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의 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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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세계 각국에서 군주국가원수를 부르는 칭호 일람.

2. 한국[편집]



  • 가(加)
옛 고구려와 부여의 지배자들의 호칭. 가야, 신라의 간지, 한기. 백제 어라하(於羅瑕)의 하(瑕)와 관련되어 있다.

발해의 군주 칭호.

초기 신라가야의 군주 칭호. 간(칸)+지(존칭어미)로 추정된다. 그러니까 간지에서 간 자는 거서간, 마립간의 간과 같은 의미. 지증왕 대 건립된 영일 냉수리 신라비에 따르면 6부 중 본피부와 사피부 족장과 지방 촌주의 관등이 간지(干支)로 나오고, 일본서기에 따르면 신라의 인질 미사흔 파진찬을 미질기지 파진간지라 기록하고 있어, 왕보다는 낮은 군주의 칭호로 추정된다. 간기, 한기 등 비슷한 음의 다른 표기가 많다.

신라의 군주 칭호 중 하나. 진한말로 임금, 혹은 존귀한 사람을 칭하는 말이라고 한다. 삼국사기에서는 박혁거세 전용, 삼국유사에서는 박혁거세뿐만 아니라 2대 남해 차차웅을 남해거서간이라고도 한다.

백제의 군주 칭호. 원래 발음을 재구하려는 연구에서는 원래 발음을 근기시, 곤기시 등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구려의 개차, 고대 일본의 키시(吉師)[1]와 같은 계통의 단어일 가능성이 높으며 중세 한국어의 '긔자(王)'와 연관성이 주목된다.[2]

  • 기하
발해의 군주 칭호.

나라+에서 유래한 순우리말.

고구려의 군주 칭호. 다만 앞의 '노려'가 유리명왕의 '유리(世)'의 다른 표기라는 견해가 있다. 이에 따르면 군주의 칭호는 '해'가 된다.

조선갑오개혁부터 대한제국 수립까지, 기존의 국왕 칭호를 폐지하고 새로 사용한 군주 칭호.

백제의 군주 칭호. 4세기 중반 근초고왕 이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일부에서는 이 대왕이라는 칭호를 고이왕 때부터 사용했을 거라고 추정하나 실질적으로는 그보다 후대인 근초고왕 때부터 사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보통 위대한 왕들에게 주는 칭호인데 백제에서는 고구려나 신라의 태왕처럼 이 대왕이라는 명칭을 왕에게 그대로 사용했다.
고구려의 왕을 성상, 신라의 왕들이 진흥왕 이후 스스로를 짐으로 칭한 것처럼 백제 역시 자국의 왕을 대왕폐하라고 칭했다.

신라의 군주 칭호 중 하나. 《삼국사기눌지 마립간의 기록에 남아있는 각주에 따르면 "마립(麻立)은 신라 방언으로 말뚝을 일컫는 말이며, 말뚝은 협조(諴操; 자리를 정하여 둠)를 뜻하는데 이것은 위계(位階)에 따라 계급을 정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왕의 말뚝이 기둥을 뜻하고 신하의 말뚝은 그 아래를 지탱하는 것을 나타내며 이때문에 왕의 명칭으로 마립간이라고 사용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마리(머리) + 간()이라는 설도 있다.

신라의 군주 칭호 중 하나. 자세한 내용은 법흥왕 항목 참조.

星主. 중세 탐라국의 군주가 사용한 칭호이다. 성주(城主)가 아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한반도를 정리하자 제주도의 탐라국은 조공을 바치는 제후국으로 복속되었으나 이때는 왕 칭호를 썼고, 이후 고려가 들어서면서 기존의 고씨 탐라국 왕가는 성주(星主), 왕자(王子)라는 칭호를 세습하였다. 이 칭호는 조선 태종 시대에 제주도를 직접 지배하게 되면서 폐지되었다.

臣智. 원삼국시대삼한에 있는 각 나라별 지도자의 호칭. 나라의 크기에 따라 각각 신지(臣智)·험측(險側)·번예(樊濊)·살해(殺奚)·견지(遣支)·읍차(邑借)이라 불리었다고 한다.

백제의 군주 칭호. 현대 사극에서 등장하기도 한다. 물론 첫 등장은 영화 황산벌.

일본서기에 나오는 고구려의 군주 칭호. 왕의 정부인(正夫人)은 마카리[3] 오리쿠쿠(まかりおりくく)라 한다.

신라의 군주 칭호 중 하나. 임금의 기원으로 추측된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등장하는 김대문의 이야기에 따르면 이사금은 '잇금'의 방언으로 '이질금(尼叱今)'이나 '치질금(齒叱今)'이라고도 불리며[4] 이 이름이 남해 차차웅석탈해를 후사로 삼으라 유언을 남기고 사망하자 탈해가 사양하면서 이가 많은 사람이 현명하다며 떡를 깨물어 잇자국의 수를 세어 '잇금'이 많은 남해의 아들 유리 이사금에게 왕을 양보한 데서 유래했다 한다. 일각에서는 단군왕검의 '왕검' 또한 이 단어와 관련이 있지 않나 하는 설도 있다.

이사금 혹은 왕검에서 유래한 순우리말.

고조선의 군주 칭호. 왕(王)을 임(壬)의 오기로 보고, 임검←임금을 뜻한다고 보기도 한다.

이건 남해 차차웅 전용. 신라의 군주 칭호 중 하나이며 자충(慈充)이라고도 한다. 《삼국사기》에서 김대문의 글을 인용하며 "차차웅은 무당을 부르는 신라의 방언"이라고 하며 무당이 귀신을 모시고 제사를 올리기 때문에 사람들이 무당을 존경해 어른들을 차차웅이라고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유래 때문에 오늘날 '스승'이라는 말의 기원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고구려와 신라에서 사용된 칭호, 다만 문헌상으로 멸실되어 있다 근대에 들어 다시 발견된 칭호이다. 군주의 권위가 황제의 권위에 준하게 되어 등장한 칭호로 보인다. 4세기부터 7세기까지 고구려 중기부터 발견된다. 비슷한 시기 5호 16국에서 사용된 황제격 칭호인 천왕호의 등장 배경에서 연관관계를 찾기도 한다. 후대의 조선이나 주나라 등에서도 태왕이라는 용어가 존재하여 헷갈리게 하지만 이는 상왕의 다른 말이거나 시호에 해당하기 때문에 고구려나 신라에서 사용된 태왕과는 확연히 다른 용어이다.

주로 가야성읍국가들이 사용한 칭호. 한자는 여러 표기가 있지만 旱岐가 많이 보인다. 위에 소개된 간지와 음운상 유사해 동일한 어원으로 추정된다. 사비회의 관련 기록을 보면 가야 안에서도 위세가 강했던 고령 반파국, 함안 안라국 둘만이 따로 (王) 칭호를 사용하는 모습을 봐서는 한기는 왕보다는 낮은 위상의 칭호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중국[편집]


진시황제가 전국시대의 중국을 통일한 후, 개나소나 써서 값어치가 떨어진 왕보다 격이 높은 칭호를 쓰기 위해 전설상의 삼황오제에서 따와서 만든 칭호이다.[5] 중국 외 베트남이나 대한제국도 한때 이 칭호를 사용했다.

상나라 시기 군주의 칭호. 하늘의 신을 나타내는데 사용되는 말이기도 해서 종교적 의미가 강한 칭호다.

춘추시대까지는 주나라 군주의 전용 칭호로 아무리 강한 제후국의 군주라도 감히 왕을 자칭할 수 없었으나, 전국시대에는 개나 소나 왕을 자칭하면서 가치가 폭락했다. 전한 시기 부터는 제후국 군주나 그에 준하는 귀족의 칭호가 된다 주로 제위에서 밀려난 황제의 아들들이나 많은 공을 세운 귀족 신하들이 왕으로 제후국 군주가 되었다.

고대 중국에서 제후국들의 군주들을 지칭하던 이름. 공, 후, 백, 자, 남의 주 활동시기는 주나라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봉건시대부터 춘추시대까지로 이때 실권을 지니고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단, 춘추오패에서 볼 수 있듯이 강남지방의 초나라, 오나라, 월나라의 군주들은 스스로를 왕이라고 불렀다. 이는 강남지방은 황허강 유역과는 달리 독자적으로 문명이 발생하였다가 중원문명에 편입되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관료제가 정착되고 봉건제가 쇠퇴하면서 힘도 잃어버리게 되지만 칭호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삼국시대 등의 후대에서도 공을 세우거나 할 때 이러한 작위를 받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칭호들은 서양 봉건시대 군주들의 칭호를 번역할 때에도 사용되었다. (오등작 참고.)
실질적으로 국(國)의 군주는 공후(公侯) 정도이며, 백(伯)과 자(子)와 남(男)은 그 아래 하위 귀족(경가卿家)의 칭호였다. 다만, 춘추시대에는 백, 자, 남 역시 명목상으로만 공후(公侯)의 하위일 뿐. 상당한 영지와 독자적인 군사력을 갖추고 있어서, 백(伯)과 자(子) 정도 되면 경우에 따라서는 군주에 거의 필적하거나 능가하는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항우가 초왕 미심에게 올린 칭호. 이로서 형식상 다른 왕들보다 한 단계 높은 제(帝)로서 우대하였으나, 실권은 없는 단순한 칭호에 불과했다.

항우의 별명이자 칭호. 춘추오패의 패(覇)와 전국9왕의 왕(王)에서 따왔다.

일부 유목민족 계열 왕조에서 초기에 사용했다. 천황이 아니다

기본적인 칭호인 왕, 황제 외에도 군주를 칭하던 또 다른 호칭. 주나라 시절 왕이라는 칭호를 쓰던 때부터 쓰였으며 후에 청나라까지 쓰인, 그야말로 중국 군주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칭호다. 단, 부르는 이름(호칭)이 아니라 가리키는 이름(지칭).

  • (ᡥᠠᠨ)[6]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 황제의 칭호로 몽골의 칸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청나라 황제들은 중국어 황제 칭호와 함께 만주어 한 칭호도 함께 제정하여 유지하였다.


3.1. 티베트[편집]


  • 찬포: 토번 제국 황제의 칭호, 한자로는 찬보(贊普)로 음역되었다.





4. 일본[편집]


  • 오키미(大君, 大王)
690년 덴무 덴노 이전의 호칭.

690년 덴무 덴노부터 쓰인 호칭. 당 고종의 "천황대제(天皇大帝)"란 표현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원래 '스메라미코토'라 읽었는데 현재는 '덴노'로 읽는다.

천황의 별칭. 아래에 나온 스메라미코토에서 유래.

전직 천황이 후계자에게 황위를 물려준 후 쓰는 직함. 그러나 대부분의 상황은 일부러 물러난 후 실권을 계속 잡고있는 경우가 많았다.

옛날에는 천황을 스메라미코토라고 읽었다.

  • 왜왕(倭王) : 야마토 정권 초기의 군주들이 중국의 책봉을 받을 때 사용한 대외용 칭호.





4.1. 류큐[편집]


  • 중산왕(中山王) : 류큐 왕국 국왕의 칭호. 삼산시대 류큐의 세 왕국을 통일한 것이 중산(中山)이었기 때문에 중산왕이라는 호칭이 이어지게 되었다.
  • 우슈가나시(御主人加那志), 수이틴가나시(首里天加那志) : 오키나와어로 임금, 왕을 뜻하는 단어다.



5. 인도[편집]


인도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도 인도 문화의 영향이 클 적에 쓰곤 했다.

위의 라자보다는 높은 의미에 대왕급으로 쓰이던 칭호다.

굽타 왕조 시절부터 사용하였으며, 왕의 신격화를 위해 화신 개념이 있는 힌두교가 정립되는 효과를 낳았다.

굽타 왕조 시절부터 사용하였으며, 왕의 신격화를 위해 화신 개념이 있는 힌두교가 정립되는 효과를 낳았다.

인도출신 3종교에서 황제를 뜻하는 단어

바퀴(차크라)를 굴리는(바르트) 황제라는 뜻이다. 인도에는 이를 어원으로 하는 '차크라보르티' 성씨도 있다.


6. 캄보디아[편집]




7. 서양[편집]


오늘날에는 가톨릭이라는 종교의 최고 수장으로서의 이미지가 가장 강하지만, 가톨릭의 최고 수장인 동시에 오늘날 바티칸 시국이라는 나라의 군주이며 예전에는 이탈리아의 주요 도시국가 가운데 하나인 교황령의 군주였다.

흔히 왕자로 번역되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용법이 존재하며 그중에는 군주의 칭호로서 쓰는 것도 있다.[7] 기원은 고대 로마의 프린켑스. 아우구스투스제1시민이라는 의미로 붙였던 칭호다. 중국의 공(公)과 용법이 유사한 면이 있다. 대표적으로 모나코 같은 국가의 군주는 Prince라고 불리며, 영국 왕위계승자에게 내정되는 작위 중 대표격인 웨일스 공(Prince of Wales) 역시 원래는 웨일스의 독립적인 군주를 가리키는 칭호였다. 독일에서는 Fürst라고 표현하는데, 이 지역은 여러 공작이나 변경백 등 강력한 영역제후들이 존재하였고 그 위에 신성로마제국 황제까지 있었던 바, 독립적 군주국을 형성하기보다는 중소 제후국을 형성하였다. 중세 러시아쪽 역사를 기록한 영어사료에서도 prince of 뭐시기 뭐시기 하는 사람들이 나오면 왕자가 아니라 군주의 칭호로 보아야한다. (러시아어로 끄냐즈 Князь)

왕 뿐만 아니라 영주를 뜻하는 작은 의미의 군주. 군주임과 동시에 가장 큰 영주를 겸임하는 경우가 많았다.[8] 보통 "경"이라고 자주 번역되는데 똑같이 "경"이라고 번역되는 써Sir(기사계급의 칭호)와 뉘앙스가 전혀 다르므로 구별해야 한다.[9] 이라 번역하는 경우가 있다.

  • (King, 영어)
동양의 왕과 대응되는 군주의 칭호. 독일어로는 쾨니히König, 라틴어로는 렉스Rex 어원은 고대영어로 족장을 의미하는 키닝(Cyning) 이다.

군 최고 통수권자라는 뜻. 직역하자면 원로원의 지시 없이도 군대를 통수할수 있는 통수권인 임페리움을 가진 사람라는 뜻으로, 원래는 개선장군에게 달아주는 칭호였지만, 아우구스투스가 전 로마군의 통수권을 틀어쥐고 종신 임페리움을 독점하면서 자신의 칭호로 사용한 이래 의미가 점차 변모하여 동아시아의 황제와 대응되는 군주의 칭호가 되었다. 영어로는 엠페러emperor, 프랑스어로는 앙페르emperor. 아우구스투스가 민정적인 의미에서의 황제를 뜻한다면 임페라토르는 주로 군사황제에게 사용한다.

  • 도제 (Doge, 이탈리아어)
베네치아 공화국제노바 공화국을 비롯해 르네상스 시대 여러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국가원수들이 사용하던 칭호. 라틴어의 Dux(사령관)에서 유래되었다. 베니토 무솔리니의 두체(Duce). 영어Duke도 같은 유래를 지니고 있다. 어원은 동로마 제국의 명목상 속주였던 베네치아의 통령이 콘스탄티노폴리스의 궁정으로부터 형식상으로나마 작위를 제수받는 형태였기 때문. Doge라는 말을 직역하면 '총독' 이 되므로 20세기까지 대한민국 출판물에서는 대부분 총독이라고 번역했는데, 한 나라의 국가원수를 총독이라고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10] 따라서 21세기 들어서는 대부분 통령으로 번역하고 있다. 간혹 총통이라고 번역하는 경우도 있다.

르네상스 시기 피렌체 공화국 수석행정관의 칭호. 직역하면 '정의의 기수'라는 의미다.

로마 제국에서 황제를 의미하는 군주의 칭호. 로마의 초대 황제인 옥타비아누스가 처음으로 받은 칭호로, 아우구스투스는 '존엄한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군인황제 시대 이후에는 정제를 아우구스투스, 부제를 카이사르(Caesar)로 칭했다. 그리스어로는 세바스토스에 대응하며 동로마 제국 중기에는 황제 바로 다음 가는 세바스토크라토르라는 관직이 생기기도 하였다. 흔히 헤라클리우스 황제 이후 황제의 칭호가 바실레우스로 바뀌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동서로마 분열 이전부터 그리스어권인 제국 동부에서는 황제를 가리킬 때 바실레우스라는 용어를 더 많이 썼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Caesar(라틴어), Cesare(이탈리아어) 역시 마찬가지로 황제를 의미한다. 유래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사두정치 시기가 로마 제국을 둘로 나누어 각각 정제(正帝)인 아우구스투스와 그를 보조하는 재상이자 후계자인 부제(副帝) 카이사르를 둔 것(사두정치(테트라르히아 Τετραρχία)). 동로마 제국에서는 부제(황제 다음가는 서열의 최고위 직함으로 주로 황제의 사위나 동생과 같은 매우 가까운 친족에게 부여되는 칭호로 사용되었다. 그리스식으로는 Καισάρας (케사라스)이다. 그러나 12세기 콤니노스 왕조 시기 세바스토크라토르니 데포스테스니 옥상옥 하는 관직이 새로 만들어지면서[11] 서열이 떨어졌다. 이를 훗날 오스만 제국이 동로마 제국을 계승한다는 의미로 가져와서 스스로 Kayser-i-Rum(로마인의 황제)라는 칭호를 붙이기도 했다.

독일어권에서 황제를 의미하는 군주의 칭호. 어원은 위의 카이사르이다. 신성 로마 제국 시대부터 사용되었다.

  • 차르 (царь, 러시아어)
불가리아러시아 군주[12]들이 사용하던 칭호. 이쪽은 동로마 제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서기 913년에 불가리아 제국의 칸 시메온 1세가 동로마 제국의 황제 로마노스 1세로부터 황제 직위를 수여받으면서 자신이 대등하다는 의미에서 처음 사용하였다. 불가리아 제국 멸망 후에는 세르비아의 군주들이 사용하였다. 그 이후에는 러시아의 시초가 되는 모스크바 대공국에서 멸망한 동로마 제국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의 조카딸을 이반 3세가 아내로 맞아들이면서 지칭한 것인데, 역시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

그리스어. 그리스어로 '황제'. 본래는 미노아문명시절에 섬 중앙의 대왕(Wanax)를 중심으로 분봉된 지방 귀족들을 가리키는 칭호였지만(즉 아가멤논이 와낙스, 그 외 오디세우스, 메넬라오스 등은 바실레우스), 동방의 수직적인 왕권이 발달하지 않은 그리스인들이 (국내용으로는 쓰일 일이 없으므로) 페르시아전제 군주를 지칭한 말이다. (단어의) 신분 상승 개이득이것이 셀레우코스 제국에서 군주의 칭호로 받아들여진 것이 동로마 제국에서 라틴어의 아우구스투스에 대응하는 황제 칭호로 이어진 것. 그리스 독립전쟁 이후 독립한 그리스 왕국에서도 이 칭호를 사용했지만, 의미는 동로마 시절보다는 절하된 그냥 '임금'이란 뜻의 보통명사로 쓰였으며 그나마도 카사레부사 그리스어가 폐지된 이후로는 민중그리스어(디모티키)로 바실라스(Βασίας)라고 쓰이게 되어 오늘날에 이른다.

그리스어. 영어로는 Despot이다. 요즘에는 '독재자'라는 뉘앙스로 번역되지만, 전근대에는 '군주'라는 의미로 통용되었다. 동로마 제국 중기 콤니노스 왕조 시대에 인근의 군주들이 이러한 칭호들을 가진 것으로 제국으로부터 인정받았다. 이는 원래 황제 다음 서열이었던 세바스토크라토르보다 더 높은 지위로, 굳이 번역할 말을 찾자면 '(작위로서의) 왕'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동로마 제국 말기에는 황태자 이외의 황자들에게 영지를 하사해주며 붙이는 칭호로도 사용되었다. 이 경우 '친왕' 정도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며, 황자가 영지로 받았다가 점차 동로마의 신하국으로 발전한 모레아 전제군주국(Despotate of Morea)을 대표적인 예시로 들 수 있다[13] 이 despotate는 한국어 번역이 정립되어 있지 않아 '전제군주국', '공국', '친왕국' 등으로 번역이 갈린다. 나무위키에서는 친왕, 친왕국으로 번역하는 것을 권장한다.

고대 아일랜드 지방을 정복하던 군주에게 내려진 절대적 칭호로써 이보다 급이 낮은 왕들에게 권위를 누렸던 이들을 부르던 말이다.

고대 그리스 미케네 문명시대에 쓰여진 군주 칭호로 구체적인 자료들은 없지만 일반 왕(바실레우스)보다는 높은 칭호로 쓰였을것으로 보고있다. 즉 왕중왕과 비슷한 의미. 초기에는 wanax라고 발음했었다.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아가멤논이 바로 아낙스였다.

  • 메페 (Mepe, მეფე, 조지아어)
조지아 에서 쓰인 왕의 칭호로 "왕중왕"은 메페-메페타로 불리운다.


영국 왕국에서의 섭정 칭호.

유럽의 Prince/Grand Duke/Grand Prince/Archduke/Князь 칭호를 한자문화권에서 번역한 번역어. 현재도 룩셈부르크는 대공이 국가원수다.

  • (이탈리아어)



8. 서아시아/아프리카[편집]



  • 임티Imty
하(下)이집트[14]의 왕의 칭호.

  • 네수Nsw
상(上)이집트[15]의 왕의 칭호.

기원은 고대 페르시아어의 크샤트라파바. 뒤에 나오는 술탄과 동급.

샤의 파워업판. 왕중왕이라는 의미이므로 황제와 동급으로 볼 수 있다. 외래 왕조인 일 한국을 포함한 팔라비 왕조까지의 페르시아 모든 왕조가 이 표현을 사용했으며, 사파비 왕조와 카자르 왕조에서는 페르시아의 황제가 이슬람 시아파의 우두머리를 겸했기 때문에, 질룰라Zill'ul'lah 라는 호칭이 황제의 휘(諱) 앞에 붙기도 했다.
파디샤는 모든 왕들의 주인 'pad-e shah'에서 온 칭호로 오스만 제국무굴 제국의 군주들이 이 칭호를 택했다.

고대 수메르문명에서 쓰이던 대왕의 칭호.

  • 술탄(오스만 제국[16] 등)
종교적 지도자를 일컫는 칭호인 칼리파와는 달리 정치적 지도자의 칭호로서 쓰인다. 가즈니 술탄이 압바시야 칼리프에게 받은게 처음이다. 오스만 제국이 가장 유명하고, 그 외에 투르크계 국가(셀축왕조와 룸셀축왕조 등)에서도 술탄 칭호를 사용했다. 보통 왕에 대응되는 단어라고 생각하면 된다. 현재도 오만, 말레이시아, 브루나이에서 군주의 칭호로 쓰인다.

술탄의 파워업판. 의미는 왕중왕으로, 샤안샤와 동급. 메흐메트 2세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키고 이듬해인 1454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슬람의 종교적 지도자. 서양의 교황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정통 칼리프 시대에는 칼리파트 안 나비, 즉, 예언자의 대리인이라 불리었다. 하지만 움마미야조와 압바시야조를 거치면서 칼리파트 안 알라, 즉, 신의 대리인으로 불리게 되었다. 사실 이슬람의 종교적 지도자=아랍 세계의 정통 지도자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굳이 뉘앙스를 따지자면 황제와도 비슷한 뉘앙스가 있다. 본래 술탄도 오직 칼리파부터 권력이 부여된다. 이슬람 제국을 이끌던 무함마드가 죽고 처음으로 쓰였으며, 이때부터 정통 칼리파 시대가 열린다. 그러나 이후 이슬람 제국을 이끌던 아바스 왕조가 쇠퇴하면서 칼리파는 괴뢰화되었고, 오스만 제국의 강성과 함께 16세기 초 아바스 왕조의 마지막 칼리파에게 양위를 받으면서 칼리파위 역시 술탄이 겸하게 되었고[17], 사실상 그 가치가 사라져버렸다. 다만 오스만 제국 말기에는 타 국가, 특히 유럽 열강의 위협에 시달리거나 지배를 받는 무슬림들을 선동하기 위해 적극 사용했다. 물론 반응은 시큰둥 했지만. 칼리파는 군주위 기능의 측면에서 이름이 두 개로 나뉘는데, 정치적인 이름은 아미르 알 무미닌(무슬림의 사령관), 종교적인 이름은 이맘(예배 대표자)이다.

사령관이라는 뜻이다. 유력자나 족장을 의미하는 말. UAE쿠웨이트, 카타르 등의 군주를 이렇게 부른다. 한국에서는 왕으로 번역할 때도 있지만 토후수장으로 번역하는 경우도 있다.

솔로몬 대왕시대인 기원전 10세기때부터 이어지는 세계 최장수 왕조라고 주장했던 에티오피아의 솔로몬 왕조의 칭호. 왕중왕이란 의미. 상징은 예수를 나타내는 왕관을 쓴 사자로, '유다의 사자' 라고 불린다. 솔로몬 왕조는 3세기에 재위한 엘라 아메다 1세부터 1975년 마지막 황제인 하일레 셀라시에 1세까지 1700년에, 만세일계를 주장하고 있지만 후대에 왕조의 정통성을 높이기 위해 창작한 계보이다.
에티오피아 제후의 호칭. 왕에 대응된다.

에티오피아 제후의 호칭. 서양의 Prince와 대응된다.

아랍어로 '왕'을 의미한다. 체스에서 킹(King)의 아랍어명도 말리크. 아랍권 군주 대부분이 사용하는 '아미르'와는 달리 정통성 있고 뿌리 깊은 왕조가 주로 사용한다. 현재 아랍권에서 '말리크'를 사용하는 나라는 요르단사우디아라비아모로코인데 요르단과 모로코 왕조는 선지자 무함마드의 혈통이고 사우디아라비아 왕조는 이슬람 성지인 메디나와 메카를 통치하고 있다.[18] 그리고 바레인 군주도 원래는 아미르 칭호를 쓰다가 2002년에 칭호를 말리크로 격상시켜 현재는 네 나라가 말리크 칭호를 사용한다.

세네갈과 인근국가에 뿌리내린 세레르인들의 종교적 지도자를 뜻하는 칭호다.






9. 중앙아시아[편집]


흉노의 군주가 쓰던 칭호. 선우계승권을 가진 후계자는 좌도기왕, 선우의 비는 연지라고 불린다. 이 칭호도 후에 중국에서의 왕처럼 가치가 떨어져서 안 쓰게 된다.

유목 세계에서 선우 이후로 광범위하게 쓰이던 군주의 칭호. 칭기즈 칸을 비롯한 몽골의 군주들이 쓰던 칭호로 유명하며, 오스만 제국에서도 사용되었다.

칸+칸, 즉 왕중왕이란 의미로 황제와 동급으로 볼 수 있다.

가한(可汗)은 카안의 음차이다. 주로 돌궐이 사용했다. 유래는 칸과 같다.

가한의 업그레이드 판. 나라가 최전성기를 구가하며 돌궐, 거란, 말갈을 비롯한 북방민족들을 토벌하자 돌궐이 북방세계의 맹주라는 의미로 당시 당의 군주였던 당태종에게 바쳤다.


흉노 황후의 칭호


10. 아메리카[편집]


아즈텍 제국 황제의 칭호
수우 족(다코타/라코타/나코타 제부족) 추장단 중 수석추장의 칭호
잉카 제국 황제의 칭호

11. 기타 칭호[편집]



12. 가공의 군주 칭호[편집]





[1] 국내에 흔히 왕인으로 알려진 와니-키시, 아직(기)으로 알려진 아지-키시가 있다.[2] 백제의 언어와 문학, 주류성[3] 일본서기에서 신라의 상신(上臣)을 마카리다로(マカリダロ)라 훈하고 있다. 일본서기에서 상신이라 칭한 이는 이질부례지간기(伊叱夫禮智干岐 イシブレチカンキ ; 이시부레치칸키) 이사부다.[4] '질(叱)'이 사이시옷으로 발음.[5] 그런데 웃긴건 정작 진나라 시대 이후의 군웅할거 시대들(삼국시대(중국)이라거나, 오호십육국이라거나, 오대십국 등) 때는 "황제"라는 명칭이 아무나 다 쓰는게 되어버렸다는거다(...). 그래도 황제들의 시대에서 중국을 다시 통일한 국가들인 서진, , 은 황제를 초월하는 군주의 칭호를 새로이 만들지는 않았다.[6] 아마도 글자가 깨져서 엑박처럼 보이는 위키러들이 꽤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만주어 문서를 참고바람.[7] 프린스의 다양한 용법은 프린스, 대공, 공국 등의 문서 참고.[8] 성경 등에서 '신'을 의미하는 단어로도 쓰인다.[9] 다아시 경 시리즈 같은 경우에는 다아시 경은 진짜 Lord Darcy이며, 이 번역본에서는 Sir는 '서'라고 구별해서 번역했다.[10] 총독이라고 하기에는, 이미 한국어에서의 용례가 조선 총독처럼 식민지의 최고행정관을 가리키거나, 로마 제국의 속주 총독처럼 지방행정관을 가리키는 말로 정착했기 때문.[11] 알렉시오스 1세의 국내 유력귀족과의 혼인동맹과 족벌주의화에 따른 조치[12] 러시아의 경우 표트르 1세가 1721년부터 '임페라토르' 를 정식 칭호로 채택했고, 차르는 관습적으로 계속 쓰였다.[13] 다른 예시로는 4차 십자군 이후에 수립된 동로마의 후계 국가 중 하나인 에페이로스 전제군주국이 있는데, 에페이로스는 처음부터 영지를 분봉받아 세워진 모레아와는 달리 초기에는 로마 제국이라 칭했다. 그러나 니케아 제국콘스탄티노폴리스를 탈환하여 동로마 제국을 재건하자 칭제를 계속한 명분을 상실하고 국력에서도 열세에 놓이자, 제위를 포기하고 데스포테스 작위를 하사받았다.[14] 나일강 삼각주 일대를 일컫는다.[15] 나일강의 상류이자 누비아와의 접경지 일대를 일컫는다.[16] 바로 위에서 '오스만 제국의 군주들이 파디샤를 택했다' 라고 되어있는데 또 오스만이 언급되는 것은, 1453년 이전까지 술탄을 칭하다가 로마 제국을 정복하고 파디샤를 정식 칭호로 채택했지만 여전히 술탄이라는 이름도 쓰였기 때문. 사실 파디샤. 즉 황제란 로마 황제라는 뜻인데, 옛 동로마 제국이나 그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던 지방에서는 로마라는 이름이 통했지만 이슬람 세계에서는 술탄이라는 이슬람식 칭호를 사용하는 것이 더 잘 먹혔다. 이 밖에 튀르크계 군주들의 전통적인 칭호인 한(Han)도 병용했다.[17] 사실 깊이 들어가자면, 3대 군주인 무라트 1세를 시작으로 오스만 제국의 군주들은 계속해서 칼리프를 칭했다. 아바스 왕조가 멸망한 이후 칼리프가 이집트 맘루크 왕조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면서 권위가 점점 약화되자, 힘이 조금 센 군주라면 아무나 칭할 수 있는 것 정도로 여겨지기 시작했기 때문. 다만 셀림 1세가 이집트를 정복하여 칼리프와 공식적으로 담판을 벌이기 전까지, 오스만 술탄(또는 황제)의 칼리프 선언은 그리 넓게 받아들여지지 못했다.[18] 그래서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왕은 '두 성지의 수호자'라고도 불린다. 참고로 이슬람의 3대 성지는 메카, 메디나, 예루살렘(아랍어명으로는 쿠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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