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가(후한 반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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郭家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2. 생애
3. 기타


1. 개요[편집]


고대 중국 후한 말의 인물로 사례 빙익군 합양현 사람.


2. 생애[편집]


184년에 장각이 유주, 기주 등에서 군대를 일으키자 연주, 예주, 형주, 양주 등이 동시에 일어나는 등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다. 곽가는 이 반란에 호응해 성과 관사를 불태우자 온 백성이 동요해 인심이 불안했으며, 세 군에서 변란을 알려왔고 다급합을 알리는 보고가 잇달아 이르렀다고 한다.

당시 영제가 자문을 구하고 상의하면서 여러 신하들이 조전을 추천해 합양령으로 부임하도록 하면서 조전이 파견되자 진압되었다.


3. 기타[편집]


곽가가 평정된 후에는 조전이 합양현의 학자들인 이유, 정인, 난규 등을 조정에 천거했고, 사서의 기록에는 보이지 않고 조전비의 기록으로 남아있다.

곽가의 반란이 적힌 조전비는 이유의 자와 출신지, 조정에 징소된 박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사료이자 후한의 서체 연구 자료로 매우 유명한 비석이다.

조전비에 보이는 한대 변경출신 관리의 성장과 배경이라는 논문에서 곽가의 반란으로 백성이 동요하고 세 군에서 변란을 알린 내용에 대해서 비석의 주인인 조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기록된 내용으로 조전의 공적을 기리고 추종하던 자들이 인식하고 있던 후한 말기의 시대 상황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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