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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吉本
(? ~ 218년)
1. 개요
4. 미디어 믹스


1. 개요[편집]


후한 말의 인물. 한자의 모양새 때문에 길비(吉㔻)가 진짜 이름이라는 주장도 있다. 감택, 누규와 더불어 정사와 연의에서의 행적이 완전히 다른 인물 중 하나.


2. 정사 삼국지[편집]


헌제 때의 태의령[1]으로 218년에 소부 경기, 사직 위황, 김의 등과 함께 아들인 길막, 길목 등과 함께 반란을 일으켜 허도를 공격해 장수인 왕필의 진영에 불을 질렀지만 왕필과 전농중랑장 엄광의 반격으로 인하여 사망했다.

동일인의 이름이 후한서에서는 '길비(吉㔻)'로, 정사 삼국지에서는 '길본(吉本)'으로 나온다. 『광운(廣韻)ᆞ지운(脂韻)』에 근거하면 본명은 길비(吉㔻)이지만 위나라 조비의 이름을 피휘하느라 이름이 길본(吉本)으로 기록된 것이라고 한다.


3. 삼국지연의[편집]


사례 하남윤 낙양현 사람으로 본명은 길태(吉太), 자는 칭평(稱平), 통칭은 길평(吉平)이라고 나온다. 왜 이름이 역사상의 길비(吉㔻)로 나오지 않고 길평(吉平)이라고 나오냐면 나관중이 비(㔻)와 평(平)의 한자 모양이 비슷해서 착각했기 때문이다.

시간을 한참 앞으로 건너뛰어 조조가 동탁을 죽이고 헌제를 핍박하기 시작할 무렵에 당대의 유명한 명의로 등장한다. 조조가 헌제에게 대놓고 모욕을 주자[2] 동승은 조조를 몰아내기 위해 왕자복(과 나중의 유비)을 비롯한 10명의 충의지사를 모았으나, 조조의 철통같은 경비와 마등 및 유비의 불가피한 이탈[3]로 인해 잘 풀리지 않자 몸져눕는다. 이에 길평은 동승을 극진히 간호했으나 그 내막을 알지 못했는데, 자신을 대접하다가 병과 술기운에 깜빡 잠이 든 동승이 잠꼬대로 '역적 조조를 죽이겠다'고 하는 걸 듣고 모든 걸 파악한다. 이에 길평은 자신도 한나라의 충신임을 고백하고 손가락을 깨물어 동승의 연판장에 서명한 후, 자신이 조조의 간호도 맡고 있다는 점을 이용해 직접 조조를 암살하기로 한다.

하지만 이 계책은 23회에서 (삼국지/가공인물인) 진경동이 밀고하는 바람에 들통나고, 아무것도 모르는 길평은 두풍이 심하다는 조조의 호출을 받자 독을 듬뿍 넣은 약을 들고 들어가서 약을 바쳤다. 하지만 조조는 "환자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의사가 한 번 마셔봐야 하는 거 아니냐?"라며 딴청을 부렸고, 길평은 계획이 들통났음을 깨닫고 "약은 환자를 위한 것인데 의사가 마시면 뭔 소용이냐"라며 조조의 귓구멍에라도 강제로 부어 버리려 했으나 대비하고 있던 조조가 발길로 턱을 걷어차는 바람에 실패한다. 이 때 독약을 넣은 사발이 바닥에 떨어져 깨지는데, 어찌나 독이 심했는지 바닥에 깐 천의 색깔이 변했다고 할 정도.[4]

간신히 목숨을 건진 조조는 길평을 형틀에 묶고 배후를 대라며 고문했으나 길평이 입을 열지 않자, 이미 진경동에게서 주모자에 대해 다 들었던 조조는 연회를 벌인다며 거짓말을 하고는 왕자복 일행을 불러낸 뒤 만신창이가 된 길평을 조리돌림하며 은근히 협박을 가했다. 그럼에도 왕자복 일행이 자수하지 않자 그들만 따로 불러내 군사들을 대동하고 문초했고, 그럼에도 그들이 자백하지 않자 역시 가둬버린다. 마지막으로 동승을 찾아가 자백하라며 을러댈 때도 심리적 고문을 위해 길평을 데려가고는 동승이 끝까지 불지 않자 대신 길평을 고문한다. 조조가 연판장에 서명하느라 손가락이 잘린 걸 추궁하고는 '또 손가락을 깨물어 맹세할 수 있나 보자'면서 나머지 손가락을 잘라버리고, 그래도 길평이 '아직 혓바닥이 남아 있으니 얼마든지 널 꾸짖을 수 있다'고 하자 혓바닥까지 뽑아버리려 하나, 어째선지 길평은 갑자기 모든 걸 자백하겠다면서 포박을 풀어달라고 한다. 조조는 이미 반 송장이 되었는데 어쩌겠나 싶어 풀어줬지만, 길평은 헌제가 있는 곳을 향해 절을 올리고 '나는 최선을 다했으니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겠다'며 유언을 남기고는 병사들이 휘두르는 칼보다 먼저 계단에 머리를 들이박아 자결한다.

이 사건으로 조조는 의사를 불신하게 되었고 훗날 자신을 진심으로 치료해주려는 화타를 옥에 넣어버리는 행동을 하게 된다.[5]

이후 69회에선 실제 길평(정확히는 문서명과 같은 길본)이 등장했어야 할 경기와 위황의 반란에서는 본인 대신 아들들인 길막과 길목이 등장하지만, 이들 역시 경기&위황과 함께 사망한다. 실제로는 길본과 길막, 길목이 함께 경기와 위황의 반란에 참여했다.[6]


4. 미디어 믹스[편집]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에서도 등장한다.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3에서 질병, 부상이 발생한 성에서 장수수색을 하면 등장한다.

이문열 평역 삼국지에서 소설가 이문열은 이 장면을 문장으로 표현하였는데, 그는 길평이 쓴 독이 매우 독한 약이어서 조조의 귀에 부어도 조조가 죽을 수 있는 정도였으며, 약물이 바닥에 떨어지자 바닥돌이 쩍쩍 갈라질 정도였다고 묘사하였다.[7]

하지만 연변 작가 리동혁삼국지가 울고있네에 따르면 이것은 오역으로, 길평이 귀를 잡은 것은 억지로 약을 먹이려는 장면이 표현되기 위해 사용된 수사적인 표현일 뿐이며, 각색된 것 역시 애초에 약이 바위를 쪼갤 정도로 독했으면, 조조에게 그대로 약을 뿌리면 그만 아닌가? 라고 상식에 맞지 않음을 지적했다.

조조: 황제의 반란에서는 219년까지 살아남고 조조를 죽이기 위해 키워진 암살자들을 지휘하는 역할로 헌제가 10년 동안 조조를 죽이기 위해 준비했으며, 암살자들을 이끌고 동작대를 공격해 조조를 암살하려고 했다. 그러나 영저를 사랑한 목순이 영저가 조조를 사랑한 것을 알고 영저를 위해 자신이 조조로 변장해서 길본이 이끄는 군사들을 유인했으며, 뒤늦게 조조군의 군사가 나타나면서 조조가 죽지 않은 것을 확인해 실패했음을 알고 멀리서 지켜보던 헌제에게 우리 부자는 최선을 다 했다는 말을 남기며 자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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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황실 의관. 즉 길평은 정사에서도 의사였다.[2] 반강제로 사냥 대회를 하자고 했는데, 한 번 써 보라고 준 황제 전용 금제 궁을 돌려주지 않는가 하면 황제가 쏴서 맞힌 줄 알고 신하들이 환호하던 걸 앞에 나서서 대신 받았다.[3] 마등은 변방을 지키기 위해, 유비는 개인적인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 허도를 떠났다.[4] 다만 본문 뒤에서 리동혁이 지적했듯이 이는 '귀를 잡고 억지로 먹이려다 실패'했다는 부분을 오역 혹은 강조하느라 사족이 붙었다는 평도 있다.[5] 이문열 삼국지에서 조조가 하는 말만 봐도, 저놈은 병을 고친다는 구실로 나를 죽이려 했으니 오래전에 죽은 길평 같은 자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는가![6] 사실 이 부분은 확실히 나관중의 미스다. 동승과 길본이 조조를 암살하려다가 실패한 부분에서는 동승 일족 등을 다 개박살을 내놨는데 길본의 아들이 살아있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명청시기였다면야 나이가 어려 환관이 되어 살아남았다 라고는 할 수 있겠지만 때는 후한말, 명청시기보다 반대파 일족에게 더 잔인했다.[7] 이문열의 삼국지를 만화한 이희재의 삼국지에서 묘사를 그대로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