과도 친구가 되었다. 김보성은 불쾌해 했지만 결국 옥탑방의 문제아들이란 방송에서 만나서도 김용만의 말빨에 밀려 포기하며 친구가 되었다. 그 외 많은 1살 위 연예인들과 친구를 먹었는데, 그런 김용만도 한방 먹은 사례가 있었으니 바로 홍기훈. 김용만이 했듯이 홍기훈도 대표적으로 표영호 같은 본인보다 한두 살 많은 개그맨 동기나 후배들과 친구를 먹고 나서 그들의 친구인 김용만을 만나 "나는 저번에 영호랑 친구를 먹었으니, 우리 그냥 친구를 하자"고 하자 그가 싸움을 잘하는 걸 아는 김용만이, 본인이 선배이자 형임에도 포기하고 친구를 먹었다고 한다.[2] 출생 당시 동대문구. 중랑구로의 분구는 1988년에 이루어졌으며, 2019년 2월 22일 방영분에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묵동삼거리 태생이라고 밝혔다.[3] 대한외국인 118회 김구 선생님과 같은 본관이라고 본인이 밝힘. 28세손 '容'자 항렬이고, 바로 전 항렬은 '植'자 항렬이며, 아버지 성함은 김장식이다. [A] A B C 포털 사이트 기준.[4] 2005년 9월 18일 폐암으로 별세, 향년 67세.[5] 2020년 3월 30일 옥탑방의 문제아들에서 밝혔다.[6] 뭉쳐야 뜬다에서 '나 기독교인이야~'라며 술을 거부하였고 같은 개신교 신앙을 가진 안정환과 함께 사원참배도 거부하였다.[7] 김용만,김성주,안정환,정형돈의 소속사 유튜브로 PC게임 도전기를 올리는 채널이다. 팬덤명은 '원시인'으로 4사람이 '부족장'이 되어 대결하는 컨셉. 물론 가끔 부족장들에게 합법적으로 반란을 일으켜 4사람을 다굴하는 컨텐츠도 있다.[8] 현 시대 배려형 진행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유재석이 스스로 가장 영향을 받은 진행자라고 자주 말할 정도로 배려형 진행에 있어선 대부 격의 인물이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리얼 버라이어티와 야외촬영 등 장소와 녹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양질의 분량을 중시하는 유재석에 비해, 김용만은 지붕이 있는 스튜디오를 선호하며 짧고 간결한 녹화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이유가 녹화를 짧게 하기 위함이라고 해피투게더에서 밝혔다. 본인도 말을 많이 하면 녹화가 길어진다고 한다. 참고로 그의 전성기 시절은 녹화 분량이 그리 많이 필요치 않던 스튜디오 토크쇼의 황금기였기에 배려형 진행이 돋보일 수 있었다.[9] 하지만 점잖고 무난하기만 한 이미지와 주로 MBC에서만 활동하는 점은 장벽이 됐을 수도 있다. 특히 2000년대 초중반부터 무한도전, X맨을 찾아라 등에서 시작된 1인자가 진행도 하면서 본인도 구르고 뛰어야 하는 버라이어티가 2000년대 중후반부터 본격적인 트렌드로 자리잡음에 따라 이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면도 있다. #[10] 실제 김국진이 무릎팍도사 출연 시에 김용만이 전화통화로 연결되기도 했다.[11] 사실 같이 나오는 출연진들 사이에서는 이 프로그램을 김용만의 정식 복귀작으로 평가하고 있다.[12] 김국진은 이전에도 남자의 자격, 라디오스타 진행을 맡고 있고, 박수홍은 2016년 들어서 방송활동이 다시 활발해 하숙집 딸들, 미운우리새끼에 출연하고 있다. 반면에 김수용의 경우 한동안 방송 활동이 거의 없다가 2017년 4월에 들어서야 해피투게더에 합류했다.[13] 10주년 특집이라 찬스 3개 사용 가능.[14] 일반 형식일 경우에는 620만원.[15] 김국진과 공동 수상.[16] 유재석과 공동 수상.[17] 이경규와 공동 수상.[18] 이경규와 공동 수상.[19] 김원희와 공동 수상.[20] 여기에서는 문제를 출제하는 사람이 아니라 맞추는 사람으로 나온다.[21] 2016년 3월 자 나를 돌아봐에서 밝히길, 이경규는 김용만에게 쉰 김에 푹 쉬라고 했다.[22] 연예인 축구단 미라클의 단장이기도 하다.[23] 사실 이쪽도 지석진이 학교는 1년 먼저 다닌 사이지만 빠른 나이라 동갑이라는 이유로 친구를 한 것이었다. 연유는 밝히지 않았지만 20대 초반부터 알았다고 한다.[24] 심지어 감자골 사태가 지나고 세월이 흘러 어느정도 유명해진 뒤에 김용만 본인이 진행하던 방송에서 대놓고 "감자골 나이는 김국진-김수용-본인-박수홍 순인데, 김수용씨는 저보다 나이가 더 많지만 제 친구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25] 정확히는 표영호는 아직 개그맨이 아니고 지망생이며, 김용만이 먼저 개그맨이 되었을때부터 이미 친분이 있었다고 한다.[26] 사실상 약해 보이는 표영호가 만만해서 형으로 대우 못하겠다는 일종의 개무시다.[27] 항목을 보면 알지만 학창시절 대전에서 싸움꾼으로 유명한 일진이었다고 한다. 소문상으로는 경찰까지 출동했었던 패싸움과 같은 폭력사고도 쳐본 적이 있어 대전 중고생들에게 유명했다고 한다. 차라리 허세였다면 나중에라도 바로잡을 수 있어 좋았겠지만 그렇지도 않아서, 홍기훈은 유명 개그맨이 되고도 술자리에서 자신을 알아본 일반인이 자신에게 무례하게 반말로 말했다고 폭행하는 등 폭력사고를 저지른 적이 있다.[28] 이건 라디오스타에 홍기훈이 출연했을 때 직접 쓴 표현이다.[29] 특히 김용만은 감정쌓인게 많을 수 밖에 없는데 홍기훈은 원래 MBC개그맨이고 김용만은 MBC 고정급으로 활동했었어서 두사람은 전성기 테마게임 시절에 다른 MBC 방송도 하다보니 거의 맨날 보던 사이였다. 맨날 반말을 들었다는 이야기다. 지석진은 MBC 활동이 많지 않아서 자주 봤을 일은 없고, 표영호는 오히려 신인시절 이후 오히려 활동이 적었었다.[30] 지석진은 1972년에 국민학교에 입학했고, 김용만은 1974년, 홍기훈은 1975년에 입학했다. 즉, 4학년때 1학년이나 2학년이었던 사람이 "석진아 너 오랜만이다"하고 반말을 하는 격이다.[31] 홍기훈이 후에 직접 표영호에게 물어봤는데 진짜 "까자"라는 말을 했었다고 한다.[32] 지석진, 김수용보다 김용만이 인기가 많았다는 뜻이었다.[33] 정식 게스트는 아니지만 김새롬 편에서 특별출연을 했다.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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