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고리오 1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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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대-제60대]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제5대
베드로
리노
아나클레토
클레멘스 1세
에바리스토
제6대
제7대
제8대
제9대
제10대
알렉산데르 1세
식스토 1세
텔레스포로
히지노
비오 1세
제11대
제12대
제13대
제14대
제15대
아니체토
소테르
엘레우테리오
빅토르 1세
제피리노
제16대
제17대
제18대
제19대
제20대
갈리스토 1세
우르바노 1세
폰시아노
안테로
파비아노
제21대
제22대
제23대
제24대
제25대
고르넬리오
루치오 1세
스테파노 1세
식스토 2세
디오니시오
제26대
제27대
제28대
제29대
제30대
펠릭스 1세
에우티키아노
카이오
마르첼리노
마르첼로 1세
제31대
제32대
제33대
제34대
제35대
에우세비오
멜키아데
실베스테르 1세
마르코
율리오 1세
제36대
제37대
제38대
제39대
제40대
리베리오
다마소 1세
시리치오
아나스타시오 1세
인노첸시오 1세
제41대
제42대
제43대
제44대
제45대
조시모
보니파시오 1세
첼레스티노 1세
식스토 3세
레오 1세
제46대
제47대
제48대
제49대
제50대
힐라리오
심플리치오
펠릭스 3세
젤라시오 1세
아나스타시오 2세
제51대
제52대
제53대
제54대
제55대
심마코
호르미스다
요한 1세
펠릭스 4세
보니파시오 2세
제56대
제57대
제58대
제59대
제60대
요한 2세
아가피토 1세
실베리오
비질리오
펠라지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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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1-120대]  
제61대
제62대
제63대
제64대
제65대
요한 3세
베네딕토 1세
펠라지오 2세
그레고리오 1세
사비니아노
제66대
제67대
제68대
제69대
제70대
보니파시오 3세
보니파시오 4세
아데오다토 1세
보니파시오 5세
호노리오 1세
제71대
제72대
제73대
제74대
제75대
세베리노
요한 4세
테오도로 1세
마르티노 1세
에우제니오 1세
제76대
제77대
제78대
제79대
제80대
비탈리아노
아데오다토 2세
도노
아가토
레오 2세
제81대
제82대
제83대
제84대
제85대
베네딕토 2세
요한 5세
코논
세르지오 1세
요한 6세
제86대
제87대
제88대
제89대
제90대
요한 7세
시신니오
콘스탄티노
그레고리오 2세
그레고리오 3세
제91대
제92대
제93대
제94대
제95대
자카리아
스테파노 2세
바오로 1세
스테파노 3세
하드리아노 1세
제96대
제97대
제98대
제99대
제100대
레오 3세
스테파노 4세
파스칼 1세
에우제니오 2세
발렌티노
제101대
제102대
제103대
제104대
제105대
그레고리오 4세
세르지오 2세
레오 4세
베네딕토 3세
니콜라오 1세
제106대
제107대
제108대
제109대
제110대
하드리아노 2세
요한 8세
마리노 1세
하드리아노 3세
스테파노 5세
제111대
제112대
제113대
제114대
제115대
포르모소
보니파시오 6세
스테파노 6세
로마노
테오도로 2세
제116대
제117대
제118대
제119대
제120대
요한 9세
베네딕토 4세
레오 5세
세르지오 3세
아나스타시오 3세
미즉위 선출자
스테파노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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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21-180대]  
제121대
제122대
제123대
제124대
제125대
란도
요한 10세
레오 6세
스테파노 7세
요한 11세
제126대
제127대
제128대
제129대
제130대
레오 7세
스테파노 8세
마리노 2세
아가피토 2세
요한 12세
제131대
제132대
제133대
제134대
제135대
베네딕토 5세
레오 8세
요한 13세
베네딕토 6세
베네딕토 7세
제136대
제137대
제138대
제139대
제140대
요한 14세
요한 15세
그레고리오 5세
실베스테르 2세
요한 17세
제141대
제142대
제143대
제144대
제145대
요한 18세
세르지오 4세
베네딕토 8세
요한 19세
베네딕토 9세
제146대
제147대
제148대
제149대
제150대
실베스테르 3세
베네딕토 9세
그레고리오 6세
클레멘스 2세
베네딕토 9세
제151대
제152대
제153대
제154대
제155대
다마소 2세
레오 9세
빅토르 2세
스테파노 9세
니콜라오 2세
제156대
제157대
제158대
제159대
제160대
알렉산데르 2세
그레고리오 7세
빅토르 3세
우르바노 2세
파스칼 2세
제161대
제162대
제163대
제164대
제165대
젤라시오 2세
갈리스토 2세
호노리오 2세
인노첸시오 2세
첼레스티노 2세
제166대
제167대
제168대
제169대
제170대
루치오 2세
에우제니오 3세
아나스타시오 4세
하드리아노 4세
알렉산데르 3세
제171대
제172대
제173대
제174대
제175대
루치오 3세
우르바노 3세
그레고리오 8세
클레멘스 3세
첼레스티노 3세
제176대
제177대
제178대
제179대
제180대
인노첸시오 3세
호노리오 3세
그레고리오 9세
첼레스티노 4세
인노첸시오 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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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81-240대]  
제181대
제182대
제183대
제184대
제185대
알렉산데르 4세
우르바노 4세
클레멘스 4세
그레고리오 10세
인노첸시오 5세
제186대
제187대
제188대
제189대
제190대
하드리아노 5세
요한 21세
니콜라오 3세
마르티노 4세
호노리오 4세
제191대
제192대
제193대
제194대
제195대
니콜라오 4세
첼레스티노 5세
보니파시오 8세
베네딕토 11세
클레멘스 5세
제196대
제197대
제198대
제199대
제200대
요한 22세
베네딕토 12세
클레멘스 6세
인노첸시오 6세
우르바노 5세
제201대
제202대
제203대
제204대
제205대
그레고리오 11세
우르바노 6세
보니파시오 9세
인노첸시오 7세
그레고리오 12세
제206대
제207대
제208대
제209대
제210대
마르티노 5세
에우제니오 4세
니콜라오 5세
갈리스토 3세
비오 2세
제211대
제212대
제213대
제214대
제215대
바오로 2세
식스토 4세
인노첸시오 8세
알렉산데르 6세
비오 3세
제216대
제217대
제218대
제219대
제220대
율리오 2세
레오 10세
하드리아노 6세
클레멘스 7세
바오로 3세
제221대
제222대
제223대
제224대
제225대
율리오 3세
마르첼로 2세
바오로 4세
비오 4세
비오 5세
제226대
제227대
제228대
제229대
제230대
그레고리오 13세
식스토 5세
우르바노 7세
그레고리오 14세
인노첸시오 9세
제231대
제232대
제233대
제234대
제235대
클레멘스 8세
레오 11세
바오로 5세
그레고리오 15세
우르바노 8세
제236대
제237대
제238대
제239대
제240대
인노첸시오 10세
알렉산데르 7세
클레멘스 9세
클레멘스 10세
인노첸시오 1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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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41대 이후]  
제241대
제242대
제243대
제244대
제245대
알렉산데르 8세
인노첸시오 12세
클레멘스 11세
인노첸시오 13세
베네딕토 13세
제246대
제247대
제248대
제249대
제250대
클레멘스 12세
베네딕토 14세
클레멘스 13세
클레멘스 14세
비오 6세
제251대
제252대
제253대
제254대
제255대
비오 7세
레오 12세
비오 8세
그레고리오 16세
비오 9세
제256대
제257대
제258대
제259대
제260대
레오 13세
비오 10세
베네딕토 15세
비오 11세
비오 12세
제261대
제262대
제263대
제264대
제265대
요한 23세
바오로 6세
요한 바오로 1세
요한 바오로 2세
베네딕토 16세
제266대




프란치스코






파일:교황 문장.svg 가톨릭 교회의 교황
파일:254_gregorio_XVI.png
제253대 비오 8세

제254대 그레고리오 16세

제255대 복자 비오 9세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Gregory_XVI.jpg
교황명
그레고리오 16세 (Gregorius XVI)
본명
바르톨로메오 알베르토 카펠라리
(Bartolomeo Alberto Cappellari)
출생지
베네치아 공화국 벨루노
사망지
교황령 로마
생몰년도
1765년 9월 18일 ~ 1846년 6월 1일 (80세)
재위기간
1831년 2월 2일 ~ 1846년 6월 1일 (15년 119일)
장례미사
1846년 6월 6일
문장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00px-C_o_a_Gregorio_XVI.svg.png


1. 개요
2. 재위기간
3. 사망


1. 개요[편집]


가톨릭의 제254대 교황.

가톨릭 역사상 주교품을 받지 않은 채 추기경으로 서임된 마지막 교황으로[1] 까말돌리 수도회[2] 아빠스 출신으로서, 바티칸에서 관리로 일하였다가 탁월한 능력 덕택에 주교품을 받지 않고 추기경에 올랐다.


2. 재위기간[편집]


그 역시 이 시기의 교황들처럼 보수 반동주의적 태도를 견지했는데, 이는 보수주의의 물결이 불던 유럽의 열강들조차도 비판할 정도로 심각했다. 철도를 '지옥의 길'이라 부르면서 교황령 전역에서 철도 건설을 금했으며, 이 무렵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이탈리아 통일 운동을 오스트리아 제국의 힘을 빌려 강하게 진압했다. 언론의 자유와 정교분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무자비하게 단속당했다.

교황령 외부에서도 그는 보수적인 태도를 보였다. 1832년에 러시아 제국에 맞서 봉기한 폴란드인[3]들이 가혹하게 진압되었지만, 교황은 가톨릭 신자들을 지지하기는커녕 반란을 규탄하는 칙서를 발표했다. 당시는 프랑스의 자유주의자 사제들을 중심으로 "교회는 압제자가 아닌 대중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퍼지고 있었는데, 그레고리오 16세와 교황령은 이를 철저하게 비판했다.

비록 그레고리오 16세가 보수적이고 반동적인 면모로 교황령의 진보를 막았지만, 고전적인 교황으로서의 역할은 충실했다. 노예 무역을 맹비난했으며[4], 해외선교에 관심을 보여 교황청을 중심으로 한 선교사업을 재조직했고, 전 세계에 걸쳐 70여 개의 새로운 교구를 건설했다. 한국 가톨릭도 그 은혜를 받은 곳 중 하나로, 1831년 9월 9일 조선대목구를 설정하고 파리 외방전교회의 브뤼기에르 주교를 초대 조선대목구장으로 임명했으며[5], 캐나다미국에 각각 4개와 10개의 교구를 설정했다. 사실 선대 교황인 비오 6세 때, 조선에 가톨릭이 자생했다는 기적같은 소식이 교황청에 전해졌지만 당시 비오 6세는 프랑스에 유배된 상태라 무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망했기 때문에, 그 역할을 그레고리오 16세가 맡았던 것. 비오 6세는 죽기 전 당시 추기경이던 바르톨로메오 추기경(= 그레고리오 16세)에게 비상금을 털어서 그 역할을 맡겼다고 한다. 이와 함께 100여년 뒤 조선인 성인이 될 정하상 바오로가 목숨을 걸고 신부 파견을 요청하는 청원문(편지)을 써서 로마 교황청까지 전달한 것도 조선대목구를 설정하는데에 큰 영향을 미쳤다. 1825년에 쓰여졌으나 1827년에야 교황청으로 어렵사리 전해진 이 편지를 읽은 그레고리오 16세는 "동방에 주님의 기적이 일어났구나"라고 말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진다.

파리의 성모로 인해 생겨난 통칭 기적의 패를 자기 책상에 있는 십자가 아래에 뒀다고 전해진다.

1836년에는 바티칸 미술관 내에 에트루리아 미술관과 이집트 미술관을 설립했으며,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에도 그리스도교 미술관을 세워 많은 예술품을 수집했다.


3. 사망[편집]



성 베드로 대성당에 있는 그레고리오 16세의 무덤.
석관 좌우에 장식된 조각상은 각각 '지식'과 '신중함'을 의인화했다.
안면단독(丹毒)이 발병한 교황은 1846년 6월 1일 80세를 일기로 사망했으며, 유해는 성 베드로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1] 이후, 요한 23세는 "모든 직급의 추기경의 서임은 주교의 서품을 받은 다음 이루어져야 한다"고 규정을 바꾸었다.[2] 베네딕토회와 같은 연합회 소속인 수도회. 로무알도 성인이 1012년 설립한 최초의 은수 수도회로, 1450년부터 천연재료로 약품, 화장품, 와인, 식료품 등을 만들어 보급하는 사도직을 했다. 2016년 한국에 진출했으며, 명동성당 앞 가톨릭회관 2층에 전통 약방을 열었다.#[3] 폴란드폴란드 왕국 시절부터 전통적으로 가톨릭 국가였다.[4] 교황들은 노예 무역이 시작된 이래 지속적으로 노예 무역을 비판해 왔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자녀는 다 평등하니까.[5] 하지만 브뤼기에르 주교는 조선에 입국하지는 못한 채 만주에서 사망해, 앵베르 주교가 제2대 조선대목구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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