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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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연구과)
당시 구제전문학교단기대학 · 고등전문학교 과정에 상당하지만 공식 학위가 나오지 않는 고등교육기관.
하위 틀: 일제강점기 교육기관






舊制中學校 / 旧制中学校 (きゅうせいちゅうがっこう)




1. 개요[편집]


일본 제국의 영토에 설치되어 있던 5년제 중등교육기관을 말한다. 오늘날의(新制)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합쳐놓은 과정에 해당하며, 중등교육학교라고 하여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합쳐 6년 과정으로 운영되는 곳이 있는데(예시) 바로 구제중학교의 체계와 거의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입학 자격은 1907년 의무교육 연장 조치로서 수학기간이 6년으로 연장된 소학교 과정을 졸업하고 연령이 12세 이상인 사람이었다. 중학교 5년 과정을 졸업하면 구제고등학교,[1] 대학예과, 구제대학 부속전문부, 고등사범학교, 구제전문학교, 육군사관학교, 해군병학교고등교육기관에 진학할 수 있었다.

패전 후 연합군 최고사령부 점령 통치 시기의 학제 개혁 과정에서 중등전기교육을 담당하는 신제(新制) 중학교(3년 과정)와 중등후기교육을 담당하는 신제(新制) 고등학교(3년 과정)로 분리되었다. 구제 경기중학교 → 경기중학교·경기고등학교, 구제 카이세이중학교 → 신제 카이세이 중학교 · 고등학교와 같이 개편 분할되었다.

구제중학교 이상 단계에는 남녀공학이 없었으므로, 중학교는 전부 남학교였고 여학교는 고등여학교라 지칭했으며, 조선인 학교로[2] 고등보통학교(남학교)-여자고등보통학교(여학교)가 있었다. 이와 함께 중등교육기관에 속하는 학교로 실업학교(공업학교, 농림학교, 상업학교, 수산학교 등)가 있었다.

구제고등학교와 함께 당시 일본의 교육 제도가 미국식 12학년제가 아닌 유럽의 6-5-3-4 학제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다이쇼 시대에 진학 희망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일제는 수학 연한을 단축을 시도했다. 세부적으로는 중학교(5년)와 고등학교(3년)를 합친 7년제 고등학교(심상과 4년, 고등과 3년)를 만들어 중학교 과정에서 1년을 절약하려 했으나(참조), 기존 3년제 구제고등학교가 계속 표준으로 남았고 구제고교 입학생의 소수(10% 가량)만 중학교 4년 수료 후 합격하는 등 해당 시도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며 1930년대에 들어서면 7년제 고교들도 심상과를 폐지하고 3년제로 이행하며 완전히 실패하였다. 또 1937년 중일전쟁 개전 후 일제 말기로 접어든 1941년 국민학교령이 공포되며 초등교육 6년을 마친 후 국민학교 고등과(2년제)가 설치되었으나 1945년 종전시까지 실제로는 6-5-3-4 형태가 보편적이었다. 2차대전 이전의 일본 교육과정 도표(일본어) 참조.


2. 상세[편집]


당시 조선반도에는 전국 각지의 거점 도시지역에 일본인을 위한 중학교가 설립되었으며(대표적인 예가 경성중학교(현 서울고등학교), 대구중학교(현 대구중학교), 광주중학교(현 광주고등학교)[3] 조선인에게는 입학이 허락되지 않았고 대신 격을 낮춘 고등보통학교를 세워 입학시켰다. 당시 중앙, 휘문, 양정, 보성 등의 사립학교들도 마찬가지로 중학교로 인정되지 못하고 고등보통학교 체제로 운영되다가, 1938년 <조선교육령>이 개정되면서 이른바 <내선일체>를 취지로 전국의 고등보통학교를 중학교화 하였다. 해방 후인 1946년 군정청하에서 6년제 중학교로 개편되었다가, 1951년 학제 개혁으로 각각 3학년의 신제중학교와 신제고등학교로 분리 개편되었다.

당시 과목은 1, 2학년 때 수신, 국어 및 한문, 외국어[4], 역사, 지리, 수학, 박물, 도화, 창가, 체조 10과목이었고, 3학년에서 창가가 빠지는 대신 물리 및 화학이 추가되고 4학년에는 실업이 추가돼 11과목이었다가 5학년에서 박물이 빠지고 법제와 경제가 추가되었다. 당시의 박물은 현재의 생명과학과 지구과학이었다. 조선어는 수의과목[5]이었다.

3. 목록[편집]


'공립'이란 단어가 없으면 사립학교이다. 고보였던 학교는 #표시. 목록출처는 일어위백.


3.1. 경기도[편집]


대한제국 칙령 제11호로 중학교 심상과 4년, 고등과 3년 관제공포 (1899) → 신학제에 의하여 관립한성중학교 심상과[6]를 현 종로구 화동 1번지에[7] 창설 → 관립한성고등학교로 개칭 (1906) → 경성고등보통학교(1911년 개교) →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로 개칭(1921년[8]) → 경기공립중학교 (1938년) → 경기중학교&경기고등학교로 분리(1951년) → 경기중학교 폐교(1971년[A])


3.2. 강원도[편집]




3.3. 충청북도[편집]




3.4. 충청남도[편집]




3.5. 전라북도[편집]


  • 군산공립중학교
  • 전주북공립중학교#
  • 전주남공립중학교[9]
  • 고창중학교# : 원래 사립학교였는데 공립으로 전환되었다.


3.6. 전라남도[편집]




3.7. 경상북도[편집]




3.8. 경상남도[편집]




3.9. 황해도[편집]


  • 해주동공립중학교#
  • 해주서공립중학교
  • 안악공립중학교#


3.10. 평안남도[편집]




3.11. 평안북도[편집]


  • 신의주공립중학교
  • 신의주동공립중학교#
  • 강계공립중학교
  • 오산중학교#
  • 평안중학교
  • 선천중학교


3.12. 함경남도[편집]


  • 원산공립중학교
  • 함흥공립중학교
  • 함남공립중학교#
  • 북청공립중학교
  • 함흥일출중학교(←영생중학교)# :


3.13. 함경북도[편집]


  • 나남공립중학교
  • 경성(鏡城)공립중학교# - 옛 경성고보 건물은 KBS에서 2000년 11월 14일 방영한 <북한리포트 서울에서 평양까지 - 경성군편>에서 '수성고등중학교'로 바뀐 채 남아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 청진공립중학교
  • 나진공립중학교
  • 성진공립중학교


3.14. 일본 본토[편집]






4. 기타[편집]


  • 경신중학교: 종교적 이유로 고등보통학교 인가를 거부하여 지정학교로 운영함. 광복 직후 6년제 경신중학교를 거쳐 현 경신고등학교가 되었음.
  • 중동중학교: 1906년 관립한어학교에서 1907년 중동야학교로 시작되어 야간반 성인교육에 역점을 두었던 이유로 일제의 고등보통학교 인가를 못받았으나 광복 직후 6년제 중동중학교를 거쳐 현 중동고등학교가 되었음.
  • 성동공립중학교: 종교적인 이유로 고등보통학교 인가를 못받았으나 광복 직후 6년제 성동공립중학교를 거쳐 현 성동고등학교가 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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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19년 제2차 고등학교령 시행 후에는 중학교 4년 수료 이후부터 입학시험 응시가능.[2] 정확하게는 '일본어를 상용하지 않는 자'를 대상으로 한 학교로, 조선인이라도 일본어가 모어 수준으로 능숙한 경우에는 보통학교-고등보통학교 코스가 아니라 일본인과 동일하게 소학교-심상중학교로 진학할 수 있었다.[3] 유명한 광주학생항일운동의 시작은 광주중학교 일본인 학생들의 조선인 여학생 희롱에 대한 광주고등보통학교(현 광주제일고등학교) 조선인 학생들의 항의에서 비롯된 패싸움이었다.[4]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5] 수의과목이란 학생들에게 가르쳐도 좋고 안 가르쳐도 좋다는 과목이다. 일종의 선택과목인 것이다.[6] 수업연한 7년이나 4년간 심상과[7]서울특별시교육청 정독도서관[8] 제2고등보통학교(현 경복고등학교)가 생겼기 때문이다.[A] 중학교 평준화의 일환으로 명문중학교 폐쇄조치[9] 현재 전주제일고와 남중의 전신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