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수(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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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교수 겸 의사
김동수
金東洙


출생
1926년
평안남도 평양부
사망
2023년 5월 28일 (향년 97세)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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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학력
평양신학교 (중퇴)
부산대학교 (의학 / 학사)
부산대학교 대학원 (의학 / 석사)
부산대학교 대학원 (의학 / 박사)
경력
대한핵의학회 2대 이사장
핵의학교실 실장
부산생명의전화 초대 원장
부산참여연대 대표
사회복지법인 청광 이사장
부산겨레하나 상임대표
부산 YMCA 이사장
한국 생명의 전화 이사장
부산 NCC 회장
김동수 내과의원 원장
대한 핵의학과 이사장
김용기 내과의원 명예원장
종교
개신교[1]

1. 개요
2. 생애
3. 사망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교수, 의사이다.


2. 생애[편집]


평양에서 7남매 중 맏이로 태어난 그는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했다. 그리고 자연히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 평양신학교에 진학하였으나 도중에 학교가 폐쇄되는 바람에 중퇴하고 한국전쟁이라는 민족적 참화 속에서 자유를 찾아 월남 해 부산에 정착했다. 그러던 도중 그는 허리가 굽는 척추후만증을 앓았던 탓에 걸음이 빠르지 않아 가족과 헤어지는 아픔을 겪었다. 그렇게 피난 간 부산의 고아원에서 전쟁고아를 치료하는 군의관 조수 일을 한 걸 계기로 의술에 눈을 떴다. 5살 때 앓았던 척추질환의 후유증으로 인한 부자연스러운 지체(肢體) 때문에 의사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부산대학교 의과대학에 들어가 의료계에 진입했다. 의업을 시작한 이때 그를 가르쳤던 인물이 바로 장기려 박사이고 그와 함께 건강의료보험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청십자의료봉사활동’을 행했다. 그리고 대학 재학 중인 1961년 11월 대한핵의학회 창립 발기인 7명 중 한명으로 참여 했고, 1962년 내과 수련의 시절에는 그가 동위원소를 이용한 갑상선 촬영장비를 진단검사에 처음 도입한 덕분에 부산에서 내분비대사 질환 연구가 시작됐다.[2] 핵(核)의학으로 불리는 이 검사법은 1958년 한국에 처음 들어온 것이었다. 즉 당시 레지던트였던 그와 안창수 교수가 당시 최첨단이었던 핵의학을 내분비내과에 받아들인 것이다. 핵의학에 의한 검사는 반감기가 짧은 방사성 동위원소를 병의 진단이나 치료에 이용하는 것으로, 환자에게 고통을 주지 않고 위험성도 없으며 비교적 단시간에 실시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은 이미 널리 사용하는 의술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부산대에 개설된 동의원소실(現 핵의학교실) 실장을 맡으며 안창수와 함께 동위원소를 이용한 갑상샘 촬영 장비를 진단검사에 도입하는 등 핵의학을 이용한 내분비학 연구에 몰두했다. 이후 1964년에는 내분비 질환의 일종으로 소변의 양이 많아지는 질병인 '요붕증'을 동반한 '쉬한(Sheehan) 증후군' 사례 연구를 영국의 세계적인 의학저널 '란셋'(Lancet)에 발표했다. 핵의학을 도입하고 2년 만에 부산의대가 전 세계 핵의학계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그 후 1년간 독일 하이델베르크 의대로 연수를 떠나 세계 핵의학 연구의 중심으로 접근한 그는 자신의 세부 전공인 갑상선 진단과 치료 분야에 핵의학 지식을 융합하여 부산 의료계에 새로운 길을 계속 열어나갔다. 이러한 업적을 통해 1966년부터 부산대 의대 교수로 활동했으며 동시에 1985~1986년 대한핵의학회 2대 이사장을 지냈다. 이후 1992년 부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직을 정년퇴임한 그는 부산 충무동에 내과병원인 '김동수 내과'[3]를 개원했다. '김동수 내과'는 핵의학장비를 갖춘 내분비 전문 클리닉 뇌하수체·갑상샘·난소 질환, 당뇨병, 골다공증, 고지혈증 등을 치료했는데 특히 '갑상샘 질환 치료는 김동수 내과'라고 할 정도로 전국적인 명성을 떨쳤다. 그 의업을 인정받아 2006년에는 우리나라 핵의학 발전에 공로가 큰 원로에게 주는 '청봉상'을 받았다.


3. 사망[편집]


2023년 5월 28일 사망했다. 향년 9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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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산영락교회 장로였다.[2] 당시는 갑상샘 질환이나 당뇨병 등을 다루는 내분비학이 아직 내과에서 분화되지 않았을 때였다.[3] 現 김용기 내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