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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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설치
3. 와해



1. 개요[편집]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설치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교통부 산하의 통신연락 기구이다. 연통제와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자금 수합 임무를 맡았다.


2. 설치[편집]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수립 이후 국내외 동포들을 대상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을 선전하고 독립운동 단체 및 독립운동가와의 연락 및 접촉, 독립운동 자금 수합을 위한 조직으로 교통국을 설치하였다.

교통국은 1919년 5월 임시정부 내무차관 조완구가 교통부에 안전한 기관 4개를 설치한다는 시정방침을 밝혔는데, 교통부도 여기에 포함되었다. 교통국은 1919년 5월 12일 교통부 안동지부 사무국[1]을 영국 국적의 조지 쇼(George L. Shaw)가 경영하는 무역회사 이륭양행에 설치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 같은 해 8월에 임시지방교통사무국장정을 공표하면서 교통국 설치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였다.

임시지방교통사무국장정에 의하면, 교통총장이 교통국의 위치를 설정하고 교통사무국이 우편사무와 독립운동가의 접선 사무를 겸임하며, 직원은 교통국장 1명, 참사 2명, 서기와 통신원을 약간 두었다. 이후 1920년 1월 13일에 임시지방교통사무국장정을 개정하여, 교통국장과 참사를 교통총장의 추천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서기와 통신원은 교통국장이 직접 선정하는 것으로 개정되었다.

교통국은 만주 지역을 중심으로 함경남도, 황해도, 평안도 지방, 서울에 설치되었지만, 그 이외의 지역은 일제의 철저한 감시로 인해 교통국이 설치되지 못하였다.


3. 와해[편집]


연통제와 함께 설치된 교통국은 국내 독립운동 세력 결집과 자금 모집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일제 당국의 철저한 감시와 색출로 많은 탄압을 받았다. 교통국은 1922년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통신기관으로 존속하였으나 조직이 이미 여러 차례 와해되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결국 독립운동을 위한 자금줄이 끊겨버렸다. 이 때문에 한동안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역량이 위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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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상북도 안동시가 아니라 오늘날 단둥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