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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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1.1. 개요
1.2. 같이보기


1. [편집]



1.1. 개요[편집]



선진시대 중국에서 군주의 권위를 상징했던 . 줄여서 정(鼎)이라고도 불렀다.

전설에 따르면 하나라의 시조인 아홉 지방의 제후들이 바친 청동을 모아 만든 솥 아홉 개였는데, 천자가 하늘에 제사를 올릴 때 구정에 제물을 삶아 바쳤다.

하나라가 멸망하자 상나라의 소유가 되었다. 상나라 무정 때 시조 탕왕에게 제사를 올렸다. 이튿날 이 날아와 정의 손잡이에 앉아 구슬피 울자 무정은 탕이 현신한 것을 알고 겁먹었지만 신하인 조기가 정사를 잘 다스린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조언했고, 무정은 조언대로 쇠퇴하던 상나라를 중흥시켰다.

상나라가 멸망하자 주나라의 소유가 되었다가 서주 성왕 때 주공 희단이 구정을 낙양으로 옮겨 새 도읍으로 정했다.

이후 춘추시대초 장왕은 스스로를 공(公)이 아니라 왕(王)으로 칭하면서 주나라 천자의 권위에 도전했다. 기원전 606년 장왕이 주나라 도성 바깥에 군사를 이끌고 와서 동주의 정왕에게 구정의 무게를 물어보았다. 사마천사기에도 나오는 고사인데, 고우영 만화 십팔사략에는 이렇게 묘사되었다.

초 장왕 "구정의 무게가 얼마나 됩니까?"

(내가 그 솥을 초나라로 옮겨 가서 새로운 천자가 되겠다)

주 정왕 "그런 것은 묻는 게 아닙니다."

(천자의 권위는 아직도 주나라에 있소이다.)

초 장왕 "우리 초나라는 부러진 창 끝만 모아도 구정을 세 개쯤은 만들 수 있다오."

(초나라의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주나라 정도는 금방 밟아버릴 수 있으니 알아서 기어라)


다만 사기에는 십팔사략과 좀 다르게 기술되었다. 초 장왕이 구정의 무게를 물어보며 자신이 구정을 가져갈 수 있다면서 천하는 자신의 것이라고 협박했다. 이에 왕손 만[1]이 구정의 무게는 힘이 아닌 덕에 따라 달라진다며 반박하자 초 장왕이 군사를 이끌고 물러났다.

德之休明 雖小必重 其姦回昏亂 雖大必輕

덕이 밝으면 구정은 작아도 무거워서 옮길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혼란하면 구정은 커도 가벼워 쉽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아직 왕(장왕)의 때가 아니니 구정의 경중을 묻지 마시지요.


전국시대 때인 기원전 307년 8월에는 진(秦) 무왕이 낙읍을 방문한 일이 있었는데, 그는 힘이 장사였던지라 맹열과 함께 9정을 들어올리는 것으로 서로 힘을 비교하다가 무왕의 정강이뼈가 부러지는 참사가 일어났고, 이 일로 무왕은 이틀도 안 되어서 사망했다.

기원전 256년에 진 무왕의 아우였던 소양왕이 주나라를 멸망시키면서 진(秦)나라의 소유가 되었는데, 함양으로 옮기려던 도중 한 개를 사수에 빠뜨리고 나머지도 사라졌다. 진시황이 구정을 확보하기 위해 목욕재계하고 사당에서 제사를 지냈으며, 100여 명을 동원해 사수로 보내 찾도록 했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다른 기록에는 사수에서 하나를 잃어버린 후 나머지 8개는 그대로 함양으로 가지고 갔으나 진나라가 멸망하고 함양에 입성한 서초패왕 항우팽성으로 돌아가는 길에 함양에 있던 솥 8개를 양어깨에 들고 초나라로 가져갔으나 초한대전의 혼란으로 분실되었다고 한다.

이미 진나라 후기에 행방이 묘연해져서 만약 구정을 찾는다면 전세계 고고학계가 뒤집힐 정도로 가치가 엄청날 것이다. 혹여 한나라 시대에 만든 레플리카라도 있다면 설사 진품이 아니더라도 가치는 어마어마 할 것이다.

후대의 황제들도 구정의 권위를 인용하였기에 복제품을 만들어 궁궐에 두었다. 현대에는 중국 베이징자금성 전각 앞에 구정을 닮은 세 발 무쇠 솥이 귀퉁이마다 놓여 있다.


1.2. 같이보기[편집]




2. [편집]


화학 용어로, 여러 개의 결정이 한 점에서 부챗살 모양으로 배열된 구상(球狀)의 다결정을 뜻한다. 고분자를 녹이거나 짙은 용액에서 결정을 만들 때 볼 수 있는 형태로, 미세한 결정핵을 심으로 하여 성장한다.

[1] 王孫 滿. 양왕의 손자로, 정왕의 사촌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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