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배(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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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85년 11월 5일
황해도 연안군 홍장방[1]
(현 황해남도 연안군 용호리)
사망
몰년 미상
사망지 미상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김덕배는 1885년 11월 5일 황해도 연안군 홍장방(현 황해남도 연안군 용호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조종호(趙鍾濩) 등이 해성면 초양리에 있는 자신의 집 뒷산에서 동지들을 규합하여 독립만세계획을 의논할 때 참여했다. 이때 그는 신현기와 함께 봉북면 책임을 맡았다. 한 만세시위 출동 순위를 1차 봉북면, 2차 호동면, 3차 호남면, 4차 해성면으로 정하였다.

그러나 일본 군경의 감시로 계획이 미뤄지던 중, 3월 15일에야 거사를 단행하였다. 계획대로 김덕배는 김종석(金鍾奭)과 함께 먼저 봉북면 주민들을 인솔하고 태극기를 앞세우고 연안면 동문으로 들어가며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그러나 일본 헌병대의 총격으로 시위 군중은 흩어졌다.

이후 체포된 그는 1919년 5월 24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해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김덕배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1895년 홍장면으로 개편되었고,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 홍장면 심동리·원우리·축현리와 북부면 수정리 일부, 배천군 석산면 육리 일부를 병합해 봉북면 원동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