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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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극장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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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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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극장의 로고.

1. 개요
2. 역사
2.1. 신문화운동과 항일정신의 발판
2.2. 위기와 극복
2.3. 다시 찾아온 위기
3. 특징
4. 관련 기사
5. 여담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5가에 위치한 광주 최고(最古)이자 현존하는 한국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극장[1]

현재는 오랜 시간의 개보수 끝에, 856석이 확보되었다. 메가박스 부산극장 1관이 리모델링하면서 좌석이 1/5로 줄어드는 바람에(...) 실내 영화관 중 최다 좌석을 보유하는 영화관이 되었다.

광주극장 네이버 카페 바로가기[2] 광주극장 페이스북 바로가기 인터넷 예약 홈페이지(디트릭스)


2. 역사[편집]



2.1. 신문화운동과 항일정신의 발판[편집]


학교법인 유은학원의 설립자이자 만석꾼이었던 최선진이 1933년 30만 엔(円)의 자본금으로 주식회사를 설립하여 1935년 10월 1일1,250명 수용 규모의 광주극장을 개관했다.[3]

사실 당시에 이미 충장로 (구)런던약국 사거리 근처 파레스호텔 자리에 광주좌(光州座)라는 극장이 있었다. 하지만 광주좌는 일본인이 세운 극장 1호였고, 그런 의미에서 조선인이 세운 광주극장은 당시 지역민들에게 큰 충격을 불러왔다고 한다.[4]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일제의 검열을 받으면서도 창극단이나 판소리 등을 극화한 공연을 주로 상영하면서 신문화운동과 함께 항일정신을 이어갔고, 해방 후에는 김구의 강연회나 음악회, 연극제를 여는 등 문화교육운동의 장소로도 활용되었다.

하지만 1968년, 극장에 큰 화재가 나서[5] 건물 대보수를 했다. 1997년에는 다시 내부 좌석교체를 했고 개보수 및 건물 전면 일부를 변경했다.


2.2. 위기와 극복[편집]


21세기에 들어서자 멀티플렉스가 광주에도 많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인기가 밀리기 시작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1년에는 광주광역시교육청으로부터 극장 폐쇄 명령을 받으면서 위기를 맞았다. 이유는 극장이 학교보건법상 유해시설이며, 15m 안에 유치원이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광주극장은 명령을 받아들이지 않고, 심야 예술영화 프로그램을 신설해 다른 극장에서 볼 수 없는 영화들을 상영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시교육청은 행정명령 불이행으로 극장주를 검찰에 고발했고, 극장 측도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면서 맞섰다. 결국, 2004년 5월 27일, 헌재는 학교정화구역에서의 극장 영업을 금지한 학교보건법 관련 조항에 대해 재판관 전원 일치로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영업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항소심 판결문 전문 헌법재판소 2004. 5. 27. 선고 2003헌가1,2004헌가4(병합) 전원재판부 판결문 전문


2.3. 다시 찾아온 위기[편집]


2002년부터 예술영화지원사업을 통하여 영진위로부터 지원금을 받게 되어 극장운영에 큰 버팀목이 되어 왔으나, 2015년부터 예술영화전용관 지원사업이 "예술영화유통배급지원사업"[6]으로 변경됨에 따라 지원금이 끊기게 되어 2015년 이후부터 점차 경영난을 겪게 되었고, 고육지책으로 현재는 후원회원을 모집하고 있는 상황이다.# 적자운영이 계속된다면 광주극장의 존속도 장담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3. 특징[편집]


  •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2003년부터 광주 최초의 예술영화 전용관으로 지정받아서 일반 영화관에서 상영되지 않는 예술영화, 독립영화, 3세계 영화 등의 상영만 하고 있다. 즉, 마이너의 세계만 추구한다.
  • 위의 사진에서도 보이듯이 영화간판을 직접 그려서 붙여놓는다.
  • 스크린 크기는 유스퀘어CGV 광주터미널 IMAX관이 들어오기 전까지 호남 최대였다.[7]
  • 한 달에 한 번은 아날로그 영사기를 이용하여 필름영화를 상영한다.
  • 관객의 영화감상을 방해하지 않기 위하여 영화 시작 전에 상업광고는 절대 하지 않고,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조명을 켜지 않는다.
  • 화재가 난 이후로 개보수를 엄청 했기 때문에, 영화관 외부나 내부 모두 1960~1970년대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 2002년에 예술영화관으로 전환한 뒤에, 연간 평균 좌석점유율 1%대를 자랑(?)하고 있다.
  • 기본적으로 비좌석제라서, 위대한 침묵 급의 영화가 아니면 원하는 아무 자리에나 앉아도 무방하다. 사실 사람이 거의 없다
  • 영사실이 좁아 디지털 영사기는 영사실 바깥에 설치되어 있고, 난방 효율이 떨어져 겨울에는 2층만 개방한다. 하지만 지금은 난방만 안될뿐이지 들어가고 싶다면 들여보내준다. 다만 엄청 추울뿐이지
  • 일제강점기 때 만든 영화관답게 임검석이 있다! 임검석(臨檢席)이란, 일제강점기에 일제 순사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극장내 동태를 파악하고 공연이나 영화 상영에 대해 ‘감놔라 배놔라’하기 위해 마련됐던 곳으로, 그들 입장에서 뭔가 위험한 내용이다 싶으면 호루라기를 불어 주의를 주었고, 묵과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호루라기를 세 번 불어 관객들을 해산시켰다. 1980~90년대에는 선도 선생들의 자리였다. 어찌 보면 학교 선생님들에게 극장이 협력해 학생들을 단속한 극장이기도 하다. 지금도 1층 관람석 뒷쪽에 6자리가 남아 있다. 임검석 사진 보기 당시의 극장 모습을 보여주는 귀중한 건축자료로, 임검석의 좌석 자체는 일반 관객들도 이용할 수 있다.


4. 관련 기사[편집]




5. 여담[편집]


  • 유은학원에 속한 학교를 다니는 학생이라면, 학교를 다니는 동안 한 번 쯤은 이 극장에서 단체관람을 하게 된다고 한다. 현재 극장의 주인은 최용선으로, 극장 창업주이자 유은학원 설립자인 최선진의 증손자이다. 최용선은 현재 유은학원 이사장이다. 그리고 바로 옆이 충장로라서 영화 안보고 땡땡이 친다고 카더라 땡땡이 치면 전교생이 다모인 극장에서 공개처형을 당할수 있으니 절대로 치지 말자....
  •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를 좋아하는 매니아 층에서는 성지로 통하는 곳이다.
  • 전남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하면 한번 쯤은 와서 영화를 보게된다. 학과 전통으로 학과 신입생 OT를 광주극장에서 영화를 감상하고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다.
  • 겨울에 영화 보기가 힘들다. 시설이 시설인지라 관람하기에 너무 춥다. 대신 무릎을 덮을 이불이 제공되는데 간혹 1층은 난방문제로 관람이 제한될 때도 있다.
  • 2019년부터 서울 이외에 각 지방 광역시에서도 스웨덴 영화제를 하게 되면서 광주에서는 광주극장에서 개막식을 하였다.
  • 통합전산망은 2020년 10월부터 디트릭스에서 관리하고 있다.


6.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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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식회사 설립년도를 기준을 두면 2022년 현재 한국 나이로 89살, 극장 설립년도로 기준을 두면 87살이다! 서울에는 광주극장보다 역사가 오래된 극장이 몇몇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사라졌다. 참고로 현존하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관은 인천 신포동에 있는 애관극장이다.[2] 홈페이지가 따로 없고, 이 카페에서 상영일자와 안내를 한다.[3] 참고로 이 극장이 광주광역시에 조선인이 설립한 최초의 극장이다.[4] 지금이야 별로 건물이 커보이지는 않지만, 일제강점기 당시에는 큰 건물 자체가 얼마 없으니 엄청난 규모였다고 한다.[5] 2018년 6월 현재가치로 12억 쯤 된다.[6] 영진위가 선정한 영화 24편 중 매월 2편을 주말 프라임타임에 12차례 상영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라고 한다.[7] 현재는 CGV 전주효자점 IMAX관의 스크린이 호남에서 가장 큰 스크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