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보수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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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주의의 상징, 청기.

1. 개요
2. 상세
3. 대한민국에서 국민보수주의
4. 인물
5. 대표적 정당
6. 같이 보기



1. 개요[편집]


National Conservatism.

네이션(Nation)[1] 정체성을 기반으로 보수주의의 한 갈래이다. 한마디로 내셔널리즘 + 보수주의이다.

사실 내셔널리즘 자체가 한국으로 1:1 번역이 불가능한 개념이긴 하지만 '내셔널 보수주의'라는 명칭은 학술적으로 쓰이지도 않을 뿐더러 너무 어색하기 때문에(...) 한국어 위키백과와 마찬가지로 나무위키에서도 '국민보수주의'라는 명칭으로 쓴다.


2. 상세[편집]


먼저 내셔널리즘의 얘기를 한다면 2차 대전 이후 파시즘과 같은 전체주의 체제를 낳은 사상에 대한 반성으로 인해서 내셔널리즘은 분화되었다. 크게 두가지인데 혈연적 동질성을 바탕으로 하는 민족(Ethnic group)의 의미로 내이션(Nation) 개념을 사용하는 민족주의적인 내셔널리즘과, 내이션(Nation)을 '시민'이나 '국민'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시민 내셔널리즘으로 나뉜다. 둘 다 Nation-state를 주장하지만 이때 nation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다른 해석을 하는 것이다. 시민 내셔널리즘측은 기존의 Ethnic group 중심의 민족주의는 타민족에 대한 배타성이 커져 정치적 극단주의로 흘러갈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민족주의 성향의 국민보수주의 정당은 극우정당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고 보며, 시민 내셔널리즘은 전자에 대한 대안으로서 그럴 위험성이 적다고 본다. 하지만 시민 내셔널리즘 성향의 국민보수주의 정당도 정치적 배타성이 두드러지고 반동주의, 정치적 극단주의로 흘러간다면 극우정당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반면 민족주의적인 내셔널리즘 측에서는, 파시즘과 같은 전체주의 체제는 극단적인 케이스이며, 민족주의적인 내셔널리즘이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양립할 수없으며 극단주의로 빠지게 된다.
국민보수주의의 특징은 사회문화적으로는 사회보수주의와 대체로 비슷하지만 반세계화 전략에 따라서 강력한 반이민정책을 주장한다는 것이다. 경제정책도 사회보수주의와 비슷하게 국가별로 상이하다. 쉽게 생각한다면 사회보수주의가 좀 더 국민공동체를 지키고 옹호하기 위해서 강경해진 우파의 정파가 국민보수주의로 보면 편하다. 정치적 스펙트럼 상으로는 강성우익이나 극우로 평가받는다.

의외로 복지국가를 주장하는 좌익 성향의 사람들이 국민보수주의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국민공동체 바깥의 이민자들로 인해서 복지비용이 증가하면서 복지국가 시스템의 경제적 토대가 점차 무너지자, 이민자들을 무임승차자로 규정하며 이민자에 대한 분노로 인해서 중도좌파가 국민보수주의로 전향하는 것이다. 이외에는 중도우파 성향의 자유보수주의가 보수화되면서 국민보수주의가 되는 경우도 흔하다. 유럽권에 횡행한 유럽회의주의적인 국민보수주의 정당의 배경에는 이런 점이 존재한다.[2][3]

1990년대 노태우 정부중국과 수교를 하고, 김영삼 정부우루과이 라운드 가입 등 세계화 전략에 따른 각종 시장 자유주의적인 개혁정책들을 펼치기 전까지, 이런 이념에 따라서 국민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해서 내셔널리즘적인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정책이 많이 이뤄졌다.

3. 대한민국에서 국민보수주의[편집]


초창기 한국의 보수세력은 1948년 체제가 탄생한 이후 반공주의를 핵심 이데올로기로 내세웠다. 이러한 현상은 서구권 보수주의의 발흥과정과도 비슷한데 애초에 보수주의의 시작은 급진주의에 반발하는 반동주의로서 시작되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초창기 보수주의는 군주정을 옹호하는 왕당파의 이데올로기로 작동하면서 그래서 이들은 서구의 근대화에 반발하면서 전통과 역사에 의존하여 기존질서의 유지를 정당화하였다. 한국의 보수세력의 경우에는 공산주의가 급진적 자유주의의 자리를 대신하였고 그 결과로서 반공주의를 자신들의 핵심 사회적 가치로 삼으며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초창기 한국의 보수세력이 초창기 유럽의 보수세력과 달랐던 점은 바로 근대화에 대한 태도였다. 한국의 보수주의는 이승만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1948년 체제 이전인 개화기 때부터 자유주의, 공화주의, 민주주의를 핵심 이데올로기로서 수용하였고 구한말 위정척사파의 정신적 계승자이자 왕정복고를 추구한 복벽파가 1919년 3.1 운동 이후 몰락하고 난 다음에는 민족주의와 적극적으로 결합하면서 근대화에 대해서 우호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 결과 초창기 한국의 보수세력의 핵심 과제는 자신들의 전통과 역사로부터 급격한 단절을 추구하면서 근대화를 추진했기 때문에 서구에서 말하는 철학적 보수주의를 수용할 수 없었다. 이로 인해서 한국의 보수세력에 대해서 보수주의가 아니라는 비판이 많았고 일정 부분 사실이었다. 그래서 강정인, 서희경 등의 연구자가 지적하다시피 민주당계 정당의 뿌리이자 이승만 정부의 농지개혁에 반발했던 반동주의적 정치세력이었던 한국민주당[4]을 보수주의 정치세력으로 보는 시각이 일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5] 그러나 여러 가지 역사적 맥락을 살펴볼 때 민주당계 정당이 보수주의 정치세력이라는 일각의 지적이 과잉된 이론주의라는 지적도 존재한다.

이후 1960년대 정치적 급변기를 겪으면서, 반공주의보수주의민족주의를 핵심 이데올로기로 삼은 한국의 보수세력은 박정희가 내세운 조국근대화라는 슬로건 아래에 '경제개발'이라고도 불리는 발전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위로부터의 근대화는 1980년대까지 이어졌다. 그러면서 발전주의는 경제적 내셔널리즘의 차원으로 발전하였고 한국의 보수세력은 산업화 시기 경제적 내셔널리즘을 기저로 개발지상주의 및 성장지향주의를 통해서 부르주아를 창조해냈다. 또 이 시기의 반공주의 이데올로기는 승공이라는 차원으로 발전하면서 생명력을 연장하였다. 이로 인해서 이 시기 한국의 보수주의는 반공주의와 경제적 내셔널리즘이 결합된 국민보수주의의 차원으로 발전했다.

1950~1970년대 형성된 부르주아 계급을 비롯한 중산층은 1980년대 이후 소유권과 개인의 자유를 바탕으로 하는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길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들 중산층 계급은 본격적으로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요구하기 시작했고, 한국의 보수세력은 단일대오로 움직이던 체제가 무너지기 시작하자 1980년대 후반 보수주의 이념에 대한 탐구와 함께 자유주의와의 제휴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민주화가 이뤄지고 난 이후, 김영삼상도동계라는 보수적인 자유주의 세력[6]을 포섭하는 1990년 3당 합당이 이뤄지면서, 국민주의는 소멸의 길을 걷게 되었다. 특히 2000년대 중반 한나라당에서 이뤄진 여러가지 변화의 움직임으로 소멸되었다고 여겨진다.[7]

2010년대부터 미국과 유럽의 극우 정치세력의 발흥 이후 한국에서도 국민보수주의[8]가 다시 부활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기는 하지만 명확하게 보인다고는 할 수 없다.


4. 인물[편집]


※ 논란이 있을 수 있는 만큼 대한민국의 정치인의 경우 민주화 이후 정치인들은 서술하지 말 것

5. 대표적 정당[편집]



과거의 정당으론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독일 국가인민당도 대표적이였다. 이 당은 독일 제국 시절 귀족층과 지주들로 이루어진 반동적 우익정당이였고 일부는 나치에 협력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의 경우 김구의 한국독립당과 이승만의 자유당과 박정희의 민주공화당이 대표적인 국민보수주의 정당이였다.


6.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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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흔히 국민이나 민족 등으로 번역된다. 내셔널리즘(Nationalism) 할때 그 네이션이다. [2] 전자의 경우로는 사회보수주의+국민보수주의이면서 동시에 복지국가의 존속을 지지하는 경제적 개입주의자들이 많은 유럽의 정당들이 있다. 후자의 경우로는 오스트리아 자유당과 독일을 위한 대안이 원래 자유보수주의 정당이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3] 다만 국민사회주의(좌파 민족주의)계열은 원새 전향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는 않다. 다만 스탈린주의적 극좌로 전향하는 경우는 흔하다.[4]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한 모든 민주당계 정당의 기원이다.[5] 하지만 민주당계 정당은 당시까지만 해도 분명히 우익 포지션을 가졌었지만, 제3공화국 이후 점진적으로 보수주의에서 탈각되어 한국의 보수정당과 이념적으로 위치가 역전되었고, 1980년대에는 중도에 가까운 포지션을 취했다가, 통일민주당의 분당을 기점으로 김영삼의 상도동계3당 합당을, 김대중의 동교동계는 1990년대부터 보수주의 노선에서 완전히 이탈하였다. 노무현에 이르러서는 김대중 시절보다 좌경화되어서 사회자유주의 노선을 띄다가 2010년대부터는 사실상 좌파 리버럴 정당으로 바뀌었다.[6] 보수자유주의 또는 자유보수주의로 볼 수 있는 정치세력[7] 반공주의의 강도도 약해졌으며 공동체 자유주의를 외치던 국민자유주의적인 흐름도 존재했고 신보수주의, 사회보수주의로 변화했다.[8] 트럼피즘을 문화적 보수주의로 보는 관점도 있어서 문화적 보수주의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국민보수주의가 그렇듯이 문화적 보수주의 또한 반드시 극우 이념이라는 것은 아니다.[9] 실제로 프랑코의 경우 보통 파시스트라고 칭하는 경우가 많지만 진짜로 파시스트인가 아닌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물론 어찌 됐든 간에 극우정치인임은 부정할 수 없다.[10] 유럽의 우파포퓰리즘 정당들 중에서는 제일 온건한 성향을 띄기 때문에 주로 극우 포퓰리즘 정당보다는 단순 우익 국민보수주의 정당으로만 평가받는다.[11] 우익대중주의적 태도를 견지하며 보수성향의 서민들의 지지를 지향하는 홍준표가 대표적인 국민보수주의 성향의 정치인으로 꼽힌다.[12] "Where Koike's new political party lost hope". The Japan Times. 13 November 2017. Retrieved 3 July 2020. One look at these three points may give the false impression that Kibo no To pursued liberal-leaning policies. But the rest of its campaign platform was totally conservative, calling for market fundamentalism on economic issues and featuring a nationalistic political agen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