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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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72년 6월 13일
충청북도 옥천군 안내면 문정리
사망
1936년 8월 16일
중화민국 텐진시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본관
청풍 김씨
직업
독립운동가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
2. 상세
3.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밀정이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존재한다.(시사기획 창 "밀정"에서 일제의 밀정이라는 자료를 찾았다.)


2. 상세[편집]


독립운동과 별개로 신해혁명에 가담하여 청나라를 멸망시키는 일에 동참한 인물이기도 하다. 조상 대에 있었던 삼전도의 굴욕을 만회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정작 김규흥 본인은 중화민국의 도움을 받아 조선의 독립을 위해 일하려고 했을 뿐 유교에 입각하여 신해혁명에 가담한 것은 아니므로 북벌론재조지은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일제의 조선 무단통치(武斷統治)를 뒷받침 했던 조선군 사령부의 사령관 우쓰노미야 다로와의 편지가 밝혀지며 밀정으로 활동했을 가능성이 대두되었다.[1] 김규흥이 우쓰노미야 다로에게 금전적 지원을 받은 기록도 남아있다. 편지의 내용에 따르면 상해임시정부를 해체하고 독립운동가들을 회유하여 귀국시키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김규흥의 후손은 흥화실업은행 설립을 목적으로 한 비위 맞추기였다는 식으로 대변했다. 실제로 김규흥은 독립운동 자금을 위해 흥화실업은행을 설립한 공로를 인정받아 건국 훈장 애국장을 수여 받았다. 그러나 밀정으로 의심받아 죽임을 당한 김달하와 가까운 사이로 지내며 우쓰노미야 다로에게 김달하와의 활동내용을 전하는 편지 내용이 남아있어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 이 논란이 학계에서 주류로 인정받는 주장인지는 확실하지 않다.[2]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인 부산대학교 배경한 교수는 단정하기보다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3.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편집]


1998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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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KBS 시사기획 창 https://youtu.be/EWor6Uy8_5A [2] 나무위키 우덕순 문서를 참고하면 더 자세히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