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남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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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구남회.jpg

이명
구남회(具南會)
본관
능성 구씨[1]
출생
1901년 7월 3일
경상남도 영산군 읍내면 동리
(現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 동리)
사망
1936년 7월 27일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5묘역-34호
상훈
대통령표창 추서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대한민국독립유공자.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제헌 국회의원을 지낸 독립유공자 구중회는 그의 친형이다.


2. 생애[편집]


구남회는 1901년 7월 3일 경상남도 영산군 읍내면(현 창녕군 영산면) 동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13일 창녕군 영산면에서 형 구중회·장진수 등과 같이 결사단(決死團)을 조직하여 '독립운동에서 후퇴하는 자는 생명을 빼앗긴다'는 맹세서에 서명하고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계획하였다. 그들은 태극기와 선언문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배부하고 다수의 군중을 규합하여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는 등 시위를 전개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해 5월 10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8개월형을 선고받아 이에 공소하였으며, 6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심 판결이 부분 취소되었으나 형은 그대로 8개월로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옥고의 여독으로 고통받다가 1936년 7월 27일 사망하였다.

199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그의 유해는 2014년 11월 2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5묘역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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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6세 회(會) 선(善) 항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