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트프레드 키르크 크리스티얀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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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Godtfred Kirk Christiansen.jpg
고트프레드 키르크 크리스티얀센(Godtfred Kirk Christiansen)
출생
1920년 7월 8일
덴마크 빌룬
사망
1995년 7월 13일(향년 75세)
덴마크 빌룬
배우자
에디스 키르크 크리스티얀센(1944년~1995년)[1]
자녀
군힐트 키르크 요한센, , 한느
1. 개요
2. 생애
3. 사후
4. 여담



1. 개요[편집]


고트프레드 키르크 크리스티얀센은 덴마크의 목수이자 세계적 장난감 브랜드 레고의 2대 회장이다. 아버지인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얀센이 사망하자 회사를 물려받았다.


2. 생애[편집]


1920년 7월 8일에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얀센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런데 4살 때인 1924년에 둘째 형인 카를 게오르크와 불장난을 하다가 아버지의 목공소를 불태워버렸다.(...)[2] 12살 때인 1932년부터 학교에 가지 않는 날에 아버지의 일을 도운 것을 시작으로, 목각 장난감을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이후 셸란에 있는 하슬레우 기술학교에서 공부하면서 고트프레드는 신제품에 대한 아이디어로 목각 장난감에 대한 도면을 제작했다.

한편, 고트프레드는 아버지와 일을 하면서 목각 오리 장난감에 니스 칠을 세 번 해야할 것을 두 번만 함으로써 비용을 절약했다고 말했는데, 이 말을 듣고 그 장난감들을 다시 회수하라며 화를 낸 올레를 보고 품질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1946년에 플라스틱 사출 성형 기계를 구매하면서 플라스틱 장난감의 생산을 시도했고, 1949년까지 자동 결합 브릭(Automatic Binding Brick)이라고 불리는 플라스틱 제품을 생산했다. 올레 부자는 영국의 장난감 회사 키디크래프트(Kiddicraft)의 사장인 힐러리 해리 피셔 페이지(Hilary Harry Fisher Page, 1904~1957)가 디자인한 큐브에서 자동 결합 브릭의 영감을 받았다. 하지만 브릭이 그다지 튼튼하지 않고 잘 결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초기 판매는 저조했다.

1950년에 레고 사의 부사장이 된 후, 1년 뒤인 1951년에 아내와 함께 유틀란트 반도에 있는 모든 고객을 방문하는 세일즈 여행을 시작했다. 이 여행을 통해 고트프레드는 여러 업체로부터 주문을 받았고, 가게에서 어떻게 제품이 전시되는지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1952년에 공장을 확장하려고 한 올레와 의견 마찰로 인해 부사장에서 사임했지만, 나중에 다시 부사장으로 복귀했고, 1954년에 영국의 장난감 전시회를 방문한 후, 그는 "놀이의 원리"라는 이름의 여섯 가지 원칙을 정의하고, 1955년 2월에 뉘른베르크 장난감 박람회에서 그 원칙을 적용했다.

1957년에 상무이사로 임명된 후, 1958년 1월 28일에 1949년까지 생산되었던 자동 결합 브릭의 결함을 보완하여 카를 게오르크, 레고 독일 법인 사장인 악젤 톰센(Axel Thomsen)과 함께 지금의 레고 브릭을 고안했고, 이것을 레고 성형기 생산 책임자인 오베 닐센(Ove Nielsen)에게 샘플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고, 샘플을 만든 직후 특허를 등록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개월 뒤인 3월 11일에 올레는 그 브릭의 빛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고, 1960년 2월 4일에 목각 장난감 생산 부서가 전소되는 불운을 겪었다.

결국 고트프레드는 목각 장난감의 생산을 중단하기로 결정했고, 이에 목수 출신인 카를 게오르크는 반발하여 고트프레드의 동생인 게르하르트와 함께 빌로 픽스(Bilo fix)라는 목각 장난감 회사를 창업했고 나중에 한세 텍(Hanse tec)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렇게 레고 블록은 서유럽 전역에서 더 널리 알려지게 된 반면, 목각 장난감은 덴마크에서만 판매되었다.

1960년대에 들어, 모형 제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레고 공장을 방문하는 고객의 수가 증가하자 큰 부담을 느낀 고트프레드는 야외에서 모델들을 전시함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하는 기발한 발상을 생각했다. 그렇게 수석 디자이너인 아놀드 부트룹(Arnold Boutrup)한테 놀이공원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고, 빌룬에 놀이공원이 건설되었는데 그 놀이공원이 바로 레고랜드 리조트의 시초이다. 레고랜드 빌룬은 1968년 6월 7일에 개장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3]

이후 고트프레드는 1973년에 레고 시스템 A/S의 이사회 의장에 선출되면서 전무 이사직에서 물러났고, 1979년에 독자인 켈 키르크 크리스티얀센한테 CEO 자리를 물려주었다. 그리고 1993년 4월까지 이사회 의장을 지냈다.


3. 사후[편집]


1995년에 75세의 생일을 맞이한지 얼마 되지 않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독자인 켈 키르크 크리스티얀센이 레고 사를 물려받게 되었다.


4. 여담[편집]


  • 형제들과 같이 찍은 사진을 보면 왜소한 체구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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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24년생으로 남편보다 더 오래 살다가 2015년에 9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2] 훗날 인터뷰에서 "제가 이 회사에 처음으로 기여한 것은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제 형과 접착제 히터에 불을 붙였을 때였습니다. 불행히도 일부 목재에 불이 붙었고 건물 전체가 전소되었습니다."라고 회상했었다.[3] 개장 시 연평균 방문객을 20~30만 명 정도로 예상했는데 보기 좋게 빗나갔다. 왜냐하면 무려 첫 해에만 60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