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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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리즘 사상의 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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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별 내셔널리즘



1. 개요
2. 역사
3. 국가별 양상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 Nation State

근대 국가의 형태 중 하나로, 말 그대로 하나의 국민(nation)이 거주하는 국가로서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국가를 말한다. 민족국가라고도 하며, 대한민국도 국민국가이다. 국민국가의 이념이 거의 완벽히 실현되어 소수민족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국가를 단일민족국가라고 한다.

Nation State라는 용어는 한자어 '국민'의 의미로써 '한 국가의 국적을 가진 사람들'을 의미할 때도 있지만, '민족'(Volk)을 지칭할 수도 있는데, 후자의 경우 '혈통, 역사, 종교, 문화 등으로 구성될 수 있는 단일 정체성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Nation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전자는 시민 내셔널리즘 전통에 기반하며, 후자는 종족 내셔널리즘 전통에 기반한다.


2. 역사[편집]


봉건제 사회중세 유럽에서 영토국민귀족들의 재산에 불과했다. 실제로 계몽시대가 되기 전까지 유럽에서는 귀족과 왕실의 결혼관계에 따라 국경선이 바뀌기도 했다. 귀족들은 국가가 아닌 쌍무적 계약관계에 따라 자신이 충성하기로 되어있는 군주에게 충성을 했고, 기사들은 조국백성들을 신경쓰지 않고 자신이 모시는 주군을 따라 진영을 쉽게 바꾸었다. 이러한 경향은 동양과는 매우 다른 모양이었는데, 서양아랍 외의 지역에서는 민족에 대한 개념이 자리잡지 않던 시절에도 어느정도 민족정신이 존재한 반면, 서양에서는 종교신앙국적이나 개인이 향유하는 민족문화를 초월했기 때문에 다른 양상을 보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양상은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을 기점으로 깨지게 된다. 분명 영국에서 먼저 1688년에 명예혁명이 터짐으로써 기존 봉건적인 왕정이 주도권을 잃고 근대적 시민사회로 나아가기 시작했음은 맞지만 명예혁명은 귀족과 젠트리 중심의 상류층에 의한 혁명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기에 이 혁명이 국민주권이란 개념으로 바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프랑스의 대혁명은 인민대중들로부터 시작되어[1] 프랑스혁명은 국민주권이라는 개념을 국민대중에게 심어줄 수 있었고, 1804년에 성립된 나폴레옹제정이 세워질 때는 확고히 국민국가라는 개념이 프랑스 시민들에게 보편화되었다.

프랑스가 국민국가로 가장 먼저 발돋움을 할 수 있던 이유는 유럽의 각 민족들 중, 영국과 함께 가장 먼저 자신들을 문화권에 해당하는 지역들을 흡수해서 민족주의를 발흥시킬 수 있던 여건을 충족하고 있었고, 이미 공교육 제도를 활용하여 국민들의 동질성과 단결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이유가 있었다.

국민국가가 된 나폴레옹의 프랑스는 유럽 최초의 국민군을 이용하여 전 유럽을 석권했는데, 봉건적인 체계로 인하여 참패한 다른 국가들은 국민국가와 봉건국가의 체제적 격차를 실감하게 되었고, 프랑스군대에 의하여 민족주의가 퍼져서 차츰차츰 다른 유럽의 국가들도 국민국가의 개념을 받아들였다.

국민국가란 개념은 민족단위가 아닌 작위단위로 나뉘어져 있던 국가들을 하나로 묶어 버렸고, 민족주의, 자본주의, 산업 혁명의 힘으로 유럽의 국민국가들 중에 규모가 있던 국가들은 제국주의로 나아가기도 했다. 특히 빅토리아 시대벨 에포크 시대는 국민국가들의 절정기였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시기는 봉건적 사고방식이 유지되었던 최말기였고, 민족주의가 모든 가치를 뛰어 넘어서 올라가던 때였는데, 결국 국민국가가 보편화되자 각 민족들은 민족주의적 사고로 자신들의 민족국가 혹은 민족에 충성하여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겪게 되었고, 제1차 세계 대전때부터 국민국가들이 민족국가단위로 쪼개지는 일을 겪게 되기도 한다.

이렇게 진행된 이유는 봉건국가에서 국민국가로 진행되던 와중에 국가를 통일시켜야 하는 이나 아니면 후발주자은 국민국가로 진행할 때, 국민 중심의 요소를 제외하고 민족주의적 요소를 강화하여 국민중심이 아닌 민족중심의 국민국가를 건설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미 오랜 중앙집권과 통일된 민족국가를 가졌던 동양국가들은 민본주의라는 국민국가적 요소가 있었기 때문에 국민국가로의 진행을 생략하고 바로 민족국가로서 발돋움하려고 했다.

특히 이들 민족국가적 국민국가의 가장 대표적인 예시인 독일 제국은 오랜시간 분열되어 있었던 탓에 각 지역의 괴리감이 커서 국민국가의 요소를 거의다 버리고 강렬한 민족주의로 국민들을 묶었고, 이는 분명 독일민족의 통일을 제공했지만 이 민족주의적 애국심을 통제하지 못한 탓에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일으킨 원흉이 되기도 했다.

유럽의 주요 국민국가들 외에 다른 지역의 국가들은 국민국가로의 진행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기에 국민국가적 요소보다 민족국가적 요소를 충족하여 근대국가로 나아가려고 했다. 이들 나라들은 이미 제국주의를 행하는 서구 열강들에게 침략받고 있었기 때문에 국민적 열망은 자신들의 군주를 타도 해서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침략하고 우리민족을 억압하고 동포를 수탈하는 외세와 싸우는 것이었기 때문에 민족주의적 열기가 강해졌기 때문이다. 애초에 국민주권이란 것도 국가가 있어야 실현할 수 있는 것이고, 서양 밖의 지역은 오랜 종교통치를 겪은 바가 없는 지역이 대다수이기에 지역 왕정들이 오랜 시간동안 수렴진화로서 어느정도 민권과 타협하고 있었기에 왕정을 굳이 끌어내릴 필요도 없었다.[2]

어쨌거나 국민국가가 보편화된 시점인 벨 에포크 말에 유럽은 민족주의적 열기가 그들을 지배했다. 이러한 민족주의적 열기는 다민족국가들을 위협했는데, 특히 여러 주요민족과 타협해가면서 겨우 국민국가적 요소를 확립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나 국민국가는 흉내내는 수준이었으나, 민족주의적 요소를 튀르크인들에게 주입하여 겨우 제국을 유지하던 오스만 제국같은 다민족국가들은 크나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이러한 다민족제국들은 제1차 세계 대전이라는 범민족적 전쟁에서 패배한 뒤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졋다. 결국 봉건왕정군주정에 대한 요소가 사라진 1차 대전과 2차 대전 이후에는 국민국가라는 개념이 더이상 민족국가라는 개념을 포용할 수 없게 되었고, 다민족지역은 민족적 분쟁이라는 직격탄을 맞고 전란에 휘말리게 되었다.[3]

이렇게 유럽이 국민국가로 발전한 뒤 민족국가관이 지배하게 되어서 민족주의 중심으로 재편되는 동안, 동양은 오랜세월 이미 민족주의적 요소가 발전해온 지역인 만큼 기존의 민족국가를 근대화시키고 발전시키는데 주력했고, 이미 민족국가를 발전시켜왔던 지역은 곧바로 근대산업국가를 지향하여 국민국가 형성과 민족국가형성을 가볍게 끝내고 발전했는데, 냉전 이전에는 대표적으로 일본 제국이 있었고 냉전기에는 대한민국이 있었다.

21세기 현재, 부족 중심의 정치관이 너무 강한 지역을 제외한 대다수의 국가에서 국민국가란 개념은 당연한 개념이 되었고, 오히려 세계화와 맞물려서 국민국가관과 민족국가관을 배제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자유무역의 강화는 세계를 더욱더 끈끈하게 만들 것이고, 앞으로 국민국가의 개념도 큰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3. 국가별 양상[편집]


국민국가의 개념이 처음 등장했던 유럽 지역은 세 가지의 방향을 가지고 변화해 왔는데, 프랑스영국처럼 혁명을 통해 발전할 기회를 선행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고 국민국가의 개념을 정의해나가면서 천천히 발전할 여유가 있었던 곳은 국민주권의 개념을 처음 도입하여 최초의 민주주의 국가로서 발돋움할 수 있었다. 반면 독일이탈리아처럼 오랜시간 분열되어 있던 곳은 국민주권을 확립하는 것보다 통일을 해서 체급을 키우는 것이 중요했으므로 국민주권의 개념은 법리상의 개념으로 두고 민족주의를 중심으로 근대국가를 형성하려고 했다. 이들 국가는 봉건왕정이후의 절대군주정의 요소가 강하게 남아서 국민국가의 요소를 도입하는 것이 늦었기는 하지만 민족주의적 요소를 확립하기 위한 공교육 제도가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폴란드, 헝가리, 체코처럼 이민족의 지배를 받던 민족들은 독립국가를 수립하는 것이 우선적이었으므로 근대가 시작되었을 때, 민족주의 위주로 빠르게 정신무장을 했으며, 이들이 독립국가를 세웠을 때, 국민국가적 요소를 들이기만 하면 되었다. 이들이 자신들을 지배한 이민족 정부를 타도한 것은 프랑스나 영국의 봉건왕조를 타도했던 것과 같은 효과를 냈으므로 이들은 독립 직후 곧바로 국민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동유럽발칸 반도 국가들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민족주의를 대신하여 국민국가 형성에 기여했다. 동구권 국가들은 공산주의 이념에 기반한 국민국가를 세웠는데, 냉전 시대에는 사회주의 조국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이념이 국민들을 묶는데 큰 도움을 주었으나, 이념 대립의 시대끝나자 공산주의는 민족주의로 대체되었고, 그들의 국가는 개별 민족 단위로 해체되었다. 대표적으로 소련유고슬라비아가 있다.

아랍에서는 이슬람의 영향력이 너무 강해서 튀르키예를 제외하고는 민족주의가 발전하지 못했다. 다른 지역의 무슬림들이 민족주의와 이슬람을 어느정도 조화시킨 것에 비하여 이 지역은 이슬람이 너무 강세여서 민족주의가 국가를 지배하지 못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아랍은 민족주의+세속주의 세력과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 간의 알력다툼이 주를 이루었다. 그나마 냉전 시대에는 세속주의 공화국들이 우세했으나, 탈냉전 후, 미국이 아랍을 민주화시키겠다고 세속주의 국가들을 압박하거나 무너뜨리는 삽질을 하는 바람에 상당수의 아랍 국가(리비아, 이라크, 이집트 등)들에서 이슬람근본주의가 우세를 점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미 민족 정신이 강했고, 민본주의왕정으로 국민국가적 요소를 가지고 있던 동아시아제국주의 시대부터 근대국가 창출이 민족적 사명이었다. 가장 먼저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 제국만이 제국주의 열강 자리를 얻었고, 실패한 조선, 베트남[4] 등은 식민지를 겪고 해방되는 절차를 겪었다. 해방된 이후에도 가장 중요한 사명은 조국 근대화였고 한국대만, 중국 등이 선진 공업화를 달성하는 등, 유럽에 못지 않은 주요 발전된 국민국가 지역으로 발돋움했다.

아메리카 대륙은 국민국가로서 발돋움했지만 여러 민족이 이민을 오면서 형성된 다민족국가로서 민족국가로 바뀌지는 않았다. 이들 국가들은 국민국가이면서 민족국가가 아닌 대표적인 지역이 되었는데, 북아메리카는 이를 잘 활용하여 큰 발전을 이룩했으나, 남아메리카는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처참하게 몰락했다.[5]

4.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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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론 젠트리와 귀족간의 알력다툼이라는 주장도 있다.[2] 특히 한자문화권은 과거제를 실시하여 근대관료제와 비슷한 체계적인 관료제를 만들어낸 이후다. 조선만 하더라도 지배층은 귀족이 아니라 지식인 계급인 사대부였다.[3] 대표적으로 유고내전이 있다.[4] 지리적으로는 동남아시아에 속하지만, 문화적으로는 동아시아에 가깝다.[5] 남미 국가들은 카우디요토지에 기반한 전통적 지주 계급의 주도하에 독립을 달성했기에 탈식민화 이후에도 그들의 영향력이 막강했고, 그들이 자신들의 경제적 기반을 지키기 위해 토지개혁을 저지하여 산업화에 발목을 잡은 것이 몰락의 요인이 되었다. 또한 잦은 군부 쿠데타로 정치적 혼란까지 야기되어 장기적인 경제개발을 추진하기 어려웠다는 점 역시 발목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