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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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文簡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2. 일생
3. 평가
4. 미디어
5. 같이보기


1. 개요[편집]


고구려 유민 집단의 우두머리. 고문관이 아니다!


2. 일생[편집]


고구려가 멸망한 후에 몽골 지역으로 이동하였던 고구려 유민 집단의 우두머리들 중 하나였는데, 고문간이 이끌던 유민 집단은 당시 몽골에서 세력이 컸던 돌궐의 세력권에 들어갔다.

유민들의 우두머리 중에서도 제법 세력이 컸던 모양인지 당시 돌궐가한이었던 카파간 카안(묵철가한)의 사위가 되었으며, 고려왕막리지(高麗王莫離支)라는 칭호까지 받았다. 보장왕+연개소문

그러나 8세기 초에 돌궐은 외부로는 당나라의 침입에, 내부로는 잦은 반란으로 인한 분열과 권력 투쟁에 시달리고 있었다.[1] 결국 고문간은 이대로 돌궐에 의탁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715년에 당나라에 투항하였다.

당현종은 투항해온 고문간을 좌위대장군 요서군왕(左衛大將軍遼西郡王)으로 봉하였으며, 719년에는 고문간의 아내인 아사나씨(阿史那氏)를 요서군부인(遼西郡夫人)으로 봉하였다.

그 이후의 기록은 남아있지 않아서 고문간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당나라 조정으로부터 벼슬도 받고 좋은 대접을 받았던 것으로 보아 계속 당나라에서 생활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3. 평가[편집]


고구려 유민들의 우두머리 행세를 하며 나름대로 권세를 누리기도 했다는 점은 훗날에 제나라를 세운 이정기와도 흡사하다. 그러나 한창 당나라가 쇠약해지던 시기에 일어나서 당나라 지방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였던 이정기와 비교하자면 다른 점도 많은 인물.

고문간이 활동하던 시기는 여전히 당나라가 강력한 국력을 떨치던 시기였던 데다가 고문간이 의탁하던 돌궐은 이래저래 고난을 겪던 시기였다. 돌궐을 버리고 당나라로 투항했던 것은 고문간의 입장에서는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4. 미디어[편집]


영원한 제국의 작가 이인화[2] 가 고문간의 생애를 다룬 초원의 향기라는 소설을 썼다. 원래 동아일보의 연재 소설이었다가 연재 종료 후 대폭 개작하여 단행본으로 발표했는데, 해모수유화부인을 받드는 가상의 고구려 국교 '동방교'가 큰 몫을 차지한다.[3]

동아일보 연재분과 단행본 사이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동아일보 연재 분에서는 고문간이 본래 고구려 왕손으로 동방교의 교주를 겸하고 있는데 반해, 단행본에서는 고문간은 고구려 평민 출신이고 동방교의 교주인 고구려 공주 아란두를 도와주면서 고구려 유민들의 우두머리가 된다는 식으로 내용이 대폭 변경되었다. 단행본 버전의 내용 요약

역사상으로는 비중이 상당한 인물인 데도 KBS 드라마 대조영에는 등장하지 않았다. 묵철가한과 그의 조카 궐특근 장군도 등장했는데 의외라면 의외인 셈.


5. 같이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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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묵철가한도 잦은 내부반란을 진압하던 도중 716년에 어이없게 살해당했다.[2]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되어 유죄판결 받은 그 분.[3] 그런데 홍콩 영화 동방불패와 이 소설을 다 본 사람이라면 이 동방교의 의식 중 신도들이 읊는 구호(혹은 기도문)가 동방불패 속 동방신교와 흡사하다는 걸 알 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