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국립박물관

덤프버전 :



파일:교토국립박물관.jpg

평성지신관(平成知新館/헤이세이치신칸)

파일:museums03-c94eadba2c31b4ad4eca8460a564e5a3.jpg

명치고도관(明治古都館/메이지코토칸)

京都国立博物館 / Kyoto National Museum

1. 개요
2. 전시
3. 한국 관련 유물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홈페이지

교토국립박물관은 일본 교토부(京都府) 교토시(京都市) 히가시야마구(東山区) 차야초(茶屋町) 527에 있는 일본의 국립박물관이다.

1889년 5월 박물관 설립이 결정되어 1895년 10월 전시관(구관)을 준공하고, 1897년 5월에 정식 개관하였다. 최초의 명칭은 제국교토박물관(帝国京都博物館)이었으나 이후 제실교토박물관(京都帝室博物館, 1900)을 거쳐, 1924년 히로히토 황태자가 구니노미야 나가코와 결혼한 것을 기념하여 명칭을 은사교토박물관(恩賜京都博物館)으로 바꾸었다. 교토국립박물관으로의 개정은 태평양 전쟁 패전 이후인 1952년 4월 이루어졌다.

본래 이 자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도다이지 대불을 능가하는 불상을 만들고 세운 거대한 호코지라는 사찰과 히데요시를 신으로 모신 도요쿠니신사의 터였다. 그러나 에도 시대 지속적인 탄압으로 황폐화되었고 대신 그 자리에 역시 천황의 위패를 모신 신사가 있었으나 신불분리 이후 그 신사가 폐지되면서 박물관이 들어서게 되었다.

최초로 건립된 구관(明治古都館)은 현재 특별전시관 및 학예연구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유물 전시와 상설 관람은 2014년 개관한 신관(平成知新館)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박물관 관람 시에는 일본어 외에도 한국어, 영어, 중국어, 프랑스어 해설기를 이용할 수 있는데 이용료는 500엔이다.

입장료의 경우 일반 700엔, 대학생의 경우 그 반값인 350엔이다.


2. 전시[편집]


전시는 2014년 개관한 신관에서 거의 도맡아 하고 있다. 구관은 2014년 이후 한번 특별전 개최 때 사용된 적이 있지만 현재는 사실상 사용되지 않는다.

신관은 3층으로 3층부터 1층으로 내려오는 동선으로 되어 있는데, 3층에는 고고유물과 도자, 2층에는 회화, 3층에는 조각과 각종 공예, 서적들이 전시되고 있다. 전체가 주제별 분류인 편. 특별전이 있을 경우 신관 전체를 완전히 비우고 상설전은 하지 않는다.

현재 국보 27건, 중요문화재 181건을 소장하고 있으며 사카모토 료마의 유품과 관련 유물을 집중적으로 소장하고 있기도 하다.

구관과 정문, 매표소 두곳은 그 자체가 메이지 시대의 걸작으로서 중요문화재 건조물 제1707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야외전시장에는 오귀스트 로댕생각하는 사람 원본 중의 하나가 서 있다.[1] 다만 이게 교토의 분위기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받는다.

JR그룹 교토역 중앙 출입구(북측) 앞 버스 승강장에서 교토시 교통국에서 운영하는 교토 시영 버스 206, 208번을 이용하면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철도를 이용할 경우에는 케이한 본선 시치조역을 이용하면 된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하며, 입장료는 성인 기준 520엔이지만 대학생의 경우 학생증을 제시하면 50% 할인이 된다. 한국 학생증도 가능하다.

2016년 10월에 특별전으로 사카모토 료마전을 했었다. 고치현, 나가사키현 등에서 모은 료마 관련의 유물들이 모여 대성황을 이루었다. 2017년 가을에는 국보전을 열어 전국의 국보 200여 점을 모았는데, 개관시간을 평소 10시에서 9시로 당겼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7시 반부터 줄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주요 소장품은 교토국립박물관/중요문화재 참조.

교토국립박물관이 워낙 독보적이고 주변에 유명 관광지가 많아, 정작 교토의 역사를 전시한 교토문화박물관교토부립종합자료관은 거의 아는 사람이 없다.

박물관 주변의 관광지로는 산주산겐도(三十三間堂), 도요쿠니 신사(豊国神社), 호코지(方広寺) 등이 있다. 그 외에도 도요쿠니 신사 건너편에는 지난 날 아픈 역사를 보여주는 귀무덤(耳塚)이 있다.


3. 한국 관련 유물[편집]


이번 조사와 관련된 고구려 유물은 모두 4점이다. 원래 고구려 수막새 8점이라고 보고된 바 있으나 조사 결과 나머지는 낙랑군 와당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4점의 고구려 와당 중에서도 1점은 안학궁 출토품으로 여겨지는데 이것이 고구려 와당인지, 아니면 시기가 좀 더 내려오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들 와당은 1984년에 쿠마가야 나오유키[直之]가 기증한 것으로 확인되나 구체적인 출토지와 입수경위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고구려 와당은 문양 형태로 보아 모두 평양에서 채집된 것으로 보인다. 쿠마가야가 기증한 다른 와당도 대개 평양에서 출토된 것이기에 그러한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특이한 것은 와당 배면에 콘크리트가 부착된 것이 많다는 것이다. 또한 와당 배면의 곳곳에는 톱질을 한 흔적이 관찰되는데 이는 부착된 콘크리트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와당을 주택의 벽면 장식 소품으로 이용하다 이를 떼어내어 보관한 것으로 여겨진다.

2005. [일본소재 고구려유물에 대하여.] , [한국 고대의 고구려] , 고려대학교 박물관.


4. 관련 문서[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14 06:07:55에 나무위키 교토국립박물관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원본이 전 세계에 여러 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