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폭력/국내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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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1954년
3. 1966년
4. 1996년
5. 2004년
6. 2005년 정기국회
7. 2006년 5월
8. 2007년 12월
9. 2008년 12월 국회
10. 2009년
10.1. 2009년 1월
10.2. 2009년 2월
10.3. 2009년 3월
10.4. 2009년 7월
10.5. 2009년 12월
11. 2010년 12월 국회 공성전
12. 2011년 국회 최루탄 사건
13. 2012년 국회선진화법 도입
14. 2019년 패스트트랙 관련 국회폭력 사태
14.1.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국회에서 몸싸움이 처음부터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58년, 1974년, 1985년에도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난투극이 벌어졌다는 뉴스가 있고 1990년, 1994년, 1999년에도 여야간 몸싸움이 벌어졌다는 뉴스가 있지만 영상 매체의 발달로 2000년대 중반부터 국회 내 폭력사태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2. 1954년[편집]


파일:이철승,_최순주.jpg

사사오입 개헌으로 인해 이철승 의원이 의장석으로 뛰어들어 최순주 부의장의 멱살을 잡는 등 국회 공성전이 일어났으며 멱살을 잡은 이철승 의원도 훗날 국회부의장이 된다.

드라마 야인시대 104화에서도 이 장면이 나왔다. 조병옥의 저놈 끌어내!! 당장 끌어내!!하는 그 회차이다. #

3. 1966년[편집]


파일:똥이나쳐먹어.jpg

사카린 밀수 사건에 항의하고자 무소속 김두한 의원이 정일권 국무총리 이하 국무위원들에게 오물을 투척하여 국회를 똥판으로 만드는 사건이 일어났다. 자세한 내용은 국회 오물 투척 사건 항목 참조.

4. 1996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1996년 노동법 날치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안기부[1]과 노동법 개정안으로 격렬하게 충돌했다.[2] 어찌보면 21세기에 펼쳐진 국회 폭력의 원조격. 1996년 정기국회 마지막에 여당신한국당이 안기부법과 노동법을 처리하려 했으나 제1야당새정치국민회의가 격렬하게 반발하여 충돌이 빚어지게 된 것.

안기부법을 처리한 정보위원회. 하지만 이미 여기서부터 충돌은 시작되었다.
안기부법의 정보위원회 통과
안기부법을 처리하려는 신한국당을 저지하기 위해 국회의장과 부의장을 감금해버린 야당. 당시 김수한 전 의장은 의장실에, 오세응 전 부의장은 63빌딩에 감금해버렸다. 초대형 사건이라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

결국 정기국회 때 처리는 무산되었다.
한국노총에서는 삭발투쟁을 하기도.
결국 1996년 12월 26일 크리스마스 다음날 새벽에 김수한 국회의장이 기습적으로 직권상정선언했다.

그렇게 노동법과 안기부법은 12월 26일 새벽에 기습 통과되었다. 이 날치기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이 청구되었으나, '위법은 맞지만 (어쨌건 의결 당시 신한국당이 과반의석을 점하고 있었으므로 표결 결과가 바뀔 일은 없으니) 위헌은 아님'이라는 결론이 나며 날치기의 효력은 유지되었다.

5. 2004년[편집]


파일:20060803115461432192943200.gif

2004년 2월 27일 한나라당의 한 회의장에서 벌어진 난투극 장면을 철권 4움짤로 편집한 것이다. 사실 이것은 정석에 가까운 배대뒤치기다. 참고로 저 사람들은 국회의원이 아닌 중앙위원과 경호원이다.

YTN[3]
MBN
SBS
MBC
KBS

5.1.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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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 탄핵정국 때에도, 의장석 점거와 의원간의 몸싸움이 있었다. 대략 4분 0초부터 보면 된다. 의장석을 점거하고 있던 당시 소수여당열린우리당측이 제1야당이자 원내 제1당인 한나라당, 제2야당인 새천년민주당측에게 의장석을 빼앗겨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이 가결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자세한 상황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 5번 문단 참조.

6. 2005년 정기국회[편집]


파일:151.jpg
싸움을 관전하는 한나라당 김기현 의원을 볼 수 있다.

파일:11130.jpg
저지선을 구축하는 열린우리당 김태년 의원과 김동철 의원, 헤드락을 시전하는 열린우리당 정봉주 의원을 볼 수 있다.

파일:11131.jpg
의사봉을 수호하는 열린우리당 주승용 의원을 볼 수 있다.

파일:94941.jpg

17대 국회를 화려하게 장식한 대규모 폭력 사태. 2005년 12월 9일 정기국회 마지막 날 벌어졌다. 열린우리당민주노동당, 민주당 3당이 개방형 이사제를 골자로 한 사립학교법 개정안(통칭 사학법 개정안)을 직권상정을 통해 처리하는 과정에서 한나라당과 크게 한판 붙었다. 열린우리당, 민주노동당, 민주당 3당이 먼저 기습적으로 대한민국 국회의사당을 점거하고 한나라당이 진입하는 걸 막은 후 후다닥 통과.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전쟁
사립학교법 직권상정부터 통과까지 벌어진 사태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 의원석에 앉으면서까지 투표를 방해했지만 실패했다.
사립학교법 통과 공성전 과정을 정리. 그리고 결국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2006년), 제17대 대통령 선거(2007년)에서 참패한 열린우리당-대통합민주신당은 사학법 개정안을 후퇴한 법안을 통과시키게 된다. 사학법 개정안을 밀어붙인 민주노동당이 반발했지만 결국 롤백되었다.

사립학교법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사학법 개정안이 저지-롤백된 과정에서 보수 정치인들 배후에 기독교 우파가 있었다. 지금도 기독교 우파 입장에서는 이때의 투쟁경험이 트라우마로 남아있으며 현행 상태의 사학법을 사수하는 스탠스를 잡고 있기도 하다.

7. 2006년 5월[편집]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를 골자로 한 노무현 전 대통령부동산 3.30.대책과 민주노동당이 요구한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주민소환을 가능하게 하는 주민소환법 제정을 열린우리당민주노동당빅딜로 성사시키면서 이에 반발하는 한나라당과 몸싸움을 했다. 무려 16시간 동안 대치하였고, 한나라당은 아예 김원기 국회의장 집에까지 쳐들어가서 못나오게 막았지만 국회의장이 부의장에게 사회권을 넘겨버리면서 국회부의장을 맡고 있는 열린우리당 김덕규 전 의원이 기습적으로 통과.

파일:89410.jpg

파일:65641.jpg

과거에도 국회에 들어와서 농성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내실에까지 들어온 적은 없다.
수비가 완벽하네...
송영선 전 한나라당 의원 "날치기를 한두번 해야할거 아냐!!!" 이 장면은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출구조사 동영상에도 쓰였다.

8. 2007년 12월[편집]


2005년 사립학교법 개정안과 2006년 부동산대책+주민소환법 때문에 열린우리당민주노동당이 일으켰다. 2007년에 일어난 사건은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터졌다. 게다가 이번에는 단순한 몸싸움이 아닌 전기톱, 슬레지해머, 소화기 같은 무기까지 등장해서 전번보다 훨씬 잔인했다. 당시 BBK와 관련해서 나온 이명박의 명언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이외에도 양념승덕과 식사준표도 꽤 유명한 유행어다.

  • 2007년 12월 11일 ~ 13일 - 한나라당의 정찰

한나라당 국회의장석 점거
탄핵 소추 발의는 반헌법 반민주 폭거!
한 동안 의장석 기습 점거
일단 후퇴하는 한나라당

  • 2007년 12월 14일 - 국회폭력 사태 발발

공성전 전초전
전 날 후퇴했던 한나라당은 다시 본격적으로 의장석 점거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역사에 길이 남을 첫 국회 공성전이 시작되었다!
국회사무처 직원들이 본회장 문을 열고 있다.
결국 대통합민주신당은 의장석을 탈환하는데 성공한다.
사실 이 때까지만 해도 국회 공성전이라는 단어가 잘 쓰이지 않았다. 난장판, 난리, 아수라장 정도의 단어가 쓰이고 있었다.
으마무시한 막대기
생생한 국회 공성전의 기록
싸움의 기술 - 강추 영상
쇠사슬 vs 전기톱
재밌다. 국회...

이외에도 2007년 12월 14일에 자료가 많이 있다.

  • 2007년 12월 15일

굳히기 들어가는 대통합민주신당
결국 탄핵소추안은 폐기되고 만다.

  • 2007년 12월 16일 - 제2차 국회폭력 사태

지구전에 돌입한 국회 공성전
심야 난투극
국회 경비대가 한나라당 의원들의 국회 진입을 저지하고 있다.
그리고 직권상정을 막기 위한 제2차 국회 공성전이 시작되었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창문으로 진입하고 있다.
살벌한 국회 공성전

  • 2007년 12월 17일

이런 상황이 지속되자 이명박은 BBK 특검 수용 의사를 전격 발표한다.
신병기 소화기를 사용하는 모습이 포착된 국회 공성전의 한 장면.
결국 이명박 특검법안은 통과되었다.
2007년 국회 공성전 총 정리. 완전한 전쟁터. 소화기 공격, 함성소리...
'BBK 특검 법안' 둘러싼 집단 난투극


그리고 이틀 뒤...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당연히 상대 후보를 20% 넘게 바르고 10년 만에 정권교체한, 그것도 정치인들중에서 가장 권력이 쎄다는 대통령 당선인을 검찰이 제대로 수사할수가 없었고 결국 BBK 특검은 흐지부지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건은 무려 11년 뒤인 2018년이 돼서야 윤석열 대통령의 서울중앙지검장 시절에 주도가 되어서(당시 특검 파견 검사 중 한명) 진상이 드러나게 된다.

9. 2008년 12월 국회[편집]


개원60년…18대국회는 안갯속 그래도 희망을 쏘자 // 처음에 의도는 좋았다.
폭력·날치기 국회, 역사 뒤안길로 // 하지만 지겨지지 않았다.

정확히 1년 후에 국회 폭력의 공수가 교대된다. 이번에는 거대 여당인 한나라당-친박연대가 수비, 민주당-민주노동당이 공격. 자유선진당은 적극적으로 공세에 가담하지는 않고, 점잖게 한나라당의 태도를 비판하는 정도에 그쳤다.[4]

'국회 공성전'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활성화 된 시기의 국회폭력은 바로 이 문서에서 소개할 2008년 12월 국회폭력이다. 원인은 한미 FTA처리를 둘러싼 갈등이었다.

한미 FTA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민주당노무현 대통령 시기에는 이를 찬성하다가, 이명박 대통령 시기에는 반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나라당은 딱 그 반대로 행동하였다. FTA 항목이 수정되며 서로의 입장이 바뀐 것이다.

  • 2008년 12월 18일 - 국회 내부의 "외교통상위원회 회의장"에서 벌어진 내란이다

1년 전에 비하면 소규모였지만, 좁은 곳에 많은 인원이 몰렸었기에, 참가 인원 수로 따지면 1년 전 못지 않은 격렬한 폭력 사태였다. 아직 본회의장까지도 가지 않았다.

오함마는 기본이고, 소화전 물대포 vs 소화기, 바리케이드에 기물파손은 덤.
국회는 전쟁터. 그런데 1년 전과 달리 국회 경위들이 적극적으로 수비에 가담하는 모습이다.
6시간의 혈투.
당시 양 당의 원내대표인 홍준표 원내대표와 원혜영 원내대표.
나름대로 잘 정리되어 있는 기록.
문이 열린다!
농성중인 민주당원들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이회창 옹의 점잖은 비판 톤이 감상 포인트.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무분별한 국회 폭력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어났다. 그리고 이날의 사태는 이런 행위를 원천적으로 금지시키는 국회선진화법의 탄생을 낳는 원인이 되었다. 또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폭력행위를 한 의원에게 형사처벌을 하려는 움직임도 일어났다. 이 때문인지 이후엔 장비사용을 자제하였다.

  • 2008년 12월 19일 - 국회 내부의 "행정안전위원회, 정무위원회 회의장"에서 벌어진 국회 폭력 사태[5]

민주당민주노동당의 역습. 이번에는 몰래 미리 회의장내에 잠입한 민주당이 방어전을 수행했다. 그러나 매우 격렬하게 싸웠던 전날의 공성전과 달리, 어떤 장비도 사용된 정황이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미디어법, 금산분리완화 등 소위 "MB악법" 처리를 둘러싸고 갈등이 발생했다. 당시 "조중동 방송", "삼성 은행"의 출현은 부정적이라는 의견과, 선진적인 국가 환경 조성이라는 의견이 정면 충돌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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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위원회 성문 앞에서 연좌농성
다 네탓이오!

  • 2008년 12월 20일 이후 - 국제망신과 계속되는 농성

그러나 결론은 국제망신

그러나 그들의 전투는 계속된다.

12월 21일, 민주당의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회의장 점령
농성 현장 공개
12월 30일,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협상을 시도한다.

2008년 12월 공성전 총정리

10. 2009년[편집]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들의 폭력은 해를 넘겨 2009년에도 계속된다. 인상적인 물리적 충돌은 별로 없었지만, 대신 매우 긴 입법 전쟁이 시작되었다.

10.1. 2009년 1월[편집]


  • 2009년 1월 2일 ~ 1월 4일 - 계속되는 국회 폭력, 국회의장의 양보

1월 2일, 동아일보는 민주당에 대해 "몽니"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이를 널리 알렸다.
1월 3일, 외성문 근처에서 국회 폭력사태가 발생했다.
국회의장의 명령으로 국회 경위가 투입되었다.
공성전 중 부상자가 많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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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1월 4일, 국회의장은 한나라당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8일까지는 직권상정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 2009년 1월 5일 ~ 1월 7일 - 그 유명한 강기갑 공중부양 사건과 사태 수습 합의

1월 5일, 국회의장의 선언에 의해 민주당은 내성문 앞에서 철수했으나, 민주노동당은 끝까지 버티다가 국회 경위들에게 끌려나간다.
당시 강기갑은 매우 격정적으로 행동했는데, 그 때문에 강기갑은 "공중부양 한다"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강기갑 공중부양"으로 유명한 사진
1월 7일, 결국 혈맹 대표자들은 어떻게든 합의를 이끌어 낸다.

여담이지만, 강기갑은 1심에서는 무죄, 2심에서는 3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그리고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었지만, 선거와 관련된 범죄는 아니어서 의원직을 상실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2013년 6월, "내가 좀 현명하지, 지혜롭지 못했구나"라고 술회하기도 했다.

  • 2009년 1월 12일 - 국제망신 Season2

파일:attachment/국회 공성전/1_artlife.jpg
2008년의 국회 폭력은 결국 타임지 아시아판 커버에 사진으로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커버스토리의 이름은 "아시아 민주주의는 왜 퇴행적인가?"[6][7]

  • 2009년 1월 18일 - 한나라당 당대표의 법안 강행 처리 선언

그런데 박희태 전 한나라당 대표가 갑자기 쟁점 법안들을 2009년 2월내에 처리하겠다고 선언하였다.

10.2. 2009년 2월[편집]


  • 2009년 2월 25일 국회 내부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장" - 미디어법 관련

당시 문화체육관광위원회장 고흥길은 미디어법을 기습적으로 직권상정하였다. 소규모 몸싸움이 일어났다.
"위원장으로서는 국회법 제77조에 의해서 방송법 등 22개 미디어 관련 법에 대한 법을 전부 일괄 상정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정신차리시오!
도둑질 하지마!
미디어법 직권 상정..."해법 찾자" vs "원천무효"
"야당이 협의를 안 해주면, 국회법에 따라 처리할 수도 있습니다."

  • 2009년 2월 26일 국회 내부 "정무위원회 회의장" - 금산분리법 관련

심야에 한나라당이 회의장에 진입하자, 민주당도 같이 진입한다. 합의는 무산되었고, 민주당은 다시 회의장을 점거한다.
"한나라당이 역사의 죄인이 됩니다.", "의석 점거하는 것은 초등학생 수준이죠, 사기술까지 동원해서 기습적으로 하는 것은 처음 봤어요"
[풀영상]쟁점법안, 한밤 처리 시도‥여야 '몸싸움'
"손 다칩니다..!" 우당탕 국회

  • 2009년 2월 27일 국회 내부 "국토해양위원회 회의장"과 국회 본청 출입문

결국 쟁점법안이 아닌 법안 심사에서도 개싸움이 연출된다.
그러자 성 관리인은 의경을 동원하여 외성 외곽을 봉쇄한다.
민주당은 일단 외성 내부 진입에 성공한다.
결국 외성 성문은 파괴되었다.

10.3. 2009년 3월 [편집]


계속되는 전투, 2차 합의안 도출, 결국 법안 처리 표류.

  • 2009년 3월 1일, 국회 본청 출입문

결국 외성문은 돌파되었다.

  • 2009년 3월 2일, 국회 내부

내성문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한나라당
합의안이 도출되기 전 3월 2일 오후 까지 본회의장 진입을 위한 공성전은 계속되었다.
결국 미디어법에 대해 합의를 도출하였다.
당시 박근혜 전 의원도 농성 현장에 합류하였다.
당시 이 전투로 인해 부상자가 속출하였다.
민주노동당은 단독으로 내성 진입을 시도한다. 한나라당은 수호탑을 굳건히 사수중.

  • 2009년 3월 3일

비쟁점 법안은 처리하기로 했으나, 문방위와 정무위는 여전히 헬게이트
헬게이트가 활짝 열린 문방위
결국 고흥길은 직권상정에 대해 사과를 함으로써 한발 물러섰다.
"이런 전문 날치기꾼을 우리가 어떻게 위원장으로 인정하나?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필리버스터"
결국 미디어법과 금산분리법은 2월 처리가 무산되었다.
2009년 3월 공성전 중간 정리


10.4. 2009년 7월 [편집]


민주당은 6월에 잠깐 시민들과 함께 장외 투쟁을 하기도 했으나, 국회 파행의 원인이 된다는 국민들의 비판을 수용하여 7월에 국회로 다시 돌아온다.

  • 2009년 7월 15일, 본회의장 동시 점거

결국 국회 공성전에서 중요한 것은 내성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양 당은 동시에 본회의장을 점거한다.
이에 박근혜는 직권상정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결국 한나라당이 의장석 점거에 성공한다.
당시 국회의장 김형오가 7월 22일 2시에 직권상정을 하겠다고 선언하자, 수호탑을 빼앗긴 민주당은 대신 내성 성문을 막아버린다.
본회의장 입구에 바리케이드를 친 모습.
내성 성문 앞에는 많은 파이터들이 모여들었다.
역시 부상자가 발생.
모든 성문을 봉쇄중인 민주당
#
'막아라! 뚫어라!
“로마軍처럼 막아라”
한 혈맹원은 수호탑을 단숨에 공격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결국 미디어법과 금산분리완화법은 통과되었다.
이 와중에 자유선진당은 본회의장에 진입조차 할 수 없었다.
파손된 방청석 출입문
내성 성문 앞의 격렬한 전투, 그리고 내성 진입에 성공하는 한나라당
미디어법과 관련된 공성전 총정리
방송법은 일사부재의의 원칙에 어긋난 것인가? 재투표 논란

결국 수적으로 불리한 민주당은 한나라당과의 입법전쟁에서 패배했다. TV조선, JTBC, 채널A는 이때 통과된 미디어법을 근거로 하여 생겨났다. MBN은 이 법을 근거로 종합편성채널로 변모하였으며 연합뉴스TV가 MBN을 대신할 보도전문채널로 신설되었다.

그리고 방송법 재투표에 대해 민주당헌법재판소권한쟁의심판을 신청했으나 2009년 10월 29일, 헌법재판소야당 의원들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이 침해된 것은 맞지만, 법안 통과는 무효가 아니라는 결정을 내렸다. "표결권 침해 맞지만 무효화할 만큼은 아니다"

10.5. 2009년 12월 [편집]


미디어법과 금산분리법 저지에 실패한 민주당은 이번에는 예산을 문제로 한나라당과 다시 대립한다. 쟁점은 이 예산안에 소위 "형님 예산", "4대강" 관련 예산 등 예산 처리 내용이 합의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다만 이 때는 점거만 했을 뿐, 본격적인 물리력 행사는 하지 않았다.

2009년 12월 16일, 민주당은 먼저 본회의장과 예결위 회의장을 점거했다.
2009년 12월 27일, 예산안 처리에 압박을 받은 당시 국회의장 김형오는 양 당 대표를 불러 중재를 시도했다.
그러나 합의는 쉽게 이루어 지지 않았고, 2009년 12월 29일에는 열받은 성주가 양 혈맹의 합의가 이루어 지지 않으면 성을 떠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성주석을 굳게 지키고 있게 된다. 이는 30일까지 지속되었다.

  • 2009년 12월 30일

국회 공성전과는 별 큰 관련이 없지만, 이날 국회에서는 또 하나의 불후의 명대사(?)가 나왔다. 자세한 건 어딜 만져 문서 참고.

어딜 만져! 어딜 만지냐고!

  • 2009년 12월 31일

한나라당은 회의장 장소를 바꿔 단독으로 예산을 처리했다.
결국 본회의도 속전속결로 통과되었다. 의외로 민주당은 물리력으로 저지하지는 않았다.
당시 민주당은 수적으로 불리했고, 여론 문제도 있고 해서 물리력 행사를 자제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이런 전략은 민주당에게 무능하다는 이미지를 동시에 안겨주었다. 결국 1년 후에 또 다시 국회 공성전이 벌어졌다.

11. 2010년 12월 국회 공성전[편집]


역시 쟁점은 예산안 처리였다. 그 이유는 딱 1년전의 그것과 매우 유사했다.

  • 2010년 12월 7일, 국회 내부 "본회의장", "국토해양위원회 회의장"

한나라당은 국토해양위원회 회의장 문을 걸어 잠그고, 4대강 관련 법안을 단독 상정한다.
일단 선빵을 날린 민주당이 먼저 의장석과 회의장을 확보했다.
민주당의 본회의장 의장석 점거 성공
의장석을 지키고 있는 민주당 파이터들.
한나라당도 본회의장에 같이 진입후, 서로 밤을 세워 본회의장을 점거했다.
바리케이드가 업그레이드 되었다.
문짝 파손은 기본.
#
예산 처리안을 둘러싼 국회 공성전 정리

  • 2010년 12월 8일

당시 김성회 의원과 강기정 의원이 싸우다가 서로 부상을 입었다.[8]
한나라당은 단독으로 장소를 바꿔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열고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민주당은 절대로 통과 시킬 수 없다는 의지를 내보인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예산안은 한나라당 단독으로 통과되었다.
그러나 1년 전과 달리, 민주당은 얌전히 있지는 않았다.

이후 대규모 국회 공성전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폭력 국회는 여전히 건재했다.

12. 2011년 국회 최루탄 사건[편집]


2011년 11월 22일 한미 FTA가 국회에서 비준되자,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이 최루탄[9]을 가방 속에 숨겨 들여와 본회의장에서 터뜨림으로서[10] 장비를 갖고 올려면 얼마 든지 갖고 올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쯤 되면 진짜 테러다. 이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로 기록되었으며, 최루가루를 정통으로 뒤집어쓴 정의화 국회부의장[11]이 이 사건 때문에 지금도 기관지 문제로 고생한다고 한다.


고승덕[12]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생방송으로 녹화한 버전. 7분 24초쯤에 나온다.

"야, 테러리스트야!" vs "한나라당! 역사가 무섭지 않느냐!"
"역사가 무섭지 않느냐! 국민이 무섭지 않느냐!"
기물파손은 항상 따라다닌다.
한미 FTA 비준 과정 총정리
국회 최루탄 파장 확산!

13. 2012년 국회선진화법 도입[편집]



국회법 제85조(심사기간)를 개정해 매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쟁점법안에 대한 국회의장직권상정을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국회법 제57조의2(안건조정위원회)를 신설하여 쟁점 법안에 대해 조정을 할 수 있게 하였다.

국회법 제85조의2(안건의 신속처리)를 신설하여 안건 신속처리에 대한 규정을 두고 있으나, 조건이 까다로워서 이를 이용한 날치기는 쉽지 않다.

국회법 제106조의2(무제한 토론의 실시 등)를 신설하여 필리버스터 제도를 도입하였다.


  • 그런데 박근혜 정부 출범 한달 후인 2013년 3월, 정부조직법 통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여의도에서 여당인 새누리당의 원내대표 이한구 전 의원이 국회선진화법을 개정하자며 포문을 열었다. 사실 새누리당은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소수당이 될 것 같아 국회선진화법에 동의한 것이다. 그만큼 당시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야권의 승기가 우세했다. 그런데 오히려 새누리당이 승리하여 과반을 차지하니, 본인들도 합의한 법에 발목이 잡히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그 이후로도 새누리당에서 헌법소원을 내서 국회선진화법을 폐지하려고 했다. 즉, 자신들이 만들어놓고서 자신들이 머릿수로 밀어붙이고 싶을 때 방해되니 무력화하자는 이야기다. 일단 대통령을 비롯한 여당측이 지명한 판사의 숫자가 좀더 많은데다 실제로 2015년에는 여당이 주도해서 개정한 아청법이 합헌판결이 났기에 가능성은 없지는 않다. 다만 아청법과 달리 위헌이 나는것이 의도한바이기에 쉽지 않을 수 있다. 간통죄의 경우에도 과거에 위헌의견이 9명중 5명이었으나 나머지 4명이 합헌 의견을 내서 진작 없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여당 내에서도 남경필 의원 등이 반대 의견을 보였기에 여당측이 지명한 판사라도 합헌 의견을 낼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같은 시기 <썰전>에 출연하고 있는 강용석 전 의원은 강기갑통합진보당 의원과 몸싸움을 했던 사실을 회고하기도 했다. 해당 기사
김종필국무총리는 부인 박영옥 씨의 장례식장에서 국회선진화법 도입의 주역 중 1명인 남경필경기도지사를 만나 "그런 것은 왜 만들었어요?"라고 묻기도 하였다. #

  • 2013년 6월, 결국 처벌규정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폭력 행위로 어그로를 끌면 징역만 7년이고 벌금은 2,000만원이다. 벌금이야 연봉을 많이 받으니낼 수 있을지도 몰라도, 징역 7년, 그리고 거기에 따라오는 피선거권 박탈은 누가봐도 후덜덜한 형량이라[13] 확실히 예전같았음 싸움이야? 나도 끼어야지!!! 할 상황에도 고성만 오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개정안은 2013년 8월에 통과되었다.


  • 국회선진화법 개정 이후 몸싸움은 사라졌지만 그 대신 국회의 법안 처리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져서 이를 명분으로 국회선진화법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을 내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14] 그러나 대한민국 국회의 법안 처리 속도는 그 이전에도 그닥 빠른 편은 아니였고, 법안의 처리 속도 저하는 법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2000년대부터 격화된 진보-보수 극단화로 인한 문제도 있는데다가, 원래 법안이라는게 상정하기 전에 이것저것 따지느라 느려지는 것도 있으므로, 이 법안 자체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게다가 이 법을 없애서 법안 처리가 빨라지는 것도 큰 문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토론과 토의를 통해 만들어진 법이 아닌 몸싸움에서 이기는 쪽이 법을 만드는 것은 좋을리는 없지 않은가. 다른 부분에서 문제가 있으니 처리 속도가 늦어지는 것이지 이런식으로 국회정상화법을 부정하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14. 2019년 패스트트랙 관련 국회폭력 사태[편집]


7년 만에 다시 등장한 '동물국회'
동물국회에 문 부수려 '빠루'까지 등장…민주-한국 네 탓 공방
자기 방에 갇혔다 풀려난 채이배 의원의 6시간 총정리
'성추행 얘기 안 할 테니까!'...이번엔 채이배 '감금'한 한국당
국회 밤샘 대치 장면 모음, 이것은 국회인가? 싸움판인가?
7년 만에 개장한 '동물국회' - 빠루 편
7년 만에 개장한 동물국회 - 줄다리기 편
패스트트랙을 둘러싼 국회판 '대환장파티' 마지막 날 모습은 어땠을까?

국회선진화법을 통해 국회 폭력이 완전히 사라질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결국 이 법을 만들었다가 헌법소원을 냈던 새누리당의 후계정당인 자유한국당의 손에 의해 약 7년 만에 또 국회 폭력 사태가 발생했다. 비록 이전보다 규모가 줄어들기는 했으나 재물 손괴, 바리케이드 설치, 빠루 같은 연장이 등장하는 등 과거의 추태가 일부 재현되었으며, 여기에 덧붙여 국회의원 감금이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했다.

  • 2019년 4월 24일, 자유한국당이 패스트트랙 등 여당 및 야3당이 합의한 법안제출을 막기 위해 국회의장실을 점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실질적인 폭력이 없었을 뿐이지 정서적 폭력으로 인해서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병원에 실려가게 되었다. 그리고 4월 25일,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을 자유한국당이 의원실에서 6시간 정도 감금시켰다가 경찰과 소방관이 출동하자 풀어주거나 정태옥 전 의원이 국회 직원에게 법안 문서 갈취를 시도했으며 이은재 전 의원은 이를 찢어버리는 만행을 보였고, 자유한국당의 여성 보좌진들이 최전방에서 인간벽을 짜며 사실상의 폭력 사태가 연이어 벌어졌다.

  • 결국 4월 25일 저녁에는, 여야 4당이 자유한국당을 배제한채 패스트트랙 처리를 시도하자 이것을 저지하기 위해 자유한국당 의원 및 보좌진들이 인간띠를 만들어 국회 본청 7층에 있는 의안과 사무실을 가로막고 저지하는 일이 발생했다. 자유한국당은 그간 선거제 개편 이슈에 관해 모호한 입장으로 일관하다가 여야 4당이 최후통첩을 하자 아예 비례대표 없는 소선거구제로 개편을 주장하는 등 사실상 트롤링과 시간끌기에 가까운 행보를 보였다. 이런 행동에는 시간을 질질 끌어서 총선이 몇 달밖에 안 남으면 결국 다 유야무야 되겠지 하는 꼼수가 숨어있었다.

  • 의안과 사무실과 복도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고, 끝내 의안을 접수받는 팩시밀리 기기가 파손되는 물리적 피해가 발생하면서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7년 만에 국회폭력이 부활하고야 말았다. 같은 날 오후에는 부상을 우려해 구급부대가 국회의사당 7층으로 출동했다. 국회선진화법 제165조는 누구든지 회의를 방해할 목적으로 회의장이나 그 부근에서 폭력행위 등을 해선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으므로 국회 사무실도 해당되어 위법소지가 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자유한국당 의원 18명과 보좌진 2명을 고발하기로 했다. 같은 날 문희상 전 의장이 국회 경호권을 발동했다. 1986년에 마지막으로 발동된 후 33년 만의 일이다.

  • 다음날인 4월 26일 새벽에 의안과 문을 열기 위해 쇠지렛대(일명 "빠루")를 사용한 것에 대해 또다른 논란이 되었다. 자유한국당에서는 더불어민주당에서 의안과 문을 열기 위해 사용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경호권 발동에 따른 국회 차원의 조치로 더불어민주당과는 관계없는 일이었다. 국회 사무처 역시 더불어민주당이 아니라 방호과가 쓴 것이 맞다고 확인해주었다. 이게 논란이 될 수 있는 이유는 흉기로 사용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 결국 해당 법안은 더불어민주당이 전자 입법발의시스템으로 제출하였다. 법률을 전자입법발의 시스템으로 입법한 것은 2005년에 시스템이 도입된 이후 14년 만에 첫 사례다. 자유한국당은 법안 제출 저지하겠다고 힘만 쓰다가, 결국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고 말았다.

  • 이날 오후 8시에 정개특위와 사개특위가 소집되었으나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회의장 앞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자 이상민 사개특위 위원장이 기습적으로 회의 장소를 문체위 회의실로 변경하여 패스트트랙 지정안을 상정했으나 의결 정족수 부족으로 인해 패스트트랙 지정시도는 실패했다. 이때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자유한국당 사개특위위원들에게는 통보를 배제했다며 반발했지만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위원장 측은 이미 공지를 했다고 반박했다. 한편 강제로 사보임된 바른미래당 오신환 의원은 회의장에서 자신에게도 발언권을 달라며 항의했으나 이상민 위원장은 일단 법적으로 사개특위 위원이 아니기 때문에 줄 수 없다고 하였다.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간사는 "그건 바른미래당과 국회의장에게 따질 일"이라며 이상민 위원장을 두둔했다.

  • 이후 이 소동에 대해 수사가 진행되는데,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타 당 의원들은 모두 출석에 응했지만 자유한국당은 야당 탄압이라고 주장하며 여러 차례의 소환요구에도 일절 응하지 않고 있다.

  • 2019년 12월 16일, 국회 난입 사태가 벌어졌다. 자유한국당이나 우리공화당 같은 성향의 정당 지지세력으로 구성된 태극기 부대 시위대가 경찰 저지선을 뚫고 국회 안으로 진입하였다. 다행히도 국회의사당 건물 내부까지 들어온 것은 극소수였으나, 국회로 출근하려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건물 밖에서 선거법 통과를 촉구하던 정의당 의원들이 폭행과 욕설을 당하고, 경찰을 구타하던 시위자가 체포되는 등 소란이 벌어졌다. 태극기 부대가 정의당 여성 당직자들에게 침을 뱉고 머리채를 붙잡았다는 주장도 있다. 자유한국당의 수뇌부와 의원들이 시위대를 오히려 두둔하는 발언과 선동을 하면서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법적 조치와 검찰 조사를 통한 처벌을 촉구했으며, 문희상 국회의장 또한 자유한국당과 폭력 시위대를 규탄했다.

  • 2019년 12월 27일 자유한국당이 선거법 회기 처리 절차가 무효임을 주장하며 현수막을 들고 의장석과 주변을 점거했다. 이후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경호권을 발동하면서 국회선진화법이 통과된 이후 처음으로 국회 본회의에서 의장석 점거 경호권 행사로 인한 충돌이 부활했다.

  • 2020년 1월 2일, 검찰은 자유한국당 측엔 국회선진화법의 국회회의방해로, 더불어민주당 및 정의당 측엔 단순폭행혐의로 기소를 했다고 밝혔다. 이 와중에 동참했던 바른미래당 소속 의원들은 대상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 이 기소를 두고 여야 모두 비판에 나섰다. 자유한국당 측은 '야당 탄압이자 야당 죽이기'라고 반발하였으며,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정치 검찰의 기계적 기소'라고 반발했다. 연합뉴스 기사

14.1.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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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4년 개정 당시 사라진 불고지죄와 찬양고무죄 수사조항 부활.[2] 이전에는 박정희, 전두환의 독재정권인 시절이라, 국회 폭력이 없던 게 당연했을지도. 그럼에도 국회를 아수라장으로 만든 김두한의 배짱을 실감할 수 있다.[3] 해당 장면은 36초~40초.[4] 정확히 말하면 자유선진당의 포지션이 굉장히 애매했다. 기본적으로 보수정당인건 맞는데 한나라당같은 이념정당이라기보다 충청권 지역정당에 가까워서 콕 집어서 보수라고 말하기가 힘들었다. 구성원들도 자민련에서 넘어온 사람, 이회창을 따라 한나라당에서 넘어온 사람, 민주당에 있다가 지역구가 충청도라서 이해관계 등에 따라 넘어온 사람 등으로 각양각색이라서 상임위 회의가 열리면 이진삼 같은 극우보수인 사람은 한나라당 쪽으로 붙고 이상민처럼 민주당 출신인 사람들은 민주당 당론에 따라가는 등 사실상 단독 행동을 해서 지도부 역시 대놓고 어느 쪽을 편들기가 어려웠다.[5] 둘 다 한나라당에서 위원장직을 맡고 있어서 날치기가 가능했다.[6] 후술하겠지만 아시아의 대표적인 민주주의 3국인 대한민국, 대만, 일본은 각자 나름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7] 아시아의 민주주의 문제를 들먹거리던 타임지는 13년 후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보도하며 미국 민주주의의 수준을 논해야 했다(...).[8] 강기정이 김성회에게 선빵을 날렸다가 역관광당한 사건. 빡친 김성회는 강기정에게 폭력을 썼고, 강기정은 김성회에게 맞고서 빡친 나머지 국회 경위를 패버려서 논란을 빚었다. 강기정은 이로 인해 벌금 1000만 원을 선고받는다.[9] 학생운동을 하던 시절에 불발된 최루탄을 주운 것이다.[10] '농민들의 눈물을 억지로라도 흘려보라'라는 취지였다고 한다.[11] 사건 당시 국회의장 권한 대행도 맡고 있었다.[12] 못난 아버지를 둔 딸에게 정말 미안하다!로 유명한 그 사람 맞다.[13] 물론 징역을 산다고 해도 교도소에서는 범털로 특별대우를 받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엄연한 감옥생활이라 자유가 박탈당하게 된다. 그리고 징역을 사는 동안 자신의 자리는 재보궐선거로 당선된 다른 국회의원이 차지하게 될 것이고, 7년을 버티고 나온다고 해도 국회의원으로 출마를 못 하기 때문에 사실상 정치인생이 끝난다고 보면 된다.[14] 특히 2015년 기준 정당들 중 여론조사 지지율 1위인 새누리당 계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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