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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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그리스의 대문호 니코스 카잔차키스(Νίκος Καζαντζάκης)가 1946년에 출판한 소설.
지중해 남쪽에 자리잡아 사시사철 온화한 기후의 크레타를 배경으로, 갈탄 광산을 운영하려는 주인공과 그가 고용한 일꾼 알렉시스 조르바가 함께 지내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을 토막토막 다뤘다.
원제는 Βίος και Πολιτεία του Αλέξη Ζορμπά(알렉시스 조르바스의 삶과 모험, Vios ke politia tou alexi zorba). 한국어 제목 '그리스인 조르바'는 영어 제목 Zorba the Greek을 번역한 것이다. 그리스어의 소유격(속격) 변화 때문에 Αλέξης Ζορμπάς 끝에 붙은 시그마가 사라졌는데 이게 영어로 옮겨지면서 Zorba로 옮긴 걸로 보인다.
일부 한국어 번역명은 그리스인 대신 그리스인의 한자식 표기인 '희랍인'을 쓰기도 한다.
2. 등장인물[편집]
괄호 친 부분은 그리스어 원문에 사용되는 이름들이다.
- 나(Εγώ, 에고)
- 조르바(Αλέξης Ζορμπάς, 알렉시스 조르바스)
조르바는 예오르요스 조르바스(Γεώργιoς Ζορμπάς)라는 실존 인물이 모델로 작가에게 영향을 주었고 계속해서 서로 편지를 주고 받았다. 카잔차키스는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석탄이 부족해지자 1917년 펠로포니소스에서 갈탄 광산을 잠시 운영했는데, 예오르요스 조르바스는 그가 이때 일꾼으로 고용한 사람이다. 훗날 작가는 자신의 인생에서 최고의 스승을 꼽자면 바로 조르바스를 말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한편 소설과는 달리 1919년에 조르바스와 카잔차키스는 캅카스에서 볼셰비키에 의해 처형될 위기에 처한 흑해 그리스인(폰토스 그리스인)들을 송환시키기 위해 다시 한번 행동을 같이 한다. 당시 카잔차키스는 그리스의 공공복지부 장관이었고 총리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가 해당 임무를 맡긴 것이다.
- 오르탕스 부인(Μαντάμ Ορτάνς, 마담 오르탄스)
- 소멜리나 과부(Χήρα Σουρμελίνα, 히라 수르멜리나)
- 롤라(Λόλα, 롤라)
- 마놀라카스(Μανόλακας, 마놀라카스)
- 미미코(Μιμηθός, 미미소스)
- 자하리아 신부(Πάτερ Ζαχαρίας, 파테르 자하리아스)
- 스타브리다키(Σταυριδάκης, 스타브리다키스)
3. 줄거리[편집]
화자인 '나'는 아테네의 항구 피레아스에서 친구와 헤어져 크레타로 가는 배에 오른다. 이때 조르바는 '나'에게 무조건 자기를 데려가달라고 말한다. 그렇게 크레타에서 조르바와 '나'는 갈탄 광산을 개발하기 시작한다. 조르바는 늙수그레하지만 야성미 넘치는 외모와 풍채를 지닌 인물이다. 소설은 조르바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아니 그냥 조르바의 인생 이야기라고 보는게 더 정확하다. 조르바가 들려주는 수많은 무용담에 따르면 젊은 시절에는 산투르에 꽂혀 결혼하려고 마련해둔 돈을 몽땅 털어다 산투르를 산다. 그리고 테살로니키의 레체프-에펜디(Ρετσέπ-εφέντη, 튀르키예어식으로 레제프 에펜디·Recep Efendi)라는 튀르키예인 사부에게 무작정 달려가 산투르를 배운 뒤 이리저리 떠도는 삶을 시작한다.
산투르 연주
그러다 조국 그리스를 위한다는 명목 아래 산적 패거리에 가담해 불가리아인, 튀르키예인들과의 전투를 벌인 것을 이야기한다. 지금까지 그와 함께 잔 여자들의 음모를 모아 베개 속에 넣어두던 그만의 취미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어찌보면 산전수전 다 겪은 늙은이의 인생 이야기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조르바의 이야기는 그의 평생에서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그의 자유 의지를 담는다. 가령 조르바의 구구절절한 명언 가운데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분명히 해둡시다. 나한테 윽박지르면 그때는 끝장이에요. 결국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겁니다."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지요?"
"자유라는 거지!"
"검지 하나가 왜 없느냐고요? 질그릇을 만들자면 물레를 돌려야 하잖아요? 그런데 왼손 검지가 자꾸 걸리적거리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도끼로 내리쳐 잘라 버렸어요."
“무슨 뜻이긴. 임금, 민주주의, 국민투표, 대의원 어쩌고저쩌고 해 봐야 모두 그게 그 그 소리지."
“젊은 것들은 양고기도 먹고, 돼지 고기도 먹고, 닭고기도 먹지요. 하지만 사람을 처먹지 않으면 양이 안 차는 모양입니다.”
"결혼 말인가요? 공식적으로는 한번 했지요. 비공식적으로는 천 번 아니 3천 번쯤 될 거요. 정확하게 몇 번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수탉이 장부 가지고 다니는 거 봤어요?"
"두목, 당신의 그 많은 책 쌓아놓고 불이나 싸질러 버리시구려. 그러면 알아요? 혹시 사람이 될지?"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하는가?', '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일하고 있네.', '잘해보게.'
'조르바, 자네 지금 이 순간에 뭐 하는가?',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조르바, 잘 해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
"내 조국(祖國)이라고 했어요? 당신은 책에 쓰여 있는 그 엉터리 수작을 다 믿어요? 당신이 믿어야 할 것은 바로 나 같은 사람이에요. 조국 같은 게 있는 한 인간은 짐승, 그것도 앞뒤 헤아릴 줄 모르는 짐승 신세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나는 그 모든 것을 졸업했습니다. 내게는 끝났어요. 당신은 어떻게 되어 있어요?"
"두목, 산다는 게 뭔지 알아요? 허리띠를 풀고 말썽을 만드는 게 바로 삶이지요. 산다는 게 곧 말썽이에요.
"인생이란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법이지요. 분별 있는 사람이라면 브레이크를 써요. 그러나 나는 브레이크를 버린 지 오랩니다. 나는 꽈당 부딪치는 걸 두려워하지 않거든요."
갈탄 광산을 개발하면서 조르바는 마을에 사는 늙은 여자와 놀아난다. 젊은 시절엔 여러 외국 선장들과 이래저래 염문도 뿌리던 오르탕스라는 여자인데 조르바는 그녀를 나의 부불리나라고 부르며 마음을 녹이면서도 다른 여자와 사귀다 주인공의 장난 때문에 오해한 오르탕스로 인해 결국 그녀와 결혼까지 하게 된다. 조르바의 행동은 그야말로 파격을 달리면서도 거침이 없었고 주인공 '나'는 그의 행동에서 초인의 의지를 발견한다.
4. 논란[편집]
이 소설이 출판될 당시 그리스 정교회는 대놓고 카잔차키스를 비난했다. 소설에 등장하는 제정신 아닌 수도자 자하리아가 수도원에 대고 불을 지르는 장면이나 조르바가 신을 악마라고 주장하며 난잡한 행동을 하는 것 등을 신성 모독으로 여긴 것이다.
또한 카잔차키스는 평생 노벨문학상 후보에 1951년과 1956년 2번 올랐지만 결국 수상을 하지는 못했다. 이에 대해 카잔차키스의 무신론적 성향을 원인으로 꼽기도 하지만 당시 카잔차키스와 경합을 벌인 알베르 카뮈 역시 무신론자임에도 수상을 한 걸 보면 그저 일설일 뿐 공식적인 사유는 아니다. 영국의 평론가 콜린 윌슨[4] 은 "카잔차키스가 러시아인이었다면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와 어깨를 나란히 했을 것이다."며 카잔차키스를 평가했다.
이 소설을 비롯한 많은 작품들이 문제가 되어 카잔차키스가 파문당했다고 널리 알려졌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그리스에서도 이를 잘못 아는 사람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 카잔차키스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청 소속 신자였기 때문에[5] 세계 총대주교만이 그를 파문할 수 있었는데, 세계 총대주교는 카잔차키스를 파문한 적이 없고 오히려 크레타 대주교에게 카잔차키스의 장례식 집전을 맡아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했다. 파문에 대한 정보가 와전된 것은 로마 교황청과 아테네 대주교청이 카잔차키스의 작품을 금서로 정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유재원이 번역한 그리스인 조르바 완역본(문학과 지성사)의 역자 후기에 이 부분을 설명한다.
5. 조르바의 기행과 사상[편집]
카잔차키스는 자신에게 영향을 준 인물들로 호메로스, 프리드리히 니체 그리고 앙리 베르그송[6] 을 들었다. 그가 출생했을 당시 크레타는 튀르키예(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놓여 있었고, 어린 시절에 그는 아버지인 미할리스와 함께 이라클리오 시내 한복판에서 튀르키예에 저항하다 공개 처형된 그리스인들의 시체를 목격한다.[7] 이후로 그의 인생에서 최초의 투쟁은 그의 조국 크레타를 튀르키예의 지배로부터 독립시키는 투쟁이 되었다.
두번째 투쟁은 내부의 무지, 악의, 공포 같은 모든 형이상학적 추상으로부터의 해방을 쟁취하는 것이었으며, 끝으로 세번째 투쟁은 사람들이 섬기는 모든 우상들로부터의 해방과 자유를 만끽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 세가지의 투쟁은 결국 자유와 해방으로 귀결된다. 육체적 해방, 감정적 해방 그리고 정신적 해방이 그것이다. 젊은 시절 카잔차키스는 수도자들이 은둔하는 아토스 산(山)에 올랐다 거기서 고행하는 수도자들을 보고 믿음에 대해 환멸을 느끼는 경험을 했으며 발칸전쟁 당시 참전해 마케도니아 지방에서 종군한 경험도 있다. 결국 조르바의 인생 경험은 어느 정도 카잔차키스의 그것과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위버멘쉬(超人)는 낙타처럼 기존 가치들에 대해 무조건 '예'를 하며 복종하고 따르지도, 사자처럼 '아니오'를 으르렁거리며 어떤 주인도 거부하는 자유로운 영혼도 아니다. 그저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하느님이 있거나 말거나 무한히 반복되는 단순한 놀이에서도 기쁨을 느끼며 삶을 즐기는 존재라고 보았다. 그리고 조르바는 하루 하루를 즉흥적으로 사고하며 행동한다.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하고. 이러한 대목은 카잔차키스의 사상이 니체의 영향을 매우 짙게 받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소설의 막바지에 갈탄 광산이 망하고 '나'가 상심해 있을 때 조르바는 '나'에게 음식과 술을 권하고 '나'는 그에게 춤을 가르쳐달라는 제안을 하고는 둘이서 덩실덩실 춤을 춘다. 이 클라이막스에서 '나'는 조르바의 자유 의지를 받아들이는 뉘앙스를 취한다.
6. 기타[편집]
<그리스인 조르바>는 2018년까지 네 가지 한국어 번역본이 출판되었다. 넷 다 그리스어를 번역한 것은 아니고 영어판에서 비롯된 중역이라 그리스어 지명이나 인명의 오류가 상당히 심하다. 그리스어에는 있지만 영어에는 없는 언어유희나 격변화 등으로 인해 완전히 소설의 뉘앙스를 전달하는 데에는 상당한 한계가 있다.
이 중역이 왜 문제인가하면 조르바는 영어 완역도 굉장히 늦게 된 작품이다. 2014년에야 피터 빈에 의해 영어 완역본이 나왔고 그전의 조르바 영역본은 중역본이었다. # 자연히 영문판을 바탕으로 한 과거의 한국어 역본들은 중역의 중역본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장 먼저 출간한 이윤기 역 조르바는 그리스어-프랑스어-영어-한국어의 4단계를 거친 역본이다. 이 정도면 아무리 우수한 번역자라도 원본과 거리가 까마득해질 수 밖에 없다.
각각 이윤기, 김종철, 베스트트랜스 그리고 서강대 교수 김욱동이 옮긴 것으로 이윤기 역본은 역시 중역인 장미의 이름과 비교했을 때 한결 읽기 깔끔하다는 평이 중론이고, 김종철 역본은 우리말로 옮기면서 수식어나 서술어가 좀 더 길게 추가되어 읽기는 쉬우나 분량이 조금 더 늘어났다. 2012년 5월에 더클래식에서 출판한 베스트트랜스 역본은 읽기는 간결해졌지만 영어판을 직역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더클래식 출판본은 영어판도 함께 끼워 준다. 2018년에 다시 김욱동이 번역한 번역본이 나왔다.
2018년 5월 마침내 그리스어 원전 번역본이 출판됐다. 역자는 한국외대 그리스·불가리아학과 명예교수이자 카잔차키스의 연구자 유재원으로, 출판사는 문학과 지성사이다. 본 작품이 그리스어 번역에 물꼬를 터 카잔차키스의 다른 작품들도 그리스어 직역본으로 출판할 가능성이 생겼다.
번역가 이윤기에 대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열린책들에 나온 <그리스인 조르바>의 번역 후기에 따르면, 1999년에 그는 연극 연출가 김석만 등의 일행과 함께 크레타 섬을 방문하여, 크레타인 여성 안내인의 안내 하에 카잔차키스의 무덤을 방문하였다. 다른 일행들은 한국에서 하던 것처럼 소주를 뿌리고 묵념으로 추모를 마쳤으나, 이윤기는 대문호에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해 무덤에 큰절을 했다. 그 모습에 안내인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녀가 말하길 먼 동양에서 온, 언어도 다르고 외모도 다른 사람들이 자기네 고향이 사랑하는 작가에게 지극한 경의를 표하는 모습에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고. 그리고 불과 1달 전에 불가리아에 사는 조르바의 친딸이 무덤을 참배하고 갔다고 한다. 당시 딸은 65세.
영화화도 됐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그리스와 미국 합작인 1964년작으로 안소니 퀸이 조르바 역을 맡아 열연했다. 소설의 분위기를 가장 완벽하게 살린 조르바라는 평을 받을 정도. 흥행도 대박이라 78만 3천 달러의 제작비로 2350만 달러가 넘는 수익으로 대성공을 거뒀고, OST는 반젤리스만큼이나 유명한 그리스 음악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가 작곡했으며, 20세기 폭스가 배급했다.
영화 마지막의 명장면. 조르바 역의 안소니 퀸과 배질 역의 앨런 베이츠가 추는 춤은 시르타키(Συρτάκι)인데, 동로마 제국 시절부터 유래한 그리스 전통 춤 하사피코(Χασάπικο)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이 영화의 대히트로 그리스에서는 원조 하사피코보다도 더 유명한 춤이자 춤곡이 되었다.
조선일보의 모 칼럼니스트가 2015년 그리스 경제위기와 본 작품을 관련지어 그리스의 경제 상황을 비판한 적이 있다. 조르바가 돈을 횡령하고 허세부리는 장면을 인용하며 카잔차키스는 조르바의 자유로운 영혼을 예찬하려고 한 것이겠지만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이 보면 기가 막혀 책을 집어던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한국의 어반 판타지 소설 월야환담 시리즈에서도 그리스인 조르바가 언급되며, 웨어 비스트 중에서도 특출나게 강력한 개체인 '히로익 라이칸스로프' 중 하나라고 한다. 히로익 라이칸스로프로 같이 언급되는 자들의 강함으로 미루어보면 이쪽도 만만치 않은 괴물인 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