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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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프런트 경력
3. 해설자 경력
4. 행정가 경력
5. 수상 경력
6. 그 외



1. 개요[편집]


대한민국야구인. 1957년생. 67세. 프로선수 경력은 없으나 오랫동안 프런트, 해설, 행정가 등을 역임해왔다.


2. 프런트 경력[편집]


배명중학교배명고등학교 재학 시절까지 내야수(2루수)로 뛴 야구선수였지만 고교 3학년 때 늑막염을 앓으면서 선수로서의 길이 막혔다. 졸업 후 잠시 허송세월하면서도 야구를 잊지 못해 음료수를 사들고 모교 야구부 경기를 따라다녔다고 한다. 그러다 국가유공자인 아버지 덕에 OB맥주의 일반 사원으로 입사해[1] 사내 사회인 야구팀에 들어가서 팀의 핵심 선수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1982년 한국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창단한 OB 베어스의 매니저로 일하게 됐다.[2] 1군 매니저로 시작해 운영차장, 홍보팀장, 스카우트팀장[3] 등 OB 베어스 프런트 각 분야를 두루 거쳤다. 그러나 1997년 외환 위기의 영향으로 구단 프런트에 대한 구조조정이 이뤄지면서 OB에서 퇴사했다.


3. 해설자 경력[편집]


OB 베어스 퇴사 후 CBS 라디오에서 프로야구 해설위원으로서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iTV, OBS, Xports 등 다양한 채널을 거쳐 현재는 IB SPORTS에서 황금사자기, 봉황대기 등 고교야구 대회 해설을 맡고 있다.

2019년부터 베어스포티비베어스 파크 2군 경기 생중계 해설도 맡는다.


4. 행정가 경력[편집]


은퇴 야구인 단체인 일구회가 2010년 사단법인으로 출범할 당시부터 현재까지 사무총장으로 일했고, 그 외에도 대한야구협회 홍보이사, KBO 상벌위원 등을 역임한 바 있다.


5. 수상 경력[편집]


  • KBO '총재 공로상'
  • 두산그룹 '회장 공로상'
  • 스포츠서울 '해설 평론상'

6. 그 외[편집]



  • OB 베어스에서 퇴사한 후 암 투병을 한 적이 있고 이 때의 계기로 독실한 개신교 교인이 됐다고 한다.

  • 인터넷이 보편화되기 전인 1998년에 개인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해 운영했었고, 이 후 트위터가 흥하던 2010년대 초반에는 트위터 계정을 개설했었다.[4]

[1] 구경백이 직접 쓴 책에 보면 "OB맥주에 다닐 때 바가지로 공장 안에 있는 맥주를 마음껏 퍼마셨다"고 술회했는데 훗날 그가 암을 얻은 원인 중에 하나도 과음이었다고 한다.[2] 보직이 1군 매니저이기도 했고 당시 직급은 주무였다. 원년 한국시리즈를 치를때 이광환 코치와 윤동균, 김우열 선수등이 경기 끝나고 회식할때마다 물주 역할도 했었는데 3차전부터 6차전까지 내리 4연승을 거두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었다.[3] 이 시기에 부산상고의 무명 좌투수 이혜천을 과감하게 드래프트 2차 1순위로 픽해 OB~두산의 좌완 불펜 잔혹사에 종지부를 찍었다.[4] 현재는 페이스북 계정을 개설해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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