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도(도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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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Military Sword/軍刀

1. 개요
2. 양상
3. 군도 검술
4. 전세계적인 영향과 현대의 군도
5. 관련 항목


1. 개요[편집]


근대 이후의 군대에서 사용하는 도검.

군대에서 도검을 사용한 것은 고대부터이므로, <군대에서 사용하는 칼>이라는 개념이라면 매우 오래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군도라는 개념은 18세기 이후의 유럽 군대에서 시작되었다. 17세기까지는 달리 제식 도검이라든가 동일한 규격으로 생산해서 전군을 똑같은 무기로 무장시킨다는 개념이 없었으며, 군복이나 도검, 창이나 폴암 등의 무기에 이르기까지 알아서 장만[1] 해오는 방식이었다. 장교들의 경우 특별히 화려한 검을 장만하거나 부대에 따라 디자인을 맞추는 경우가 있었으나 제식이나 통일된 규격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계급을 상징한다기보다는 개인의 자랑에 더 가까웠다.

30년 전쟁에서 큰 활약을 펼친 17세기 스웨덴의 왕인 "북방의 사자" 구스타브 2세 아돌프 대왕은 근대 군대의 효시가 될 군복을 최초로 제정하였으며, 구스타브 2세의 영향을 충실히 따라 18세기가 되면 대부분의 유럽 군대가 군복과 제식 무기를 지정하고 생산하여 전군을 동일한 무기로 무장시키는, 현대 군대와 같은 개념이 정착되어 있었다. 18세기는 이미 전 병력이 총으로 무장하고, 주요 백병전 무기는 총검으로 이행되어 있었으므로, 도검의 실전성은 기병을 제외하면 크게 퇴색된 상태였다.

또 18세기에는 17세기처럼 귀족부터 평민까지 호신을 위해 광범위하게 도검을 휴대하고 다니던 문화가 사라졌으며, 귀족만이 휴대하고 다니는 물건이 되었다. 18세기의 장교들은 대부분 귀족이었으며 도검은 귀족의 상징처럼 되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장교들의 권위를 상징하는 수단으로써 도검을 활용하게 되었다.

또 자신이 소속된 부대나 병과에 따라 도검의 디자인을 다르게 함으로써 소속 부대를 구분하도록 하였고, 계급에 따라 외장을 다르게 제정함으로써 일종의 계급장, 소속부대 표시의 역할도 맡게 되었다. 이처럼 단순히 실전성뿐만이 아니라 실전 외적인 요소를 크게 내포하였으며, "제식"에 따라 동일한 디자인으로 생산되었다는 점이 이전 시대의 군용 도검과 18세기 이후의 "군도"를 구분하는 가장 큰 요소이다.


2. 양상[편집]


군도의 착용 및 디자인 양상은 다음과 같았다.

  • 착용주체 - 장교와 부사관. 병사의 경우 척탄병이나 기병과 같은 특수병과에서는 착용이 허용되었다. 장교의 권위를 특별히 세워야 하므로 장교와 부사관의 도검 디자인은 다른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보병병사나 포병병사의 경우 브리큇이나 포병도 같은 간략한 도검을 착용하는 경우가 있었으나, 철저하게 실용적인 이유로 있는 것이고 전투보다는 작업에 곧잘 사용되는 것이었다.

  • 병과별 차이 - 기병의 경우 경기병은 휘어진 세이버, 중기병과 흉갑기병은 곧거나 약간만 휜 세이버를 사용했다. 이 차이는 경기병은 빠른 속도로 전투하므로 고속전투에 알맞는 곡도, 중기병과 흉갑기병은 덩치를 바탕으로 적에게 강력한 타격을 주어야 하므로 타격력에서 우월하다고 평가되는 곧거나 덜 휜 도검을 사용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기병대는 도검전투를 빈번하게 하기 때문에 장식적 요소보다는 실전적인 도검 디자인을 선호했다.

보병은 척탄병같은 정예 특수부대를 제외하면 장교와 부사관만이 군도 패용이 허용되었으며, 이들의 군도는 실전에서 칼싸움을 하기보다는 권위를 상징하고 돌격을 선도하는 지휘봉과 비슷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곡률이 낮은 세이버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결투에나 어울리는 스몰소드도 제법 사용되었다. 또 기병도에 비하면 장식적이고 계급장적인 요소가 강했다. 보병병사의 경우 브리큇(Briquet)이라 불리는 75cm 정도의 짧은 도검을 소지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황동주조 손잡이로 싸게 만들어진 것으로 백병전용으로 주어진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작업에 훨씬 유용하게 쓰였다.

포병은 포병도(Artillery sword)라는 독자적인 규격이 일반적이었으며, 포병도는 고대 로마군글라디우스에서 영향을 받은 디자인을 가지고 있었다. 황동 일체성형 손잡이에 60cm전후의 짧은 칼날을 가지고 있었고, 작업에 쓰라고 길이 재는 눈금이 새겨지거나 등에 톱날이 달린 것도 있었다. 이러한 것은 부사관이나 병사가 소지하던 것이고, 장교들은 보병들처럼 평범한 세이버를 소지했다. 포병장교의 세이버는 보병이나 기병과는 다른 디자인을 제정해서 사용했다.

해군은 함상전투를 위한 커틀러스를 소지하였다. 당시는 배에서 배로 건너가 싸우는 보딩전투가 많았기 때문에 병사들도 커틀러스를 소지하였으며, 장교나 부사관은 평범한 세이버를 따로 제정해서 차고 다녔다. 해병대도 동일하였는데, 당시의 해병대란 상륙작전과는 별 관계가 없고, 보딩전투를 전문적으로 맡는 병과였기 때문이다.

3. 군도 검술[편집]


18세기에서 20세기까지 군도술은 군도의 형태와 특징에 관계없이 단 하나의 세이버 검술(Saber exersice)에 의해 통제되고 있었다. 스몰소드 형태의 군도만이 스몰소드 검술에 의해 통제되고 있었는데, 이러한 획일화는 도검이 실전주체에서 멀어졌기 때문에 굳이 형태별 검술을 따로 제정할 이유가 없었고, 검술도 제식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세부적인 변화가 있었고, 19세기 후반과 20세기에 들어 변화와 간략화를 거치지만, 근본 검리는 전혀 달라진 바가 없었다. 자세한 내용은 세이버 검술 항목 참조.

일본의 경우는 세이버 형태의 구군도를 사용하던 시절에는 검술 역시 서양의 세이버 검술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군도술을 교육받아야 했던 당시의 군 장교들이 대부분 사무라이 가문 출신이라 이미 일본도 검술에 익숙해져 있던 탓에 세이버 검술을 제대로 익히고 활용하는데에 불편이 있었고, 일선의 군인들 사이에서도 사용하기 불편하다는 불만이 적지 않게 있었다.[2] 이후 군도 제식이 일본도 형태의 신군도로 넘어가면서 검술 역시 일본식 검술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검술을 수련한 경험이 없는 군인들도 빠르게 익히고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필요한 부분만을 추리고 정리해서[3] 독자적인 군도술 체계를 정립하게 되었다.[4] 전후 이 군도술은 몇몇 부분들을 다듬어[5] 민간 유파인 토야마류로 새출발하여 현재까지도 부흥하고 있다.

4. 전세계적인 영향과 현대의 군도[편집]


19세기부터 유럽 각국이 제국주의를 내세워 동양을 침략하면서, 군사력에 압도된 동양 국가들은 앞다투어 서양식 군사 제도를 받아들였다. 이 과정에서 유럽식 군도 개념이 그대로 아시아 국가에 이식되었으며, 그 덕택에 현재 전 세계는 군도에 대한 동일한 관념을 가지고 있다. 일본 군도의 경우 형태가 일본도일 뿐 유럽식 군도에 해당하는 개념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제1차 세계 대전까지는 장교가 군도를 착용하는 전통이 유지되었으나, 1차대전 이후에는 일본군을 제외한 대부분의 군대가 예식용 이외의 군도를 폐지하였다. 장교권위의 상징의 역할은 권총으로 넘어간 상황이며, 권총을 장교 이외의 다른 계급에도 널리 지급하고, 그렇지 않다 해도 자비로 총을 구입해 사용할 수도 있는 미군 등의 군대에서는 장교의 권위의 상징이라는 역할을 맡는 특별한 무기 자체가 사실상 없어지게 되고 있다. 이는 굳이 그러한 특별한 상징성을 갖는 무기를 구태여 갖추어야 할 필요성이 없다는 발상이다.

현대군대에서도 예식용으로 일부 군도를 유지하고 있지만,[6] 실전에 나서지는 않는다.

대한민국장성급 장교준장부터 삼정검을 지급받는다.

5. 관련 항목[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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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근대 군대는 장교와 사병 모두 갑옷과 무기를 모두 자기 돈으로 사야만 했다. 규격화된 장비를 지급해도 무기 값은 월급에서 따로 빠져나가는 식이었다. 당연히 맞춤식 갑옷이나 무기는 굉장히 비쌌기 때문에 부유한 특권층의 전유물이나 다름없었고, 재정상황이 넉넉치 못한 일부 장교나 징집된 병사들은 가죽옷을 입거나, 그마저도 입지 못한 채로 조잡한 무기를 사용하거나 아예 농기구나 공구를 무기 대신 들고 전쟁터에 나가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이 농기구가 의외로 전투에서 효과적으로 먹히자 농기구를 본따서 만든 여러 무기가 만들어지기도 했다.[2] 이로 인해 세이버 양식의 군도로 일본도 검술을 구사하고자 양손세이버같은 독특한 군도가 만들어지기도 했다.[3] 공격의 투로를 내려베기, 사선베기, 역사선베기, 정면 찌르기의 4개만으로 간략화했으며, 20세기의 전쟁터에서 적과 냉병기를 맞대고 싸울 일은 없을 것이라고 보아 검으로 냉병기를 상대하는 기술을 완전히 배제하였다. 그 대신 빠른 발도와 그에 이은 강력한 공격으로 속전속결로 적을 살상하는 것을 추구함에 따라 발도 기법에는 무게를 두었으며, 물체 베기를 통해 베기 기술의 숙련과 자신감의 배양을 추구했다.[4] 초기에는 육군의 검술교범을 중점적으로 군인들을 교육했고, 토야마 육군병학교에서 내부적으로만 교육하던 것이 따로 있었으나, 이후 토야마 육군병학교의 군도술이 군도의 조법 및 시참(軍刀の操法及試斬)이라는 책자로 만들어져 전군에 보급되게 되었다.[5] 군국주의적 색체를 지우기 위해 군복과 군도 대신 전통 복장과 전통 카타나를 사용하는 것으로 변화하였고, 투로의 수를 전통 검술과 동등한 수준으로 늘렸으며 냉병기를 상대하는 기술이나 잔심(残心)과 같은 전통 검술의 요소를 도입하였다.[6] 절대다수의 군대에서는 세이버를 예도(禮刀)로 사용한다. 군 조직은 아니지만, 현대 일본의 자위대 역시 전통 일본도가 아닌 세이버 외장의 도검을 채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