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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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경험은 중요하지만 만능은 아니다
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경험(經驗) 「명사」
「1」자신이 실제로 해 보거나 겪어 봄. 또는 거기서 얻은 지식이나 기능.
「2」『철학』객관적 대상에 대한 감각이나 지각 작용에 의하여 깨닫게 되는 내용. -국립국어원
주로 1번의 의미로 많이 쓰이며, 쉽게 말하자면 개인이 기억할 수 있는 과거 전부를 뜻한다. 즉 이런 '삶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앞으로 남은 삶을 살아갈 때 판단의 근거로 삼을 수 있다. 또한 개인별로 겪어온 과정이 전부 다르기 때문에 자신에게 없는 경험도 존재하며, 그렇기에 남의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을 할 수도 있다. 이를 뜻하는 사자성어로 타산지석, 반면교사가 있다. 영어로 'undergo'는 어떤 것을 겪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일본어로는 経験(けいけん)이라고 한다.

2. 경험은 중요하지만 만능은 아니다[편집]


"A mule, though he should have made ten campaigns under prince Eugene, would not have improved in his tactics."

"어떤 노새가 오이겐 공 밑에서 전투를 열 번이나 참가했다 한들, 전술 능력을 함양하지는 못했을 걸세."

프리드리히 대왕의 어록으로 전해지는 경구[1]


경험은 개인의 기억에 의존하기 때문에 기록하지 않는다면 변질된다. 또한 경험에 의존하기 때문에 급격한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 경험만이 무조건 옳다고 고집부려 싸움을 일으키는 경우도 잦다. 예를 들어, 이를 바탕으로 남의 우위에 서려고 허세를 부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책을 팔아, 돈을 벌어, 먹고 살기 위해 지식을 뻥튀기하거나 날조하는 행위를 들 수 있다.
낙하산 인사, 무능력한 상사 등의 문서로. 역사적인 사례라면 타이타닉 등이 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뜻이 달라 한 사람이 한 가지 뜻을 가지고 있어, 열 사람이 있다면 열 가지 뜻, 백 명이 있다면 백 가지 뜻, 천 명이 있다면 천 가지 뜻이 있게 될 것이며, 사람의 수가 이루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되면 곧 그 이른바 뜻이라는 것도 역시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게 될 것이다. 그래서 모두 자기의 뜻은 옳다 하고 남의 뜻은 그르다고 하게 된다. 그러므로 심한 자는 목숨을 걸고 싸우고, 심하지 않은 자도 다투는 일이 흔하게 된다.

― 《묵자》 상동편


이러한 단점 때문에 개인적인 경험을 위키위키에 적는 행위는 독자연구로 변질될 우려가 높아서, 거의 다 등재 거부 대상이 된다. 예외라면, 유명 인사가 기자 상대로 인터뷰를 하거나 기자회견 등 공식 석상에서 하는 발언밖에 없다. 이쪽은 매스미디어를 통해 기록이 변질되지 않고 오래도록 정확하게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서 내에 출처를 제시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이다.

경험이 많을수록 다양한 상황을 겪어봤을 확률이 높고 경력이 길수록 그 긴 기간 동안 여러 변화를 접해봤을 확률이 더 높으니, 경력이 길고 경험이 많은 베테랑들이 오히려 훨씬 돌발 상황이나 시대적 변화에 능숙하게 대처할 뿐만 아니라, 변화의 중요성을 잘 아는 경우도 많고, 반면에 경험이 적은 사람은 돌발상황이나 변화를 겪은 적이 없거나 적을 가능성이 높으니 오히려 더 경직된 태도를 가지는 경우도 많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오히려 경험의 양이 많을수록 경험에 집착하기도 쉬워지고, 그에 따라 지식을 철저히 배제한 채 해당 경험만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경험만을 가지고 고집을 부리며 관점의 다양성과 변화를 배척하고, 경험을 강요하는 태도로 이어지면, 그 경험이 검증된 이론에 의해서 완벽하게 논파되었거나, 변화가 찾아왔을 때 받아들이지 못하고 우물 안 개구리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2] 반면에 경험이 적더라도 해당 경험에 구애받지 않고 다각도로 접근할 수 있어 오히려 새로운 방안을 적극적으로 내놓기도 한다.

경험주의는 경험을 통하여 지식을 얻고 또 판단한다. 그러나 경험에 의한 방법은 필연성을 지니지 못하여 문제가 생긴다. 풍부한 예를 통해 그 개연성은 높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필연적이라고 볼 수 없다. 경험을 통해 관찰된 어떤 현상이 항상 그렇게 보일지라도 성립하지 않는 한 예에 의하여 그 판단이 뒤집어질 수 있다. 또한 인간의 감각 능력은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표면적인 현상 역시 잘못 관찰될 수 있다.

이와 같이 경험주의는 한계를 지니기 때문에 그 보완책이 필요하며, 그 대안으로 이성에 의한 합리적인 사유 과정이 있다. 경험은 현상을 파악할 수 있지만 본질을 꿰뚫어보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고, 이성[3]은 본질을 간파하는 특성이 있다. 즉 경험주의의 한계는 이성에 근거한 사고에 의하여 보완될 수 있다.[4] 이성과 경험이 조화를 이루어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예는 역사 속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경험만큼 좋은 스승은 없으나, 그렇다고 해서 경험이 만능이 아닌 것은 이 때문이다.


3.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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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789년에 등장한 최초의 판본에 따르자면 대왕이 프랑스군의 샤를 루이 오귀스트 푸케 원수에게 보낸 편지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다른 판본들에서는 모리스 드 삭스 원수의 어록이라고도 한다. 어느 판본이든지 간에 이론에 대한 학습과 논리적 사유 없이 경험만 아무리 쌓은들, 발전은 없을 것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노새'는 이론적 지식을 갖추지 못한 이들을 빗댄 단어이다.[2] 개인이라면 차라리 다행이겠지만, 이런 태도를 지닌 사람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될 수도 있다.[3] 정확히는 체계화된 이론과 같은 지식이다.[4] 반대로 이성을 통한 사고 역시 경험에 의한 지식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