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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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3. 명대사



1. 개요[편집]


영화 택시운전사의 주인공. 서울특별시에 사는 평범한 개인 택시 기사. 배우는 송강호.


2. 상세[편집]


실존 인물인 김사복을 모티브로 한 일물.

서울특별시에 사는 평범한 개인 택시 기사. 10년 이상 경력의 베테랑 기사로, 11살짜리 딸과 함께 단 둘이서 동료 택시기사 강동수의 집 반지하에 세들어 산다.[1] 과거 중동 건설 붐 당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화물차 기사로 근무한 경험 덕분에, 영어 단어를 나열해서 간단한 의사소통 정도는 할 줄 안다.[2] 개인택시를 몰지만, 아내의 병원비로 돈을 다 쓰고 이제 겨우 빚을 다 갚은 상황이다. 택시도 겨우 장만했으며, 사글세를 내지 못해 4달치 10만 원이 밀려있는 처지다. 전라남도 광주시에 가면 10만 원을 준다는 외국인 호구가 있다는 사실을 듣고 피터를 만나 광주로 향한다.[3] 영화 초반에는 서울에서 시위하는 대학생들을 보며 "대학교에 비싼 돈 주고 가서 한다는 게 고작 시위냐?" 같은 반응을 보이고[4] 광주에 가서도 재식에게 그런 식으로 나무라지만, 광주의 참상을 직접 보고 나서는 오히려 식당에서 광주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을 착잡하게 바라보는 등 심경의 변화를 드러냈다.[5][6] 광주에서 머무르다가 딸 생각이 간절해져 서울로 돌아가다가 피터 생각에 울면서 차를 다시 광주로 돌리고 딸에게 전화를 걸어 "아빠가... 손님을 두고 왔어"하는 장면은 아마 본작 최고의 명장면일 것이다. 병원에서 다시 만난 피터에게도[7] "아이 택시드라이버, 유 택시 손님!"하며 책임감을 드러낸다. 그리고 부상당한 시위자들을 구출하러 직접 가는 등, 그냥 서울로 갈 수도 있었을텐데 위험을 감수하고 적극적으로 광주시민들을 도와준다. 만약 이 사람과 기자, 그리고 아래의 중사가 아니었다면 이 사건은 영원히 베일에 쌓인채로 폭동이라 불렸을 것이다.[8]

에필로그에서는 평범하게 택시 운전을 하며 지내지만 그 일 이후로 손님을 대하는 모습에 변화가 보인다.[9] 이후 힌츠페터가 수상했다는 소식을 신문으로 보며 그를 그리워한다. 공항에서 마지막으로 피터와 헤어질 때 피터가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하자 가짜 연락처와 사복다방 성냥을 본따 김사복이라는 이름을 적어 준다. 실존인물을 찾지 못했던 당시, 가명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10] 광주 민주화 운동이 복권된 이후에 힌스페터가 언론을 통해 찾아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본인의 신분을 숨긴 것이라는 설을 차용한 것인데, 실제로는 광주 민주화 운동 발생 이후 4년 뒤에 사망해서 2000년 즈음에는 이미 고인이었다. 실존인물 김사복은 평소 인권운동에 관심이 많았고, 영어가 유창했으며, 힌츠페터에게 직접 브리핑을 했을 정도로 주도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에, 극중에 묘사된 만섭은 실제 인물과는 거의 이름만 같은 다른 사람 수준의 각색이다. 하지만 영화 제작 당시에만 해도 '힌츠페터를 도운 한국인 택시기사가 있었다'는 점 외에는 김사복에 대해 알려진 것이 아예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자세한 내용은 택시운전사/탐구 문서 참조.

가만 보면 날강도 기질도 있는데, 집주인한테 돈을 빌려서 집세를 갚으려 하고, 정비소에서 안 그래도 싸게 불러준 수리비에서 더 깎아서 내고, 무엇보다 이 영화 스토리의 시발점 사건이기도 한 남의 예약 손님을 가로채는 얌체짓까지 했다(...).[11]


3. 명대사[편집]


아빠가... 손님을 두고 왔어.


저 좀 살려주시라요. 전 빨갱이 아닙니다...


저 진짜 빨갱이 아닙니다. 저 광주 사람도 아니에요. 서울 삽니다 서울. 서울시 성동구 화양로 124번지 10동 8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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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때문에 작중 사글세 때문에 돈을 빌려달라는 만섭에게 "집주인한테 돈 빌려서 집세 낸다는 녀석 처음 본다"는 대사가 있다.[2] 지금도 그렇지만 설계사가 영미권이나 유럽 국가들이 많기 때문에 영어를 싫어도 쓸 수밖에 없다. 허나 송강호는 영어는 거의 못한다고 한다. 실제로 그 덕택에 설국열차를 찍을 당시에 번역기를 동원해서 커티스와 대화하는 신이 나온다.[3] 사실 기사식당에서 그 말을 한 회사 택시 기사가 광주로 갈 예정이었으나, 만섭이 가로채버렸다.[4] 지금에서야 대학교는 최하위권의 저소득층이 아니고서야 국가장학금이나 근로장학금 같은 정부 지원과 학교 자체의 성적장학금 등으로 누구나 성적만 된다면 갈 수 있는 곳이 되었지만 이 당시에는 돈먹는 괴물 그 자체였다. 비싼 돈이라는게 단순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비싼 돈이었던 것. 이 시절은 평균 학력이 고졸이었으며 대학은 공부를 잘하면 가는게 아니라 집안에 돈이 있으면 가는 곳이었다. 특히나 4년제라면 더더욱. 지금에 비유하면 완벽한 비유는 아니지만 대충 박사 과정과 엇비슷하다. 박사가 되기 위해서는 30대를 거진 다 연구에 바쳐야하고 당연히 약 10년 동안의 뒷바라지는 집안의 몫이기 때문. 물론 박사는 돈만 있다고 되는게 아니라 실력이 제일 중요하지만. 이렇듯 돈 먹는 괴물이었던지라 간혹가다 어떤 어르신의 회상을 보면 '아들놈이 공부를 잘했는데 돈이 없어 대학을 보내주지는 못하고 도리어 일해서 돈벌어오라고 호통만 쳤다'는 식으로 괴로워하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국민 소득 수준도 낮아 고등학교만 해도 소 팔아서 학교 보냈다는 말을 하던 시대였으니 오죽했을까.[5] 사실 순천에서 보았던 신문엔 "폭도와 깡패, 빨갱이들이 광주에서 폭동을 일으켰다"고 내보냈고, 광주신문은 검열을 거쳤으며, 광주와는 그 어떤 연락도 할 수 없었다. 심지어 인근에 있는 전라남도의 다른 지역에서도 광주의 상황을 알지 못하고 언론에서 보도된 내용 그대로 믿었기에 많은 사람들은 이 말을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만섭이 허기를 잠시 달래로 온 전라남도 순천의 시외버스 터미널 근처 식당에서 사람들이 저대로 믿었겠는가... 물론 이 과정에서 의구심을 느낀 사람들이 광주에 침투하여 여러 가지 일을 해내기도 하였다.[6] 다만 이는 작중 초반 만섭의 행동에 기초하여 생각 해 본다면 큰 변화라 보기엔 애매한게, 곧 출산하려는 부부를 병원에 데려다 준 후 지갑이 없다는 손님의 말에 '내가 이렇게 떼인 택시비만 모아도 집 하나는 샀다'고 말하면서도 손님이 먼저 내민 명함 하나 받고 떫떠름해 하면서도 초산 시 주의점 등 여러가지 조언을 하며 보낸다.[7] 당시 피터는 자기를 살리기 위해 희생한 구재식의 죽음을 확인하고 망연자실하게 있던 터였다.[8] 물론 이건 영화에서의 이야기고, 현실에서는 당시 광주에 여러 외신기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아래의 계엄군 중사와 같은 당시 이후로는 훗날 양심선언자가 되는 계엄군 출신들이 기무사의 반란 진압 이전과 진압된 이후 시기에 속속들이 양심증언들이 나오면서 아래의 계엄군 중사는 사실상 노렸든 아니든 지금 이날에 양심증언자로서의 계엄군 출신자들을 상징하는 셈이다.[9] 대학생으로 추정되는 손님이 타는데, 돈을 적게 가지고 왔다고 하자 알았다며 봐준다.[10] 실제 고증을 배제한 영화 자체적인 맥락으로 보면, 군부에서 외국인 기자를 도와준 본인을 추적할까봐 일부러 가짜 신상을 알려줬음을 유추할 수 있다.[11] 다만 예약 손님 가로채기는 제외하고 집주인에게 돈 빌려 빚 갚기는 집주인이 오래 지낸 친구였기에 말이라도 꺼내볼 수 있는 것이고, 정비소의 수리비 후려치기 씬도 정비사와 오래 거래한 단골+친구였기에 가능한 것이 곳곳에 보인다. 사실 오래 지내고 거래도 오래 한 사람들이니까 저렇게 웃어넘기는 것. 만일 그렇지 않다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욕먹기 딱 좋은 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