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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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大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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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의 인물. 생몰년도는 불명이나 대략 31대 신문왕(681년) ~ 35대 경덕왕(765년) 통일신라 전성기 시대에 활동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진골 출신 귀족으로, 지금의 서울 인근인 한산주 도독을 지냈으며, 여러 사서를 썼다는 짧은 내용만이 남아있다. 그가 남긴 저서들은 현대에는 행방을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에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쓸 때까지는 남아있었기에 삼국사기를 쓰는 데 중요한 당대 사료로 참고되었다. 사실상 신라 중대 최고의 역사학자.
그는 인물들의 생애에 관한 기록 전기물에 관심이 많았다. 그의 저서 중 고승전과 화랑세기는 각각 이름난 승려와 화랑들의 전기다. 김대문 이후 신라에서는 전기물들이 많이 쏟아져 나왔는데, 예를 들면 김장청의 김유신행록, 최치원의 의상본전, 그 외 작자 미상의 양지전, 자장전, 원효행장, 왕화상전 등이다. 한국사에서 전기 저술의 시대를 연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저서 중 화랑세기는 고려~조선대를 거치며 실전된 것으로 여겨졌으나 20세기에 박창화의 필사본이 발견되어 당시 논란이 되었다. 그 내용과 진위여부 논란에 대해서는 화랑세기 문서 참조. 일단 이 필사본의 내용만 따져보면, 김대문 본인이 화랑의 우두머리 풍월주의 후손으로서 본인의 족보를 정리한 책을 편찬한 셈이다.
삼국사기 제46권 열전 제6 김대문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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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편집]
통일신라의 인물. 생몰년도는 불명이나 대략 31대 신문왕(681년) ~ 35대 경덕왕(765년) 통일신라 전성기 시대에 활동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2. 상세[편집]
삼국사기에 따르면 진골 출신 귀족으로, 지금의 서울 인근인 한산주 도독을 지냈으며, 여러 사서를 썼다는 짧은 내용만이 남아있다. 그가 남긴 저서들은 현대에는 행방을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에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쓸 때까지는 남아있었기에 삼국사기를 쓰는 데 중요한 당대 사료로 참고되었다. 사실상 신라 중대 최고의 역사학자.
그는 인물들의 생애에 관한 기록 전기물에 관심이 많았다. 그의 저서 중 고승전과 화랑세기는 각각 이름난 승려와 화랑들의 전기다. 김대문 이후 신라에서는 전기물들이 많이 쏟아져 나왔는데, 예를 들면 김장청의 김유신행록, 최치원의 의상본전, 그 외 작자 미상의 양지전, 자장전, 원효행장, 왕화상전 등이다. 한국사에서 전기 저술의 시대를 연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저서 중 화랑세기는 고려~조선대를 거치며 실전된 것으로 여겨졌으나 20세기에 박창화의 필사본이 발견되어 당시 논란이 되었다. 그 내용과 진위여부 논란에 대해서는 화랑세기 문서 참조. 일단 이 필사본의 내용만 따져보면, 김대문 본인이 화랑의 우두머리 풍월주의 후손으로서 본인의 족보를 정리한 책을 편찬한 셈이다.
삼국사기 제46권 열전 제6 김대문
3. 저서[편집]
- 《화랑세기(花郞世記)》: 당대 이름난 화랑들의 전기를 기록한 책. 후대 발견된 필사본의 진위논란에 관계없이 통일신라 당대에는 분명히 존재했던 사서이다.
- 《고승전(高僧傳)》: 당대 이름난 승려들의 전기를 기록한 책.
- 《계림잡전(鷄林雜傳)》: 신라의 잡다한 야사를 기록한 책. 이상 세 문헌의 내용이 삼국사기에서 인용되었다.
- 《악본(樂本)》: 책 이름으로 보아 음악에 관한 책으로 추정된다.
- 《한산기(漢山記)》 - 김대문이 한산주 도독을 지냈기 때문에 그 계기로 한산주 지역의 지리와 풍속을 기록한 책. 편찬자들이 서명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학계에서는 도미 설화 등을 《한산기(漢山記)》내용에서 일부 인용한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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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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