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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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기타
4. 대중매체에서



1. 개요[편집]


김서현만명부인의 딸, 김유신의 첫째 누이, 문명왕후의 언니.


2. 생애[편집]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는 어느 날 언니인 김보희가 여동생인 김문희에게 자신이 꾼 꿈을 얘기했다. 꿈인 즉슨, 보희가 서라벌남산에 올라가서 소변을 보았는데, 엄청 많이 나와서 그 소변이 서라벌 시내에 가득 찼다고 한다. 문희는 그 얘기를 듣고 언니에게 비단 치마를 꿈값으로 주며 그 꿈을 샀다. 며칠 뒤에 오라비 김유신이 김춘추를 집에 데리고 와서 축국을 하다가 그의 옷을 잘못 밟는 바람에 그만 솔기가 터졌다. 이에 유신은 보희를 불러 옷을 꿰매어 주라고 시켰는데, 보희는 몸이 불편하다는 핑계[1][2]로 나서지 않았다. 보희의 성격을 잘 아는 김유신은 보희는 포기하고 대신 문희에게 바느질 소임을 맡겼는데, 이후에도 김춘추가 올 때마다 김유신이 문희를 불러서 그녀에게 보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춘추가 문희와 정을 통하여 아이를 가졌고, 여차저차하여 문희는 춘추에게 시집갔고, 김춘추가 왕이 되면서 문희는 왕후가 되었다.


3. 기타[편집]


  • 필사본 <화랑세기>는 역사학계에서 위서 취급을 받고 있기 때문에 신뢰성이 낮은 기록이다. 화랑세기 필사본의 기록에선 훗날 보희는 이를 후회하다가 나중에 김춘추의 첩이 되어 아들 둘[3]을 낳았다. 보희는 보희부인, 영창부인이라고 불렸고 요석공주의 어머니인데 요석공주가 김흠운과 혼인하여 그 사이에서 낳은 딸은 후일 신문왕의 왕후인 신목왕후가 된다. 그러나 김흠운과 일찍 사별하고 태종 무열왕의 소개로 요석공주는 원효와 만나게 되는데 그 사이에서 아들인 설총을 두어 훗날 설총은 이두를 만들어 신라의 문자에 지극히 공헌하게 된다.


4. 대중매체에서[편집]



  • 2005년 EBS 드라마 <점프>에서는 각 남매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편[4]에서 조연으로 출연한다. 등장한 두 에피소드 공통적으로 보희를 이기적이고 분란을 일으키는 인물로 나온다.[5]

  • 2006년 SBS 드라마 <연개소문>에서는 배우 임성언이 연기했다. 뜬금없이 연개소문의 첫사랑으로 나오는데 연개소문은 어렸을 때 김서현 집안의 종으로 자랐다가 무술의 재능을 알아 본 김서현이 김유신의 보좌역으로 낭도로 키운다. 그러나 보희는 연개소문과 사랑의 도피를 하다 잡히고 연개소문은 노예로 팔려간다. 이후 연개소문이 막리지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구려의 사신을 따라온 최무 집사에게 연개소문이 혼인을 했냐고 묻고 집사가 아드님이 하나 있다고 하니까 우울해하다 연개소문이 무사한걸 알았으니 자신은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한다.

[1] 일설에는 여자의 마법 때문이었다는 말도 있고, 또다른 바리에이션으로는 본인이 왜 외간 남자의 옷을 꿰매주어야 하느냐고 퉁명스럽고 매정하게 거절해버렸다는 버전도 있다.[2] 옷을 꿰매라는 건 사실 기록상 은유로, 처음부터 밤시중을 명한 거란 이야기도 있다. 그렇다면 신분상 결혼하기 거의 불가능한 상대와 신세 망칠 각오하고 인생을 건 모험을 해야 하는 것이니 월경을 핑계됐든 뭐가 됐든 거절하는 건 자연스런 일이긴 하다.[3] <삼국유사>에서 태종 무열왕의 서자라는 개지문, 차득, 마득이 포함되어 있는데 문제는 서자와 후처가 낳은 자식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4] 시즌 1은 문희 편, 시즌 2는 김유신 편.[5] 문희 편에서는 김춘추와 문희 사이를 갈라놓으려 했고 김유신 편에서는 김유신을 뒷담화하다가 김유신의 화만 돋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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