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기본군사훈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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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기본군사훈련단
空軍基本軍事訓鍊團
ROK Air Force Basic Military Training Wing
[1]
파일:공군기본군사훈련단.png
공군인의 요람 기본군사훈련단
창설일
1949년 6월 10일
상징명칭
비성대(飛星臺)[2]
약칭
기훈단(대외), 훈련단(대내)
소속
대한민국 공군
상급부대
공군교육사령부
규모

역할
대한민국 공군의 병사와 장교 및 부사관 육성
단장
준장 이충재 (공사 41기)
주임원사
상사 000 (부사후 000기)
위치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공군교육사령부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
2. 역사
3. 편제
3.1. 군사훈련전대
3.2. 공군군사학교육대대
3.3. 학군단
4. 기간병들을 위한 생활 안내
5. 교통편
6. 공통과정
7. 신분별 과정
7.1. 장교/준사관 과정
7.1.1. 학사사관
7.1.2. 학군사관
7.1.3. 준사관
7.1.4. 공군화 과정
7.2. 부사관
7.3. 병
8. 기타
8.1. 부대가
8.2. 병영식
9. 여담
10. 관련 문서
11. 둘러보기



1. 개요[편집]


공군인의 요람 기본군사훈련단

경상남도 진주시에 위치한 대한민국 공군 훈련소. 대한민국 공군 소속이었다면 누구나 거치는 곳. 약칭은 기훈단[3] 혹은 훈련단[4]. 훈련단 내부에선 훈련단이라고 많이 한다.

육군과는 달리 학군사관후보생/학사장교후보생/준사관후보생/부사관후보생/훈련병도 이곳에서 훈련을 받는다. 이름에 걸맞게 공군의 기본군사훈련을 도맡아 하는 셈. 공군사관학교공군항공과학고등학교는 예외다. 아니, 사실 공사 생도들도 방학 때 군사학 훈련을 이곳에서 받고, 공군항과고 졸업반 학생들도 군사교육을 일부 이수하고 있으므로 기실 모든 공군 워너비들이 다 거쳐가는 곳이다. 기훈단은 공군교육사령부 예하 부대로 기지 내에 공교사 본부와 공군항공과학고등학교, 특기학교, 외국어교육실, 공군 군악대 등과 함께 자리잡고 있다.

참고로 아래에 쓰인 교육 사항들은 여러 사정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도 있다는 점에 유의하자.

기훈단 홈페이지. 그리 기간장병이 많은 부대는 아니지만 공군의 입대자원의 상당수가 공군병이기 때문에 공군 관련 홈페이지에선 거의 1, 2위를 다투는 곳이다. 민간인들에게 공군의 인상을 결정하는 부대이기도 하다. 또한 입대장병훈련병 사진은 여기서 볼 수 있다.


2. 역사[편집]


일단 가장 근본이라면 조선경비대 제1여단사령부 내 항공부대[5]에서 1948년에 7월 21일에 77명의 1기 항공병 교육이 되겠다.출처

1951년 경상북도 경산시에 위치한 제1항공교육대에 근거한다. 그러다가 1952년 7월 1일에는 대전광역시로 이주하여 '항공병학교'로 개칭하였다. 당연한 얘기지만 공군교육사령부의 핵심부대라 교육사령부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1952년에는 항공병학교로 소속이 바뀌었고 계속 대전 생활이 이어진다. 1980년에 후보생대대[6]가 간부교육대대로 바뀌었고[7] 신병대대는 신병교육대대로 학술대대는 군사학교육대대로 바뀌었다.

1988년 10월 교육사가 경남 진주로 이전하면서 따라갔다. 같은 해 제10전투비행단에게 군견과 유격 기능을 인수하여 헌병교육대를 설치했다가 2005년에 공군행정학교로 헌병 교육을 이관했다. 1990년에 신병교육대대가 제1신병훈련대대와 제2신병훈련대대로 분할되었다. 같은 해에 정보교육대대도 생겼는데[8] 2005년에 공군행정학교로 헌병교육대와 함께 이관했으며, 정교대대는 충청북도 청주시 부근에 주둔하고 있다.[9]

1995년엔 전대급에서 급으로 올라 지휘관대령에서 준장으로 올랐다. 2001년부턴 신병과 장교 교육과정에서 하사 조교 대신에 병 조교가 도입되었다. 장교교육 과정의 경우 부사관장교간의 애매한 관계 때문에 차라리 병을 조교로 쓰는 걸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군 규정상 사관후보생은 병보다 높은 지위에 있기 때문에[10] 병 조교는 생활 관리나 훈련 지시는 안하고 시범만 보인다. 따라서 후보생과 말을 섞을 일이 없어 그냥 로봇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병 과정에 병 조교를 투입한 것은 하사 조교들이 훈련병을 자기 부하처럼 사적인 심부름을 시키거나 하는 일 등이 나타나 그 부작용을 줄이고 병들의 참여의식을 독려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아주 가끔씩 훈련병 과정에 하사조교들이 보이는데, 이 경우 부사후 과정을 통해 임관한게 아니라 병부터 조교를 하다가 임기제부사관으로 임관한 경우이다. 따라서 길어야 1년 정도 안에 전역하는 편. 2년에 한 명 보일까 말까 한다. 2007년엔 간부교육대대 밑에 있던 사후교육대와 부사후교육대를 각각 장교교육대대와 부사관교육대대로 격상시켰다. 2010년에는 신병 1대대를 각각 1대대와 3대대, 신병 2대대를 2대대와 4대대로 분할하였다. 2014년부터 군사훈련전대를 창설해 각 교육대대를 그 휘하로 귀속시켰다. 전대장(대령) 밑에 장교대장(중령), 부교대장(중령), 1/2대대장(중령), 3/4대대장(소령), 군사대장(중령)이 있다.

7대 기본군사훈련단장(2002.4.20.~2003.5.6.)이었던 박종헌 당시 준장은 이후 진급하여 교육사령관을 역임하였고 대한민국 공군참모총장까지 지냈다.[11]

대령급이 단장에 오르는 경우도 있는데, 이 때는 준장 진급 확정이라고 보면 된다. 17대 훈련단장 최인영이 그러한 예인데, 당시 충북에서만 진급자가 11명이나 포함되었고, 충주고에서만 4명이나 장성 진급자가 배출되며, 소소한 화제가 되기도 했다.#


3. 편제[편집]


훈련단장은 준장이다. 단장은 들의 수료식에 임석상관으로 입석하며 [12] 부사관임관할 때 사령관이 임석상관이기 때문에 내빈으로 뒤에 앉는다. 사기 진작 차원에서 부사관 임관 때 참모총장이 오는 경우가 있다. [13] 다만 기훈단장 명의로 항상 상이 나가기는 한다. 장교 임관 때는 참모총장이 오지만 기훈단장 명의로도 상장이 나간다. 임기제부사관 수료식엔 단장도 안 오고 부사관교육대대장이 한다. 그때문에 의장대군악대의 지원도 없어서 행사를 공군행사음악 CD로 해야 한다. 예전 정보교육대대가 훈련단 소속일 때는 대대장 이취임식 때 단장이 임석하고 공군사관학교 군악대 지원을 받아서 행사를 진행했었다.

교육받는 사람들은 시험 과락 등의 일이 아닌 이상 갈 일이 없긴 하지만 단본부가 있다. 단본부는 각 교육부대를 지휘, 감독하는 일을 한다. 교육훈련 시간표를 짜고 담당하는 교육훈련처와 부대 훈련[14]과 보안을 담당하는 계획처[15], 교육평가와 설문조사 등을 하는 평가처[16]와 부대 행정을 담당하는 인사행정처가 있으며 공병관리와 보급 등을 담당하는 교육지원대[17]가 존재한다.

단본부와 교육지원대 외에 예하 대대로 장교교육대대, 부사관교육대대, 신병제1훈련대대, 신병제2훈련대대, 신병제3훈련대대, 신병제4훈련대대, 군사학교육대대와 한국교통대, 항공대, 한서대 학군단이 있다.[18]

2014년 현재 편제가 바뀌어 기본군사훈련단과 단본부 밑에 크게 군사훈련전대, 군사학대대, 교육지원대가 존재한다. 군사훈련전대에는 장교교육대대, 부사관교육대대, 신병1대대~4대대가 속해 있고, 군사학대대에는 화기학교관실, 전술학교관실, 화생방교관실, 일반학교관실, 응급구조교관실이 존재한다. 신병훈련전대는 현재 존재하지않는다. 군사훈련전대장은 대령, 군사학대대장은 중령이 맡는다. 전대장은 유사시 단장의 업무 위임을 맡기 때문에 부단장이 없는 훈련단 특성상 사실상 부단장과 같은 직무를 수행하며, 사실상 지휘관계가 없는 군사학대대나 교육지원대 등에도 업무 감독을 많이 하는 편이다.


3.1. 군사훈련전대[편집]




3.1.1. 장교교육대대[편집]


파일:장교교육대대.jpg

장교교육대대(將校敎育大隊, Officer Training Squadron)[19]

학사사관후보생, 학군사관후보생, 준사관후보생육군학생군사학교에서 교육 받고 온 특수장교(군종, 의무, 법무)의 공군화 과정을 담당한다. 각 교육대대장 가운데 최선임. 보통 다른 대대장보다 한 기수 선임이 할 때가 많다. 2007년 이전까지는 간부교육대대장 밑의 사관교육대장(소령)이 과정장이었고 간부교육대대장이 부사관교육대까지 합쳐 총괄했다. 병이 워낙 많은 훈련단의 특징상 존재감이 없는 걸로 유명하다. 훈육관은 전원 장교이며 시범을 보이는 조교는 이다. 준사관이 교육 입과하면 거의 동원훈련 포스를 풍기는 걸로 유명하다. 주된 과정은 역시 사관후보생이다. 기간이 12주나 되다 보니. 학군은 방학 때 4주 들어오고 훈육관들이 학군단에서 파견 오니... 준사관은 2주 동안 동기 모임이나 개최하고. 공군화 과정 온 사람들은 민간인 포스 풍기다 보니.


3.1.2. 부사관교육대대[편집]


파일:attachment/new_mark.jpg

부사관교육대대(副士官敎育大隊, Non-Commissioned Officer Training Squadron)

2007년 간부교육대대 부사후교육대에서 대대급으로 격상됐다. 공군항공과학고등학교 학생, 공군 학군부사관 후보생, 공군 민간부사관 후보생, 공군 현역부사관 후보생(임기제부사관[20]) 등의 공군의 모든 부사관후보생에 대한 기본적인 기초군사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교육인원이 가장 많은 과정은 민간부사관 후보생으로 연간 3개 기수 정도를 교육하고 있다. 공군항과고 학생과 학군부사관 후보생의 경우 부사관교육대대 입과 전 자교(공군항과고, 부사관학군단)에서 이미 상당 기간의 기본적인 군사교육을 이수하고 오기에 교육 기간이 다소 짧다. 항공과학고 졸업반 학생들의 경우 항공과학고 학생대 소속 훈육관이 같이 파견되기에 부사관교육대대 소속 훈육관이 모든 교육훈련을 전담하지는 않는다. 공군항과고 학생들의 교육기간에는 민간 부사후들도 있기에 장교교육대대의 빈 건물을 빌려 쓴다. 당직사관실이 두 개가 돌아가기 때문에 업무 부담이 다소 있다.

훈육관들의 대다수가 부사관인데 교육훈련 내용이 군 항공기술 분야의 전문적인 내용[21]이 아니라 군인이라면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기본적인 기초군사훈련이기에 기술부사관인 항공과학고 출신은 거의 없다. 조교는 하사 조교이며 보통 임관 2년차까지 근무하다가 다른 부대로 전속간다. 장교교육대대의 병 조교가 시범 전용이고 신병훈련대대의 병 조교는 여러 제약이 있는 반면에 이곳의 하사 조교는 일단 간부인지라 엄청나게 굴려댄다. 병 조교도 없기 때문에 병은 행정병이 전부이며 나머지는 모두 간부이다.


3.1.3. 신병훈련제1~4대대[편집]


파일:attachment/airmanfirst.png

신병훈련대대(新兵訓練大隊, Airman Training Squadron)[22]

1대대부터 4대대까지 있으며 과정 중에 최다 인원을 자랑한다. 단본부나 사령부의 마인드는 사고만 제발 나게 하지 말자에 가까우며 인원은 가장 많지만 군 내의 관심도는 낮은 편이다. 다만 워낙에 인원이 많다보니 부대 내에서 아는 사람 찾는 전화가 엄청 오고 가끔은 부대 배속 등에 고위 장교의 청탁을 가장한 압력전화가 들어오기도 한다. 그리고 사회에서 관심도는 여기가 제일 높다. 1년에 수십만 건의 우편물을 받는 곳이다. 기간장병의 인원도 제일 많은 편이고 병 조교의 숫자가 100명이 넘는다.

건물의 상태가 대대별로 천차만별이다. 한 달 가량 생활해야 하는 곳인 만큼 훈련의 난이도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보통 병사들 사이에서는 3대대 > 2대대 > 1대대 >>>넘사벽>>> 4대대 순으로 평가된다.

제일 시설이 좋다는 평을 받는 3대대 건물은 2016년 신축된 것이다. 반대로 가장 열악하다고 알려진 곳은 4대대.[23] 실제로 훈련병들이 4대대 건물을 부르는 별명이 바로 '움집' 혹은 '윌로우스 비행학교' 이다.[26] 여기저기서 각종 곤충들이 출몰[27]하고 샤워실에서 녹물이 나오고, 천장에서 물이 새는 등 온갖 증언들이 나오는 곳이다. 이렇다 보니, 심하면 2대대나 4대대에 배치받는 짝수 기수는 피해서 입영하라는 말까지 있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유행하며 상황이 역전되었다. 4대대 훈련병들은 임시입단기간에만 그 건물에서 생활하고, 이후에는 3대대 건물을 빌려쓰면서 환경이 한결 나아졌다. 4대대 건물도 현재는 코로나 격리자들이나 차수 인원이 너무 몰려 본대 건물에 인원을 전체 수용하기 어려울 때만 사용하게 되면서 4대대 건물 중 그나마 상태가 제일 좋은 E동(통칭 아이브동)만 사용하게 되며 폐가 수준은 면하게 되었다. 물론 인원이 터질 때는 격리자들은 E동이 아닌 B동을 쓰므로 귀신의 집, 폐가 드립은 여전히 유효하다.(...)

전반적으로 분위기는 훈련단을 혼자 독차지한 느낌이며 장교후보생이나 부사관후보생이 지나가면 신기하게 쳐다본다. 사후의 경우엔 장교대대 식당이 따로 있고 부사관후보생도 부교대대에 식당이 있기 때문에 마주칠 일은 잘 없다. 종참에서도 신병들은 일찍 종참을 가기 때문에 2차로 가는 간부 교육생들은 특기학교 교육생이랑 마주친다. 다만 간부 후보생들이 훈련병 종참 도중에 들어와있는 경우도 있다. 만일 간부 교육 과정의 후보생군기훈련을 받거나 하는 장면이나 그냥 길을 가다 마주치기만 해도 신병대대의 훈육관들은 훈련병들에게 고개를 돌리게 한다.[28][29]

하지만 이래저래 마주치는 사람은 마주치기도 한다. 특히 기간병을 아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공군의 4년제 대학생 비중이 높기 때문에 병 조교 대다수가 대학생 이상이다. 명문대생도 꽤 많은 편인데 전역복학해서 마주치면 꽤나 민망하다는 후문. 공군 병은 전부 이 곳에서 기본훈련을 받기 때문에 중, 고교 친구거나 아는 형이었던 조교를 여기서 만나는 훈련병이 매 기수 꼭 있다. 그리고 따로 불러서 간식을 주거나 효전화를 더 시켜줬다는 후일담은 덤.

3.2. 공군군사학교육대대[편집]


훈육이 아닌 군사학 교육을 담당하는 부대이다. 하사 조교와 병 조교를 두루 두고 있다. 각개전투 등을 담당하는 전술학교관실, 사격훈련을 담당하는 화기학교관실, 화생방을 담당하는 화생방교관실, 정훈 교육과 그 외 군사보안 등 각종 잡다한 내용을 가르치는 일반학교관실[30], 심폐소생술과 환자이송법[31] 등을 가르치고 응급구조교관실[32]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교육생들은 여기에 소속된 교관과 훈련조교를 자신들의 훈육관과 훈육조교와 잘 구분하지 못 하기도 한다. 대체로 시범 등을 보이기 때문에 훈련조교들은 훈육조교보다 간지난다는 인식이 강하다. 조인성의 입대 당시엔 입대 전에 헤어모델을 했던 훈련조교가 인터넷에 뜨기도 했다. 조인성 옆의 조교 병 조교의 숫자도 꽤 된다.

신병교육대에서 화기학훈련과 화생방훈련장으로 올라가는 길이 오르막이라서 체력이 약한 훈련병들이 힘들어하고 낙오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늘도 거의 없고 땡볕이 많아서 여름에 이 곳에 가면 정말 힘들다. 화기학조교들도 훈련병들과 사격 기록지 붙이면서 푸념을 하기도 한다. 화생방조교들은 훈련장에 올라갈 때마다 하체 운동 야무지게 한다며 자기 위로하기도 한다.

선발은 신병교육대대와는 별도로 따로 하는데, 교관들과 소대장들 사이에 은근한 기싸움이 존재하므로[33] 참고할것.


3.3. 학군단[편집]


2014년 1월부터 한국항공대한서대, 한국교통대 총 3개 학군단을 예속시켰으며, 2022년부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경상국립대학교, 숙명여자대학교, 연세대학교까지 4개의 학교에도 순차적으로 공군 학군단이 창설되어 51기~52기[34]부터 총 7개 학교에서 학군장교가 임관된다.

항공대는 학교 앞에 화전역이라는 환상적 위치를 자랑하며[35], 기간병들은 총무 및 전산특기가 투입된다. 학군단 생활을 거친 후보생들의 전언에 의하면 제설, 제초 및 각종 작업에도 기간병 대신 후보생이 투입된다고.[36] 그리고 매년 하계방학과 동계방학 때 진주 기본군사훈련단 장교교육대대로 내려가서 훈육관과 선배들이 4주 동안 미친 듯이 굴리며, 이 때 학군단을 가족으로 둔 예비역들은 자기가 진주에서 겪었던 고통이 6주에서 4주로 농축된 편지를 받아보게 된다. 단, 공군사관학교 장교양성과정과는 다르게 항법훈련은 없다.

학군단은 대학교 내 시설이므로 병사식당사이버 지식 정보방이 따로 없기 때문에 학교 내부 시설을 이용한다. 컴퓨터의 경우 도서관 것을 쓴다고.


4. 기간병들을 위한 생활 안내[편집]


비록 대대로 구분되긴 하지만 훈련단 전체 병 인원이 1600여명 선으로 적은 탓에 신병대와 군사대, 단본부, 교육지원대는 선후임 관계를 형성한다. 이전에는 군사학교육대대/훈련단 본부/교육지원대가 다른 생활관에 거주했었기에 신병대대와 어색하면서도 약간의 애증심이 있는 선후임 관계를 형성했었지만, 2015년 하반기부터 훈련단 병사 통합생활관(일명 F동 생활관)으로 모두 이주하면서 전부 함께 생활하게 되었고, 선임급 병사들이 전부 제대하고 군생활 시작부터 신병대대와 다른 대대 병사들이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기에 두 부대간 사이가 좋지 않다는 말은 옛말이 되었다.

병 조교의 경우엔 거의 매 차수마다 선발을 한다. 훈련조교는 군사학 대대의 선임병과 간부가 와서 지원자를 받고 훈련대대는 자체적으로 선발한다. 장교교육대대의 시범조교는 몇 명 안 돼 1년에 2명을 뽑을까 말까 한다. 단본부와 교육지원대의 병은 특기교육을 받고 오는 사람들로 단본부는 전원 총무 두 사령부 급양중대에서 식사를 배식하므로 훈련단 내에는 급양 특기가 없다. 잘못된 정보. 현재는 공병특기와 보급특기만 존재특기 행정병이며 교육지원대의 병은 보급 특기나 공병 특기의 병이 상당수이다.[37] 아무래도 교육사가 진주시에 위치하다보니 진주 사람이 많은 편이다. 경상남도전라남도 사람도 많다.

과거에는 훈련단 조교로 선발된 경우 특기가 총무로 변경되었다. 하지만 현재는 원래 특기 그대로 가진 채 조교 업무를 하며, 연성과정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거나, 사고 쳐서 조교에서 짤린 경우 원래 특기의 특기학교로 가서 교육받고 자대 배치 받는다. 실제로 모 조교가 짤리자 그냥 헌병으로 자대 배치를 다시 받았다. 부사관인 훈육 소대장들도 모두 군사특기 변경 없이 원래 자기 특기를 가지고 소대장이 되기에 그렇게 특이한 건 아니다.

훈련단의 생활관은 흔히 F동이라 불린다. 원래는 단본부와 군사대 병사들은 사령부 병 생활관에 살았고 신병대의 조교들은 신병대 생활관에 살았는데 인원 관리하기 힘들다고[38] 전부 2대대 신병 생활관이었던 F동으로 모았다. 그때문에 기간병 사이에선 F동이 생활관과 동의어로 쓰인다. F동엔 40인실 규모의 독서실도 있는데 2008년에 제2사관학교 출신의 조모 중령이 어떤 병장의 청원을 받아들여 연등시간을 보장해 24시까지 이용이 가능하다. 현재는 단장의 지침이 떨어졌기 때문에 통제관이나 당직사관의 성향에 절대 관계 없이 밤 12시까지 연등이 보장된다.

당직 근무의 경우, 신병대 조교들이 신병대에서 당직병을 서기 때문에 F동[39]의 당직병[40]은 신병대 조교는 서지 않는다. 신병대대의 경우 교육이 진행되지 않아도 매일매일 당직사관과 당직병이 존재하는데, 훈련병이 없어도 대대 내에는 수 백정의 총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차수가 없는 휴무일에는 하루 종일 당직사관과 당직병이 당직실을 지키고 있어야한다. 장교대 역시 장교대 병들이 번갈아가며 장교대 당직사관실 당직병을 서기 때문에 서지 않는다. 단본부와 군사대, 군수지원대의 병들이 당직병을 서고 단본부 사령실의 당직병을 선다.

으뜸병사는 신병대마다 있고 군사대와 단본부, 교육지원대에 하나씩 있다. 대체로 으뜸병사 될 즈음이면 근접기수인지라 잘 지내지만 여기서도 신병대 라인과 다른 부대 라인의 따로 놀기가 있는 편. 특히 행사나 대민지원 선발할 때 신병대가 인원이 많은지라 많이 뽑히는데 훈육조교라 업무량이 많은 신병대 조교들이 불만이 많다.

전반적으로 공군교육사령부의 다른 부대와는 따로 논다. 각 학교들이나 기지전대, 사령부 본부 같은 경우에 근무는 따로 하지만 생활관은 통합생활관에서 같이 살아 부딪칠 일이 그나마 있는데 비해 훈련단은 독립생활관을 쓰기 때문이다.[41]

조교 및 기간병들에게 지급되는 부식이 풍족한 편이라고 한다. 라면이 차고넘쳐 관물대 뿐 아니라 생활관 창고에도 라면과 건빵이 수북이 쌓여있다. 애초에 보급이 넉넉히 되는 것이 아니고 신병훈련과정 기수별로, 예를 들어 한 기수(홀수)에 1대대 1000명, 3대대 600명일 경우 합쳐서 1600명 분의 부식을 각 대대 급양 담당 소대장들이 선정하여 신청한다. 부식 목록은 기수별로 다를 수 있고, 위 설명처럼 실제 훈련병 숫자를 오버해서 신청하지 않고, 그에 따라 예산 편성이 되지도 않는다. 정해진 개수만큼 신청을 하기 때문에 교관과 조교는 절대 훈련병들을 위한 부식에 사적으로 터치하지 않는다. 그리고 훈련병을 위한 부식은 기간병 입장에선 웬일인지 맛없는 라인업일 때가 많다. 급양 소대장의 취향 반영인듯.

신병훈련대대의 경우 분기별(1년에 4번)로 특수근무자 증식 예산이 편성된다. 여기서 특수근무자에 병 조교가 해당되기 때문이다. 예산이 편성되면 예를 들어, 1,259,890원의 예산이 있다고 할 때, 이 예산을 모조리 남김 없이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10원 단위까지 부식 개수를 맞춰서 예산 사용을 해야한다. 이를 위한 부식 목록을 신병대 행정병이 교육사 B.X.로 부터 받은 후, 신병대 으뜸병사에게 목록을 준 후 병 조교들의 의견을 취합하거나 으뜸병사가 유도리 있게 부대원들이 먹을 부식을 선정하고, 단 10원도 예산이 남지 않게 부식 개수를 맞춘다. 이후 B.X.에서 부식이 지급되면 으뜸병사 관리하에 개인별로 개수를 나누어 지급하거나, 신병대 생활관에 일정 개수 보관하여 근무자들이 섭취 할 수 있도록 한다.

하필 라면이 차고넘치는 이유는 바쁜 후임 조교들이 훈련단 식당을 들르기 힘든 상황이 생기기 때문에, 병식을 못먹는 상황의 후임 조교들이 라면으로라도 식사를 거르지 않도록 으뜸병사가 후임 조교 배려차원에서 라면 개수를 더 요청하거나, 아니면 선임라인 조교들이 라면을 더 좋아해서 일 수도 있다. 부대마다 기간병 생활관에서 먹기 편한 과자를 선호하는 신병대도 있다. 하지만 과자는 단가가 비싼 반면 라면류는 단가가 싸서 병사별로 지급되는 숫자가 많다. 덕분에 과자위주로 받은 신병대 병사가 비교적 빠른 기간 내에 과자를 다 먹은 후 넉넉히 남은 다른 대대 병사의 라면을 슬쩍하는 경우도 있다. 건빵이 넘치는 이유는 단순히 질리거나 맛이 없어서이다. 근무강도가 센 조교들의 경우 몸이 힘들기 때문에 더 맛있는 B.X. 발 물품을 선호하지 기본 보급되는 건빵을 먹지는 않기 때문. 다만 긴 시간을 영내에서 보낸 상병장은 기본 보급되는 육개장이나 쌀국수, 건빵을 더 선호하는 경우도 있다.


5. 교통편[편집]


버스는 161번이나 361번을 탄다. 두 버스 모두 교육사 2정문에서 타거나 내릴 수 있다.[42]

택시를 이용한다면, 진주고속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면 제1정문(정문)이 가깝고(5천 원 정도), 진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는 제2정문(후문)이 가깝다.(7천 원 정도) 시간은 15분 정도 걸린다.[43]

고속도로라면, 진주IC로 가도 상관없지만 문산IC가 가장 가깝다. 문산IC를 통해 들어서자마자 공군교육사령부를 가리키는 표지판이 있으므로 그 길로 바로 가면 된다. 다만 가는 길이 좀 많이 좁은데, 매달 입영날마다 도로가 미어터지는 일이 발생한다. 때문인지 진입로는 2013년 6월 기준으로 확장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2016년 8월에도 여전히 왕복 2차로...

부대 주변 진주 문산 혁신도시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 관세청 중앙관세분석소, 국방기술품질원, 롯데몰 등이 있다. 부대 앞 식당은 절망적인 수준이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진주 시내나 롯데몰에서 먹고 오자.[44] 일부 입소장병용 전세버스 운행업체등은 이를 알고 일부러 평거동 같은 신도시로 돌려서 그곳에서 식사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6. 공통과정[편집]



6.1. 종교참석[편집]


육군훈련소처럼 실로암이나 불교 나이트[45]는 꿈도 못 꾼다.

전체적인 종교활동은 공군교육사령부 및 각 종파 차원에서 종교교육을 관리하기 때문에 육군훈련소[46]신병교육대와는 백만광년 떨어져 있으며 사관학교와 비슷한 편. 예배를 드리는 건물에서 간부들이나 군 가족 등 민간인들도 자주 참여하는 곳이고 순서가 바로 뒤에 붙어있어 그렇다.[47] 물론 해당 종교를 열심히 믿는 사람들은 환영할 일이지만 무교 훈련병들에겐 날벼락.[48]

교육사의 교회, 법당, 성당 세 곳 중 골라서 간다.[49] 종참에는 일요종참과 수요종참이 있는데 일요종참의 경우 신병은 1차[50]에 가며 특기학교 교육생이나 학사사관후보생, 부사관후보생, 준사관후보생, 학군사관후보생 등은 2차[51]에 가며 수요종참의 경우 특기학교에 가거나 교육사에 남아 기간장병이 되면 갈 수 있다. 학사후와 부사후는 3주차부터 수요종참이 가능하다.

교회에서 극구 꺼리는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교인이 종참갈 곳이 없어서 교회를 간다거나(물론 훈련병이 가봤자 뭘 하겠냐만...) 원불교 신자가 그래도 불교라고 불교로 가게 되는 아이러니를 볼 수도 있다. 군대 훈련소의 특성상 특이한 사람은 있게 마련이라 정말 가~끔씩은 종참에 가지 않고 남는 사람도 있기는 있다. 그런데 이렇게 안 가봤자 어차피 본인만 손해라 추천하지 않는다.

간식을 안 주기로 유명한데 당시 교육사령관이던 성일환 전 참모총장이 장병 건강을 이유로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이분이 공사 교장일 때는 생도들 간식이, 비행단장일 때는 해당비행단 종참간식이 끊겼다고 한다. 대신 그만큼 훈련기간(특히 행군 때) 나눠주는 간식비가 늘어났는데, 부작용으로 간식을 다 못 먹고 행군을 끝내는 경우도 많아졌다. 다만 크리스마스와 석가탄신일에는 훈련병에게도 간식 제공이 가능하다.

최근에는 소량이나마 다시 간식이 제공되지만 생활관 건물로 종교참석 때 받은 불법서신[52]이나 취식물을 가지고 들어갈 경우 3급 규정위반을 받는다.[53] 간부후보생의 경우 3주차부터 수요일 저녁에 종교타운에 올 수 있는데 이 때 불교의 경우 잘하면 땅땅치킨이 나온다.

다만, 4주차에 개신교와 불교에서 각각 세례와 법명을 줄 당시 성찬식을 한다며 맛만 보는 정도의 음식[54]을 제공하는데 이는 "세상에 속한 간식이 아니다"라는 명목으로 제공되는 듯 하다. 천주교는 세례를 받았다면 매번 성체를 영할 수 있고[55], 예비자도 4주 후 세례 받으면 자주 영할 수 있다. 양형영성체도 자주한다! 개신교는 민간 교회에서는 없는 플라스틱 카드 형태의 세례증서를 주는데 꽤 멋있다.

군대답게 외부(특히 여성) 게스트를 초청하여 공연을 하는 것을 보러가는 사람이 압도적이다. 이런 이유로 가는 사람은 주로 개신교로 가는데 불교는 여고생, 여대생 댄스 동아리 정도라면 개신교는 옷차림부터 공연까지 프로급인 CCM그룹이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독실한 개신교도이던 사람들은 이런 주객전도를 싫어한다.

그리고 인편을 제외하고 한주간의 바깥 세상 소식을 접할 수 있다. 해외축구 소식[56], 게임대회 소식[57] 등을 짤막하게 알려줘서 이 소식을 기대하고 가는 병사들도 제법 있다.


7. 신분별 과정[편집]



7.1. 장교/준사관 과정[편집]



7.1.1. 학사사관[편집]


기존의 사관후보생(사후)가 예비역들의 요청으로 학사사관후보생(학사)로 개칭되었다.

사후란 말이 근데 워낙에 입에 붙어서 완전히 고쳐지는데 시간이 걸릴 듯 하다. 장교교육대대의 경우에는 행정계와 시범조교를 제외하면 전원이 장교이다. 예전에는 공사 출신은 장교교육대대에서 근무하지 않는다는 풍문이 있으나 뭐 딱히 그렇지는 않다. 물론 장기 따위 안 하는(못 하는) 칼단기들이 오는 곳인만큼 대부분이 학사 출신이긴 하다.[58] 학사 150기 기준으론 중령 보직인 대대장을 제외한 중대장 및 소대장 전원이 학사 출신이었다. 시범조교들의 경우엔 4명이 있는데 후보생과의 상하관계가 굉장히 애매하다. 후보생의 경우엔 준위 이하 원사 이상이고 병은 그보다 훨씬 아래지만 교육 목적으로 경례를 하지 않고 상호존대를 하기 때문. 하지만 별 신경 안 쓰고 "조교님. 이거 어떻게 합니까?" 같은 식으로 말하게 된다. 장교교육대대의 조교들은 명문대 출신이 꽤 많았지만 점점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다. 가오 때문에 선발 과정에서 장교교육대대의 훈육관들이 꽤 보는 편. 가오 때문인지 다른 대대의 중대장들은 다들 대위인데 장교교육대대의 선임중대장은 소령이 맡는다.[59]

식당의 경우 훈련단 식당이 아닌 장교대 식당을 사용한다. 규모가 작은지라 급양병들의 숫자도 적고 지원대대 시절에도 따로 놀던 곳. 당연히 짬의 퀄리티가 신교대에 비해 부교대와 장교대 쪽이 휠씬 좋다. 물론 후술할 이유로 인해 신교대도 조금 더 좋아지기는 했다.

여군후보생의 경우 부사관후보생도 그렇지만 별도의 층에서 자신들끼리 생활한다. 여자 소대장이 관리한다. 부사후는 여자조교가 관리한다.

특별내무기간이나 훈련 전반부 공군화 단계에서는 분위기가 장난 아니게 살벌하다. 데굴데굴 구르는 전술학장의 먼지 풀풀 날리는 흙바닥이 최고급 매트리스처럼 폭신하게 느껴질 정도. 그렇게 군인화(?) 되고 체력이 붙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적응이 되어 간다.

훈련 딱 중간쯤 있는 특별외박을 기점으로 조금씩 분위기가 편안해진다. 그도 그럴 것이 훈육관이나 교관들도 대부분 같은 학사장교이기 때문. 그런데 이 와중에도 철저히 각 잡고 오와 열을 맞출 때가 있는데, 바로 떼굴떼굴 구르는 신병들이나 부사관후보생들 옆을 지나갈 때.

임관축하연[60]이나 비어콜[61] 등은 부사후랑 거의 똑같이 돌아간다. 명예위원 같은 것도 똑같이 한다. 하는 일은 똑같이 장기자랑 준비나 앨범 제작.

전역 직전의 학사 장교들은 훈련단에서 하는 홈커밍 행사에 참여하기도 한다. 사령부에서도 사람이 오기 때문에 꽤 차림이 좋은 편이다. 다만 참여율은 그리 높지는 않다. 장기복무할 자원은 전역할 게 아니라 이런 행사에 안 오고, 조종장교들은 어차피 장기인데다 고등비행교육 수료 후 빨간마후라를 받고 갓 자대배치를 받았거나 기종별 교육을 받고있어 짬찌라 안오고, 대부분은 멀거나 귀찮단 이유로 안 오기 때문이다. 말년까지 일하느라 못 오는 격오지장교도 많고.

ROTC, 학사장교 출신에게 가장 안타까운 것은 공사 출신과 마찬가지로 항공기 사고로 죽는 동기들이 기수마다 몇 명씩 나온다는 것이다. 물론 한 명도 없는 기수도 있다. 진주 짬밥을 먹고 조종장교가 되는 사람들의 경우 공사 출신과는 달리 대다수가 민항진출을 꿈꾸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은데다 아직 ROTC/학사출신 조종특기 장성이 배출된 적이 없기 때문에 거의 위관급 장교소령, 중령 시절에 사고를 겪게 된다.


7.1.2. 학군사관[편집]


항공대, 한서대학교한국교통대학교의 학생들이 하계나 동계 훈련으로 입과하여 4주간 훈련을 받기도 한다. 이 경우엔 학군단에서 온 훈육관들과 장교교육대대의 훈육관들이 섞이게 된다.[62] 학사사관이랑 겹치질 않아서 뭐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학군사관후보생들도 학교에서 받는 훈련은 물론이거니와 기훈단에서 받는 훈련이 힘든 편이며, 집에 편지를 쓰는데 주로 훈련 끝나면 먹고 싶은 걸 써서 보내기도 한다.


7.1.3. 준사관[편집]


매년 여름에 준사관후보생들이 와서 교육을 받는다. 30대 후반부터 40대 중반까지 나이는 다양하지만 진급 잘 한 능력 좋은 부사관[63]들인지라 체력적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사실 훈련단 내에서 가장 신체능력이 좋은 교육과정이라 봐도 될 정도. 애초에 체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준위는커녕 장기복무 합격도 가물가물하다. 학군사관은 일단은 외부에서 오니까 제외하고. 다만 특유의 그 아저씨스러움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64] 교육 중 쉬는 시간에 다들 나와서 담배 못 피니까 잡담만 하는데 심각한 아저씨 포스를 풍긴다. 소대장들도 한참 어리고 중대장들도 대부분 후보생보다 어린 지라 그냥 얌전히 지나가고 준사관후보생들도 그냥 얌전히 있는다. 이로 인해 실질적인 교육 진행은 준사관 교육기간에만 각 부대에서 차출된 준위들이 '준사관소대장'이라는 임시 보직으로 담당한다.


7.1.4. 공군화 과정[편집]


육군학생군사학교에서 훈련을 받은 군종장교, 군의장교, 수의장교, 법무장교등 타군에서 교육받고 임관한 사람들을 공군화한다. 대략 5일간의 과정. 을 거치고 다시 장교로 군사교육까지 받고 온 군종신부들은 세기말적 분위기를 풍기기도 한다 . 비중이 공기라 훈련단의 기간병 중에도 이런 과정이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많다.


7.2. 부사관[편집]





7.3. 병[편집]





8. 기타[편집]



8.1. 부대가[편집]


}}}
기본군사훈련단가
(1절)
백두산 맑은 정기 타고난 우리
짙푸른 남해바다 떠오르는 태양
기상의 호령 나팔 나를 깨우고
우리는 이 나라의 창공의 아들
(2절)
월아산 장군대봉 활기찬 기개
여기는 공군 요람 공군의 고향
태극기 훈련 깃발 높이 오르고
우리는 오늘도 강인한 훈련
(후렴)
힘차게 솟아나는 우리 부대는
대한에 빛나는 공군 훈련단


8.2. 병영식[편집]


기훈단에 식당이 두 개 존재한다. 훈련병들의 식사를 담당하는 훈련단 식당과 장교 및 부사관 후보생[65]들의 식사를 담당하는 후보생 식당. 훈련단 식당의 경우 식수인원이 최대 4000을 넘어가는데, 그 덕분에 기훈단 짬밥은 공군의 모든 부대 중에서 가장 짬밥이 맛없기로 유명하다. 특히 아침은 그야말로 최악.[66] 군대리아가 나오는 날이 차라리 나을 정도이다. 인원이 워낙 많다보니 가성비가 좋은 콩나물이나 두부 등은[67] 빠지는 일이 없을 정도며 교육사가 자대인 사람들은 콩나물만 봐도 진저리를 칠 정도. 그마저도 훈련기간 후반부로 갈수록 밥의 질이 점점 떨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이쯤되면 맛으로 먹는다기보다는 그냥 살기 위해 먹는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예외적으로 삼겹살고추장볶음은 의외로 먹을만하다. 근데 설거지가...-

사실 맛이 없는 건 어쩔 수가 없는게, 훈련병이 너무 많다. 매 기수 적어도 1000명, 많으면 1500명이 넘게 들어오는데다가, 1주차, 5주차는 전기수, 뒷기수와 겹치다보니 3500명이 훌쩍 넘는다. 이곳 식당에서 일하는 급양병들이 얼마나 불행한 사람인지는 공군을 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바이다. 보통 몇 끼 뒤의 식사를 미리 준비하며 몇 시간동안 고기나 야채를 열심히 써는 급양병들의 모습을 훈련단 조리실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68] 먹는 사람이나 만드는 사람이나 모두에게 지옥 같은 곳이다. 단, 설거지나 정리 같은 건 훈련병들이 하는 걸 시키기만 하면 되므로 무척 편하다고 한다. 대신 훈련병들 통제를 못하면 선임들에게 개닦일 수 있다.[69] 식수인원이 원체 많다보니 2교대가 보장되어 있기는 한데... 비행단 등 다른 대규모 급양도 교대제인 곳이 있어서 딱히 교육사가 메리트 있다고는...

우유는 지역이 지역인 만큼 부산우유가 나온다.

신병훈련대대의 경우 업무지원을 나가는데, 소대별로 근무가 편성되다 보니 잘못하면 유격훈련이나 행군 직전, 직후에 근무가 걸리는 경우도 있다.

역시 사람이 많다보니 반찬, 밥이 떨어지는 경우가 생기며 때문에 급양병들은 배식에 항상 신경을 쓰며 배식하는 훈련병들을 닦달하기 일쑤이다. 반찬이 떨어져도 다른 먹을 거리를 따로 주진 않으니 훈련병들은 그냥 자기 소대가 마지막으로 밥을 먹지 않기를 바라자. 메인찬이 떨어지면 온 대대가 너희는 동기애도, 양심도 없는 놈들이라며 신나는 단체 동기부여를 받을수도 있다.[70]

후보생 식당의 경우 식수가 170~900 정도로 유동적이지만 훈련단 식당에 비해 훨씬 깨끗하고 맛있다는 평. 대부분의 반찬들이 훈련단 식당에 비해 담백한 편이다.[71][72] 이마저도 하사 때부터 20년 넘게 간부식당에서 그나마 맛있는 밥을 먹다가 준위 진급 전 장교대로 불려들어간 예비 감독관들에게는 고역일 수 있다.

신병교육대대 식당의 경우, 병 837기(2022년 4월 입영) 훈련병부터 풀무원으로 급양업무를 위탁하여 운영하게 되면서, 식단이나 음식의 퀄리티가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특히 훈련병들도 나눠맡던 급양업무지원이 사라져, 훈련에 집중할 수 있다고 한다.


9. 여담[편집]


  • 해군의 기초군사훈련단과 이름이 비슷하여 혼동되기도 한다.

  • 2006년 당시 공군의 홍보가 절실했던 공군본부에서 공군 ACE를 만들면서 그 해 11월 프링글스 MSL 시즌2 결승전을 공군 훈련병들을 앞에 두고 기본군사훈련단에서 열었다. 당시 훈련병 사이에는 막 입대한 임요환이 있었고 나름 대국민 홍보를 위해 선택한 결정이었지만 경남 진주, 그것도 골짜기 군부대까지 응원올 정도의 대인배 열성팬은 부족한지라 당일 관객석은 대부분 공군 훈련병들로 채웠다.

  • 부대가 산 속에 있어 가끔 훈련병들이 연병장에서 얼차려 받고 있는데 사슴이나 고양이들이 출몰하여 훈련병들을 놀리고 산으로 도주하기도 한다.

  • 기본군사훈련에 입소하는 모든 입대장병들은 신분(장교후보생, 부사관후보생, 훈련병)을 막론하고 임시입단(교)[73] 기간에는 훈육관들이 존댓말을 사용하며 정중히 대우한다. 물론 정식 입교식을 치른 뒤에는 얄짤없이 반말. 이유는 입소는 신체검사 등을 하기 때문에 민간인 신분이기 때문에 현역군인인 훈육관은 반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합격 후 입교식(신체검사 합격)후에는 신분이 준군인이 되기 때문이다.[74]

  • 기본군사훈련단에서는 기본적으로 기상 후 10분간의 화장실 출입 시간이 주어지는데, 이게 침구 정리 + 용변 해결 + 양치 + 세면을 전부 해야 하는 시간이다.[75] 당연히 정상적으로는 이게 가능할 리가 없기 때문에 관록이 쌓이는 3~4주차쯤 되면 이미 기상시간 5분 전에 일어나서 침구류 각을 맞춰 정리해 두고 한 손에는 화장지 한 손에는 세면도구를 들고 기상나팔(또는 저벅가) 소리가 나오자마자 화장실로 달려나가려 준비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건 특기학교 때도 비슷한데, 정작 자대 가자마자 이렇게 했다가는 오히려 간부들에게 고참들이 시킨 것이 아니냐, 아직도 악폐습이 있냐는 소리를 듣기도. 오히려 고참들이 갓 전입 온 '일찍 일어나서 이미 옷 입고 준비하는' 신병 때문에 한 소리 듣기도.

  • 709기부터는 단장이 바뀌었다. 그래서 동계시간이 사라지고 1년내내 하계로 운영되기 시작됐다. 또한 매일 4시 40분경부터 뜀걸음장을 2~3바퀴씩 뛰게 되었고 종교참석 시 주는 몽쉘과 서니텐이 없어졌다. 이후엔 부활절 등 특정 종교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날이 끼어있거나, 세례나 수계법회등을 하는 날(보통 훈련 3주차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종교참석시 아무것도 지급되지 않게 되었다.

  • 훈련단 교육 수료 후 외박이 있다. 원래는 훈련단 교육 수료 후 각 특기학교에서 1주 간 있다가 1박 2일 외박을 나가는 것이었다.[76] 그러나 709기는 설날이 겹치면서 첫주에 무려 3박 4일 휴가를 나가게 되었다. 그러다가 711기부터는 훈련단 수료 후 바로 2박3일 외박을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이전기수들은 그저 부러울뿐. 738기의 경우 어린이날 부처님 오신 날이 껴 있어 4박5일을 다녀올 뻔했으나 세월호 사고로 인해 2박3일만 다녀왔다.

  • 서울이 불바다가 되네 마네 하던 1994년 6월말 임관한 학사장교들이 첫 주말외박을 나간 토요일 바로 그 날, 김일성이 사망했다. 조종특기 장교들은 불려들어갔으나 정책특기 장교들은 외박을 정상적으로 다녀왔다(당시 투철한 군인정신으로 자진 복귀한 정책특기 장교 외박자가 딱 한 명 있었다고 한다). 복귀한 후 무한 영내대기가 이어지겠거니 하던 바로 다음주. 1994년의 악몽같은 폭염과 가뭄에 진주지역 농업용수 대란이 터졌고, 교육사 장병들을 외박만 내보내도 상당한 물량의 농업용수를 확보(떠돌던 이야기가 교육사 장병만 빠져도 논밭 5만평에 급수가 가능하다고 했었다)할 수 있던 관계로 금요일에 외박을 내보냈다. 그것도 몇주일 연짱으로.

  • 당시 진주지역 폭염이 어느정도였냐 하면 연일 최고기온 40도는 기본으로 넘는 바람에 야외 기본군사훈련 과정은 파행 운영되었고, 실내학 학과장은 따뜻한 햇빛에 학교 건물 자체가 데워져서 그 열기에 지친 나머지 교관과 교육생이 같이 비몽사몽. 시원할 줄 알았던 창가 자리는 더운 바람이 솔솔 들어오는데다 따뜻하게 데워진 벽에서 다이렉트로 뿌려지는 열기 덕분에 그야말로 지옥이였다. 교관 눈치를 그다지 안 봐도 되는 장교 임관 후 특기교육과정은 안 봐도 비디오(교관이 대부분 부사관이나 준사관이였으니.). 주말 외박때 서울로 와서 날씨가 참 시원하구나 하고는 온도계를 봤더니 38도.

  • 유명한 공군 출신 연예인으로는 조인성이 있다. 군악대 출신으로서 e스포츠병과 함께 공군이 이미지개선하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 또한 곱상한 남자 목소리로 '정예화된 선진 공군 양성에 주력합시다' 등의 안내방송[77]이 나오는데 이게 조인성의 목소리.

  • 훈련단 출신의 인물을 보자면 붕가붕가레코드에서 아트워크를 담당하는 김기조[78]가 신병2대대 조교 출신이다. 2011년 MBC대학가요제 입상자 출신인 따밴의 정승헌도 훈련단 장교교육대대 출신이다. 조인성 옆에 섰던 조교로 유명했던 구본상은 군사학교육대대 출신이다.

  • 어째 부대가 점점 커지고 있다. 본래 전대급 부대였는데 단급이 됐고 밑에 전대가 두 개나 생겼다. 대한민국 공군은 1980년에 3만 2천 명에서 현재 6만 5천 명으로 늘었다. 육군은 1980년에도 이미 50만 명이 넘어 지금과 별 차이가 없었고 해군은 5만 명 수준이었다.

  • 서울 출신 단기복무 장교, 부사관들이 근무배치받으면 고민하는 자대이기도 한데, 교육사령부에서 서울행 셔틀버스를 운영하긴 하지만 근무스케줄 편성에 입영, 임관 행사나 훈련단 당직근무 잘못 걸리면 주말에 서울로 못 올라가는 경우가 왕왕 생긴다. 특히 자차로 올라가는 경우는 더더욱.

  • 병들이 자대배치를 받고 나서 훈련단에서 근무한 간부에게 훈련단 간부님들 어떠냐고 여쭤보면 대체적으로 평이 좋지는 않다고 한다. 행정[79]쪽이야 분위기 좋지만 훈육관들이나 조교들이 가오에 미쳐있다는 평이 상당히 많다고 한다. 즉 평소에 행정인력들을 대할 때도 은근히 가오가 묻어난다는 듯.

  • 조종특기 장교의 경우 훈련단장이 아닌 이상, 이 곳에 배치받으면 진급 및 앞으로의 군생활, 그라운딩당하지 않은 경우는 항공사 재취직이 불리해진다. 특히 비행시간 쌓아야 할 위관급이라면 더더욱. 물론 별을 단 순간부터는 진급 및 군생활에는 앞길이 창창할지라도 나이가 너무 들어서 항공사 취직은 불가능에 가깝겠지만.[80] 사실 훈련단장 또한 진급 면에서 비행단장에 비하면 끝발 밀리는 자리이긴 한데, 이임 후 비행단장을 역임해야 소장 진급을 바라볼 수 있을 정도다.[81]

  •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는 기수마다 띄엄띄엄 몇 명씩 확진되어서 귀가되는 경우도 많다.812기,821기,826기,828기가 현재로써 확인된 기수별 감염자다. 참고로 입영 전 PCR 검사에서 확진이 확인된다면 완치까지 치료는 하지만 완치되고 격리까지 끝나면 귀가되니[82] 입대 확정되면 한동안은 조용히 주변정리하면서 시간 보내는 것이 나을 것이다.[83]2021년 하반기에는 거의 기수당 한두명씩은 뜨고 있다.

  • 교육사 부지에 있어서 교육사 기간장병들이 많이 보이는데, 원칙적으로는 출입금지지만 교육사에서 지내다 보면 안 갈 수가 없다. 각종 교육장도 훈련단에 있고 기지병원도 옆에 붙어있어서 경우에 따라 훈련단을 뚫고 가야 한다. 한마디로 갈일 많다......... 또한 공무목적으로는 출입이 가능하므로 공무목적으로도 많이 들어온다. 쉽게 말하면 정당한 용무가 있을 때에만 훈련단에 들어가고 쓸데없이 훈련단 들어오지 마라는 이야기다.[84]


10.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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