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경(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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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경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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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현대 유니콘스 우승 엠블럼 V1.svg파일:현대 유니콘스 우승 엠블럼 V2.svg파일:현대 유니콘스 우승 엠블럼 V3.svg파일:현대 유니콘스 우승 엠블럼 V4.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1998
2000
2003
2004


파일:NC_Dios_2020_KoreanSeries_Champions.pn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코치

2020

파일:2000 시드니 올림픽 로고.svg
2000 시드니 올림픽 야구 종목
동메달
2000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1998 KBO 리그 신인왕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00 KBO 리그 다승왕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1999 KBO 리그 탈삼진왕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1998 KBO 리그 승률왕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30번
양윤기
(1996~1997)

김수경
(1998~2007)


팀 해체
우리 / 서울 /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30번
팀 창단

김수경
(2008~2012)


조중근
(2013)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83번
최상덕
(2010~2011)

김수경
(2013)


김석연
(2014~2016)
NC 다이노스 등번호 98번
이민준
(2016~2017)

김수경
(2018~)


현역


A대표팀 참가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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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김수경2023프로필.png

NC 다이노스 No.98
김수경
金守經 | Kim Soo-Kyung

출생
1979년 8월 20일 (44세)
인천광역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서화초 - 대헌중 - 인천고
신체
183cm, 90kg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8년 고졸우선지명 (현대)
소속팀
현대 유니콘스 (1998~2007)
우리-서울-넥센 히어로즈 (2008~2012)
고양 원더스 (2014)
지도자
넥센 히어로즈 1군 불펜코치 (2013)
NC 다이노스 재활군 투수코치 (2018)[1]
고양 다이노스 투수코치 (2018)[2]
NC 다이노스 1군 불펜코치 (2019~2021)
NC 다이노스 2군 투수코치 (2022)[3]
NC 다이노스 1군 투수코치 (2022~)[4]
프런트
NC 다이노스 스카우트 (2016~2017)

1. 개요
3. 피칭 스타일
4. 은퇴 후
5. 지도자 경력
5.1. 넥센 히어로즈 불펜코치
5.2. NC 다이노스 투수코치
6. 기타
7. 연도별 성적
8.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NC 다이노스 1군 투수코치. 현대 유니콘스, 넥센 히어로즈, 고양 원더스 소속의 투수였다.

팀 선배 정민태, 이숭용과 함께 현대 왕조의 탄생-중흥-멸망에 이르기까지 영광과 시련의 순간을 경험했고[5] 그 역사의 중심에 있던 핵심 선수 중 한 명이며 삼청태현이 배출한 2명의 개인 통산 100승 이상 투수 중 한 명이다.[6]


2. 선수 경력[편집]


개인 통산 112승을 올려 2011년 김원형[7]이 은퇴한 이후 현역 최다승 투수 타이틀을 갖고 있었다.[8] 당시 32세의 젊은 나이여서 송진우의 역대 최다승 기록에 도전할 수 있을 거의 유일한 후보로 손꼽혔으며 동시에 불가능에 가까운 성구회 가입 요건인 선발 200승을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후보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불과 1년 후인 만 33살을 끝으로 프로에서 은퇴하였다.


3. 피칭 스타일[편집]




현대 유니콘스 시절(1998년 / 2007년)

히어로즈 초기(2008년)

넥센 히어로즈 시절(2011년)

와인드업 투구 폼이 상당히 특이한데, 와인드업할 때 왼다리를 거의 직각으로 고정한 상태에서 용수철 튕기듯 하이키킹한 뒤에 던진다. 박찬호의 하이키킹처럼 다리를 쫙 뻗지 않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지만 세트포지션의 투구 역시 무릎이 엄청나게 높게 올라가는 하이키킹 투구 폼이다. 입단 당시엔 지금보다 더 특이했다고 한다. SK 와이번스의 투수 임치영[9]의 투구폼이 김수경과 닮은 꼴. 왼다리와 엉덩이 쪽에 부담이 크게 오는 투구폼이라 2001년 이 투구폼을 수정하려 했는데, 적응에 실패하여 꽤 오랫동안 고전했다.



"슬라이더는 조용준과 김수경이 가장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 박경완 인터뷰[10]

주무기는 패스트볼슬라이더. 실제로 전성기 시절 잘 나갈 땐 최고 140km 후반대의 빠른 패스트볼 - 120km 초중반대에 최고 130km 중반대의 종슬라이더 투피치만으로도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웠을 정도. 그러나 2011년도 이후엔 패스트볼의 구위가 떨어져 슬라이더 이외의 변화구도 많이 구사하기 시작했다.


4. 은퇴 후[편집]



파일:/image/018/2015/11/17/PS15111700123g_99_20151117151422.jpg


2015년 11월 NC 다이노스스카우트영입되었다.

이후 2017년까지 NC의 스카우트로 재직했다. 2017년 스카우트로 자리잡은 그의 현 모습과 야구 인생을 인터뷰했다. 1부2부


5. 지도자 경력[편집]



5.1. 넥센 히어로즈 불펜코치[편집]


은퇴 후 곧바로 넥센 히어로즈의 1군 불펜코치로 선임되면서 2013년 1시즌간 있었다.

시즌 후 선수 복귀 선언과 동시에 고양 원더스에 입단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코치직을 내려놓았다.

5.2. NC 다이노스 투수코치[편집]


2018년부터는 NC 다이노스의 재활군 투수코치로 선임되면서 현장으로 되돌아왔다. # 등번호는 98번.[11] 이후 6월 4일자로 김경문 감독의 경질과 동시에 유영준 감독대행 체제에서 코칭스태프가 개편되면서 2군(고양) 투수코치로 보직이 변경됐다.

이동욱 감독이 부임한 2019년부터는 1군 불펜코치로 올라왔다. 1군 메인 투수코치는 손민한 수석코치가 겸직하면서 함께 투수 코칭을 담당하게 되었다. 2019년 선발 5승을 챙긴 NC 김영규를 발굴했다는 팬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김영규 역시 슬라이더 각이 좋은 선수.

2020 시즌에는 김진성의 부활에 기여했다. 선수가 여러 차례 김수경 불펜코치를 언급하며 고마움을 표시했을 정도.[12] 2020년 한국시리즈에서도 불펜 코치로서 소임을 다했고, 결국 개인 다섯 번째이자 코치 커리어 첫 번째 반지끼게 되었다.

2022 시즌은 2군 투수코치로 보직을 변경해 시즌을 시작했다가, 5월 13일 이동욱 감독 경질 후 강인권 대행 체제로 바뀜과 동시에 코칭스태프 개편 과정에서 손민한과 보직을 맞바꿔 1군 투수코치로 올라왔다.

1군 투수코치로 보직을 변경한 뒤에는 평가가 좋은 편인데, 투수들에게 공격적인 피칭을 주문하는 방식으로 투수진을 이끌고 있다. 시즌 초반만 해도 팀 평균자책점 4.70으로 전체 9위였고, 팀 피안타율 0.271, 피OPS 0.743으로 투수진이 거의 황폐화됐으나, 김수경 코치가 1군으로 올라온 5월 13일 이후로는 순식간에 팀 평균자책점 2.68, 팀 피안타율 0.221, 피OPS 0.639로 확연히 낮아졌다. 특히 6월 한 달 동안 월간 평균자책점 2.19로 10개팀 중 유일하게 2점대를 유지하는 중. 시즌 후 강인권이 정식 감독으로 부임한 뒤에도 투수코치 자리를 유지하면서 2023년에도 1군 투수코치를 맡는게 확정됐다.

2023 시즌에도 개막 초에는 투수진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으나 4월 말부터 팀 투수진이 선발, 불펜 가릴것 없이 서서히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평가가 급격하게 나빠졌다. 그 와중에 5월 21일 경기에서 류진욱이 5회부터 11회까지 7번이나 몸을 푸는걸 봤다는 직관러의 증언이 나오면서 김수경에 대한 여론이 더욱 나빠지기 시작했다. 참고로 이 당시 류진욱은 이두근에 피로가 와서 잠시 1군에서 이탈했다 복귀한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이런 일이 또 벌어진 것이다.[13] 해당 글에 댓글로 달린 다른 직관러들의 증언들을 보면 류진욱 뿐만 아니라 다른 불펜 투수들도 비슷한 상황으로 추정되고 있다. 류진욱 외에도 김영규김진호 역시 부상으로 1군에서 이탈한 지라 단순 이닝 수치로만 혹사가 아닐 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불펜진의 혹사가 매일같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군에 처음 올라온 임지민도 단 2경기만에 오른팔 골절로 1군에서 말소되면서 이러한 추측에 강한 힘을 불어 넣어주고 있다.[14] 그래도 그 이후에는 이러한 이슈가 한 번도 나오지 않은 것을 보면 내부적으로도 어느 정도 피드백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상황속에서도 6월 초까지 구단 평자책 1위를 기록하고, 신인선수들과 젊은 선수들의 압도적인 호투와 고참이 된 임정호, 이재학이 전성기를 능가하는 좋은 성적과 실력를 보여주고 있어서 김수경 코치에 대한 신뢰도와 이미지가 다시금 올라가고 있다. 그러나 6월 말부터 선발 투수들의 연이은 부상과 그로 인한 불펜의 과부하 속에서 투수 운용에 아쉬움이 드러나며 강인권과 함께 또다시 평이 내려가고 있다. 이견이 있을 수는 있으나 바로 전년도에 손민한보다 훨씬 낫다며 무한 찬양을 받았던 것과 비교하면 확실히 여론이 나빠진 편. 특히 불펜진은 안정적으로 1이닝을 막는 투수가 사실상 전무하고 나올때마다 블론만 일삼으며 상태가 매우 심각해졌는데, 김수경이 호평 받은 이유가 불펜진의 안정화였던 만큼 불펜이 다시 안 좋아지자 그 많던 호평도 거의 다 사라져버리고 비판만 남은 것. 그나마 8월 들어 불펜진의 기복은 어느정도 줄어들었으나 필승조인 류진욱김영규를 큰 점수차에서도 종종 쓰는 막장 운용[15]과 아쉬운 타이밍의 투수교체 등으로 강인권 감독과 함께 평이 썩 좋지 않았던 시기도 있었던 등 호불호가 꽤 갈리고 있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불펜진에 강속구 투수의 비율이 늘어난 데다가 저연봉의 젊은 새 얼굴들을 위주로 불펜진을 안정적으로 재편하는 데에 성공했으며, 그러면서 1점차의 접전 경기에서의 승리가 늘어나거나 운용 미스가 났을 때 선수들이 이 위기를 넘겨주고 그대로 경기를 지키는 빈도가 9월까지 전 시즌 대비 꽤 늘어났다는 점만큼은 호불호에 상관없이 인정을 받기도 하고 있다.[16]

9월 중순 이후 타선의 부진이 심해지면서 상대적으로 투수 운용에 실패했을때의 임팩트도 더 커져 강인권과 김수경의 이미지가 더 안 좋아지는 면도 있다. 특히 전년도에 비해 기량이 크게 떨어진 김시훈을 필승조급으로만 안 쓸 뿐 계속 1군에서 쓰는 것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 결국 KIA와의 더블헤더 이후 1군에서 말소시켰으나 이마저도 얼마 안 가 바로 1군에 다시 올렸고, 시즌 말의 투수운용은 모든 NC팬들이 한마음 한 뜻으로 깔 정도로 최악이였다. 투수운용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부분에서 문제가 심각했던 만큼 강인권이 집중적으로 까이긴 했으나 투수운용에 관해서는 투수코치인 김수경 역시 비판을 피하지 못 하게 되었다. 전임자인 손민한과 다른게 뭔지 모르겠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로 이미지가 밑바닥으로 추락해버렸다. 결국 시즌 막판에는 그렇게 좋은 소리를 듣기 힘든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정규시즌을 끝마쳤는데, 포스트시즌에는 접신이라도 한 것인지 아쉬운 타이밍도 몇 차례 있긴 했지만 신들린 투수교체 타이밍을 보여주며 전승으로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하는 이변을 보여주기도 했다.

6. 기타[편집]




  • 별명은 수경언니 혹은 닥터 K. 수경언니김창희, 송신영과 비슷하게 여자같은 이름 때문에 생긴 별명이고 닥터 K는 탈삼진 능력이 유독 뛰어나서[17] 붙은 별명이다. 다른 별명은 '마지막 황태자'. 이숭용의 별명으로도 알려져 있지만 본래 주인은 김수경이다. 현대 왕조가 해체하기 전에는 순백의 유니콘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 데뷔 초기에는 안경을 쓰고 마운드에 올랐다 보니 안경을 썼던 이미지가 강하지만 2002년 초 라식수술을 한 뒤 안경을 벗었다. 안경을 벗은 후에는 배우 감우성과 비슷한 호남자 이미지가 되었다. 그러나 게임인 마구마구에서는 여전히 안경남.

  • 스승인 김시진 감독이 늘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선수 중 한 명이며, 김시진은 늘 안타까워하는 타자나 투수를 고를 때 주저하지 않고 김수경을 꼽는다. 김수경 본인도 개인적인 목표가 124승이었다고 하는데, 이는 김시진 감독과 정민태 코치가 똑같이 통산 124승을 기록했기에 이제 본인 차례 아닌가 하는 얘기였다. 다시 복귀했었지만 결국 예전 구위를 회복하지 못하고 은퇴한 터라....

  • 1998년 신인 입단 때부터 과감하게 뽑고 훈련도 철저히 시키는 등 김시진이 김수경에게 쏟은 애정은 타 선수들에 비해 보통이 아니어서, 김수경은 김시진의 양아들이라는 소리를 늘 들었고 김시진 스스로도 김수경 만큼은 누구보다 본인이 잘 안다고 하면서 재활 훈련, 수술 등에 관하여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한 때 투수코치 시절 마운드에 올라가면 늘 김수경을 보면서 웃어주었다고. 그런데 김수경의 은퇴설이 나돌았을 때는 감독이 울먹이면서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 현대 유니콘스의 해체 직전 최후의 선발 투수로 승리를 거두었다. 마지막으로 등판하여 마무리 투수로서의 세이브는 황두성이 했다. 당시, 한화 이글스 vs 홈경기 2:0으로 승.

  • 현재까지도 한국시리즈 최연소 승리투수(19세 2개월 10일) 및 세이브(19세 2개월 4일) 기록을 가지고 있다.

7. 연도별 성적[편집]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98
현대
32
160
12
4
2
-
0.750
(1위)
2.76
112
6
73
168
(3위)
56
49
1.125
1999
40
184⅔
10
11
1
-
0.476
4.14
180
18
115
184
(1위)
98
85
1.565
2000
29
195
(4위)
18
(1위)
8
0
0
0.692
(5위)
3.74
167
16
94
172
(2위)
87
81
1.323
2001
20
97
6
6
0
0
0.500
5.20
101
15
52
59
60
56
1.557
2002
27
151⅓
12
10
0
0
0.545
4.88
155
25
60
130
84
82
1.407
2003
29
167
10
9
0
0
0.526
4.63
184
14
74
121
(4위)
96
86
1.521
2004
26
152⅔
11
8
0
0
0.579
4.01
151
14
65
100
74
68
1.395
2005
17
90⅔
7
7
0
0
0.500
5.76
106
17
42
70
60
58
1.599
2006
17
85⅔
4
7
0
0
0.364
3.78
96
5
40
64
41
36
1.541
2007
30
176⅓
(5위)
12
(5위)
7
0
0
0.632
3.88
170
19
63
127
85
76
1.310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8
우리
26
106⅔
3
6
0
0
0.333
3.88
110
7
47
63
54
46
1.425
2009
히어로즈
25
117⅓
6
11
0
0
0.353
6.67
142
29
58
66
93
87
1.662
2010
넥센
1
3⅓
0
1
0
0
0.000
13.50
9
1
3
4
5
5
3.600
2011
18
69
1
2
0
0
0.333
3.39
65
6
24
37
27
26
1.261
2012
9
12⅔
0
1
0
0
0.000
2.13
19
0
5
5
3
3
1.816
KBO 통산
(15시즌)
346
1769⅓
112
98
3
0
0.533
4.29
1767
192
815
1370
(8위)
923
844
1.433

8. 관련 문서[편집]


[1] ~6월 3일[2] 6월 4일~[3] ~5월 12일[4] 5월 13일~[5] 현대가 첫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뒀던 1998년에 데뷔해 10승 이상을 거두며 팀의 투수진에 안착했고 두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던 2000년에는 공동 다승왕의 영예를 안았으며 세번째와 네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던 2003년, 2004년에도 팀의 에이스급 투수로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2004년 마지막 이후 구단 운영난이 급속화되면서 팀의 전력이 망가지는 모습을 그대로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유니콘스 역사의 종지부를 찍던 그 경기에 선발 투수로 나서 26년 구단 역사의 마지막 승리투수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6] 다른 한 명은 통산 124승을 기록한 정민태.[7] 두 선수는 서로 다른 팀이였으나 자신들이 속한 팀의 최후의 에이스였었다.[8] 김원형의 통산 승수는 134승.[9] 2017년 시즌 이후 방출되었다.[10] 박경완은 조용준과 1년간 현대에서 함께한 적이 있고, 김수경이 현대에 입단한 그해 트레이드로 현대에 와서 4년반 동안 같이 했다.[11] 김수경이 신인으로 데뷔한 해가 1998년이다 보니 98번을 등번호로 선택한 걸로 보인다.[12] [SW인터뷰] ‘반전 쓴’ 김진성의 진심 “동료들에게 미안했어요”[13] 심지어 이 날 멀티이닝을 돌았으며, 실책성 수비로 인해 자책점까지 떠안으며 패전투수가 됐다.[14] 다만 임지민의 경우 투수 전향을 늦게 한 여파도 이러한 부상의 원인으로 꼽히는 케이스라 구단에서도 손을 쓰기 힘들긴 했다. 투수 전향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선수의 경우 어깨가 상대적으로 싱싱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역설적으로 이러다 보니 상체 의존도가 높아서 어깨나 팔로만 던지는 선수들이 꽤 많은 편이라, 부상의 위험이 오히려 더 높다고 한다. 임지민도 이런 부류 중 운없게 걸렸던 케이스.[15] 정확히는 김시훈 등 다른 투수를 먼저 썼다가 제대로 아웃 카운트를 잡지 못 하면 류진욱이나 김영규에게 똥치우기를 시키는 상황이 은근히 자주 나오고 있다. 물론 이런 경우의 가장 큰 문제는 코칭스태프가 가장 많이 기대를 했던 김시훈이 기회를 부여받을 때마다 못 던지고 게임을 쫄깃하게 하는게 가장 큰 이유지만.[16] 특히 후반기를 기점으로는 7회와 8회에 김영규임정호로 완전히 필승조 라인이 정착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류진욱도 주로 6~7회에 대기하면서 연투 등의 문제로 유사시에만 8회에 등판하는 식으로 고정되어 있는데, 이렇게 운용이 가능한 건 두 선수가 모두 좌투수더라도 스터프와 팔의 각도, 릴리스 포인트와 던지는 구종 등에서 차별화가 되어 있기 때문에 같은 좌투수더라도 타자들이 타이밍을 맞추기가 힘들며 실제로도 그런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분석팀과 함께 근거로 꼽고 있다.[17] 통산 1370탈삼진으로 삼청태현 프랜차이즈 역대 투수 중 탈삼진 1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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