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 환원주의

덤프버전 :


1. 개요
2. 성향과 사례
3. 비판
4. 같이 보기


1. 개요[편집]


class reductionism,
계급 환원주의는 정치적, 사회적 모순이 오로지 '계급'의 문제로만 발생하는 것으로 판단하는 시각을 의미한다.


2. 성향과 사례[편집]


계급 환원주의적 성향을 보이는 이들은 '사회경제적 억압'과 관련된 문제에서 여성, 비주류 인종, 장애인, 성소수자 등의 차별 문제나 그들의 투쟁 문제에는 관심을 보이거나 지지를 표하기는커녕, 오히려 "노동계급을 분열시킨다" 라는 식의 수사를 이용하여, 오로지 최대한의 많은 이들의 단결을 도모하기 위해 소수자와 관련된 사회 정의 이슈를 무시하고 다수자 중심적 노동 계급 이슈[1]나 통계적인 경제적 불평등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반적으로 계급 환원주의의 성향을 보이는 이들은 극좌파 성향을 보이는 경우도 있으나, 사실 온건 좌파 중에도 계급 환원주의적 주장을 하는 이들이 있다. 이런 경우는 사회민주주의, 사회자유주의 등에 가까운 성향이다. 이들은 통계적인 경제적 불평등을 줄여나가는 것을 지지하면서도, 소수자 이슈 문제에 손대는 건 대중적 지지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에 후순위로 밀어버리거나, 혹은 경제적 불평등 문제에 비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문제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68혁명 당시 프랑스의 학생운동가들이 강하게 비판했던 (당대 기준) '기성 좌파'들이 이러한 성향을 보였다.[2]

한국에서도 소수자 인권운동가나 페미니스트들이 한국 일부 좌파진영이 다수자 중심 '노동중심성'에만 빠져 소수자의 특수한 문제들에 대해서 무조건 계급 담론에 기반한 이론으로만 판단함으로써 정체성으로 인해 벌어지는 특권차별 문제에 무관심하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3. 비판[편집]


계급 환원주의로는 이념적 교조주의대중주의적 진영논리에 빠져 좌파의 본질을 생각하지 못한다고 다른 좌파 진영에게 비판받기도 한다.[3] 좌파는 사회를 진보해나가고 차별과 불평등에 반대하는 것인데, 계급 환원주의는 오로지 사회 문제를 계급으로만 단순화한다는 것이다. 가령 대중들과 일부 마찰을 빚을 수도 있는 소수자 인권 문제와 관련된 이슈를 얘기하면 무조건 '정체성 정치'라고 비난하면서 오로지 다수자의 입맛에 맞는 주장만 하거나, 계급 문제로만 사회를 판단하려고 한다는 비판이다.

가령 같은 노동계급 혹은 빈곤층이여도 주류인종/비성소수자/비장애인으로써 노동계급이나 빈곤층인 사람들과 비주류인종/성소수자/장애인의 정체성을 가진 노동계급이나 빈곤층의 문제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며, 단순한 계급론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중첩되고 교차되는 차별을 무시한다는 점이다.


4. 같이 보기[편집]


  • 구좌파
  • 사회적 소수자
  • 유물론
  • 룸펜 - 신좌파들은 마르크스와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경멸했던 룸펜에 속하는 사회적 약자들, 가령 노숙자, 부랑자, 매춘부(성노동자) 혹은 사회적 소수자 관련 이슈에도 관심을 가졌다. 사울 알린스키가 구좌파를 비판했던 이유도 일반적인 프롤레타리아가 아닌 '룸펜 빈곤층'을 멸시했기 때문.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12 04:31:28에 나무위키 계급 환원주의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한마디로 노동 계급에 속하는 소수자로서 교차적으로 발생하는 '특수한 이슈'나 차별 문제에 무관심하거나 부정적이라는 뜻이다. 특히 일부 정통 극좌파들은 최대한 머릿수를 많이 모아서 '혁명적으로 체제를 뒤엎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노동계급 중 다수자의 정서나 성향에 맞추는 담론을 제시하고 내부의 소수자는 무시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2] 유럽의 사회민주주의는 지금의 모습과 달리 1950년대까지만 해도 계급환원주의적 시각이 강했다. '다수'였던 노동자들을 위한 이념으로 출발한지라 '소수'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으며, 사민주의 정당이 집권했던 1930년대~1970년대 초 북유럽 국가들은 장애인성소수자들에게 강제 불임 수술을 시행하는 등 우생학적인 면모를 공공연히 보여주기까지 했다.[3] 특히 상호교차성 페미니스트, 좌파 자유지상주의자, 신좌파 등이 마르크스주의나 '일부' 좌파 포퓰리즘을 비판할 때 사용하는 논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