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은 양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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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92년,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의붓아버지 '김영오(金永午)'에게 지속적인 성폭행을 당하던, 1971년생 여성 '김보은(金甫垠)'이 남자친구 '김진관(金鎭寬)'과 함께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이다. 남자친구의 이름까지 더해서 '김보은·김진관 사건'이라고도 불린다. 위키백과에서는 김보은 김진관 사건이라는 표제어로 등록되어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쉬쉬했던 가족에 의한 성폭행 문제가 공개적으로 제기되었다. 실제로 당시 상담기관에서는 많은 가정 성폭력 사례가 접수되고 있었으나, 여성 인권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 미미하고 보수적인 국민 정서 때문에 숨겨지고 있었고, 언론에서 공개적으로 논의가 되기 시작한 계기는 이 사건이었다.
상술되었듯, '김보은'은 이 사건의 피고인이자 살인범인 동시에 성폭행 피해자다. 사건 당사자의 실명을 밝히는 것이, 인권이나 사생활 침해 등의 문제로 적절하지 않다는 논란이 있었으나, 이 사건의 경우, 유영철 연쇄살인 사건처럼 당대에 상당히 이슈가 되었던 사건이고, 김보은은 (살인 사건에 한해서는) 명백하게 가해자이다. 이후 당사자인 김보은과 김진관은 개명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근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2. 사건 정황[편집]
김보은은 이른 나이에 친부를 잃었으며, 이후 그녀가 7살이 되던 해 어머니는 '김영오'라는 검찰 공무원과 재혼하였다. 문제는 이 인간이 의붓딸에게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그녀가 고작 만 9세에 불과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1]
심지어 김영오는 사건 당사자인 김보은 외에도 여러 사람에게 강간을 일삼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청주지방검찰청 충주지청 근무자[2] 였기 때문에 거듭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훗날 사건이 터지고 나서도 검찰이 재판정에서 그를 지나치게 옹호하여 굉장히 큰 논란이 되었다.[3] 덤으로 자신의 직위를 악용하여 음란물 단속 시 압수한 물건을 자신이 집에 가져와서 '수사 참고'를 이유로 사사로이 감상하기도 하는 등 도덕적/성적으로 매우 문란한 행실을 보였다.
심지어 김보은의 추가 증언에 따르면, 김영오는 이에 그치지 않고 어머니와 자신을 같이 눕혀놓고 번갈아 성행위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조금의 죄책감도 없이 김보은이 성인이 될 때까지 10년 이상 이런 짓거리를 계속했으며, 심지어 '내가 너와 네 엄마 둘 모두와 관계했으니 이제 엄마를 형님이라고 부르라'며 낄낄대기까지 한 적도 있다고 한다.
또한 그 아버지에 그 아들들이라고, 김영오가 전처 사이에서 낳은 두 아들들[4] 도 김보은을 추행하려 들었는데, 이에 김영오가 엄청나게 분노하며 아들들을 무지막지하게 폭행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이유가 '도덕적으로 성추행은 나쁜 짓이기 때문이라서'가 아니라, 보은이는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사건 이후, 아들들은 '친누나가 어릴 때 죽은 게 다행'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저 인간이면, 자기 친딸이라도 분명 보은이처럼 대했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 당시 사회 분위기상 부모가 아무리 큰 악행을 저질렀다고 해도 어지간하면 패륜 살인에 대해 동정론이 일기 어려운 때였는데, 그런 시대상을 감안하더라도 양부라는 작자가 저지른 짓이 너무나도 끔찍하고 기괴하다 보니, 모두가 한 목소리로 김보은 양을 동정하였다.[5] 만약 막장 부모에 대한 인식이 당시보다 훨씬 나빠진 2010년대 이후에 이런 사건이 일어났다면, 당시보다도 동정 여론이 더욱 강했을 것이다.
3. 범행의 발단[편집]
시간이 흘러, 김보은은 한 대학교의 무용과에 입학하게 되었으나, 그것으로는 김영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엄연히 독립된 생활을 하게 되었음에도 김보은의 모든 행동의 자유를 하나하나 간섭하기 시작한 것이다. '너 수업 시간표 좀 보자. 이 시간이 수업 시간이구나. 수업 시간 외에는 기숙사에 쳐박혀 있어라. 그리고 주말에는 무조건 충주로 내려와라' 이런 식으로. 그리고 주말에는 반드시 집에 오도록 협박하여 성폭행을 저질렀다.
그런 와중에 김보은에게 남자친구(김진관)가 생겼다. 자신과 데이트할 시간이 없는 것을 궁금해 한 김진관이 그 이유를 캐묻자, 김영오의 행동이 너무 견디기 힘들었던 김보은은 결국 김진관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게 되었다. 큰 충격을 받은 김진관은 이 문제로 계속 갈등하다가, 결국 '김영오를 처단한 후 강도 사건으로 위장할 것'을 김보은과 공모했다.[6] 김진관은 범행 전날, 서울 창동시장에서 범행에 사용할 식칼, 공업용 테이프, 장갑 등을 구입하여 범행 장소인 충주에 내려갔다.
그 후 김보은과의 전화 통화로 범행 시간을 정하고, 범행 당일 새벽 1시 30분경 김보은이 열어준 문을 통하여 집안으로 들어갔다. 김영오는 술에 취하여 잠들어있는 상태였고, 김진관은 김영오의 방에 들어가, 머리맡에서 식칼을 한 손에 들어 김영오를 겨누고 양 무릎으로 양 팔을 눌러 꼼짝 못하게 한 후 깨웠다. 김진관은 체대생으로, 덩치와 힘이 좋았는데, 그런 사람이 누르고 있는 데다가, 김영오는 잠이 덜 깬 상태이니 제대로 반항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상황. 그 상황에서 '김보은을 더 이상 괴롭히지 말고 놓아주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몇 마디 하다가, 들고 있던 식칼로 가슴 부분을 세게 찔렀고, 칼날이 심장에 바로 꽂혀, 김영오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김보은과 김진관은 강도살인을 당한 것처럼 위장하기 위하여 숨진 김영오의 양 발목을 공업용 테이프로 묶은 다음, 현금을 찾아 없애고 장농, 서랍 등을 뒤져 범행 현장에 흩어 놓았다. 또한 김보은이 강도에게 당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김보은의 브래지어 끈을 칼로 끊고, 양 손목과 발목을 공업용 테이프로 묶었다. 김진관은 달아나고, 김보은은 양 손목과 발목이 공업용 테이프로 묶인 채, 옆집에 가서 강도를 당했다고 허위로 신고한다. 사건 당시, 김보은의 나이 만 19세였다.
4. 수사[편집]
이 사건은 처음에는 그들의 의도대로 단순 강도 사건으로 끝날 수도 있었는데, 어느 경찰관이 왜 의붓아버지와 딸이 한 방에서 같이 잤지?라는 사실에 의문을 품었다. 성별이 서로 다른 딸과 아버지는 다른 곳에서 잠을 자는 것이 일반적인데, 딸이 어린 나이였거나, 단칸방에서 같이 자야 할 정도로 가난한 형편도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대학까지 들어가서 기숙사 생활을 하는 성인이, 친아버지도 아닌 의붓아버지와, 그것도 같은 방도 아니고 아예 한 이불을 같이 덮고 잤다는 사실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7]
이상하게 생각한 경찰관은 김보은을 떠보기 위해, 슬쩍 이런 말을 던졌다고 한다.
실제 강도살인 사건이었다면, 아버지가 살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도하거나 기쁜 반응을 보였어야 하는데, 정반대로 기겁하는 것을 보고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을 한 경찰관은 사건을 본격적으로 파헤치기 시작했다고 한다."야, 방금 병원 응급실 가서 너희 아버지 봤는데 살아있더라?"
"안 돼! 안 돼!!"
5. 재판[편집]
이 판례는 정당방위의 성립요건에 대해서 재확인한 판례이다. 다만 상당성이 결여되었다고 판단했지만 그에 반해 객관적 정당화요소를 긍정할 가능성을 열어두었음에도 과잉방위마저도 인정하지 않으면서 사회적으로 크게 회자되었다.대법원 1992. 12. 22. 선고 92도2540 판결
[살인][공[[1993년|1993.]][[2월 15일|2.15.]](938),657]
【판시사항】
가. 정당방위의 성립요건
나. 의붓아버지의 강간행위에 의하여 정조를 유린당한 후 계속적으로 성관계를 강요받아 온 피고인이 상피고인과 사전에 공모하여 범행을 준비하고 의붓아버지가 제대로 반항할 수 없는 상태에서 식칼로 심장을 찔러 살해한 행위는 사회통념상 상당성을 결여하여 정당방위가 성립하지 아니한다고 본 사례
다. 심신장애의 유무 및 정도에 관한 판단방법
【판결요지】
가. 정당방위가 성립하려면 침해행위에 의하여 침해되는 법익의 종류, 정도, 침해의 방법, 침해행위의 완급과 방위행위에 의하여 침해될 법익의 종류, 정도 등 일체의 구체적 사정들을 참작하여 방위행위가 사회적으로 상당한 것이어야 하고, 정당방위의 성립요건으로서의 방어행위에는 순수한 수비적 방어뿐 아니라 적극적 반격을 포함하는 반격방어의 형태도 포함되나, 그 방어행위는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로서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나. 의붓아버지의 강간행위에 의하여 정조를 유린당한 후 계속적으로 성관계를 강요받아 온 피고인이 상피고인과 사전에 공모하여 범행을 준비하고 의붓아버지가 제대로 반항할 수 없는 상태에서 식칼로 심장을 찔러 살해한 행위는 사회통념상 상당성을 결여하여 정당방위가 성립하지 아니한다고 본 사례.
다. 형법 제10조 소정의 심신장애의 유무 및 정도를 판단함에 있어서 반드시 전문인의 의견에 기속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범행의 경위, 수단, 범행 전후의 피고인의 행동 등 기록에 나타난 제반자료와 공판정에서의 피고인의 태도 등을 종합하여 법원이 독자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이 판례의 주문과 이유 부분에 대해서는 선고 영상 또는 판결문 전문을 참조.
이 사건은 당시 사회에 큰 충격을 불러왔다. '아무리 의붓아버지라곤 하지만, 그래도 아버지인데 어떻게 아버지가 딸을 강간할 수 있느냐, 죽어도 싸다'는 공분을 샀다. 두 사람이 법정에서 한 말도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어머니 다음으로 사랑하는 보은이가 무참하게 짓밟히는 것을 알고도 나 자신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걸 느낄 때마다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나는 보은이의 의붓아버지를 죽인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보은이를 살린 겁니다.
민변을 중심으로 배금자[8] 등 무려 22명에 달하는 변호사가 김보은의 무죄를 이끌어내기 위해 발벗고 나서서 거대한 변호인단이 구성되었고, 당연히 여성단체에서도 들고 일어났다.구속된 후 감옥에서 보낸 7개월이 지금까지 살아온 20년보다 훨씬 편안했습니다. 밤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아름답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더 이상 밤새도록 짐승에게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 때문에 진관이가… 제가 벌을 받을 테니 진관이를 선처해 주세요.
당시 이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었다.
- 국민학생 이하의 어린 아이라면 모를까 대학생이라면 먹을 만큼 먹은 나이다. 어떻게 대학생 정도 나이를 먹고도 의붓아버지를 피해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았는가? 저렇게 당하고도 도망가지 않았다는 건 혹시 김보은과 아버지의 관계가 내연의 관계는 아니었을까?[9]
- 김보은이 저렇게 당하도록 김보은의 어머니는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알았다면 왜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못했나?
이런 의문이 제기되자, 당시 명성이 높던 심리학자가 김보은과 어머니의 심리를 분석했는데, 그 결과는 이들의 심리가 '고대 노예의 심리상태'와 같다는 것이었다. 노예는 손발이 묶여 있지 않고 자유롭다. 손발이 묶여 있으면 일을 시켜서 부려먹을 수 없으니까. 즉, 도망가려면 얼마든지 도망갈 수 있는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도망을 가지 못했는가? 그것은 주인이 무작위로 노예를 살해하거나 심하게 폭행하는 등 지속적으로 엄청난 공포심을 주어, 학습된 무기력을 심어놓기 때문에 그 공포심에 짓눌려 도망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가스라이팅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김영오가 김보은과 어머니에게 한 행동, 역시 가스라이팅의 표본이다.
실제로 김영오는 그 점을 이용해, 김보은과 어머니에게 지속적으로 겁을 주었다. '검찰 관계자'라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악용해 '엉뚱한 짓을 할 생각 말라, 우리나라의 모든 검찰 수사망은 내 손 안에 있다'는 말을 수시로 했고, 가끔 어리버리한 피의자를 일부러 집으로 데려와 잔혹한 폭행을 동반한 불법 수사도 일삼았다고 하며[10] 모녀는 그런 모습에 어마어마한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김 양의 어머니가 어렵사리 이혼하자고 해 본 적도 있으나, 김영오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식칼을 휘두르고 쥐약을 들이대며, "이혼할 거면 너 죽고 나 죽자"면서 말 그대로 미쳐 날뛰었다고 한다. 김영오가 실제로 싸이코패스였음이 유력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진짜로 그에게 살해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결국 김 양의 어머니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이들 모녀는 도망을 '가지 않은' 것이 아니라, '가지 못한' 것이다.
거대한 변호인단의 노력이 성과가 있었는지, 법원은 김보은에게 정당방위의 요건 중 하나인 '현재의 부당한 침해'가 있다고 볼 여지가 있음을 인정했다. 지금 현재 성폭행을 당하거나 당할 위험이 있지는 않지만, 지금까지의 흐름으로 볼 때, 언제 갑자기 일어나서 성폭행을 가할지 모른다는 논리다. 하지만 김영오를 살해한 행위가 사회 통념상 사회적 상당성을 결여하여 정당방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방에서 '자고 있는 사람을 깨워서' 살해한 행위를 정당방위로 인정하긴 어렵다는 것. 마찬가지로 김진관에게도 정당방위 성립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 사건에서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는 정당방위의 현재성은 인정될 수 없고, 긴급피난의 현재성만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보충성 또는 균형성이 결여되어, 긴급피난도 성립될 수 없다고 한다.[11]
다만, 정상을 참작하여 일반적인 경우보다 낮은 형량이 선고되었다. 1992년 4월 4일 청주지방법원 충주지원에서 김능환·박동영(朴東英)·이헌섭(李憲燮)은 직접 살인을 한 김진관에게 징역 7년, 김보은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으나,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제3형사부의 이순영(李順英)·이주영·심상철(沈相哲)은 김진관에게 징역 5년, 김보은에게 징역 3년·집행유예 5년으로 감형했다.[12] 그리고 대법원 제1부에서 최종영·배만운(裵滿雲)·이회창·김석수가 상고를 기각하여 형이 확정된다. 다만, 김보은은 다음 해인 1993년 3월을 기하여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형의 효력이 상실되어 가석방되었고,[13][14] 김진관도 그와 동시에 형량의 절반이 감경되어, 잔여 기간만 보낸 후 만기 출소하였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일반적인 경우는 나올 수 없는 형량인데, 이는 가해자가 된 피해자라는 것이 고려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건은 1994년 제정된 〈성폭력 범죄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15] 의 제정에 큰 영향을 주었다.
92도2540 판결문은 대법원의 원심 확정 기각 판결문이고, 판결문 92노1511이 서울고등법원의 판결문이다[16] . 판결문 전문 자체는 이 곳에서 공개되어 있다.
6. 여담[편집]
- 김진관과 김보은, 두 사람은 김진관의 복역 이후 헤어졌다. 관련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진관의 가족들이 김보은을 원망해서가 절대 아니고, 두 사람이 동시에 너무나 끔찍한 사건을 겪었기 때문에, 함께 있으면 평생 그 상처를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라 한다. 김진관의 가족들은 김보은을 오히려 동정했으며, 가석방된 김보은이 자신의 어머니보다 김진관의 부모님을 먼저 찾아뵙고 울며 빌자, 부친은 "네 잘못이 아니니, 너무 괴로워 말고, 앞으로 열심히 살아라"라고 다독여 주기까지 했다고 한다.
- 두 사람이 구속되어 있던 기간 동안, 김보은의 어머니와 김진관의 아버지는 옥중에 있는 딸과 아들을 대신하여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가 제정한 제1회 인권상을 받는데, 김진관의 아버지가 아들을 대신해 다시는 이런 일이 있을 수 없기를 바라는 수상 소감을 밝히고, 김보은의 어머니는 딸 생각에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고 한다.
- 성폭행 및 관련 피해자들에 대하여 쓴 책, 즉 김부남 여인 사건이라든지, 영화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같은 실존 인물 같은 관련 사건에 대하여 자세한 내막을 다룬 책[17] 에서도 이 사건을 다뤘는데, 이 책자에선 술 취한 양아버지가 마구 화내면서 적반하장으로 '연놈들을 내가 가만히 안 둔다'고 윽박지르는 통에 울컥한 남자친구가 칼로 찔렀으며, 이때 '이 ○이… 내가 누군지…'라고 소리치자, 그 말에 더 울컥한 남자친구가 더 깊숙하게 찔렀더니 '살려…'라는 단말마를 외치다 숨이 끊어지는 이야기가 나온다.
- 형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사건이 정당방위에 관련하여 필수라고 할 만큼 거의 모든 형법 교과서에 등장하는데, 판결문에 정당방위에 관한 요건이 모두 담겨 있기 때문이다.[18]
- 사건이 일어난 시기는 사회적으로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인식이 미비했을 때라, 피해자의 실명이 버젓이 드러나는 우를 범하게 되었다. 훗날 조두순 사건에서 피해자를 지칭하기 위해 '나영이'라는 가명이 사용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당시 국내 언론의 성숙도도 낮아서, 특정 사건의 관계자나 피해자에 대한 초상권 등의 개인정보 보호 조치가 사실상 없다시피 했다.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사건인 박초롱초롱빛나리 유괴 살인 사건 관련 보도에서 피해자의 어머니 얼굴을 모자이크 없이 그대로 방송에 내보낸 것 등이 그 예.
- 영화화 움직임이 있었다.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 《이태원 살인사건》을 연출한 홍기선 감독이 김보은에 대한 김진관의 사랑을 그리려는 내용으로 시나리오 완성 단계까지 갔으나, 김진관의 거부로 결국 무산되었다.
- 《알쓸범잡 2》에서 이 사건을 다뤘다. 다만, 이름은 익명 처리해서, 김보은 양은 A, 김진관 군은 B로 부르며 사건을 언급하였다.#
- 김부남 사건과 같이, 2000년대까지의 여느 살인사건과 다르게,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 이름이 붙는다. 하지만 김보은과 김부남 모두 사실상 피해자이고, 오히려 가해자는 성폭행을 저지른 쪽이다.
7. 유사 사례[편집]
- 일본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1968년, 일본 도치기현에서 당시 29세의 여성이, 14살때부터 자신을 성폭행해 온 53세의 친부를 살해한 사건(尊属殺重罰規定違憲判決). 피해 여성은 친부의 성폭력에 시달리며, 근친상간으로 5명이나 되는 아이까지 출산했다.[19] 수 차례 가출했다가 친부에게 붙잡여 오기를 반복하다, 점차 학습된 무기력과 자신이 달아나면 어린 여동생들이 같은 짓을 당할까 봐 집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피해자는 직장에서 만난 한 남자와 연애를 하게 되었고, 용기를 갖게 된 그녀가 결혼을 하겠다고 알리자, 분노한 아버지는 그녀를 감금하고 동생들과 아이들을 모조리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결국 궁지에 몰린 그녀는 아버지를 죽여야만 모든 것이 끝난다는 생각으로, 끈을 이용해 아버지를 교살했다. 일본에서 존속살해는 법정형 사형 또는 무기징역밖에 없는 무거운 죄였으나, 본 사건과 마찬가지로 당위성을 인정받아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고, 1970년에 석방되었다. 일본 대법원이 존속살인죄를 '위헌'으로 판단한 최초의 판례라고 한다.[20]
8. 관련 자료[편집]
- 시사저널 [표창원의 사건추적] '짐승' 의붓아버지 죽인 비운의 연인
- [김복준 김윤희의 사건의뢰] 김보은 양 사건 - 그녀는 가해자인가? 피해자인가?
- [엠빅뉴스] 이거 실화야? - 아빠에게 끔찍한 일을 벌인 딸, 슬프고도 충격적인 실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