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애니메이션 제1스튜디오 방화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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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fff 교토 애니메이션 제1스튜디오 방화 사건
京都アニメーション放火殺人事件}}}[1]}}}
Kyoto Animation arson attack
파일:쿄애니_전소.jpg
방화로 인해 전소되어버린 제1스튜디오
발생일
2019년 7월 18일 오전 10시 35분
발생 위치



상세 위치
일본 교토부 교토시 후시미구 모모야마마치
교토 애니메이션 제1스튜디오
유형
건물 화재
원인
방화
인명
피해

사망
36명[2]
부상
33명[3]
재산 피해
건물 전소[4]
피의자
아오바 신지 (青葉真司)[5]
1. 개요
2. 사건 발생 과정 및 확산
3. 피해
3.1. 사망자, 실종자
3.2. 부상자
3.3. 건물 및 자산
4. 피의자
4.1. 범행 과정
4.2. 범행동기
4.3. 피의자 체포 이후
5. 반응
5.1. 업계인 반응
5.2. 정치권 반응
5.3. 그 외 유명인 반응
5.4. 시민들의 반응
5.5. 물의를 빚은 인물들
6. 여파
7. 사건 이후
8. 지원 모금
9.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JTBC 뉴스룸
[ 동영상 더보기 / 접기 ]

2019년 7월 18일 오전 10시 35분경에 방화로 인해 교토 애니메이션 제1스튜디오가 전소되고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이다. 내부 모습기사 삭제됨

일본에서 처음으로 애니메이션 창작자가 살해 협박을 받다가 단체 살해당한 사건이다.[6] 또한 일본에서 방화로 가장 많은 사람이 죽은 사건이다.

2. 사건 발생 과정 및 확산[편집]


파일:lpt.c.yimg.jpamd20190720-00010001-kyt-000-view.png

日 '쿄애니' 스튜디오, 방화로 화재...최소 10명 사망·40명 부상 - 아시아경제

日 애니메이션 업체 스튜디오 방화로 33명 사망…36명 중경상 - 연합뉴스

2019년 7월 18일 오전 10시 35분경 교토에 위치한 교토 애니메이션 제1스튜디오에서 방화가 원인인 것으로 보이는 화재가 발생했다. 인근 주민에 따르면 폭발음이 들렸다고 하며, 건물이 전소되고 중상자를 포함한 다수의 사상자가 나왔다.

오전 11시에 소방차 등 차량 약 30대가 출동하여, 7월 19일 오전 6시 20분 경 20시간 만에 완전히 진화되었다. #

18일 오후 6시 발표 기준으로 2차 대전 이후 일본에서 일어난 방화 사건 중에서는 사상자 숫자가 최대급이라, 후시미 경찰서에서는 특수조사반을 설치할 예정이라고 하였다. #

파일:1563456570.png

해당 건물의 구조 모형도. 1~3층까지 이어지는 나선계단(이미지의 파란색 원)이 존재해 화재의 확산이 빨랐으며 스프링클러가 없어 조기 진화가 불가능했다고 한다.

파일:1563456985.jpg

2016년 목소리의 형태 제작 당시 메이킹 필름#에 나왔던 건물 내 모습. 2층인 듯하다. 화재가 확산된 원인인 목재 내장재와 나선형 계단이 보인다.

7월 20일, 피의자는 현관을 통해 건물 안으로 침입한 직후 양동이로 10리터 가량의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고 수사 관계자는 밝혔다. 교토부 경찰의 현장 검증 결과, 나선형 계단 서쪽에서[7] 불에 타 녹은 플라스틱 양동이와[8] 라이터, 그리고 착화제로 보이는 물건의 잔해가 발견되었다. 사건 당시 건물 안에 있었던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화재 당시 나선형 계단에서 순식간에 올라온 검은 연기 때문에 깜깜해져서 주변이 보이지 않았고, 화재로 발생한 강한 열풍 때문에 창문으로도 도망을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작화 작업 장소가 2, 3층에 있어서 평소에도 2층 이상에 사람들이 많았고, 피해자들 대부분은 옥상을 향해 계단을 올라갔지만, 폭 1.2m의 옥상 문 앞 계단에서 숨졌다. 현장검증결과 옥상 문은 잠겨있지 않았지만, 연기 때문에 시야가 가려져 열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 #

나고야 TV에서 화재가 발생한 제1스튜디오 건물 모형에 불을 붙이는 실험을 해 본 결과, 적은 양의 휘발유로도 순식간에 불길이 건물 전체로 퍼질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영상

22일 교토 소방국이 시 의회에 보고한 바에 따르면 해당 건물이 소방법을 위반한 사항은 없다고 한다. 작년 시찰에서도 위반 사항은 없었고 방재 훈련도 주기적으로 행해지고 있었으며, 2014년엔 소방청에서 표창도 받았다고 한다. 화재 확산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는 나선형 계단도 연기를 차단하기 위한 제연경계벽[9]은 설비가 법령에 근거해 설치되어 있었다. 현장에서 생존한 직원도 이번에 일어난 화재가 그동안 받아왔던 소방 훈련과는 차원이 달랐다고 증언했다.[10]

이에 따라 소방국은 이렇게 방화 대책이 철저하게 마련되어 있던 건물에서 어째서 큰 피해가 발생했는지 검증하고 향후 대처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NHK 보도


3. 피해[편집]


화재 당시 건물 내부 인원 74명#
타임라인
사망
부상
생존
7월 18일
33명[11][12][13]
35명[14][15]
6명
7월 19일
1명[16]
[a]
7월 27일
1명[17]
[a]
10월 4일
1명[18]
[a]


3.1. 사망자, 실종자[편집]


당초 NHK의 발표에 따르면 중태자 중 여러 명이 사망했고, 실종자가 20명이며 구조가 되지 못한 사람이 있다고 경찰이 발표했다. 2층에서 사망자 10명을 추가로 발견했다고 한다. 당시 건물에 있던 사람 중 병원에 이송된 사람 36명, 사망 1명, 심정지 12명이며, 나머지 20명 이상은 3층에서 실종 상태로 전부 사망으로 추정되었다. 16시 14분에 교토시 소방국이 심정지 상태로 이송된 12명 중 절반인 6명이 사망하였다고 발표. 사망자가 7명으로 변동되었다. # 16시 24분 보도에 따르면 사망자가 12명으로 늘어났으며, 3층에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심정지 상태로 쓰러져 있는 10명이 추가로 발견되었다. # 사건 당시 건물 안에는 쿄애니 직원 67명과 타사직원 6명이 있었다고 한다. 20시 24분 보도에 따르면 사망자는 25명, 실종자가 5명이라고 한다. 사망자는 각각 1층에서 2명, 2층에서 11명, 2층과 3층 사이의 계단에서 1명, 3층에서 옥상으로 이어지는 계단에서 11명이 발견되었다. # 또한 산케이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36명의 병원으로 이송된 부상자 중 10명이 중태이지만 현재 의식은 있는 상태라고 한다. # 21시 24분 소방국의 성명으로 사망자는 33명으로 늘어났다. 소방국은 사망자는 남성 12명, 여성 20명, 성별불명 1인으로 총 33명, 병원으로 실려간 사람은 35명이며 건물 내 구조 작업은 완료되어 더 이상의 구조자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 사망자 33명은 헤이세이 이후, 1938년(쇼와 13년) 츠야마 살인사건 다음으로 범죄사상 가장 많은 수라고 한다.[19]

경찰이 남성 1명의 사망을 추가로 확인하여 사망자 수가 34명으로 수정되었다. 기사

성별 불명이었던 사망자가 20일 경찰의 발표를 통해 여성으로 판명되었다.

사망자들을 1차 부검한 결과 1명은 사인 불명, 2명은 질식사, 4명은 일산화탄소 중독, 27명은 전신 화상으로 인한 소사로 밝혀졌다. 그러나 시신이 훼손되었기에 신원파악이 어려울 거라는 얘기도 있었다.

건물이 제 1건물이라 쿄애니 간부진들이 실종자 명단에 들어가 있다. 약 하루가 지나면서 어느 정도의 간부진은 생사가 확인되었으나 이케다 쇼코와 카와나미 에이사쿠 등이 이틀이 지난 20일 기준으로도 실종상태였다.

실종자의 연령이 공개되었는데 20대가 가장 많은 15명, 30대가 12명, 40대가 6명, 그리고 60대가 1명[20]이다. #

7월 27일 20대로 추정되는 남성 1명이 병원에서 사망해 사망자 수가 35명으로 증가했다. # 이후 10월에도 여성 1명이 화상치료를 받던 도중 숨져 총 사망자 수는 36명이 되었다.

쿄애니 측에서는 사건의 수습이 완료될 때까지 사망자나 부상자에 대한 명단을 발표하지 않기로 하였으며, 미디어 측에 대해서도 사상자의 가족, 친척, 지인 등의 관련자에게 취재를 요청하는 것을 자제해 달라는 내용의 입장문을 발표하였다. 사상자 명단이 공식적으로 안 나오니 언론에서 관련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취재경쟁을 하는 등 안 좋은 모습이 나오니[21] 쿄애니 측에서 암묵적인 항의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사건의 수습이 일단락되고 경찰 측의 공식 발표가 나기 전까지 사망자나 부상자의 실명을 공식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었으나 25일 교토 부경에서 사망자 34인의 신원 및 사망 원인 확인이 완료되었다고 발표했다. 사망 원인은 소사 26명, 일산화탄소 중독 4명, 질식 2명, 전신 화상 1명, 미상 1명으로 소사에 의한 피해가 극심한 것으로 파악되었으며, 사망자 대부분이 앞으로 쿄애니를 이어나갔을 터인 20~30대 젊은이들이라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현재 사망자 명단 공표는 협의 중이라고 한다. #

2019년 8월 2일 기준, 뉴스 보도를 통해 11명의 사망자 신원이 처음 확인되었다.

2019년 8월 27일, 나머지 사망자의 명단이 추가로 공개되어 사망자 35명[22]의 신원이 모두 확인 되었다. 이하 가나다순.

  • 니시야 후토시 - 애니메이터 겸 캐릭터 디자이너. 일상, 빙과, Free!, 목소리의 형태, 리즈와 파랑새의 캐릭터 디자인과 총작화 감독을 맡는 등 2010년대 들어 쿄애니에서 미래를 내다보고 간판으로 밀고 있는 유망주였다. 2019년 7월 27일 주고쿠 신문에 DNA 감정을 거쳐 시신을 확인해 유족에게 통보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 향년 37세.
  • 니시카와 마이코(西川麻衣子) - 향년 29세.
  • 마루코 타츠나리(丸子達就) - 향년 31세.
  • 마츠모토 코지로(松本康二朗) - 향년 25세.
  • 마츠우라 카나(松浦香奈) - 향년 24세.
  • 모리사키 시호(森崎志保) - 향년 27세.
  • 묘켄 유코(明見裕子) - 향년 29세.
  • 무라야마 치토세(村山ちとせ) - 향년 49세.
  • 미야지 아츠시(宮地篤史) - 향년 32세.
  • 사토 아야(佐藤綾) - 향년 43세.
  • 사토 코타(佐藤宏太) - 향년 28세.
  • 스즈키 사나(鈴木沙奈) - 향년 30세.
  • 아사노 안나(浅野杏菜) - 울려라! 유포니엄 ~맹세의 피날레~와 바이올렛 에버가든 외전의 제작 매니저를 맡았다.[23] 사건 발생 당시 1층에서 구조되었는데, 심한 화상을 입어 병원에서 집중치료를 받던 중 감염으로 인한 합병증이 심해진 끝에 2019년 10월 4일 사망했다. 기사 사망자 명단이 공식발표된 이후 발생한 추가 사망자. 향년 24세.
  • 오노 메구미(大野萌) - 향년 21세.
  • 오무라 유키(大村勇貴) - 향년 23세.
  • 오토 노리에(大當乃里衣) - 향년 26세.
  • 와타나베 미키코(渡邊美希子) - 미술 겸 배경 담당. 경계의 저편, 아마기 브릴리언트 파크, 무채한의 팬텀 월드, 코바야시네 메이드래곤 1기, 바이올렛 에버가든에 미술 및 배경 파트 담당으로 참여한 경력이 있다. 쿄애니 직속 아카데미에서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었다. 향년 35세.
  • 와타나베 사야카(渡邊紗也加) - 향년 27세.
  • 요코타 케이스케(横田圭佑) - 향년 34세.
  • 우다 준이치(宇田淳一) - 향년 34세.
  • 이시다 나오미(石田奈央美) -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TVA & 극장판), 아마기 브릴리언트 파크, 빙과, 목소리의 형태, 리즈와 파랑새 등에서 색채 설계 담당을 맡은 근속 26년 차 쿄애니 고참이다. 25일 마이니치 신문에서 부모와의 인터뷰를 통해 사망을 확인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향년 49세. # 26일 교토부 우지시에서 일가 친척 및 지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영결식이 치뤄졌다. 이후 2023년 8월, 그녀의 아버지가 별세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 이시다 아츠시(石田敦志) - 향년 31세.
  • 이와사키 나미(岩崎菜美) - 향년 31세.
  • 이케다 쇼코 - 본명 테라와키 쇼코(寺脇晶子). 쿄애니 간판 애니메이터 중 한 명이자 이사. 데뷔 초 이누야샤 무인편 작화감독으로서 그 실력을 입증하였고 이후 쿄애니 창립 멤버로 참가해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 울려라 유포니엄 시리즈[24]의 캐릭터 디자인, 총작감을 맡았다. 특히 유포니엄의 경우 주역부터 시작해 원작에서는 이름도 없는 백여 명의 엑스트라 캐릭터들까지 하나하나 디자인하고 설정을 부여한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향년 44세.
  • 츠다 사치에(津田幸恵) - 색채 담당. 쿄애니 근속 20년이 넘은 베테랑. 언론과 부모님의 인터뷰를 통해 사망이 확인되었다. 향년 41세. #
  • 카네오 유미(兼尾結実) - 향년 22세.
  • 카사마 유카(笠間結花) - 향년 22세.
  • 카와구치 세이야(川口聖矢) - 향년 27세.
  • 쿠리키 아미(栗木亜美) - 향년 30세.
  • 쿠사노 스미레(草野すみれ) - 향년 32세.
  • 키가미 요시지(木上益治) - 이사 겸 연출가. 1980년대 초부터 활동해 경력 40년을 바라보는 베테랑으로, 쿄애니 입사 전엔 그 유명한 극장용 애니메이션 AKIRA에 원화 담당으로 참여한 경력이 있다. 일본 애니메이터들 사이에서도 그 뛰어난 실력으로 큰 존경을 받고 있었으며 쿄애니 작품 대부분에 연출이나 원화 담당으로 참여했다. 감독을 맡은 작품으로는 MUNTO가 있다. 2010년대부터는 쿄애니 직속 아카데미를 통해 후배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었다. 사건 후 그의 지인이라는 사람의 트위터를 통해 사망소식이 잠시 전해졌다 다시 불명으로 돌아갔으며, 2019년 8월 2일 언론을 통해 사망이 공식 확인되었다. 향년 61세.
  • 타카하시 히로유키(高橋博行) - 원화가. 특히 기계적 디테일을 살린 물건을 잘 그리기로 정평이 나있어 여러 작품에서 소품설정 담당으로 참여했다. 대표적으로 케이온!과 울려라! 유포니엄의 악기, 바이올렛 에버가든의 군용 무기나 탈것 등의 작화를 맡았는데 그 퀄리티가 매우 뛰어나 팬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향년 48세.
  • 타케모토 야스히로 - 이사 겸 감독. 풀 메탈 패닉? 후못후, 러키☆스타(5화 이후), 빙과, 코바야시네 메이드래곤 1기 등 여러 작품의 감독을 맡았고, 그 외 쿄애니 작품 대부분에서 핵심 스태프(특히 연출)로 참여한 동시에 애니메이터로서 원화도 그린, 말 그대로 쿄애니의 간판이자 핵심 인재 중 하나였다. 부고 소식을 알리는 트윗이 20일 두 건 올라왔다가 확실하지 않다는 이유로 21일 비공개 및 삭제 처리되었으며, 22일 타케모토 감독의 부친을 인터뷰한 기사가 나왔는데 생사여부에 대한 확정 연락을 받지는 않았다고 한다. 정황상 생존 가능성은 낮은 상황이었으며[25] 26일에 니혼게이자이신문을 통해 시신을 인도 받았다는 부모님의 인터뷰가 나오면서 사망이 확인되었다. 관련기사 향년 47세.
  • 타케치 미호(武地美穂) - 향년 25세.
  • 토키모리 토모카(時盛友樺) - 향년 22세.
  • 후지타 타카히사(藤田貴久) - 향년 27세.


3.2. 부상자[편집]


  • 부상자 중 한국인 여성 스태프(35세, ㄱ씨) 1명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신 2~3도 화상이라 위중한 상황이라고. ## 이후에 공개된 사망자 명단에 한국인의 이름이 없는 것으로 보아 치료를 통해 회복이 된 듯하다.
  • 50대 남성이 2층에서 뛰어내려 부상을 당했는데 이 남성은 이시하라 타츠야 또는 키타노하라 노리유키로 추정된다.


3.3. 건물 및 자산[편집]


파일:kyotoanimation_fire.jpg
전소된 건물 내부, 문제의 나선형 계단이 고열로 인해 변형된 모습이 보인다. #
그동안 만들어 온 몇몇 애니들의 컨셉 디자인이나 원화 자료들이 완전히 소실되었다고 한다. 사건 다음 날인 19일 사장의 인터뷰를 통해 공개되었는데, 컴퓨터 하드 디스크 안에 있었던 자료들도 불타 소실된 바람에 누군가가 따로 보관한 게 아닌 이상 영원히 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

스튜디오 재건 및 재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전체 150명 가량의 기업에서 40%가 넘는 68명의 사상자가 나왔으니 회사로서는 중대한 피해라고 봐야 한다. 사망한 36명만으로도 전체 사원의 20%가 넘고, 생존자 중에서도 부상으로 인해 업무 복귀가 어려운 직원들이 있을 것이다.[26] 설령 회복된다고 해도 PTSD 같은 트라우마로 일선에 영영 복귀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특히 피해를 입은 직원들 중 오랜 기간 교토 애니메이션에서 실무현장을 지탱해온 핵심 애니메이터들도 있으며, 1스튜디오에 있었던 과거 작화나 서류 및 전자 자료도 모조리 소실되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교토 애니메이션의 재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극단적 비관론마저 나왔다. 간부급인 타케모토 야스히로 감독이나 다수의 쿄애니 작품의 원화와 작화감독을 담당한 이케다 쇼코, 니시야 후토시, 키가미 요시지 등은 쿄애니의 정체성을 구축한 대체불가 인재들이라서 이 이상 인재들이 줄어들면 향후 원활한 작품 제작에 큰 제약이 걸릴 것이다. 이 때문에 재기에 성공하더라도 같은 수준의 인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며, 뛰어난 인재들을 어떻게 대거 영입하더라도 그 인재들이 기존의 쿄애니 스타일과는 다를 것이다.

해당 사건으로 국내외 하청업체들까지 불똥이 튈 여지가 있다는 의견도 있으나, 쿄애니의 국내외 하청은 한국의 중소규모 하청사 한 곳과 일본의 회사 한 곳밖에 없다.[27] 일반적인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와 달리 쿄애니는 가능하면 하청을 외주로 돌리지 않고 직접 했기 때문이다.

2019년 7월 26일 나온 발표에 따르면 제1스튜디오 데이터 서버가 화재로 소실되는 건 피해 현재 전문가의 조언을 얻어 복구가 가능한지 살펴보는 중이라고 한다. 일부 언론에서 서버에 저장된 원화 데이터까지 무사하다는 기사를 냈는데, 교토 애니메이션 담당 변호사 오케다 다이스케가 코멘트를 통해 데이터가 무사한지 현 시점에선 100% 확신할 수 없다며 정정을 요구했다.

7월 29일, 소실을 피한 서버에 저장된 원화 데이터를 전문가의 협력을 받아 회수하는데 성공했다.

토쿠시마에 위치한 한 서점에서 교토 애니메이션의 원화를 전시하는 행사가 있어 사건 전에 미리 반출된 원화 70점은 소실을 피했다고 한다. 관련 영상

2020년 1월 7일, 전소된 건물의 해체 작업이 시작되어 4월 28일에 완전히 해체되었다. #


4. 피의자[편집]



4.1. 범행 과정[편집]


파일:青葉真司.png


파일:A0E3F101-0277-4A20-90C1-E62232625AD8.png

이름
아오바 신지(青葉真司)
출생
1978년 5월 16일
출신
일본 이바라키현
신체
키 180cm, 90kg

아오바 신지(青葉真司, あおば しんじ)가 피의자로 확인되었다.

재판에서 고등학교 시절에 친구가 추천한 게임을 계기로 교토 애니메이션의 작품을 알게 된 것을 밝혔다.

사건 현장으로부터 100m 떨어진 곳에서 화상으로 인해 엎어져 있던 그를 경찰이 구조하는 과정에서 피의자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 화재 현장에서 인화물질뿐만 아니라 피의자의 것으로 의심되는 망치 한 개와 4~5개의 칼들이 추가로 발견되어, 단순 방화범 이상으로 테러리스트일 가능성이 높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피의자는 건물에 들어가 "죽어라(死ね)"라고 외치면서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고.[28] #

사건이 일어난 건물은 원래 보안카드가 없으면 진입이 불가능했지만, 사건 당일 NHK의 TV프로 촬영이 있었던 관계로 누구나 드나들 수 있었고, 회사 핵심인물들 또한 여기에 있었다. 그나마 사건 발생 후 피의자의 촬영 및 피의자를 잡은 자가 그 TV프로 촬영차 방문했던 NHK의 디렉터였었기 때문이라는게 밝혀졌다. # NHK의 7월 24일 브리핑에 따르면, NHK는 교토 애니메이션과 장애인 스포츠를 주제로 한 "애니×파라"(アニ×パラ)라는 작품[29]을 제작 중이었으며 화재 당일인 18일 11시에 관련 취재가 예정되어 있었다고 한다. #

또한 옥상에서 담배 꽁초를 버리는 사람이 있어 옥상 문이 7월 초부터 잠긴 상태였다는 말이 있었는데, 소방관이 옥상에 도착했을 때 옥상 문은 닫혀있었지만 잠겨있지는 않았고, 바깥에서 그냥 열 수 있었다고 한다. #[30] 이 밖에 피의자가 방화 후 옥상문을 잠그고 도주하여 피해가 커졌다는 루머도 나왔으나, 옥상문 잠금 여부와 별개로 방화범이 옥상까지 도주하도록 가만히 내버려 두었을 리가 없으므로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다.

주소지가 공개되었는데 범행 현장에서 4시간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한다. 링크 경찰 당국이 19일 오후 5시경에 진행된 브리핑에서 피의자의 신원을 공식 발표하였다. # 7월 26일에 피의자의 거주지인 사이타마현 사이타마시 미누마구의 아파트에 대한 압수수색이 진행되었는데, 'BOSE acoustic wave cannon system'라는 초대형 엠프 스피커가 발견되었다. 이웃 주민들과의 소음 관련 트러블의 원인이 이 물건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31] 참고로 저 스피커는 서브우퍼로 생긴 건 cannon이 들어간 만큼 무슨 바주카포 내지는 하수 배관 같이 생긴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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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가 범행 3일 전부터 교토로 와 현장답사를 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철저한 계획범죄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에 따르면 인근 주민들 이외에는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던 스튜디오 근방의 골목길에서 빨간 티셔츠를 입은 낮선 남자가 며칠 전부터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22일 추가로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제2 스튜디오 주변에서도 피의자와 비슷한 인상착의의 남성을 목격했다는 주민의 증언이 있다고 하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교토 애니메이션 전체를 테러 목표로 정했을 가능성도 있다. 범행 하루 전 7월 17일에는 휘발유가 담긴 통을 실은 카트를 끌며 유유히 걷는 모습이 방범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으며 범행 당일 18일 아침엔 스튜디오에서 500m 거리에 있는 공원 벤치에서 노숙을 했다는 목격자들의 증언이 나왔다. 경찰은 본사 등의 다른 쿄애니 관련 시설도 아오바가 사전 답사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하였다. 또한 체포 당시 가방에서 칼과 망치 등의 흉기가 나오면서 만약에 본인의 몸에 불이 붙지 않았다면, 불타는 건물에서 빠져나오는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흉기로 해쳤을 가능성 또한 있었다. 실제로 이러한 추악한 범행이 이뤄졌을 경우, 일본판 진주 아파트 방화·흉기난동 살인 사건이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32] 게다가 직원 여러 명에게 직접 가솔린을 끼얹기까지 했음이 드러나면서 살의를 품고 고의로 테러를 저지른 것이 명백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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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가 체포될 당시에 대한 증언과 사진이 공개되었는데, 다리에 불이 붙어 있었다고 한다.[33] # 방화 중 피의자 몸에 불이 옮겨 붙었고 가까운 인근 집 초인종을 누르며 살려달라 말했다는 목격자들의 증언을 볼 때 방화를 계획해 실행한 것과는 별개로 피의자 자신도 화재에 의해 피해를 입을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34]

4.2. 범행동기[편집]


피의자는 경찰에게 붙잡힌 직후 "표절이나 하고 말이야!"라고 외쳤고, 그 뒤 "쿄애니가 자신의 소설을 훔쳤기에 불을 질렀다."고 주장했다. 7월 30일 교토 애니메이션 대변인은 피의자와 이름 및 주소지가 같은 인물이 교토 애니메이션에서 주관하는 소설 공모전에 원고를 제출했지만 낙선한 사실을 확인했으나 해당 소설과 교토 애니메이션이 제작한 작품들 간에 유사성은 없었다고 밝혔다. 관련 기사[35] 다만 해당 소설의 공개는 저작권법상 저작자인 아오바 신지 본인의 동의가 없으면 공개할 수 없다고 한다. #[36]

일본 언론에서 피의자는 쿄애니에서 일했던 적이 없으며 업계에서 일한 경력도 없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피의자의 이전 직업을 봐도 비상근직원, 우체국 직원 등이라 애니메이션 업계와는 전혀 무관했다.

한편으로 핫타 히데아키 교토 애니메이션 사장은 NHK와의 인터뷰를 통해 "(사건 전에도) 회사에 대한 항의가 일상적이지는 않았지만 적지 않았으며, 살인 협박 메일도 받아왔었다."고 토로했는데, 이 중에 아오바 신지의 것도 있었는지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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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 아오바 신지의 어릴 적 사진 보도. 자세히 보면 어렸을 때의 노트도 보여주고 있다.[37]

일부 일본 언론에서는 피의자의 가정사정이 막장이였던 게 정신이상자가 된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신지의 친아버지는 원래 다른 가정을 꾸리고 있다가 자식이 다니던 유치원 교사와 불륜 후 재혼했고[38] 이 사이에서 나온 게 아오바 신지다. 그 직후 전처는 어디론가 사라졌고, 당시 생활고가 매우 심했던지 초등학교 시절 친구의 인터뷰에 따르면 아오바의 집은 쓰레기가 가득 차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으며, 언제나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고 한다. 또, 슈퍼나 편의점에서 과자 등을 도둑질하는 버릇이 있었다고 한다. 생활고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중학교 때도 거의 학교에 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어머니가 집을 나가 새로운 가정을 꾸리게 되고, 아버지는 신지가 21살 때 택시기사 일 도중 사망 사고를 일으켜 손해배상금을 지불한 뒤 자살했다. 신지의 여동생은 다른 형제들이 독립한 뒤에도 아버지가 자살한 그 집에서 계속 살다가, 훗날 자살했다고 한다. #

이후 피의자는 점점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한다. 2012년까지 살았던 이바라키의 집합 주택에선 2012년 봄부터 집세를 체납했다고 하며, 밤중에 벽을 두드리고 괴성을 지르는 등 지속적으로 소음을 일으켜 관리인이 여러 차례 찾아갔음에도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같은 해 6월에 편의점에서 직원을 협박해 2만 1천엔을 훔치고 달아나다가 자수해 징역 3년 6월을 산 뒤 출소되었다. # 강도죄로 체포된 후에 관리인이 그의 방 안을 살펴봤을 때 벽, PC와 창문을 해머로 깨부순 흔적이 있었다고 한다. # 이후 이사를 간 사이타마의 원룸에서도 이웃 주민들과 항상 갈등을 빚어오고 있었으며, 사건 발생 나흘 전에도 난데없이 이웃집의 문을 끈질기게 두드리고, 참다 못해 항의하러 온 이웃의 멱살을 잡으며 "죽여버리겠다", "나는 잃을 것이 없다" 등의 폭언을 내뱉어 파출소에 신고되었다고 한다. 정신병원 입원경력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직업 없이 히키코모리로 살아왔다고 주민들은 증언하고 있다.[39]

사이타마현에 있는 오미야역에서 대량 살인까지 계획한 것도 사건 이후 드러나게 된다. #

도쿄대 범죄 심리학 교수는 이런 피의자의 정신상태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왜 사회가 자기를 평가해주지 않는가"라는 소외감이 "사회가 나쁘다", "세상이 나쁘다"라는 증오심으로 표출됐다고 분석했다.


4.3. 피의자 체포 이후[편집]




당초 경찰의 발표로는 피의자의 생명에 이상은 없다고 하였으나, 이후 다시 발표된 바에 따르면 얼굴, 가슴, 손, 발 등 광범위하게 화상을 입은 상태로 교토 시내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빠르게 수사를 진행하려고 하나 치료를 위한 마취 상태이기에 당일 내로 피의자를 조사하는 것은 어렵다고 하였고# 거기다가 중태라고 한다. # 20일 보도에 따르면 20일 10시 30분경 피의자는 닥터헬기편으로 교토에서 오사카 킨키대학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경찰은 "설비가 갖춰진 병원에서 안전하게 치료하게 위함"이라고 밝혔는데, 여전히 중태에 빠진 상태라서 체포 이후 추가적인 심문은 하지 못했다고 한다. 7월 26일에 피의자의 의식이 되돌아왔으나, 여전히 심각한 상태기 때문에 체포 영장 집행 및 심문을 하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이라고 한다. #


피의자는 8월 9일 의식을 회복했으며, 간단한 의사표시와 말이 가능할 정도의 상태가 되었다고 한다. 다만, 심한 화상을 입어 전신마취를 했으며, 집중 치료를 받는 중이라 영장 집행 및 심문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하였다. 킨키대학 병원에 따르면 피의자는 3도 화상을 입어 피하 조직까지 손상이 미쳤으며, 전신 90%에 화상을 입어 피부 이식 등의 치료를 받는 중이라고 하였다. # 예측 사망률이 97% 이상에 달했지만, 킨키대학 병원 화상전문의로 피의자의 주치의를 맡게 된 우에다 다카히로 교수는 "그를 죽음으로 도망치게 만들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4개월 동안 필사적으로 치료해 살려냈다고 한다. #

일본의 사형 제도나가야마 노리오 사건 당시 정해진 나가야마 기준에 따라 4명 이상 고의적으로 살인한 성인은 극단적인 심신미약이나 심신상실 상태 혹은 정상참작의 여지가 없는 한, 무조건 얄짤없이 사형 선고를 내리기 때문에, 피의자가 회복되어 법의 심판을 받는다면 사실상 사형 확정인 셈. 더구나 일본 사법부는 방화범죄로 피살자가 나오면 일반살인보다도 더 큰 중형을 내리는 관례[40]가 있고, 게다가 이 사건은 범인 본인도 쿄애니 직원들을 모두 죽이기 위해 처음부터 사형당할 각오로 저질렀다고 인정한 100% 계획범행이어서 조현병 등 중증 정신질환이 인정되지 않으면 사형을 면할 수 없다.

2019년 7월 21일에 체포 영장이 발부되었다. 기사

제작사에 관심을 가지고 일방적인 혐오를 가진 것으로 보고 조사했다. 부경은 아오바 신지 용의자의 아파트에서 물품을 압수했다.[41] # ##

2019년 7월 28일, 학창 시절 동급생이 아오바 신지에 대해 증언했다. 루리웹 번역

11월에 교토의 한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걷지 못하지만 대화 가능한 수준으로 회복했다고 한다. # 보통 중증 화상 치료에는 기부받은 시신의 피부(스킨뱅크)를 이용하지만 수십 명을 사상시킨 피의자에게 피부를 기부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자기 피부에서 배양한 피부나 인공 피부를 이용해 치료를 하였으며, 전신 70% 화상 환자에겐 자가배양한 피부를 이식한 사례가 있으나 피의자와 같은 전신 90% 화상 환자에게 자가배양한 피부를 이식하는 것은 처음 있는 사례라 학계에도 보고될 예정이라고 한다. 관련 기사

2019년 11월 8일 열린 최초의 조사에서 신지는 "사이타마의 집을 나설 때부터 살의가 있었다", "가장 많은 사람이 일하는 제1 스튜디오를 노린 것이다" 등이라고 진술했다. 한편, 병원 의료팀에 대해서는 "남들이 (내게) 이렇게 잘해준 적은 지금까지 없었다"며 감사하고, "사람의 길을 벗어나는 일을 했다"는 등 처음으로 반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말을 했다고 한다. 킨키 대학 병원에서 간호했던 여성 간호사 한 명이 마음에 든 듯 그녀가 있을 때는 기분이 좋은 태도를 취하지만, 없을 때는 기분이 언짢고 이기적으로 행동했으며, 병원을 옮긴 후에는 기분의 기복이 심하고, '어차피 사형이니까' 얘기할 필요가 없다 등으로 부루퉁해져, 재활치료에도 소극적이라고 한다는 관계자의 증언을 보아 사람이 되긴 먼 것 같다. 출처1, 출처2, 출처3

2020년 5월 27일에 치료를 마치고 경찰에 체포, 구속됐다. # 수용시설의 노후화와 코로나 사태 등으로 체포가 늦어졌었다. 아오바가 구속되면 오사카 구치소에 수용된다고 한다. 아오바의 몸 상태는 진술을 할 수 있을 만큼 회복되었지만 몸을 가눌 수는 없는 상태라 들것에 실려서 연행되었다. (사진)

구속 후 조사에서 모든 혐의를 순순히 인정하였고, 죄값을 치르기 위해 자신에게 가해질 사형도 순순히 받아들이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첫 조사 때와 마찬가지로 쿄애니 측에서 자신의 소설을 표절하여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하였다. # 경찰이 아오바의 치료 과정에서 사건에 관한 정보가 나오면 수사에 영향을 줄 것으로 판단해 사건 관련 정보를 전하지 않았으므로 아오바는 사망자가 36명이라는 사실은 정식 체포 이후에야 알았으며, 피의자 본인은 사망자가 2명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다만 쿄애니 직원들 전체를 살해할 생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 자체는 인정했고, 사형도 이미 각오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 기사 또한 가방에서 발견된 각종 흉기에 대해 만약 문이 잠겨 있으면 부숴서 열기 위해 가솔린을 구매할 때 망치도 같이 샀다고 진술했다. #

피의자는 쿄애니에서 자신의 소설을 표절했다는 작품이 츠루네 -카제마이고교 궁도부- 애니메이션 5화였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쿄애니 측에서는 피의자의 소설이 해당 작품과 학원물이라는 공통점은 있으나 애니메이션의 주요 소재인 궁도 관련 내용이 없다며 표절 혐의를 부인하였으나, 피의자는 특정 장면이 표절이라는 주장을 반복했다. #

2020년 12월 10일, 일본 검찰이 피의자를 공식적으로 기소하였다. #(유료기사)

이후 피의자의 아버지와 여동생이 자살했다는 사실이 알려졌지만, 둘 다 방화 사건 이전에 있었던 일이며 신지의 범행과는 관련이 없다.

2023년 4월 21일 교토지방법원은 제1회 공판전정리수속 절차 기일을 5월 8일로 지정했다. #

2023년 5월 8일 교토지방법원에서 공판전정리수속절차를 실시했다. 비공개로 진행되었으며 1시간 반 만에 종료되었다. #

2023년 5월 12일 교토지방법원은 공판은 32회로 진행할 예정이며, 첫 공판일을 9월 5일 이후 11월 8일까지 2~3회에 걸쳐 공판을 진행, 11월 27일에 재개해 12월 13일에 결심공판을, 2024년 1월 25일 판결을 선고하기로 결정하였다. #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며, 일본 사법체계의 특성상 2심 확정판결만 해도 2~3년, 최고재판소까지 가면 5년 이상 형 집행까지는 그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죄질과 범행 동기 그리고 참작을 해줄만한 사유가 전혀 없다는 것 등 모든 면으로 봤을 때 사실상 사형은 확정이고 본인도 그걸 인지하고는 있는 듯하지만, 그 정해진 판결 내용을 선고하는 데도 보통 사건 발생으로부터 몇 년이 걸리고 사형도 바로 집행하는 게 아니다. 이케다 초등학교 무차별 살상사건의 범인인 타쿠마 마모루는 형이 확정된 지 1년도 안 되어 집행되었지만 이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이며, 보통 집행까지는 몇년에서 몇십년 정도가 소요된다. 이케부쿠로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의 범인 조타 히로시는 수십년째 사형이 집행되지 않고 있으며, 2022년 사형이 집행된 아키하바라 무차별 살상사건의 범인 가토 도모히로만 해도 사형이 집행되기까지 14년이 걸렸다. 게다가 후술하겠지만 처음에는 사형을 받아들일 것처럼 보이더니 심신 상실을 운운하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으니 최고재판소까지 재판을 끌고갈 가능성이 높은 만큼 신지가 사형 집행되는 날은 최소 2030년대쯤으로 예상된다.


5. 반응[편집]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방화로 전소해버린 경우는 이례적인 사건인데다가[42], 일본에서 방화 사건으로 인한 사건 중 역대 최다 희생자를 낸 사건이라 사건의 충격과 여파가 굉장히 큰 편이다. 일본 주요 매스컴에서 톱라인 뉴스로 보도되었으며, NHK에서는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특보를 편성하였다. BBC, CNN외신에서도 주요 사건으로 다루었다. BBC, CNN, FOX 또한 국내언론에서도 지상파 3사, 종편 등을 비롯한 다수의 주요 언론매체에서 이 사건을 주요 사건으로 보도하였다. (KBS, MBC, SBS, JTBC, MBN, TV조선, 채널A, YTN, 연합뉴스TV, 경향신문, 국민일보, 동아일보, 매일경제, 문화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연합뉴스,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전후 현대 일본 성립 이래 수많은 피해를 낸 초대형 테러 참사[43]라는 점에서 애니메이션 팬과 일반인을 막론하고 반응이 쏟아졌다. 전세계에서 이를 애도하기 위한 해시태그 '#PrayForKyoani'가 급부상했다. 다만 한국에서는 수십 명이 죽은 대참사에 대해 애도하기는 하지만 애니메이션 팬/오타쿠를 제외하면 그다지 큰 관심은 없었다. 물론 일반인 같은 경우 외국의 한 기업이 큰 피해를 입은 것 정도로 인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별달리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애니 관련 기업이나 협회 같은 업계에서조차 아무런 공식 입장이 없는 건 너무 한 거 아니냐는 말들도 있다. 다만 몇몇 대중문화 계열 웹툰 작가들이 개인적인 추모의 글을 남기기는 했다. 또한 한국에서는 애니메이션이나 애니메이션 문화가 일본에 비해서 영화나 드라마, 아이돌 산업에 비해서 밀리는 상황이라 사회적인 주목은 받지 못했다.

한편, 다에쉬를 비롯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이 사건을 자신들이 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5.1. 업계인 반응[편집]


많은 관련 업계인들이 트위터나 블로그 등을 통해 사고 피해자들의 무사를 기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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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교토 애니메이션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의 등장인물들이 한 곳에 모여 묵념하는 모습을 담은 일러스트.


5.2. 정치권 반응[편집]




5.3. 그 외 유명인 반응[편집]


  • 미국 피겨 스케이팅 선수 조니 위어도 추모의 뜻을 동참했다. #
  • 포터 로빈슨 (DJ) - 트위터에 추모글을 올렸으며, 영어가 아닌 일본어로 올렸다. # 평소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기로 유명했다.
  • 팀 쿡 - 애플 CEO도 추모에 대한 트윗을 올렸다.
  • 카후 - 트위터를 통해 #PrayForKyoani 해쉬태그에 동참하며 추모글을 올렸다. 또한 본래 펀딩으로 자금을 모아 주최한 자신의 단독 라이브 공연 매출액을 스튜디오 방화 사건 피해 정상화를 위해 기부하였다.
  • Gigguk (일본 애니메이션 유튜버) - Thank You Kyoto Animation.이란 제목의 추모 영상을 업로드했으며 모금 운동에도 참여했음을 밝혔다.
  • 평론가 박가분은 자신의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애도를 표했다. ##


5.4. 시민들의 반응[편집]


일본의 쿄애니 팬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은 이를 애도하고 재건을 위한 수익을 올리는 걸 도와주자는 취지로 극장에서 상영되었던 쿄애니 작품인 Free!의 극장판을 여러 차례 관람하거나 쿄애니작 DVD 및 블루레이를 구매 및 넷플릭스d아니메스토어 같은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쿄애니 시리즈를 구매하여 수익을 올리는 걸 도와주기 시작했다. 한편 미국에서 애니메이션 배급을 맡고 있는 센타이 필름웍스지원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모금)을 시작했다. (모금 링크) 교토 만화박물관에서도 모금 활동을 진행하였다. #

FREE의 성지로 알려진 돗토리현 이와미정에서도 돗토리현과 같이 모금 활동을 벌였다. # 케이온!의 학교 모델인 토요사토 초등학교 내에서는 헌화대가 설치되었다. # 케이온 무대인 시가현 토요사토정에서도 애도의 뜻을 밝혔다. #

일본 전국의 애니메이트 점포들은 피해 지원을 받기 위해 모금을 시작하였다. # 케이한 전기철도는 2019년 7월 20일부터 시작될 예정이었던 '울려라! 유포니엄'과의 콜라보레이션 기획은 랩핑 열차 운행 외에는 연기하다가 11월 1일에 다시 운행하며, 승차권 등 발생하는 수익은 피해자들에게 기부한다. # 일본 애니메이션 협회는 피의자에 대한 취재 중에 언론사한테 신중한 보도가 이뤄져야 한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

교토 애니메이션에서 이 사고 직전에 개봉한 작품은 극장판 프리! -로드 투 더 월드- 꿈이었다. 이 사건이 터지자, 추모 차원에서 개봉 3주차로 영화관에서 내려가던 극장판 프리! -로드 투 더 월드- 꿈에 대한 N차 관람 운동이 벌어졌다. 때문에 도쿄, 오사카, 교토, 나고야 등 주요 대도시들의 영화관에서는 프리 영화 회차가 죄다 매진되었다.

아사히신문은 어려운 한일관계 속에서도 추모식을 찾아간 한국인들을 취재하였다. #

미국인들 중에는 이 사건을 보고, 9.11 테러와 관련된 PTSD를 호소하는 이들이 생겨났다고 한다.


5.5. 물의를 빚은 인물들[편집]


이 사건을 걱정하는 신카이 마코토의 트윗을 리트윗해서 "닥치고 가만히 있으라"는 표현을 써서 문제가 되었다. 쿄애니를 걱정하며 직접 교토까지 찾아 올라가겠다고 한 것이나 이 트윗 15분 뒤에 올린 쿄애니 화재 사건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트윗을 보면 정황상 어그로를 끌려고 한 말은 아니고 신카이에게 경솔한 말을 자제하라고 말한 것일 수도 있으나 평소 행실 때문에 사람들에게 "좀 닥치고 있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져 까였다. 덕분에 댓글 창에는 직전 올린 트윗의 내용인 "좀 닥쳐라"로 도배된 상황. 그리고 그게 할 말이냐는 리트윗에 다 블락을 먹여서 "다 큰 어른이 돼서 이게 뭐하는 짓이냐"는 소리도 들었다. 결국 오후 6시에 사과문 트윗을 올렸지만, 반응은 싸늘한 수준을 넘어서 "네 평소 행실이나 생각해라"나 "트위터는 인생의 낭비" 등의 반응만 달렸다. 결국 저 망언이 해쉬태그에 그대로 박제되었고, 감독 및 각본을 맡아 얼마 전에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박모'의 포스터나 이미지로 야마칸의 망언을 풍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참고로 야마모토는 본래 쿄애니 소속의 연출가로서 상당한 두각을 나타내던 핵심 인재였으나,[49] 첫 감독작인 러키☆스타 제작 중에 일어난 원인 모를 트러블 때문에 4화 만에 강판당한 뒤에 퇴사하였고, 이후 관계가 완전히 틀어져 심심하면 쿄애니를 까내리는 언행을 하기로 유명하다. 그래도 어찌됐든 본인과 인연이 깊은 회사이기 때문에 사건 다음 날에 방문해 꽃을 놓으며 추모했다. 5:15초부터 하지만 결국 본성을 못 버린 건지 이후 7월 31일 자의 블로그에 이번에 피해를 입은 것이 자업자득이라는 투의 글을 작성하고 그에 반론하는 트위터 유저들을 인용 트윗으로 까거나 유저들과 직접 키배를 뜨는 것은 물론 본인에게 유리한 입장의 글만 리트윗하는 등 결국 추한 본성은 어디 안 간다는 걸 증명했다. 참고로 본인이 참여하지 않은 WUG 2기 당시에도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며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이후에도 유타카 본인은 쿄애니 직원들과 오타쿠들을 잠재적 아오바 신지 같은 잠재적 방화범이라고 비하하는 글을 지속적으로 올렸다. "나는 이 재난을 '우리들이 저지른 실패' 에 대한 '대가' 를 치른 것이라고 단언한다. 쿄애니는 오타쿠들과 공범관계를 계속해 나갔다(僕と京都アニメと、「夢と狂気の12年」と「ぼくたちの失敗」라는 글에서)", "오타쿠 안티팬들의 집단광기가 불타올라 스튜디오가 불타올랐다(「被害者側」か「加害者側」か 라는 글에서)" 등의 글을 올리면서 쿄애니를 직접적으로 고인드립하면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을까봐 간접적으로 고인드립을 지속한 다음 '나 쿄애니 안 깠는데?'라고 발뺌하며 '네티즌들이 나를 악하다고 생각하고 쿄애니를 선하다고 생각하는 집단광기가 무섭다'라는 식으로 자신이 먼저 무고한 화재 희생자들에게 고인드립을 날린 만행을 완전히 잊어버린 듯한 모습을 보였다. 논란 이후에도 그의 말에 분개한 일본 네티즌들이 많았는지 실시간으로 그의 트윗을 아카이브로 박제하였다. 웃긴 것은 업계인에게 비판받을 때에는 오타쿠들을 무시할 때처럼 폭언을 퍼붓지 않고 '당신이 말하는 것과 달리 오타쿠가 모든 걸 망치고 있다고!' 정도로 강도를 낮춰서 강약약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실제로 케모노 프렌즈 애니메이션 1기 스태프 강판 사태 땐 카도카와에게 독설을 날리지 않고 비겁하게 숨었으니 강약약강이 맞다. 쿄애니 측에서는 야마칸의 망언에 분노하여 그의 발언을 실은 기사에 삭제 요청을 넣었다.
  • 교토시장 카도카와 다이사쿠(門川大作)[50]
화재 당일 저녁에 참의원 선거 후보자 지원연설에서 사상자가 60여명에 이르는 교토 애니메이션 제1스튜디오 화재를 언급하며 “화재는 3분, 10분이 중요하다. 선거는 마지막 1~2일로 역전할 수 있다”는 희대의 고인드립, 개드립을 쳐 물의를 일으켰다. 최악의 방화 테러 사건을 자기 선거에 이용하는 발언을 한 것이다. 그러면서 참사 현장에 가지도 않고 그날 저녁 선거 지원유세를 했기 때문에 더욱 문제시되었다. 기사 보기
  • 카에츠대학(嘉悦大学)의 타카하시 요이치(高橋洋一) 교수[51]
자신의 트윗에 한국이 다른 이유로 인해 화재 사고를 보도하지 않았다는 망언을 하였다. #[52] 애초에 한국에서도 제도권 언론사를 포함하여 크게 집중 보도되었다보니 사실과 완전히 다르다.
그리고 이 교수 트위터를 보면 그냥 혐한 우익 꼴통이다. 이 뿐만 아니라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한국에 꼬투리잡아 혐한 트윗 많이 하는 교수다. 당연히 이 사람은 한국에서는 물론 일본 현지에서도 까이고 있다. 참고로 일본어판 위키백과에도 쓰여있는 사실로, 한 온천 탈의실에서 20만엔 상당의 현금과 명품시계를 훔치고 절도혐의로 체포된 적 있는 전과범이다. 일본에서도 시계도둑이라고 놀림받는 인간.
참의원 의원 선거 후보자 개인 연설회에서 "화재를 접하고는 라이터를 청중에게 보여 여러분의 마음을 불태우고 싶다라는 생각에 구입했지만, 이를 태웠다가 교토처럼 되면 곤란하므로 오늘은 사용하지 않는다"라고 고인드립을 시전했다. # 21일에 사과하였다. #


6. 여파[편집]


  • 이 화재의 여파로 19일로 예정되어 있었던 Free! 신극장판 티저 예고편 공개가 취소되었다. #

  • 2019년 9월 이후 방영 및 극장 개봉작들도 당분간 예정대로 공개되는 건 힘들 것으로 보인다. # 먼저 이번 화재로 소실된 자료들 중 2019년말~2020년 즈음 방영을 목표로 제작 중이었던 코바야시네 메이드래곤 S 원화가 모두 소실되어 제작 및 방영이 불투명해졌다고 한다. 2019년 6월에 PV가 공개되어 조만간 제작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았던 울려라! 유포니엄 3학년 편도[53] 사실상 제작 무기한 연기가 되었다. 19일 취재에서 핫타 히데아키 사장은 개봉을 앞두고 있는 완성작은 직원의 마음을 생각하여 공개할 의향을 나타냈는데, 실제로 이뤄질지는 추후 상황을 봐야 할 것이다. # 이 범주에 들어가는 작품이 2020년 1월 개봉 예정인 극장판 바이올렛 에버가든인데, 원화작업이 끝나 정상적으로 나온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2019년 9월 6일에 개봉연기를 결정했다. # 다만 이후 상황이 좋아진 건지 코바야시네 메이드래곤 2기는 2020년 8월 11일 2021년 방영 예정으로 제작을 재개한다는 공지가 떴다. #

  • 바이올렛 에버가든 외전: 영원과 자동수기인형은 2019년 9월 6일~26일간 예정대로 상영되었다. 사건 하루 전에 완성해 배급사인 넷플릭스 측에 납품을 완료했기 때문이라고. 참고로 이번 사건으로 희생된 직원들의 이름이 작품 시작부에 나오는 식으로 추모하는 장면이 추가되었다.[54]

  • 한편 히데아키 사장의 언급에 따르면 부상자 중 절반 이상이 중상자이며 그 중엔 화상의 정도가 심해서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사원까지 있다고 한다. 또한 생존자들 중 다수가 극심한 PTSD를 호소하고 있다는 추가 언급도 나왔다. 이 때문에 상처를 입은 사람 중에서 업무에 복귀할 사람은 극소수일 가능성도 있으며, 앞으로 몇 년 동안 예전과 같은 분위기로 제작하기엔 매우 힘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 좀 더 치료를 해야 함에도 이른 시기에 업무에 복귀한 부상자들이 더러 있다고 한다. 언론 인터뷰에 응한 부상자들에 따르면 범인에 대한 최대한의 반격이라 생각했다는 모양.

  • 이번 참사의 여파로 2화까지 방영된 2019년 3분기 애니메이션 불꽃 소방대의 방영이 잠정 중지 및 연기되고 VOD 서비스도 중단한다는 공지가 나왔다. #[55] 작품의 소재가 방화에 맞서 싸우는 특수 소방대라서 본 사건을 연상시킬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2019년 7월 마지막 주에 방화 관련 표현을 순화한 3화 편집본을 방영을 공지하며 결방을 1주 만에 끝냈다. 이후 방송분에서도 계속해서 편집했기 때문에 이런저런 부분이 잘려나가 불꽃 소방대 애니메이션 전체의 평가가 꽤 낮아졌다. 비슷한 사례로는 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인해 방영이 잠정 연기된 코펠리온이 있다.[56]

  • 후지 테레비 2019년 3분기 게츠쿠 드라마인 감찰의 아사가오의 제3회 방영이 연기되었다. # 2019년 7월 21일, 공식 홈페이지에서 참사에 대한 명복을 빌며, 이미 제2회 방영 예고편에서 공개된 제3회의 주요 소재가 방화살인사건임을 밝히고, 이로 인해 예정되었던 제3회 방영일인 7월 22일에는 제1회, 제2회의 편집본을 방영할 것임을 공지했다. 7월 29일에 방영된 제3회에서는 예고편 등에서 나왔던 방화, 화재 관련 장면이 대부분 삭제, 축소되었다.


  • 한편 이 사건을 모방하려 한 듯한 사건이 여럿 일어났는데, 7월 23일에 히가시히로시마 시의 홈페이지에 "내 부하가 저지른 방화 사건을 잘 즐겼는가?"는 글과 "오후 3시까지 마루야마 호다카 의원이 기자 회견을 열어 사과하지 않는다면, 내일 오후에 시청 건물과 시내 학교에 가솔린을 뿌리고 불을 지르겠다"는 글이 올라와 히로시마현 경찰 본부에서 위력 업무 방해 등의 혐의로 수사했다. # 7월 25일에 홋카이도 삿포로 시에서 어느 파견 회사의 직원이 회사에 등록된 업무용 통신 어플로 상사에게 요양원 직원을 거론하며 "복수하러 갑니다. 홋카이도판 쿄애니 방화 사건이 될지도요?"라는 메시지를 보낸 일이 있었다. 이에 홋카이도 경찰 본부 삿포로 중앙 경찰서에서 이 사람을 체포했다. 이 사람은 요양원에서 일했으나 근무 태도가 좋지 않아 일이 끊겼다고 하며, 농담으로 한 말이라고 변명했다. # 거기에 아이치현에서 열리던 전시회 '표현의 부자유 그 후'에 위안부 평화비가 전시되어 있다는 소리에 한 인물이 아이치현 측에 팩스로 중지 안하면 기름통 들고 가서 방해하겠다고 항의했고 이를 감안해서 전시회 측은 전시회 책임자인 아이치현 현지사와 감독이 참석한 공식 기자회견을 열고 8월 3일자로 해당 전시회를 중지했다고 밝혔다. #

  • 위에 잠시 언급된대로 몇몇 언론에서 슬픔에 빠진 관계자&유족들을 상대로 취재경쟁을 벌였는데, 쿄애니측 변호사가 자제해 달라는 요청을 지속적으로 했다.

  • 교토 애니메이션은 사고로 인한 대응 인력 부족으로 소설 등의 작품을 공모하는 11회 교토애니메이션 대상 작품 모집을 일시중지한다고 한다. #

  • 10월 18일에 핫타 사장이 공식 기자회견을 가졌다. # 11월 3일과 4일 오전 10시 ~ 오후 5시, 교토시 사쿄구의 "미야코 멧세"에서 일반 대중을 위한 추도식을 열 것이라고 발표했다. 사건 이후에 접수된 메시지의 일부를 전시한다.

이외에 직원들의 근황에 대한 언급도 했는데, 부상자 33명 중 27명이 현장에 복귀하고 6명은 퇴직을 했다고 한다. 또한 현시점에서 쿄애니가 수주한 작품 중 공개시기가 가장 가까운 극장판 바이올렛 에버가든은 2020년 4월 이후에 개봉할 예정임을 알렸다.

  • 이 사건으로 제작의 중심이 되는 애니메이터가 다수 사망해서 이후 나온 작품 일러스트의 경우 예전하고 느낌이 많이 다르다는 지적이 있다. 미소녀 작화는 카도와키 미쿠가 담당하는 쪽으로 재편되어서 예전 느낌이 다소는 살아있으나 미소년 작화의 경우 니시야 후토시가 사망하면서 팬들은 새로 나오는 프리의 일러를 보고 예전 프리하고는 많이 다르다고 하는 상태.

  • 교토시 후시미구는 7월을 방화 화재 방지의 달로 지정하고 있다.

  • 화재 억제제 방사기 퀵스플래셔를 개발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7. 사건 이후[편집]


  • 핫타 히데아키 사장은 훼손된 건물을 철거하고 공원이나 추모비 등을 설치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으며, 회사 차원에서 영결식을 치를 예정이라고 20일 밝혔다. #2차 출처

  • 7월 21일 18시, 교토 애니메이션이 홈페이지에 사건에 대한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
레이와 원년[2019년] 7월 18일 오전 10시 30분경에 발생한 이번 처참한 사건으로 장래가 기대되는 젊은이들을 비롯한 저희 회사 사원들이 생명을 잃고 상처를 입었습니다.
애니메이션을 지망하여 전국에서 모인 젊은이들, 오랜 세월에 걸쳐 함께 작품을 만들어 온 당사 사원들이 이렇게 장래가 망가진 것이 안타까워 말을 이을 수 없습니다. 정말 우수하고 훌륭한 동료들이었습니다. 당사에게도, 업계에게도 정말로 크나큰 타격입니다.
사건의 상세한 내용은 경찰서에서 발표한 그대로입니다. 당사에서는 그 이상 말씀드릴 것이 없습니다.
당사는 현재 상처받은 사원의 가족과 친족, 그리고 돌아가신 사원과 가족과 친족에 대해 가능한 한 대처에 힘쓰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미디어 등의 대응은 아래의 변호사에게 의뢰하기로 하였습니다. 당분간 당사에 대한 직접적인 취재 등을 삼가주시길 바라겠습니다.

  • 7월 22일 교토 애니메이션 방화사건을 주제로 한 NHK 방송에서 하타 사장이 보낸 서한을 공개했다. #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둘도 없는 동료들이 다치고 목숨을 잃었습니다.
보도를 통해 전세계에서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분들이 저희에게 마음을 전해주시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지금도 어둠과 맞서고 있는 저희들에게는 둘도 없는 인연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병원에서 고통 속에, 힘껏 살고자 하는 동료들이 있습니다. 가족의 목숨을 잃고 슬픔 속에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잠시 시간을 주십시오. 교토 애니메이션은 앞으로도 온 세상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 감동을 키워주는 애니메이션을 전하고, 사원과 스탭들의 행복을 실현해 사회와 지역에 공헌해 나가기 위해, 손을 뻗어주시는 분들과 함께 필사적으로 싸워나가겠습니다.

주식회사 교토 애니메이션 대표이사 사장 핫타 히데아키 (八田英明) #

  • 7월 24일, 교토 애니메이션 웹사이트에 공식 기부 계좌 안내 글이 올라왔다. 또한 해당 페이지에서는 쿄애니 공식 기부 계좌 이외에 지금 실시 중인 모금 활동 중에 쿄애니 측이 확인 후 공식적으로 인증한 모금 활동들을 게시하고 있다.

전대미문의 사건을 통해 둘도 없는 동료들이 상처를 입고 목숨을 빼앗겼습니다.
보도를 통해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분들께서 저희들에게 응원 성원을 보내주시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지금 칠흑 같은 어둠에 맞서고 있는 저희들에게 있어서 단 하나뿐인 기댈 곳이 되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병원에서 괴로워 하며 살아남기 위해 분투 중인 동료들이 있습니다.
가족의 생명을 빼앗겨 슬픔에 빠져 계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저희들에게 잠시만 시간을 주세요. 쿄토 애니메이션은 앞으로도 전세계의 여러분들에게 꿈과 희망과 감동을 주는 애니메이션을 선보여 사원, 스태프의 행복을 실현, 사회와 지역에 공헌해 가기 위해 손을 내밀어주신 분들과 함께 죽을 각오로 싸워 나아가겠습니다.

주식회사 교토 애니메이션 대표이사 핫타 히데아키 (八田英明)

  • 2020년 1월 15일. 교토 노동국에서 노동재해로 인정받았다.

  • 1월 25일, 제47회 애니상 시상식에서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 2월 29일, NHK가 교토 애니메이션과 함께 제작하고 있던 단편 애니메이션 '애니x파라' 에피소드의 제작을 중지했다. #

  • 4월 28일, 제1스튜디오의 철거가 완료되었다. #

  • 2020년 초부터 일본에서 유행한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휴업을 진행하던 쿄애니가 6월 1일부터 휴업을 해제했다. 다만 쿄애니 점포와 Do 쇼핑!은 휴업 상태를 유지한다고 한다. 출처

  • 휴업이 해제되고 한 달 뒤인 7월 1일부터 29일까지 정기 채용·연중 채용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출처

  • 7월 3일, 쿄애니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1주기 추모와 관련되어 코로나-19로 현장 추모를 자제해달라 부탁하였으며 추모식 자체는 소수의 인원만 참석한 형태로 진행한다고 한다. # 그 대신 7월 18일 오전 10시 15분에 쿄애니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추도 영상을 공개할 계획이라 밝혔다.

  • 7월 13일 NHK종합 채널을 통해 두 희생자의 이야기를 다룬 추모 다큐멘터리 "그곳엔 당신이 없다 ~교토 애니메이션 방화 사건~"이 방영되었다.

  • 7월 18일 1주기 추모식이 사건 현장 부근에서 비공개로 열렸고, 쿄애니 유튜브 채널을 통해 8분 분량의 추모 영상이 공개되었다. 영상 공개는 사전에 공지된 것처럼 15분에 시작했지만 추모식 자체는 그로부터 15분이 흐른 10시 30분에 시작하였는데 이는 1년 전 사건이 발생한 시간과 맞추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사건이 일어난 시간과 같은 10시 35분 쯤 묵념을 진행했다. 추모 영상은 사건 이후의 상황과 3편의 익명 조문 편지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을 안내하였다.[57]

  • 교토 신문에도 추모글이 게시되었다. #

  • 오무라 유키(大村勇貴) 고향 시즈오카현 기쿠가와시에서 오무라의 작품을 바탕으로 논아트가 만들어졌다. #

  • crunchyroll에서 교토 애니메이션의 대표이사 핫타 히데아키와의 이메일 인터뷰 글을 게시하였다.

  • 2021년 4월 '아이돌 베이비 돌즈'의 라이브 중 오카다 시게루(38세 무직)란 사람이 가솔린으로 방화를 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 사건을 모방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다행히도 이 건물은 쿄애니와 달리 소방 설비가 잘 되어서 사망자가 없었다.

  • 이 부분은 2021년 10월 17일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다뤄졌다.[58] 기사, 링크


  • 9월 5일 첫 공판이 열렸다. #
교토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원 재판 첫 공판에서 아오바 피고측은 기소 내용을 인정하고 있지만, 사건 당시는 정신 장애에 의한 심신 상실의 상태였다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변호 측은 모두 진술에서 아오바 피고가 31세 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해 인터넷 게시판 커뮤니티 상에서 라이트 노벨 편집자로부터 한눈에 보여 애니메이션 감독으로부터 조언을 받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애니메이션 감독」과의 대화에서 「레이프마」(강간마) 등으로 야유를 받으면서, 자신이 과거에 일으킨 여성 폭행 사건을 알고 있다고 의심암귀가 되어 심하게 침체되었다고 한다. 자포자기가 된 아오바 피고는 34세 때 편의점 강도 사건을 일으켜 복역. 변호인 측은 이때 교도소 생활에서 어둠의 인물로부터 대출책이나 TV광고 등을 통해 다양한 메시지를 받게 됐다고 밝혔다. 검찰 측이 범행 동기로서 지적하는 「쿄애니 대상」에 응모한 자작 소설의 낙선에 대해서도, 변호 측은 「어둠의 인물이 짰다」라고 아오바 피고가 파악하고 있었다고 설명. 그러다가 「어둠의 인물과 쿄애니가 일체가 되어 괴롭히고 있다」, 「어둠의 인물과 쿄애니에게서는 벗어날 수 없다」라고 믿게 되어, 양자를 「소멸시키고 싶다」라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호소했다.


8. 지원 모금[편집]


2019년 8월 2일
2억 4903만 484엔 (약 28억 520만 3887원)#
2019년 8월 13일
19억 6800만 엔 (약 224억 627만 원)#
2019년 12월 27일
33억 4138만 3481엔 (약 354억 7백만 원)#

모금은 2019년 12월 20일부로 종료되었으며 최종적으로 약 33억 4138만 3481엔, 한화로 약 366억 3225만 5378원의 기부금이 모였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숫자가 숫자라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33-4 드립이 난무했다. #


9. 관련 문서[편집]


  • 사건 사고 관련 정보/일본
  • 가부키초 빌딩 화재사건
  • 대구 지하철 참사[59]
  • 논현동 묻지마 방화 살인사건
  • 진주 아파트 방화·흉기난동 살인 사건
  • 룩 백[60]
  • 케이오선 흉기 방화 난동 사건
  • 2021년 오사카 빌딩 화재
  • 대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 사건
[1] 신문·TV에서는 "교토 애니메이션 방화사건(京都アニメーション放火事件)", "쿄애니 사건(京アニ事件)", "쿄애니 방화(京アニ放火)"라고 칭한다.[2] 남성 14명, 여성 22명[3] 15명 중상(한국인 여성 직원 1명 포함), 18명 경상.[4] 사장 핫타 히데아키에 따르면 제1스튜디오에 보관 중이던 과거 자료들도 모두 소실되었다고 했으나 서버에 저장되어있던 디지털 자료들은 회수에 성공했다. 그리고 2020년 4월 28일 철거가 완료되었다.[5] 범행 직후 실명, 나이, 거주지, 성별이 공개되었다.[6] 이전에도 안노 히데아키, 타니구치 모리야스 등 많은 크리에이터가 살해 협박을 받았지만 실제로 살해 사건이 벌어진 적이 없어 경각심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진짜로 살인이 일어날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7] 참고로 정문 방향이 남쪽이고, 직원 출입구 방향이 서북쪽[8] 피의자는 사건 발생 30분 전, 쿄애니 제1스튜디오 기준 서쪽 500미터 떨어진 주유소에서 발전기에 사용한다는 명목으로 휘발유 40리터를 구입했다는 사실이 조사결과 드러났다.[9] 일본어로는 '타레가베'(垂壁)로 부른다. 연기는 위쪽으로 확산하므로 천장쪽에 연기가 지나가는 걸 막기 위해 설치한 벽을 뜻하며, 위쪽 사진에서 나선형 계단 쪽의 천장을 둘러싸고 있는 투명한 벽을 확인할 수 있다.[10] 상술한 내용인 스프링클러 미설치, 목조 구조물, 나선 계단으로 인한 것이 매우 유력하다. 이 세 가지 원인들은 모두 대규모 개축 공사로만 해결 가능하고 화재에 매우 취약한 시설물들이다. 소방 훈련만으로는 화재가 났을 경우 대피는 가능해도 확산 시간이 늦춰지지 않는다.[11] 사건 당일기준 | 1층 2명, 2층 11명, 3층 20명 | 남성 12명, 여성 21명[12] 3층 사망자 중 19명은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갔지만, 문을 열지 못하고 서로 겹쳐서 쓰러진 상태로 발견, 1명은 2층에서 3층으로 올라오는 계단에서 발견.[13] 1명은 발견 당시 성별을 판독할 수 없었으나, 2일 뒤 여성으로 성별이 밝혀졌다.[14] 현장에서 구급차로 병원에 간 인원의 숫자[15] 입원 16명[16] 누적 사망자 34명 | 30대 남성 1명, 병원에서 사망#[a] A B C 부상자는 치료가 끝나서 줄어드는 경우가 다수이고, 이 때문에 정확한 카운팅이 안 되므로 사망으로 인한 부상자의 변동은 따로 기록하지 않는다. 무사한 인원의 변동 역시 같은 이유로 생략.[17] 누적 사망자 35명 | 20대 남성 1명, 17시 53분에 병원에서 사망#[18] 누적 사망자 36명 | 20대 여성 1명, 치료 중 감염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19] 2001년에 일어난 가부키초 빌딩 화재사건이 사망자 수는 44명으로 더 많지만 이쪽은 방화 가능성이 높을 뿐 미제사건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확실하게 범죄로 판명된 사건 중에는 이쪽이 가장 많은 수이다.[20] 키가미 요시지로 추정.[21] 전 세계 누리꾼들이 SNS 등을 통해 이 부분을 엄청 비판하였는데, 전소된 쿄애니 제1스튜디오를 슬픔 속에 직접 보러 온 사상자 가족들에게 무작정 마이크와 카메라를 들이 밀면서 인터뷰를 따내려는 상식 이하의 행동을 했다.[22] 이후 10월 4일에 1명이 추가 사망하면서 총 사망자 수가 36명으로 늘었다.[23] 만화 시로바코의 주인공 미야모리 아오이와 같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면 된다.[24] 외전인 리즈와 파랑새 제외[25] 부친도 생존은 거의 포기했는지 살아있기를 바란다는 식의 말은 하지 않고 "지금 바라는 건 사건 전으로 시간이 돌아갔으면 좋겠다. 단지 그것 뿐이다."라고 말했다. "손자가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했다"라고도 말했다.[26] 핫타 히데아키 쿄애니 사장에 따르면 피해를 입은 직원들 중 한 명이 다리를 절단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한다.[27] 일본 회사는 이마저도 자회사에 가깝다.[28] 휘발유는 사건 당일 스튜디오에서 500m 거리에 있는 주유소에서 "발전기에 사용한다"며 40리터를 통 2개에 담아간 것으로 드러났다.[29] 2020 도쿄 패럴림픽에 관련한 것으로 제작.[30] 휘발유 같은 인화물질로 인한 화재의 경우, 아주 빠르게 불타올라 산소가 빠르게 고갈되고 실내에 연기가 빠르게 퍼지면서 산소 부족 및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인한 호흡곤란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져서 창문을 열 생각을 못하고 질식하는 경우가 많다. 비닐봉지를 뒤집어 쓰면서 장난치다가 호흡곤란이 오자 뒤집어 쓴 비닐을 찢거나 벗지 못하고 질식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경우와 같다.[31] 이 영상에서 엠프 스피커의 소리가 얼마나 큰지 대강 느껴볼 수 있다. 참고로 이 물건은 상당한 고가다.[32] 실제로 그 범인과 1살 차이이며, 사건도 3개월 차이로 비슷한 시기에 발생하였다.[33] 사진 속에서(특히 하단) 드러누워 다리만 보이는 사람이 피의자, 얼굴을 들이대는 사람이 경관이다.[34] 상습방화범이 아닌 이상 휘발유나 시너 같은 즉화성 액체로 방화를 시도한 방화범은 열에 아홉은 크든 작든 화상을 입는다. 그래서 화재 조사관이나 보험 조사원들은 탐문을 할 때 관련자들의 얼굴이나 사지를 유심히 살핀다. 대구 지하철 참사의 피의자 김대한도 이렇게 잡혔다.[35] 그 이전 핫타 히데아키 사장이 인터뷰에서 피의자가 소설을 응모해 온 적이 없었다고 발언한 적이 있었으나 대변인에 따르면 해당 소설은 1차심사를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에 심사위원을 제외한 사장 포함 쿄애니 직원들에게는 해당 소설의 응모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다고 하므로 이 때문에 혼선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36] 사실 저작권법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해당 소설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는 문제는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테러나 무차별 살인을 저지르는 범인들은 대중의 관심과 이목을 끌기 위한 경우가 많은데 범인이 쓴 소설을 일반 대중에게 공개하는 것은 오히려 범인의 관심병을 충족시켜주고 테러의 목적을 달성시켜주는 행위가 될 수 있다. 당장 사가와 잇세이 등이 책을 써서 출판해 대중의 관심을 끌고 일부 추종자들까지 만들어낸 사례들이 엄연히 존재한다.[37] 자기소개가 나오는데 생년월일과 취미(비디오 게임), 장래희망(부자)에 대해 적혀있다. 생년이 53년이라 적혀 있는데, 이는 1926년부터 시작된 연호인 쇼와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즉, 쇼와 53년은 1978년인 셈이다.[38] 키가 크고 잘 생긴 외모 탓에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바람기도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신지도 유전인지 키가 큰 편이다.[39] 졸업한 뒤부터 계속 무직으로 살아온 건 아니었는지, 비상근직원으로 취직한 적이 있고, 인재 파견회사에 등록된 적도 있으며, 우체국에 취직하기도 했다. 하지만 출소한 뒤론 직업을 가졌다는 얘기가 없다.[40] 상당부분 흙이나 돌을 쓰는 한국과 중국과는 달리 일본은 전통적으로 목재건물이고 현재도 수많은 목재건물들이 남아있다. 더군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경우라면 한 번 불이 나면 피해가 매우 커진다. 에도시대부터 방화범의 처벌은 기본이 화형이었으며, 도쿄 대공습 당시 육군항공대 책임자던 커티스 르메이가 기존 고폭탄 60%, 소이탄 40% 비율이 아닌 100% 소이탄으로 바꿔서 폭탄이 바닥날 때까지 쏟아 부은 이유도 미군 자체 분석 결과에 따르면 일본의 도시 구조 자체가 화재에 취약했기 때문이다.[41] 물품 중에는 쿄애니 관련 서적과 DVD가 있었다.[42] 화재 전반으로 보자면, 전 토에이 애니메이션 연구소장 야마구치 야스오의 저서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에서 1923년 간토 대지진과 1945년 일본 본토 공습 때도 애니 제작 스튜디오들이 파괴되거나 불타버렸다고 나왔다. 또 영국 아드만 스튜디오가 2005년 전기화재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해 스튜디오가 전소한 적이 있다.[43] 마츠모토 시 사린가스 살포사건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의 사망자 수를 합친 것보다 사망자 수가 더 많다.[44] 쿄애니는 신인 혹은 인지도가 낮은 무명급 성우들을 적극 기용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렇게 캐스팅된 성우들 중에 업계내 입지도를 다진 성우들이 많은 편이며 트위터로 지속적으로 추모하는 계열도 성우 쪽이다. 자세한 사항은 교토 애니메이션 문서 참고.[45] 번역: 일을 하자. 소설을 쓰고, 만화의 원작을 쓰자. 책을 읽고 게임을 즐기고 애니메이션과 영화도 보자. 나에게 아름답고 가치있는 것들을 하나라도 늘리자.[46] 타케모토 야스히로가 특히 적극적인 열의를 보여 오랫동안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정도였다. 작가도 타케모토 감독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여러번 전했다.[47] 벨기에, 프랑스 만화의 캐릭터들이 추모를 하고 있는 모습을 올렸다. 땡땡의 모험 등이 눈에 띈다.[48] 처음에 불을 내는 방화(放火)를 불을 막는 (防火)라고 잘못 적었으나, 그 후 '방화' 한자의 한국 발음이 같다는 점으로 이해한 일본인들의 제보로 이틀 만에 수정되었다.[49] 쿄애니 최고 흥행작 중 하나로 꼽히는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1기의 연출이 바로 이 사람이다.[50] 자민당과 공명당, 그리고 민주당 교토부연합, 사민당 교토부연합이 공동으로 후보추천. 한국에선 박원순 서울특별시장과 외모가 닮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이름 때문에 KADOKAWA가 쿄애니 비난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참고로 카도카와의 한자 표기는 角川이라서 음독만 같을 뿐이지 실제로는 다르다.[51] 재무성과 금융청의 전신인 대장성 출신인 재정학자.[52] 현재 이곳은 한국 쪽 인터넷 뉴스를 근거로 반박하는 이와 편승해서 혐한 발언을 하는 이들로 들끓었다. 그러나 되려 마음 20개 이상의 리플을 보면 루머를 퍼뜨리는 일부 악유저들을 지적하고 있다. 그 중에 아예 한국 포털 사이트에서 쿄애니 방화 참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이미지를 가져와서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53] TVA 혹은 극장판 중 어느 쪽인지는 공개되지 않았다.[54] 유족측에서 원하지 않아 필명으로 나온 분들도 있다.[55] 애니플러스에서는 "현지 방송국 사정으로 인한 결방"으로 간주하고 2화 재방송으로 대체 편성한 상태다. # 다만 이에 대해선 비판점과 논란점이 좀 있다.[56] 이 작품의 메인소재가 원자력 사고라 연기될 수 밖에 없었으며, 2년이 지난 2013년에 애니화가 이뤄졌다.[57] 추모 영상은 7월 19일 기준으로 비공개 처리되었다. 번역판 | 번역글[58] 공교롭게도 해당 에피소드의 나레이션을 담당했던 최원형은 실제로 교토 애니메이션 작품을 더빙한 적(풀 메탈 패닉? 후못후사가라 소스케, Kanon아이자와 유이치)이 있었다.[59] 방화 과정에서 피의자에게 불이 옮겨붙었다는 공통점이 있는 사건이다. 다만 김대한은 병원에서 치료 중 체포되었다.[60] 사건 2주기에 만화가 후지모토 타츠키가 그린 헌정작이다. 작가 본인의 언급은 없었으나 작품 속 캐릭터들의 이름과 내용으로 관련 내용임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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