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수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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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제6대 군주이자 건길지. 제5대 초고왕의 장남.
제5대 초고왕의 맏아들로 키가 7척[1] 에 풍채가 빼어나 비범했다고 한다. 제7대 사반왕은 그의 맏아들이고 제11대 비류왕은 둘째 아들이라고는 하는데 그대로 믿으면 곤란하다. 온조(溫祚)계 왕족 출신. 다만 삼국사기상 기사들은 여전히 기년이 맞지 않고 엉망진창이다. 이 구수왕이 연소한 후계자들만 두고 세상을 떠나기에 이후 비류계로 추정되는 고이왕계가 집권하게 된다.
구수왕의 치세는 말갈, 신라 등과의 전투로 얼룩져 있다. 다만 이 말갈은 우리가 아는 만주의 그 숙신계 말갈이 아니라 일명 가짜말갈이라는 강원도, 황해도의 낙랑군 및 대방군에게 복속된 옛 마한 거수국들이다. 백제가 맞서 싸운 가짜말갈들은 기원후 246년 기리영 전투 이후 발생하므로 적어도 대말갈 관련 기사는 기년이 소급되어 있는 것들이다. 게다가 이 시기 백제는 아예 위례성에 나타나기도 전이었다.
한편 이 기사에 나오는 신라는 경주가 중심지인 우리가 아는 신라가 아니라 나중에 신라로 흡수될 진한 계통의 나라를 신라로 소급해 기록한 것이라는 설도 있으나 더욱더 설득력이 적다. 고고학적으로 보면 아직 한성에 백제가 나타나기도 전이라 아예 진한 계통 소국과 뭘 어쩔 단계도 아니기 때문이다. 후대 기록이 구수왕 때 일로 소급되어 적혀졌을 개연성이 높다.
《삼국사기》 <구수왕 본기>
一年 구수왕이 즉위하다
三年秋八月 말갈이 적현성을 공격하다
四年春二月 사도성 옆에 두 곳의 목책을 세우다
五年 군사를 보내 신라의 장산성을 공격하다
七年冬十月 왕성 서문에 화재가 발생하다
八年夏五月 동쪽 지방에 홍수가 발생하다
八年夏六月 일식이 나타나다
八年秋八月 한수 서쪽에서 군사를 사열하다
九年春二月 제방을 수축하다
九年春三月 농사를 권장하다
九年夏六月 서울에 물고기와 비가 함께 떨어지다
九年冬十月 신라의 우두진을 공격하다
九年冬十一月 일식이 나타나다
十一年秋七月 신라의 연진이 침입하다
十一年冬十月 태백성이 낮에 나타나다
十四年春三月 봄에 우박이 내리다
十四年夏四月 큰 가뭄이 들어 동명왕의 사당에 제사지내다
十六年冬十月 왕이 한천에서 사냥하다
十六年冬十一月 전염병이 돌고, 말갈에게 대패하다
十八年夏四月 밤알 크기의 우박이 내리다
二十一年 구수왕이 죽다
1. 개요[편집]
백제의 제6대 군주이자 건길지. 제5대 초고왕의 장남.
2. 생애[편집]
仇首王【或云貴須】肖古王之長子 身長七尺 威儀秀異 肖古在位四十九年薨 卽位
구수왕(仇首王)【혹은 귀수(貴須)라고도 하였다.】은 초고왕(肖古王)의 맏아들이다. 키가 7척(尺)이요 풍채가 뛰어났다. 초고가 재위 49년에 죽자 왕위에 올랐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제5대 초고왕의 맏아들로 키가 7척[1] 에 풍채가 빼어나 비범했다고 한다. 제7대 사반왕은 그의 맏아들이고 제11대 비류왕은 둘째 아들이라고는 하는데 그대로 믿으면 곤란하다. 온조(溫祚)계 왕족 출신. 다만 삼국사기상 기사들은 여전히 기년이 맞지 않고 엉망진창이다. 이 구수왕이 연소한 후계자들만 두고 세상을 떠나기에 이후 비류계로 추정되는 고이왕계가 집권하게 된다.
- 216년 음력 8월, 말갈이 백제의 적현성(赤峴城)[2] 을 침범하였으나 성주가 굳게 지켜 막아냈고, 구수왕이 친히 기병 800여 명을 이끌고 말갈을 추격하여 사도성(沙道城) 아래에서 크게 이겼다.
- 217년 음력 2월, 사도성 옆에 2개의 목책을 설치하였는데 동서로 서로 떨어진 거리가 약 10리였다. 적현성(赤峴城)의 군졸을 나누어 보내 지키게 하였다.
- 218년, 왕이 군사를 보내어 신라의 장산성(獐山城)을 포위하자 신라 내해 이사금이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공격하여 백제군이 패하였다.
- 220년, 백제 왕성(王城)에 큰불이 나자 말갈이 북쪽 변방을 침략하였다. 하지만 군사를 보내어 막아내었다.
- 222년 음력 10월, 군사를 일으켜 신라의 우두진(牛頭珍)을 침범하여 신라 장수 충훤이 이끄는 군사 5,000여 명을 웅곡(熊谷)에서 크게 이겼다.
- 224년 음력 7월, 신라의 일길찬(一吉湌) 연진(蓮珍)이 쳐들어 왔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 229년, 말갈이 우곡(牛谷) 경계를 침범해 사람과 재물을 노략질하여 왕이 정예군 300여 명을 보내 막게 하였으나 적의 복병에 걸려 크게 패하였다.
구수왕의 치세는 말갈, 신라 등과의 전투로 얼룩져 있다. 다만 이 말갈은 우리가 아는 만주의 그 숙신계 말갈이 아니라 일명 가짜말갈이라는 강원도, 황해도의 낙랑군 및 대방군에게 복속된 옛 마한 거수국들이다. 백제가 맞서 싸운 가짜말갈들은 기원후 246년 기리영 전투 이후 발생하므로 적어도 대말갈 관련 기사는 기년이 소급되어 있는 것들이다. 게다가 이 시기 백제는 아예 위례성에 나타나기도 전이었다.
한편 이 기사에 나오는 신라는 경주가 중심지인 우리가 아는 신라가 아니라 나중에 신라로 흡수될 진한 계통의 나라를 신라로 소급해 기록한 것이라는 설도 있으나 더욱더 설득력이 적다. 고고학적으로 보면 아직 한성에 백제가 나타나기도 전이라 아예 진한 계통 소국과 뭘 어쩔 단계도 아니기 때문이다. 후대 기록이 구수왕 때 일로 소급되어 적혀졌을 개연성이 높다.
3. 기타[편집]
- 후손으로는 근구수왕이 있다. 초고왕과 근초고왕의 관계처럼 근구수왕도 구수왕 2세를 뜻한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족보상 근구수왕은 구수왕의 증손자인데 일단 적어도 근초고왕은 초고왕의 후손일 개연성이 높고 근구수왕도 일부러 구수왕 2세를 자처한 이상, 생각보다 신뢰도는 적진 않을거라 생각된다.
4. 《삼국사기》 기록[편집]
《삼국사기》 <구수왕 본기>
一年 구수왕이 즉위하다
三年秋八月 말갈이 적현성을 공격하다
四年春二月 사도성 옆에 두 곳의 목책을 세우다
五年 군사를 보내 신라의 장산성을 공격하다
七年冬十月 왕성 서문에 화재가 발생하다
八年夏五月 동쪽 지방에 홍수가 발생하다
八年夏六月 일식이 나타나다
八年秋八月 한수 서쪽에서 군사를 사열하다
九年春二月 제방을 수축하다
九年春三月 농사를 권장하다
九年夏六月 서울에 물고기와 비가 함께 떨어지다
九年冬十月 신라의 우두진을 공격하다
九年冬十一月 일식이 나타나다
十一年秋七月 신라의 연진이 침입하다
十一年冬十月 태백성이 낮에 나타나다
十四年春三月 봄에 우박이 내리다
十四年夏四月 큰 가뭄이 들어 동명왕의 사당에 제사지내다
十六年冬十月 왕이 한천에서 사냥하다
十六年冬十一月 전염병이 돌고, 말갈에게 대패하다
十八年夏四月 밤알 크기의 우박이 내리다
二十一年 구수왕이 죽다
5. 둘러보기[편집]
[1] 7척을 당시 척단위인 24.5cm로 환산하면 172cm라고 한다. 당시로서는 키가 큰 편인지라 아동 만화에서는 재단사가 선 상태로는 키를 재기 어려워 누운 상태에서 키를 쟀다고 한다.[2] 적현성은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일대라는 설과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일대라는 설 2개가 있다. 문제는 초고왕 시대에 적성 일대는 신분활국이 있었고, 세종시 일대에는 마한의 맹주 목지국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는 것이다. 초고왕과 구수왕 시절의 백제는 적성이든 세종시든 어느 쪽이든 간에 백제의 영토로 지배하지 못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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