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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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吉德
생몰년도 미상


1. 개요[편집]


흥료국의 인물. 1029년1030년 2차례에 걸쳐 고려를 방문해 지원을 요청한 기록이 고려사에 남아있다.


2. 생애[편집]


1029년, 요나라의 발해인 차별 대우가 심해지자 대조영의 7세손[1] 대연림은 동경요양부를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켜 흥료국을 건국했다.

고길덕은 대부승(大府丞) 벼슬로 고려를 방문해 지원을 요청했으나 별다른 지원을 얻지 못하고 돌아갔다. 대연림의 형인 대연정(大延定)이 고길덕의 뒤를 이어서 고려로 와 지원을 요청했으나 역시 거절당했다.

1030년 정월, 수부원외랑(水部員外郞) 벼슬로 다시 고려를 방문한 고길덕은 고려에 구원병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흥료국은 7개월 후 요나라군에 내통한 장군 양상세(楊祥世)가 요양성의 성문을 열면서 멸망하고 만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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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1세손의 오기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다.[2] 곽원 열전에 의하면 곽원이 흥료국을 돕기 위해 단독으로 출정했으나 패배한 후 화병으로 죽었다는 기록이 있는 걸보면 고려의 흥료국 지원시도가 아예 없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