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FC/역사

덤프버전 :

분류

파일:나무위키+상위문서.png   상위 문서: 경남 FC

1. 창원종합운동장 시절
1.1. 2006~2007년
1.2. 2008~2009년
2. 2010 시즌
3. 2011 시즌
4. 2012 시즌
5. 2013 시즌
6. 2014 시즌
6.1. 잡음 속에 이뤄진 강등
7. 2015 시즌
7.1. 시즌말, 혼돈 파괴 망각의 경남
7.2. 누구의 잘못인가?
8. 2016 시즌
9. 2017 시즌
10. 2018 시즌



1. 창원종합운동장 시절[편집]


파일:경남 FC 엠블럼 (2006~2009).svg
2006년~2009년까지 사용하던 초기 로고.

1.1. 2006~2007년[편집]


2006년에 처음 참가한 경남 FC는 첫 해에 전체성적 12위로 마감했다.(전기리그 13위 후기리그 11위) 하지만 2007년에는 브라질 용병 까보레와 뽀뽀의 조합이 잘 맞으며 창단 2년차에 4위 돌풍을 일으켰고 까보레는 득점왕에 등극했다. 하지만 6강 플레이오프에서 포항 스틸러스에게 승부차기 끝에 3:4로 패하며 돌풍을 멈추게 된다. 그리고 박항서 감독은 시즌 종료 후 구단 프런트와의 갈등으로 인해 사임하게 되고 까보레 역시 FC 도쿄로 K리그를 떠나게 된다. 이 후 박항서 감독은 전남 드래곤즈 감독으로 부임했다.


1.2. 2008~2009년[편집]


2008년에 안양 LG 치타스FC 서울의 감독을 맡은 적 있었던 조광래 감독이 부임했다. 여기서 조광래의 최대 장점인 유망주 육성 능력이 빛을 보면서 경남은 조광래 시절 한정으로 조광래 유치원 이라고 불렸다. 2008 시즌 K리그에서 8위를 기록하면서 2년 연속 6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대신 FA컵에서 준우승을 했다. 이 때 신인이었던 서상민과 박항서때 기회를 많이 못 잡은 김동찬, 김영우 등의 선수들이 기회를 많이 잡으며 대폭 성장해 나갔다. 2009 시즌에는 베테랑 키퍼 김병지가 입단하게 되었고 여기서 김병지는 500경기 출장을 기록한다. 그리고 당시 신인이었던 이용래김주영이 성장을 했었고 7위로 마감하게 된다.


2. 2010 시즌[편집]


창원종합운동장에서 창원축구센터로 홈 경기장을 옮겼고, 팀 컬러도 주황색-흰색의 세로줄에서 빨간색 상의에 검정색 바지로 바뀌었다. 개막전에서 울산 현대에게 0-1 패배를 당했으나, 대전 시티즌을 3-0으로 관광보내면서 다시 기세를 탔다. 이후 제주와 전남전을 무승부로 비기며 또 초반에 밀리는거 아니냐는 부정적인 의견도 나오기도 했"었"다.

그리고 홈에서 펼쳐진 5R 수원과의 경기에서 루시오의 활약으로 2-1 승리를 거두며 승기를 잡기 시작하더니 포항, 강원, 성남을 차례대로 격파하며 파죽의 4연승을 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4월 25일. 홈에서 펼쳐진 서울과의 경기에서 종료직전인 94분 김영우의 극적인 결승골로 승리하며 팀 창단 최초로 리그 1위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특히 서울과의 경기에서 징계로 관중석에 앉게된 조광래 감독의 모습을 보고 많은 팬들이 "동네 아저씨"라는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다.

더욱 무서운 것은 서울과의 경기 이전에 성남에게도 이겼는데, 이후 샤다라빠는 자신의 만화에서 경남을 띄워줌으로서 저주가 작렬하기를 바랬으나...샤빠의 저주까지 깨버리고 1위 등극[1]

이후 전북과 광주와 비기고 부산에게 의외의 일격을 당하는 등 주춤거리며 5위까지 순위가 내려왔지만 어차피 1위와는 한 경기 차. 이대로 상반기의 돌풍이 하반기까지 이어졌으면 좋았을테지만 2010 남아공 월드컵 이후 조광래 감독이 축구 국가대표팀에 취임하면서 졸지에 시즌 중반에 선장을 잃어버린다.[2]

결국 조광래 감독의 국가대표 감독 부임과 새로운 구단주인 김두관 경남도지사의 취임과 맞물려서 후반기 들어와서는 전반기 포스를 못 보여주고 부진에 빠졌지만...그래도 전반기에 벌어놓은 승점 덕에 어떻게든 6강안에는 들었다.[3] 조광래감독이 떠난 이후 김호감독 내정설로 혼란스럽다가, 이젠 사장문제로도 시끄럽다. 지자체 인사들과 구단내 인사들의 문제로 추락한 대전,대구의 전례를 보면 심히 불안한 상황이다.[4]

결국 6강 플레이오프에서는 천적 전북 현대에게 덜미를 잡히며 1라운드 탈락. 전반기의 돌풍에 비해 후반기에는 허무하게 시즌을 마무리하고 말았다. 다만 신인 윤빛가람이 신인상을 받으며 경남은 윤빛가람 신드롬을 일으키며 관중 동원에도 창원 LG 못지않은 흥행을 하게 된다. 그 외에도 2년차를 맞은 이용래김주영이 좋은 활약을 보여줬고 당시 주장이었던 김영우도 윤빛가람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3. 2011 시즌[편집]


조광래 감독이 떠나고 최진한 감독이 부임하였으나, 팀 컬러 자체는 크게 변하지 않았고 윤빛가람을 비롯한 미드필더진도 건재.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홈에서 잡아먹기도 했으나 한 달 벌어놓으면 한 달 까먹고 조금 굴곡있는 행보를 보이다 8월부터 9월까지 1승 2무 4패라는 극심한 부진속에 순위가 하락. 막판 3연승으로 6강 진출에 대한 희망을 살리려 했으나, 시즌 막판 밑에서 갑자기 치고 올라온 울산 현대와 꾸준함을 유지하던 부산 아이파크에 밀려 6강 진출에 실패했다.[5]

최종기록은 12승 6무 12패 승점 41점 리그 8위.


4. 2012 시즌[편집]


시즌 개막 전 윤빛가람, 이용래, 김주영, 김동찬, 서상민 등이 팀을 떠나며 선수층이 그 전보다 얇아지게 되었다. 물론 어느 정도의 선수층 보강은 했지만 떠난 선수들이 경남 FC의 관중흥행까지 책임졌던 선수여서 평균관중에서도 2,354명으로 스플릿 시즌 강제 강등의 보이콧으로 인한 몰수패로 홈 경기를 얼마 열지 못한 상주 상무보다 낮아서 16개 구단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창원축구센터로 이전한 첫 시즌인 2010년에는 평균관중이 12,501명이었고, 2011년에는 평균관중이 9,068이었는데 무려 6,714명이나 감소되면서 위 선수들의 공백이 뼈저리게 느꼈던 시즌이었다.

한편 유니폼에서는 이전에 종합운동장 시절 킷 스폰서를 해주었던 험멜과 다시 협약을 맺었고 이 때부터 유니폼의 메인 디자인이 빨간 바탕에 검정 사선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16개 팀의 유니폼 콘테스트에서 평가원들에게 전원 만점을 받았고 구단 최초로 써드 유니폼을 제작했고 총 4종류의 유니폼을 제작했다.

3월 4일 경기, 일요일 17:00에 열려 시간상으로 1라운드 마지막 경기였던 창원 홈 경기에서 대전을 3-0로 대파, 잠시동안 리그 1위를 차지했지만, 이후 울산, 상주, 전남을 상대로 내리 3연패를 당하는 등 DTD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며 '유력한 강등 후보' 인천, 대전보다 조금 위에서 노는 위태로운 행보를 보이다 13, 14라운드에 성남, 포항을 연파하며 중위권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6월 25일, 스폰서 STX가 경제위기로 인하여 발을 빼기로 결정함에 따라 이사진이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문제는 구조조정 대상이 구단 전 직원감독 포함 모든 스태프다. 하루밤 사이에 난파선이 될 상황...

거기다가 이 팀을 암울하게 하는 건 구단주인 도지사의 부재. 김두관 도지사가 올 2월 민주통합당에 복당하면서 대통령 후보에 관심이 있다는 소문이 돌더니, 7월 6일을 마지막으로 기어이 도지사직을 사퇴하고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 참가하기로 선언한 것. 더 문제인 것은 김두관 도지사가 구단주 취임 이후 대표이사 단장의 임기를 기존의 3년에서 2년으로 단축했는데, 김두관 도지사 시절 취임한 전형두 대표이사, 서장욱 단장의 임기까지 올 8월을 마지막으로 만료되어 자칫하면 시즌 종료 때까지 결재권자없이 표류하는 상황마저 우려된다는 것.

30라운드에서 상위 스플릿 막차를 탑승하는데 성공하면서, 유일하게 상위 스플릿에 진입한 시민구단이 되었다. 하지만 이후 얄짤없이 상위 스플릿 팀들의 승점 셔틀이 되고 그나마 리그를 포기하고 노린 FA컵 마저 준우승에 머무르자 동기부여 자체가 사라져서 최종 성적은 승점 50점에 8위. 참고로 하위 스플릿의 9위도 아닌 12위 성남이 승점 52점인데 아무리 상위, 하위 스폴릿의 대진이 달랐다고는 9위인 인천의 최종 승점이 67점이라는 걸 생각하면 경남 팬으로선 속이 쓰릴만도 한 결과. 하지만 주요 선수층이 다 떠나면서 어렵게 시즌을 보냈고 하마터면 강등될 뻔 했으니 어쨌든 상위스플릿에 올라 잔류한 걸로도 만족스럽게 느끼는 팬들이 대다수였다.

그리고 FA컵에선 4년만에 결승 진출에 성공했지만 하필이면 천적 관계에 있는데다 2008년 우승컵을 내준 포항 스틸러스와의 리벤지 매치인데다 포항 스틸야드 원정이라는 불리함에 결국 10월 20일에 열린 결승전에선 격전 끝에 연장전이 다 끝나갈 연장후반 14분에 박성호에게 통한의 골을 허용하면서 준우승에 만족해야만 했다.


5. 2013 시즌[편집]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구단주 취임이 2012년 12월 20일이었던 관계로 2013 시즌은 다시 계획을 짜느라 다른 팀보다 늦게 시작하게 되었다. 2013 시즌 첫 걸음으로 안종복 단장이 취임했는데 그래서인지 외국인 용병 자리 중 아시아 쿼터를 제외한 나머지 3자리를 세르비아 출신 선수로 도배했다. 또한 경영난에 빠진 STX 대신 대우조선해양으로 메인 스폰서를 바꿨다.

하지만 좋은 소식만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2012 시즌에 파행 상태였던 팀을 잘 추슬러 좋은 성적을 냈던 최진한 감독의 입지가 불안해졌다.[6]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초반에 승리없이 무재배만 계속하자 최진한 감독이 자진 사임했는데 이를 두고 경질을 자진사임으로 포장했다는 비판을 들었다. 그래도 안종복 단장의 인맥으로 인천의 감독을 맡은 적이 있는 세르비아 출신의 일리야 페트코비치 감독이 왔고 첫 경기에서 대전을 6-0으로 대파, 외국인 감독 효과가 바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였으나...그걸로 끝.

그 이후 끝 모를 추락을 거듭하며 상위 스플릿에 올라갔던 지난 시즌과 다르게 강등권 바로 위에서 놀고 있다.[7] 심지어 하위 스플릿에서도 승리보다는 무재배가 더 많은 상황에 시즌 초반의 기대가 무색하게 대구, 대전, 강원과 사이좋게 강등 경쟁을 벌이다 스플릿 39라운드에서 겨우 11위로 잔류를 확정지었다. 최종 순위는 8승 13무 17패 승점 37로 11위.

이 때문에 경남 서포터들은 성명서를 내고 페트코비치 감독 해임, 조광래 감독 복귀를 구단에 요구하기에 이르렀고 페트코비치 감독도 입지가 많이 위험해졌다.[8]

많은 기대를 모았던 세르비아 3인조 보산치치, 부발로, 스레텐의 활약이 기대 이하였기에 경남 팬들에게 있어서 분노를 유발하는 키워드로 남을 전망.

결국 페트코비치 감독마저 시즌 후 물러났고 이흥실의 감독 내정설도 들렸으나, 부산 대우 로얄즈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이차만이 후임 감독으로 선임됐다. 그리고 설마 이 보다 더 최악이 있겠냐 싶으며 2014 시즌을 준비했지만...


6. 2014 시즌[편집]


성남 FC를 맞아 홈에서 1-0 승리를 거두며 시즌을 상쾌하게 시작했다. 하지만 3월 26일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홈 경기에서 1-0 승리를 거둔 이후 무려 5개월 16경기 동안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9무 7패라는 참담한 성적을 내면서 속절없이 강등권까지 추락하자, 이차만 감독은 결국 8월 11일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애초에 이흥실과 후술할 브랑코 바비치가 실질적인 감독 역할을 하고 있는 판국이라 이차만은 그냥 바지사장으로 희생당했을 뿐. 시즌 전부터 무성했던 이차만 바지감독설을 기사로 인증까지 해줬다. 이차만 사퇴 후 브랑코 바비치의 감독 대행 취임은 사실상 이흥실에서 브랑코 바비치로 감독이 바뀐 것이나 다름 없는 상황이다.

이후 기술담당 고문인 브란코 바비치가 감독 대행을 맡아 8월 17일 상주 원정 경기에서 147일 만에 승리를 거두었으나, 이후 4승 6무 7패의 성적을 거두며 승점 36점으로 11위에 그쳐 광주 FC와의 승강 플레이오프로 내몰리게 되었다.


6.1. 잡음 속에 이뤄진 강등[편집]


그런데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구단주 겸 경남 도지사인 홍준표가 일갈했다.

파일:external/www.fmkorea.com/24c64e0771e8b784d5760f8df2a3d3a0.jpg

파일:external/www.fmkorea.com/cf5f92f9243a99d05d4c496c44a405d6.jpg

파일:external/www.fmkorea.com/1c898f028b94b050f07c4cd4e6346284.jpg

파일:external/www.fmkorea.com/a8feebdcfd801e1354644ae12b96989e.jpg
이는 심판 판정의 문제로 한국프로축구연맹에다 선전포고를 한 성남시의 시장이자 성남 FC의 구단주 이재명에게 가담하기 위해서 페이스북에다 쓴 글이다. 포털 네티즌들은 그저 프로축구연맹의 잘못된 행동만을 보고 홍준표의 행동을 지지한다는 의견을 표시했다.

하지만 "1주일에 6번 하는 야구를 어찌 1주일에 한 번만 경기하는 K리그가 더 인기가 있기를 바라느냐?" "홈팀의 이점은 팬들의 응원이 아니라 심판판정이 있다." 는 발언도 했으며, 심지어는 자신의 구단 선수들이 스포츠토토를 하는 것까지 밝히려고 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명색이 구단주임에도 "2부 리그로 떨어지면 구단 운영을 할 수 없다."라는 글을 써제껴서 선수들의 사기를 완전히 꺾어놓고 초조하게 만들었다. 즉, 선수들 성적 안 나와서 강등당하면 구단을 해체시켜버리겠다고 말을 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봤을 때 사실상 시립 공기업인 적자기업의 구단주 입장에서는 틀린 말이 아니긴 하다. 문제는 강등이 확정되기도 전에 이 발언을 해서 문제가 됐을 뿐.

특히, 선수들이 스포츠토토를 하고 있다고 말한 것은 자칫 K리그 역사상 최악의 흑역사가 된 사건이 또 다시 재현될 수도 있는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에 더욱 신중하게 발언을 했어야 하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밝혀내려고 했다. 이 발언을 옹호하는 측에서는 이를 비난하는 축구팬들은 승부조작을 덮어놓고 쉬쉬해야한다는 주장을 하는 셈이기도 말하는데, 이 발언의 문제점은 홍준표가 확실한 증거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무작정 승부조작을 언급하는 조심스럽지 않은 언행을 하고 있다는 것. 당장에 경기 전에 스포츠토토를 한다는 소리가 들립니다라고 SNS에 언급하는 것을 확실한 증거라고 할 수 있을까?? 게다가 다음 항목만 봐도 이 발언이 얼마나 실속 없는 발언인지 드러나게된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한편, 이재명 성남시장은 격노하면서 "자신에게 징계를 줄 거라면, 홍준표에게도 징계를 줘야한다."는 발언을 했지만 그 결과, 연맹에서 "홍준표는 안건에도 아예 올라오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네티즌들의 한결같은 반응은 "X발, 연맹이 홍준표를 건드리면 아주 X되는 거에요. 아주 X되는거야."라고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결국, 한국프로축구연맹 측에서 이재명 성남시장에게 주의를 준다는 의미로 "가벼운 경고"로 징계를 부과했지만, 이재명 시장은 "연맹의 징계를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일갈하면서 항소를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에 경남 FC 구단 측에서는, 이것이 홍준표가 축구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은 상황에서 쓴 것이라고 덧붙였으며,사기업에서 사장디스했으면 다 짤린다 심지어 홍준표가 이 글을 쓸 때 해외출장 중이었다고 밝혔다.

이렇게 어수선한 팀의 분위기 속에서 당연히 경남 FC의 선수들은 사기가 제대로 살아날리가 없었고, 결국 승강 플레이오프 원정경기 1차전에서 조용태[9] 선제골을 넣으면서 초장부터 밀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스토야노비치가 끈질긴 몸싸움 끝에 동점골을 만들어냈으나, 2실점에 기여한 스레텐의 맹활약 속에서 1:3으로 처참하게 패배했다.

결국, 2차전 홈경기에서 무실점으로 틀어막고 2득점 이상으로 승리하거나, 1실점시 3득점을 기록하고 승리해야만 잔류할 수 있는 총체적 난국의 상황이 되었다. 결국 경기는 2015 클래식행 막차 티켓이 광주 FC 쪽으로 기울고, 경남 FC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는 심정으로 2차전에 임해야만 했다. 그렇게 맞은 2차전에서는 송수영이 먼저 선취골을 넣었으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곧바로 광주 FC의 김호남에게 동점골을 내줬고, 결국 1-1로 경기가 종료되었다. 그렇게 경남 FC는 승강 플레이오프 전적 1무 1패로 K리그 챌린지로 강등이 확정되고 말았다.

위의 두 경기를 보면 알겠지만, 승격을 위해서 매우 적극적으로 싸우면서 2부리그팀 답지 않게 좋은 경기력을 보여준 광주 FC와 달리 경남 FC는 두 경기 모두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2번째 경기에서는 동점골을 먹혔는데도 이기고 싶다면 3골을 넣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불구하고 오히려 광주 FC보다 더 무기력하고 소극적인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관중들을 두 번이나 실망시켰다. 단순히 실력에서 밀렸다면 이해를 하겠지만, 이건 뭐 축구를 하려는 건지, 광주 FC의 선수들을 죽이려는 건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심하게 거친 파울을 일삼는 막장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물론, 진짜 문제점은 심판이 제대로 선수들을 제재하지 않았다는 것이지만...

다만, 경기가 끝난 뒤에 애써 눈물을 삼키던 스토야노비치의 모습을 보고 동정을 보내는 시선도 있었다. 시즌 초에는 리그 적응문제로 기대이하의 모습을 보여줬던 스토야노비치였으나, 어느새부터 송수영과 함께 팀을 이끌었으며, 승강 플레이오프에서도 1차전 동점골을 기록하여 2차전에서 선제골을 넣은 송수영과 함께 그나마 활약한 선수이기에 팬들은 더욱 아쉬워했다.

12월 8일 홍준표 도지사는 경남 FC에 대해, 특별 감사 후 해체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 밝혔지만 감사 결과 아무 일도 없었고 구단은 존속되었다. 그리고 2015년 안종복을 둘러싼 모든 전말이 드러나면서 이 때의 특별 감사가 한낱 쇼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 또한 드러났다.


7. 2015 시즌[편집]


12월 9일, 드래프트가 있지만 바비치 감독 대행은 강등 이후, 브라질로 출국했고 선수단과 관련된 코치진들이 전부 사직서를 냈기 때문에 드래프트에는 백영재 주무와 자유 선발로 입단한 신입 선수 최봉진만이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백영재는 선수를 지명하지 말고 참석만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전했다. 특별감사로 인해서 선수 선발에 여유가 없다고.(......) 실제로 다른 구단과 달리 경남 FC는 6순위는 물론이고 번외 지명까지도 단 한 명의 선수도 지명을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입단하게 된 최봉진은 홍준표에게 구단 해체만은 안 된다고 말했다.

결국 경남은 구단 해체가 아닌 구조조정을 통해 계속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감독자리에 박성화가 올라서 경남팬들과 부산팬[10], 그리고 모든 국내 축구팬들이 경악과 동시에 어이가 하늘로 가출하는 일이 발생했다. 일단 경남은 K리그 챌린지이고 부산은 K리그 클래식이라 서로 리그가 달라서 1년동안 만날 일이 없는 게 다행이긴 한데, 문제는 FA컵에서 만나면 그때 부산팬들이 박성화 감독에게 온갖 욕설과 오물세례를 퍼부을수도 있다

홈개막전은 안산과 치렀는데 0-0으로 비긴다. 2라운드에서는 고양 원정에서 전반내내 지루한 경기를 보여주다 후반에 터진 스토야노비치의 골과 그 이후 갑자기 치열해진 분위기에서 넣은 골을 잘 지켜내며 1-0으로 시즌 첫승을 거둔다.

4월말 8위에 위치해있어서 강등 후유증 극복이 시급해보인다. 팀 득점이 3골에 그치고있는건 생각해봐야할부분. 그리고 5월 10일 서울 이랜드에게 지면서 최하위까지 쳐지고 만다. 그리고 5월 13일 충주에게도 0-1로 지고 만다.

5월 17일, 1승 2무 5패로 리그 11위로 꼴지. 아무리 구단 해체 내분을 겪었다지만, 작년까지 1부 리그에 있던 팀이 이렇게 폭망할 것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11]. 리그 때려치고 조기축구나 하자고 푸념한 팬들이 있었는데, 잘못하다간 정말 K3에서 보게 될지 모를 일이다[12]. 급한대로 강원과 경기는 1-0 으로 이겨놔서 꼴지에는 벗어났고 다음 상대 부천 FC 1995도 스토야노비치가 2골을 넣어 이겨서 7위까지 끌어놓은상태다.

이런 가운데 박성화 감독, 코칭스태프의 연봉이 공개되어 엄청나게 까이고있다.


7.1. 시즌말, 혼돈 파괴 망각의 경남[편집]


올스타 브레이크까지 5승 6무 9패로 8위를 기록했다. 박성화 감독은 부진한 성적에 대해 구단에 뒤늦게 합류하여 선수 영입에 신경쓰지 못한 탓이라 밝혔고, 이런 박성화 감독의 뜻을 존중하여 여름 이적 시장에서 7명의 선수를 새로 영입했다. 여름만 놓고 보면 챌린지 구단 중 최다 영입.

송주한과 류범희가 이적해왔고, 김형록, 유준영, 김선우, 루아티를 임대로 데려왔으며 프랭크를 FA로 데려왔다. 그러나 유스 우선지명으로 데려온 골키퍼 유망주 최봉진을 광주 FC의 류범희와 맞트레이드한건 이해할 수 없다는 평이 다수.

어느 정도 자신이 원하던대로의 스쿼드를 꾸린 박성화였으나, 10월 초까지 추가한 전적은 4승 3무 6패로 총 9승 9무 15패에 승점 36점. 남은 7경기를 다 이겨도 승점 57점인데, 이 시점에서 4위인 서울 E랜드가 이미 승점 53점이었기에 승강 플옵은 거의 물건너간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10월 7일 스토야노비치가 충주 원정에서 시즌 9호 골을 기록하자, 박치근 대표이사는 '안종복 시절 스토야노비치가 10골을 기록하면 5천만원을 추가 지급하게끔 계약을 해놓은 것 같다, 구단에 부담도 되고 이제 승패는 의미가 없으니 내년에도 뛸 선수들 위주로 현명한 선수 기용을 해달라'는 메시지를 박성화에게 전해왔다. 어차피 승격 물건너갔으니 돈 아끼겠다는 소리. 스토야노비치는 실제로 9호골을 기록한 충주전 이후 한 번도 경기에 못 나오다가 10월말 계약이 해지되어 한국을 잠시 떠났고,[13] 2016년 부산 아이파크로 이적했다.

그리고 11월 중순 2013 ~ 2014 안종복 전 단장의 심판 매수 의혹불거졌고, 일단 심판들이 돈을 받아먹은게 사실로 밝혀지면서 해당 전현직 심판 2명이 구속되었다.

2014년 홍준표 도지사의 지시하에 치러진 특별 감사 결과도 뒤늦게 재조명되었다. 대부분의 지적사항이 그냥 '관련 직원에게 엄중하게 주의를 주라'며 넘어가고 있으나, 진주고 축구부 버스기사가 법인 하이패스 카드를 자신의 차량에 부정하게 사용하여 생긴 133만원의 손실과 유류대 정산 업무를 맡은 직원이 자기 차에 기름을 넣고 구단 차량에 기름을 넣은 것처럼 장부를 속여 생긴 439만원의 손실, 합계 573만원에 대해서는 회수 조치를 내렸다. 그런데 정작 가지급금 5.61억에 정산금액 4.14억인, 가지급금의 집행 및 정산이 수상하게 이뤄진 상황에 대해서는 그냥 해당 직원에게 엄중한 주의로 끝이다.[14] 아무리 봐도 알고도 눈감아줬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는 처사이다. 이 부분을 수상하게 여긴 스포츠 조선 기자가 경남도청 감사관실에 문의를 해봤지만, 당연하게도 아무 답변이 없는 상태.

구단의 온갖 병크야 둘째 치고, 성적을 거두지 못한 박성화 감독은 해임이 결정되었다. 박성화 본인의 증언에 따르면 대략 10경기쯤 남겨둔 상황에서 이미 결정난 사항이었다 하는데, 이 때 경남은 충주 험멜보다도 아랫 순위인, 꼴찌였다. 그러나 시즌이 끝난 뒤 해임되는 과정에서 잔여연봉 지급 문제가 불거지고, 구단에서 제공해준 집을 1주일 내에 비우라는 통보가 내려오자 열받은 박성화가 폭로전 양상에 들어갔다. 위의 스토야노비치건이 박성화의 폭로로 드러난 것. 이외에 승리수당이 10월부터 지급 중단됐고, 워낙 답답한 마음에 여름 이적 시장에서 박성화 자신의 사비를 들여 브라질 선수를 영입하겠다고까지 밝혔지만 김형동 전 대표가 '한 명 데려온다고 뭐가 달라지나'라면서 이를 반려했다는 것 또한 폭로했다.[15]

열받아서 길길이 날뛰는 박성화 감독에게 '소송하세요'라고 대응한 쿨 경남은 구단 혁신안을 발표했다. 골자는 '용병 없이 국내 선수로만 구성 / 선수단을 36명에서 26명으로 축소 / 출전수당 폐지 / 도내 대학팀과 실업팀 초청 대회를 통해 신인 선수 선발 / 감독 기준에 따라 승리수당 차등 지급'. 말이 혁신안이지 메인스폰서인 대우조선해양이 부실사태로 빌빌거리고 있는 와중이라 내년 예산이 대략 10억쯤 날아갈 전망이 보이자 대놓고 허리띠를 졸라매겠다는 이야기. 저래놓고 내년 목표를 4강 플레이오프로 잡겠다는 것과 연맹에 승강제 폐지를 건의해보겠다는 부분에서 대략 정신이 아득해진다.

대전과 성남에서 시도했던[16] 선수선발위원회를 구성하고 혁신안에서 언급했던 도내 대회를 서둘러 개최, 감독이 공석인 상황에 선수선발위원회가 대회를 참관하며 선수들을 살펴봤는데 이 선수선발위원회의 구성이 또 어처구니다. 박치근 이사를 비롯해 이명국, 이진섭, 이석재의 4인으로 구성됐으며 박치근 이사는 축구와는 전혀 관계없는 전문 경영인이고, 이진섭은 그냥 조기축구하시던 아저씨에, 이석재 경남 생활체육회 사무처장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태권도를 전파했던 태권도 9단의 유단자. 고등학생 시절에 잠깐 축구하다가 축구교실 팀장 및 유소년팀 감독을 거쳐 지금은 남산고 체육교사인 이명국은 그나마 양반이다. 요약하면 축구와는 거의 관계없는 사람들이 새로 뽑을 축구 선수 심사한답시고 모인 것.

개똥밭에 굴러도 일단 프로는 프로이기에 대학팀들은 대회에 참가했지만, 도내 실업팀인 김해시청 축구단창원시청 축구단은 초청 대회에 대해 미적지근한 태도. 김해시청은 아예 대회에 불참했고 창원시청은 비주전감인 일부 어린 선수만 대회에 내보냈다. 경남이 기라면 기어야 할 입장도 아니고, 아무리 프로래도 대우가 저 따위면 실업팀보다 나을게 없으니 당연한 일. 이로써 혁신안에서 공언한 '도내 대학팀과 실업팀 초청 대회'라는 말이 무색해졌다.

역시 11월에는 U-15 팀이었던 토월중과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여 말썽이 일고 있다. 진주고 진학이 아니라 다른 학교나 지역을 택하는 토월중 선수들이 늘어난게 계약 해지의 이유라 하는데, 졸지에 허공에 붕 뜨게 생긴 1~2학년 학생들은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게다가 앞서 선수선발위원회에서 언급된 현직 교사가 경남 FC 이사회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 분은 왕년 경남 FC U-15 창원 감독을 맡으며 2011년 당시 경남 FC 정식 U-15 계약을 놓고 토월중과 마지막까지 경쟁한 바 있다.

사무국에 실질적으로 업무를 볼 직원이 6명뿐이라는 기사도 떴다. 그야말로 구단 경영에 있어서 제대로 된 반면교사로 남을 2015년이라 할 수 있겠다.

막장 of 막장을 보여주는 경남의 행보로 인해 대부분의 시도민 구단이 인식에 있어 반사이익을 봤다. 정치질에 휘말려 또 나락으로 떨어진 대전 시티즌은 예외.

12월 2일, 후임 감독으로 9월달부터 썰이 나돌았던 김종부가 내정되었다. 김종부 본인은 구단측에서 사전 접촉은 없었다 밝히긴 했으나, 감독이야 구단이 정하는 것이고 김종부가 마다할 이유도 없으니... 어쨌든 예상대로의 결과.


7.1.1. 경남 FC 심판매수 사건[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경남 FC 심판매수 사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2. 누구의 잘못인가?[편집]


2013년 당시 STX가 나가떨어지자 발빠르게 대우조선해양의 옆구리를 찔러 메인스폰을 따오는 것까진 좋았다. 그러나 의문의 고려대 커넥션으로 구단을 수놓았다는 점이 의혹을 피해갈 수 없는 부분. 뭣보다 안종복을 직접 앉혀놓으셨다는 부분에서 근본적인 책임을 피하기가 힘들지만, 아직까지도 안종복 건에 대해 그냥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리고 2014 시즌 승강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갑작스런 트위터질은 자신은 전혀 책임이 없고 오히려 자신이 그런 잘잘못을 잘라내 영웅 행세를 하려고 한 것이며 누가 봐도 이 사람에게 잘못이 없을 수가 없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도둑놈 안종복의 병크를 구단 전체에 책임을 떠넘겨서 프런트를 갈아엎는 바람에 이후 구단 운영에 파행을 불러온 책임도 있다. 사실 다 필요 없고 밑에 만악의 근원이라 언급된 안종복을 임명한 병크를 저질렀다. 심판과 관련된 문제로 아주 잠시 동맹을 맺기도 했던 성남 FC의 구단주 이재명 성남시장과 비교를 해보면 행보가 더욱 한숨이 나온다. 물론, 이재명도 연맹에게 징계를 받은 뒤에는 "홍준표도 불만토로했는데 왜 징계 안 줬음?"이라고 언급했다. 심지어, 홍준표는 연맹에다 심판판정의 불만을 토로했지만 정작 안종복 단장은 구단의 호주머니를 털어서 팀을 개판으로 만들고 심판매수를 하다가 들켜서 구속되는 추태를 보여줬다. 결국, 홍준표는 말 그대로 돈만 물어다주면서 도둑놈을 단장으로 앉힌 뒤 쭉 신경 껐고, 이재명은 기업들의 옆구리를 찔러 스폰을 물어다주는 일은 못 했어도 ACL 광저우 원정 때의 거리 응원 주도, 원정에서 돌아오는 구단을 공항으로 마중나가기, 구단을 이끌고 지역행사 동참, 성인과 유소년을 아우르는 선수선발 현장 점검, 유럽출장을 간 김에 FC 바르셀로나 유소년 시스템 견학, 시즌권 구매 캠페인 등 구단을 지역에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서 다방면으로 온갖 노력을 펼쳤다. 물론 시장이 아닌 도지사로써, 해야 할 일이 더 많을 홍준표에게 저렇게까지 구단에 애정을 쏟아주길 바라는건 과한 욕심일테지만 그래도 앞서 언급된 야매 특별감사를 비롯해 최소한의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라 볼 수 있겠다.

굳이 따져보자면 구단에게나, 홍준표에게나 빅엿을 선사한 만악의 근원. 순수하게 구단 운영을 위해 써야 할 돈을 6억 3천 가량 횡령[17]하고, 이로 인해 팀이 비실대자 심판 매수로 어떻게든 만회하려 했다. 확보된 예산을 정직하게 구단 운영에 썼더라면 경남의 성적이 저리 막장으로 가지도 않았을테고, 심판 매수를 시도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 박치근
이 목록에 들어가기엔 뭔가 억울한 감도 있긴 할 인물이다. 스토야노비치의 출장 금지나 '이제 승패는 의미가 없다'는 발언 등은 팬 입장에서 충분히 빡칠 처사이지만, 승격 가능성이 거의 0%가 되어버리고 내년 예산이 더욱 쪼들릴게 자명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축구에 대해 거의 모르는 사람이 단장으로 앉았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이걸로 비판 받기에도 애매한게 2014년 대전 시티즌의 체질을 효율적으로 개선하는 동시에 성적까지 이뤄냈던 김세환 단장도 축구에 대해 잘 모르는 전문 경영인이었다. 단, 김세환 전 대전 단장은 '자신은 축구는 잘 모르니 경영만 담당하고 축구에 관련된 부분은 코칭 스탭에 일임하는' 방식으로 철저한 분업을 거쳐 저런 성과를 이뤄낼 수 있었으나, 박치근 단장은 선수선발위원회의 일원으로 들어가고 '승강제 폐지를 건의하겠다'는 발언을 내뱉는 등 똑같이 축구에 대해 잘 모르면서 축구에 대해 적극 개입을 꾀하고 있다는게 차이점이자, 명백한 잘못이다. 비록 축알못 주제에 축구에 개입하려 한다는 비판을 들을지언정 어떻게든 현재 구단이 놓인 상황을 수습해보려 하는 노력이라도 인정해줄 수 있을 것으로 보였으나 구단 직원을 경남 교육감 소환 허위서명에 동원하면서 안종복 못지 않은 빅엿을 선사해줬다.

물론, 위 인물들의 잘못과는 별개로 좋은 선수를 발굴해내서 다른 구단에 팔아먹는 것으로 연명했던 경남 FC였지만 시민구단의 근본적, 구조적인 문제로 언젠가는 터져나올 수 밖에 없는 재정 문제를 안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연봉 공개의 여파로 인해 선수를 팔아먹는 것조차도 여의치 않아 점차 상황이 안 좋아지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공무원들이 주로 참여한 예산 관련 설문조사에서도 경남 FC에 도 예산을 지원해주는 것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엿볼 수 있다.

2014년의 강등과 함께 홍준표가 해체를 언급했을 당시에 주로 축구팬 외적으로 경남 FC 해체 찬성 여론이 나돌았던 것과 달리, 이젠 K리그 팬층 내부에서도 경남 FC 해체 찬성 여론이 슬슬 나돌고 있는 것을 보면 안종복이 한창 비리를 해먹었을 당시에 바로 잡아내지 못했던 것이 경남 FC 팬들의 입장에서는 천추의 한이 되었을 것이다.

얼마나 심각하냐면 2014년 기준 매출액은 5,733,501,519원인데, 2015년 기준 매출액이 그 1/5밖에 안 되는 1,190,390,142원. 완벽히 막장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2016 시즌에는 -10점 삭감을 받고 시작하면서 만약 초반 5경기에서 3패 이상 하는 순간 적자까지 갈 가능성도 배제 불가능이다. 더 자세한 구단 재정 상황은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을 참고.

회장이나 사장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하다가 구단을 말아먹은 사례는 페루자 칼치오레인저스 FC 등 해외 구단에서도 여러번 보였던 바 있지만, 경남은 저런 구단들에 비견할만한 역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우승 기록이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세금 먹는 구단'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에 적은 인기까지 겹쳐 저런 사단을 겪었음에도 반발이 적은 편. 물론 그렇다고 자신이 앉혀놓은 낙하산 단장이 자신이 마련해준 예산을 4억 넘게 지 주머니로 처넣고 검찰에게 꼬리를 밟혀 감옥으로 들어갈 때까지 모르쇠로 일관한 홍준표의 행보가 정당화될 순 없다.

어쨌거나 이 사건 이후 광주 FC와 인천 유나이티드의 체불 문제 등도 도마에 오르며 이전부터 제기되어왔던 시도민구단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축구계의 본격적인 성찰이 일어나고 있다. ‘절망의 아이콘’으로 전락한 시민구단


8. 2016 시즌[편집]


2015 시즌 심판매수에 대한 징계로 2016 시즌은 승점 10점을 삭감당하고 시즌을 시작하게 되었다. 경남 팬들은 승격은 물건너갔고 그나마 해체는 면했으니 팀이나 잘 추스리라는 의견을 보이는 중이다. 구단의 분위기는 초상집이 따로 없고 공언했던대로 외국인 선수 한 명도 없이 시즌을 맞이하게 될 판이지만 배기종, 이관표, 이상협, 이원재 등의 알찬 영입으로 다시금 희망고문을 시전하고 있다.

한편, 경남에서 9골을 기록한 후 방출되었던 스토야노비치가 2016년을 K리그 챌린지에서 뛰게 된 부산 아이파크에 가담하면서 작년 시즌의 동료를 적으로 맞이하게 되었다.

김형록, 김선우, 유준영, 루아티는 원 소속팀으로 임대 복귀에 조재철은 성남 FC로 이적하고 최성환은 은퇴를 했으며 김교빈, 배효성, 고재성,류범희은 재계약없이 다른 팀으로 옮겨갔다. 김준엽은 재계약없이 안산 무궁화로 입대를 했고 손정현과 정성민도 안산 무궁화로 입대했다.

신인은 유스 출신 박현우와 숭실대의 장찬양 2명에 그쳤다. K3에서 김종부와 함께 했었던 김형필과 남광현, 정헌식을 불러왔고 지난 시즌 수원 FC의 승격에 힘을 보탰던 이관표를 제주에서 영입했으며, 덤으로 장은규를 임대해왔다. 이외에 전북의 이상협, 대구의 이원재가 이적해왔다.

FA로는 전역 이후 한동안 무적이었던 박태웅, 제주에서 입지를 잃은 배기종, 강원과 광주를 거친 안성남, 부천의 서브 골리 이기현, 이관표와 함께 수원 FC의 승격에 힘을 보탰던 김정빈, 고양에서 주로 서브 자원이었던 김성식, 외국인 선수 영입은 없을꺼라는 말과 달리 2012년 중국 슈퍼 리그 득점 1위, 2015년 중국 갑급리그 득점 2위[18] 출신인 크리스티안 다날라체를 영입했다. 그 외에 영입은 포항 스틸러스의 골키퍼 이준희를 임대로 데려오는 정도였다.

이런 의외로 순탄하게 흘러가는 상황에 경남 FC팬들도 당황하고 있고, 일부 설레발 가득하신 분들은 "승점 -10은 아무것도 아니다. 우승하고 승격가자!"란 설레발까지 치고 있었으나... 이번에는 박치근 대표이사가 경남 교육감 소환 허위서명 문제로 구속을 당하면서 대표이사직을 내려놓고 말았다.

게다가 구단 직원 4명이 허위서명에 동원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구단을 정치적으로 써먹은 셈이니, 연맹이 아니라 피파 차원에서 징계가 들어와도 할 말 없을 상황이다.

3월 9일 미디어데이를 통해 싸카에서 후원하는 새로운 유니폼이 공개됐는데...

파일:external/img2.ruliweb.daum.net/14996017500.jpg
어떻게 된 영문인지 포항 스틸러스 2중대라고 불러도 할 말이 없을 검빨색 가로 줄무늬 유니폼이 나왔다. STX대우조선해양이 연달아서 나가떨어진 덕분에 이젠 옆구리 찔러 스폰서 따올 곳도 없는지 그냥 경상남도의 슬로건인 'Bravo Gyeongnam'을 메인스폰으로 달아놨다.

1라운드 홈 개막전에서 송수영이 전반 막판에 결승골로 강원을 1-0으로 잡았다.[19]

2라운드 안양 원정에서 아쉽게 1-0으로 패하였지만 3라운드 대구 원정에서 0-0으로 비기고 4라운드 충주와의 홈 경기에서 2-1로 이기며 승점을 -3점까지 좁힌 상태.

5월 22일 고양과 치른 홈경기에서 2-1 승리를 거두며 3승 5무 2패를 기록, 드디어 징계로 까먹은 승점 10점을 모두 상환하는데 성공했다. 징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순위가 8위인게 함정.

6월 11일 대전과의 4-4 난타전 끝에 무승부를 기록하고, 고양이 또 패함으로써 승점은 9점으로 동점, 골득실차에서 고양에 앞서면서 꼴지를 탈출했다!

7월에 이번 시즌 영입한 공격수 김형필이 경주 한수원으로 돌아갔다.

18승 6무 16패로 승점 50점을 기록하며 8위로 시즌을 마쳤다. 징계로 삭감당한 10점을 감안해도 플옵 순위권에는 미치지 못하니 덜 억울하다면 덜 억울한 시즌이겠지만... 더불어 마지막 경기에서 1-1 무승부로 발목을 잡으며 강원 FC를 3위에서 4위로 끌어내려버렸다. 그러나 이 발악에도 불구하고 강원은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하는 것에 성공했다.


9. 2017 시즌[편집]


2016 시즌이 끝나고 이영익 수석코치가 대전 시티즌의 감독으로 부임하자 동시에 팀 공격을 책임졌던 크리스찬과 이호석, 신학영이 이영익 감독의 대전 시티즌으로 연거푸 이적하면서 공격력의 공백이 생기게 되었고, 새로운 외국인 선수로 브라질 국적의 두 유망주 말컹브루노를 영입했다. # 추가로 성남에서 뛴 성봉재와 포항에서 뛴 정원진을 임대 영입하였고, 인천 출신의 이현성, 대전 출신의 이현웅이 오게 되었다. 한편 송수영이 수원 FC로 떠나게 되었고 수원 삼성에 있던 김선우가 임대로 왔다. 그리고 전북에서 뛰던 최재수와 인천에서 뛰던 조병국도 영입하였다.

1라운드 아산전 홈 개막전과 2라운드 이랜드 원정 경기에서 1-0으로 승리, 3라운드 부산과의 낙동강 더비에서 1-1로 비겼으나 4라운드 대전을 2-1로 잡고 강등 후 처음으로 1위 자리에 올랐다. 이후 김종부가 이전에 감독을 맡았던 화성시청과의 FA컵에서 0-1 승, 수원 FC와 2-2로 무승부를 기록, 안양에게 0-1로 뒤지고 있다가 또 2-1로 역전승을 거뒀고, 최하위 성남원정에서 또 2-1로 승[20], 3일 후 FA컵 대구 원정에서 종료 4분 정도를 남기고 1-0에서 동점골과 역전골을 넣으며 16강에 진출했다. 뒤이어 안산에게 3-0으로 승리, 부천 원정에서 2-2로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전 구단 상대로 무패를 거뒀다. 뒤이어 낙동강더비 부산전에서 1-0 승, 대전 원정에서 0-2로 이겼다. 뒤이어 서울 이랜드 FC와의 홈 경기에서도 3-0으로 이기면서 제일 먼저 승점 30점을 얻었다. 이 쯤 되면 정말 흠좀무한 모습

FA컵 16강에서 울산 현대에게 1-2로 역전패하면서 2017 시즌 첫 패배를 기록하게 된다. 대체로 지금 당장 클래식에 가도 잔류할 것 같다는 평. 3일 후 수원 FC와의 경기에서 2-0으로 승리를 거두며 클래식, 챌린지 구단 중 제일 먼저 10승을 달성했다.

6월 4일 부천 FC 1995와의 경기에서 2-1 역전승을 거두며 K리그 챌린지 15경기 무패로 기존 대전 시티즌의 14경기 무패 기록을 밀어내고 신기록을 달성한 데 이어 6월 11일 안산전에서 3-3 무승부로 제일 먼저 승점 40점에 16경기 무패 기록을 갱신했다. 게다가 이 경기를 기점으로 10경기만 이긴다면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하게 됐다는 경우의 수도 나왔다. 하지만 18일 아산전 1-1, 24일 성남전 1-1 무승부를 기록하고 19라운드 수원 FC에게 2-1로 패하면서 무패행진은 마감되었다. 그러나 뒤이은 부산과의 낙동강더비에서 1-2로 승리를 하면서 1위 자리를 굳게 지켰고, 아산과의 홈 경기에서도 3-1로 이겼다. 이후 8월 들어서도 안산 성남을 상대로 3-1로 이기고 부천 원정에서 4-2로 역전승을 했다. 하지만 부천전에서 이준희의 PK 선방 세레모니로 인해 부천 팬들이 경남 구단 버스와 팬들의 버스를 막는 소동이 일어났다.[21]

시즌 도중인 6월 19일, 대전 시티즌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박주성전상훈을 보내고 과거 주장을 역임했던 강승조를 영입하였고, # 6월 27일에는 FC 서울에서 김근환을 영입하였다. # 그리고 6월 30일에는 김근환의 영입을 공식 발표함과 동시에 윤종규까지 추가로 임대하였다. # 7월 24일에는 2010년 데뷔 후 7년간 몸담았던 김도엽제주 유나이티드권용현과 트레이드되었고, 7월 26일에는 과거 제주에서 임대로 뛰었던 김선우가 경남으로 다시 임대되었다. 돌아올 김선우는 돌아온다. 7월 28일에는 FC 안양에서 안성빈을 이현웅과의 맞임대로 영입했다. 이로써 안성빈은 3년만에 경남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10월 8일 2위 부산 아이파크와의 경기에서 2:0으로 승리하면서 정규 시즌 종료를 3경기 남기고 부산과 승점 9점차로 사실상 승격을 확정지었다. 남은 3경기에서 경남이 전패하고 부산이 전승한다는 시나리오도 있긴 하지만 다득점 우선 때문에 부산이 3경기에서 자그마치 15득점을 따라잡아야 하므로 부산이 1위를 탈환할 가능성은 전무. 이 경기에서 패배하며 우승 기회를 완전 잃어버린 부산 아이파크조진호 감독은 평소 좋지 않았던 심장에 심적 부담까지 더해진 것이 원인이 되어 안타깝게도 이틀 후인 10월 10일,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부고 소식을 접한 경남 FC는 구단 홈페이지와 SNS를 통해 멋진 동반자였던 조진호 감독의 명복을 빌며, 항상 멋진 경쟁에 감사했다는 추모 메시지를 남겼다.

10월 14일 서울 이랜드 FC와의 대결에서 2:1로 이기면서 구단 역사상 첫 우승컵을 들어올림과 함께 자력으로 K리그 클래식 복귀에 성공했다. 그리고 뒤이어 안산 그리너스 FC성남 FC까지 이기고 24승 7무 5패로 승점 79점을 기록하면서 챌린지 역대 최고 승점 우승을 기록했다.

시즌이 끝난 후 두 베테랑 진경선과 김진용이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 현역 마지막 커리어를 우승으로 장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을 것으로 보인다.

여담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2014 승강 플레이오프때 경남과 맞붙어 승격한 광주 FC는 2017년 시즌 결과 클래식 최하위로 K리그 챌린지로 강등되었다. 지난번에는 광주 FC가 승격하고 경남 FC가 강등했지만 이번에는 반대로 경남 FC가 승격하고 광주 FC가 강등한 상황.[22]

시즌이 끝난후 발표된 K리그 챌린지 베스트 일레븐말컹, 정원진, 배기종, 이반, 최재수, 이범수, 박지수, 우주성까지 총 11명 중에 8명의 선수가 포함되었다.[23] 전체 명단의 절반 이상을 경남의 선수들로 채운 매우 값진 성과라고 할 수 있겠다.

그동안의 암울했던 분위기에서 벗어나 구단에게 K리그 클래식으로 복귀, 역사상 최초의 리그 우승등의 선물을 안겨줬을뿐만 아니라 K리그 챌린지에서도 16경기 연속 무패 기록을 세우고 리그 MVP, 득점왕, 감독상을 휩쓰는 등 여러모로 뜻깊은 시즌이었다.


10. 2018 시즌[편집]


3년만에 밟아보는 K리그 클래식 무대다. 승격하고 나니 명칭이 K리그1로 바뀌었다.

외국인 선수는 이반은 남고 브루노는 원 소속팀 복귀가 확정되었다가 수원 FC로 이적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말컹의 이적 루머는 말컹이 무조건 K리그 클래식 무대서 뛰겠다는 말을 남겨 사실상 잔류 확정.

김종부 감독 재계약이 지지부진하다. 경남 구단이나 경남도의회서도 연봉인상 재계약에 긍정적이지만 도청에서 타 시민구단 감독들 연봉에 맞춰야한다는 말같잖은 이유로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고있다. 이 사이에 K리그 클래식, K리그 챌린지 타구단에서 김종부 감독에게 계약오퍼를 때렸고 어느 구단은 4억~5억까지 베팅했다고 한다. 매수사건으로 박살났던 경남을 일으키고 다시 K리그 클래식에 복귀하게 만들었으며 그 말컹을 발굴하고 기량을 향상시킨 김종부 감독이 타팀으로 갈경우 경남은 모처럼 복귀한 K리그 클래식무대를 시작하기 전에 엄청난 타격을 입을것이다. 또한 김종부 감독 하나만 바라보고 남은 말컹도 마음을 돌릴 가능성이 높다. 다행히도 김종부 감독은 이 문단이 써진지 1일만에 재계약에 성공했다. 하지만 1+1 계약이라는게 정설이라 아직 불안함은 남아있다.

이하는 12월 영입 목록으로, 26일부터는 강원 FC처럼 1일 1오피셜을 (...) 띄웠다.

  • 12월 21일 : 브루노를 대신할 새로운 브라질 선수로 브라질 U-20 대표팀 출신인 네게바를 2년 계약으로 영입했다. #
  • 12월 26일 : 아시아 쿼터제를 이용해 일본 U-20 대표팀 출신 공격수 쿠니모토 타카히로를 영입했다. # 경남에게는 토다 카즈유키 이후로 10년만에 영입하는 일본인 선수다. 참고로 쿠니모토는 만 16세였던 2013년 천황배에서 골을 터뜨리며 팀 내 최연소 득점 기록을 세우기도 한 아주 전도유망한 선수였는데, 10대 시절의 지속적인 흡연으로 인해 팀에서 방출되었다.[24] 경남에서는 '일본의 웨인 루니가 왔다' 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래서 붙은 별명도 왜인 루니라고 (...) 김종부 감독이 쿠니모토를 살릴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
  • 12월 27일 : 경남의 U-18 팀인 진주고등학교 출신의 우선 지명 수비수 김현훈[25]중국 갑급 리그의 윈난 리장에서 영입했다. #
  • 12월 28일 : 정현철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성남 FC에서 베테랑 미드필더 조재철을 영입했다. #
  • 12월 29일 : 정원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부천 FC 1995에서 유망주 김신을 영입했다. #
  • 12월 30일 : J리그에서 경남 팬들의 애증의 대상[26]인 여성해를 재영입했다. #

이렇게 꽃길만 걸었으면 좋겠으나 조기호 대표가 돌연 사퇴를 했다. 여지까지 나온 기사로는 정치적 문제가 엮여 있다는 것이 대다수의 반응. 실제로 조기호 대표도 불명예스러운 퇴진이라고 언급하는 둥, 뜸금없는 사무국장의 1호 시즌권 구매 기사가 나오는 만큼 그때의 악몽이 되풀이 되는 것이 아니냐 두려워하는 중.

1라운드 상주를 상대로 말컹의 해트트릭후 칼퇴근, 손정현의 미친선방으로 3-1 승리를 이끌어냈다.

허나 김종부 감독이 지나치게 항의를 했다는 이유로 3경기 출장정지 및 벌금 500만원 징계를 받았다.

2라운드 제주와의 홈 경기에서는 말컹도 없고 감독님도 없는 상황에서 신입 용병 네게바와 쿠니모토가 골을 넣으며 2-0으로 승리를 거뒀다. 여담으로 이 날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농구단 게토레이걸을 하고 있는 김유정이 방문을 했다.

3라운드 전남 드래곤즈와의 원정 경기에선 3대1로 대승을 거두었다. 네게바, 김효기가 전반에 골을 성공시키며 2-0으로 크게 리드했다. 후반에 전남의 반격으로 한 골을 허용했지만 이후 PK를 얻어내며 말컹이 득점에 성공. 3대1 스코어를 완성했다. 게임은 전체적으로 템포가 빠르고 넓은 시야에 기반한 패스가 연결되는 모습을 보이며 눈이 즐거운 게임이었다. 하지만 수비들은 여전히 공중볼 경합에 약하고 수비 위치 조절에 실패해서 손정현 키퍼에게 많은 부담을 준 게임이었다.

4라운드 상대는 강원 FC, 경남과 함께 3연승을 달리고 있어서 단독 1위를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뺏길 것인지에 대한 운명이 달린 경기이다. 치열한 경기가 예상되었지만 원정팀임에도 시종일관 밀어붙이는 경기력으로 말컹의 멀티골, 배기종의 멋진 크로스를 김효기가 추가골로 연결시키며 무난하게 3-1 승리를 거뒀다.

5라운드에서는 대구 FC와 맞대결을 벌였는데, 전반 17분에 세징야의 슈팅을 손정현이 막아 냈지만 이어진 코너킥에서 손정현과 수비진의 아쉬운 실수로 시즌 첫 선제 실점을 내준데다 전반 종료 직전에 네게바가 패스를 차단하려는 시도를 하다 대구의 수비수 김진혁에게 다리를 밟히는 부상을 당해 교체아웃되어 어려운 후반전이 되나 했지만, 후반 67분 쿠니모토의 프리킥을 말컹이 헤딩으로 떨군 공을 배기종[4]이 골대에 꽂아 넣어 동점을 만들고 그대로 1-1로 무승부로 경기 종료되었다.

6라운드에는 상대가 전북 현대였다. 결국 아무것도 해보지 못 한 채 0-4로 패하며 2위로 내려갔다. 뒤이은 포항전에서도 2:1 패, 울산전에서도 0:0 무, 수원전에서도 3:1로 패하며 아직까지 강팀 상대로 어떻게 해법을 풀어나가야 할 방법을 찾는 것이 김종부 감독의 과제이다.

그리고 인천원정에서 2:3으로 역전승을 거두며 무승 탈출에 성공했다. 뒤이은 서울전에서도 0:0으로 기록하다가 대구 원정에서 0:2로 이기며 2위자리에 올랐다. 뒤이은 울산전에서도 0:0 무승부, 강원전에서 0:1로 패하며 4위로 전반기를 마감했다.

여름이적시장에서도 다른 구단들보다 더 활발히 선수 보강을 하고 있는데 팀의 맏형인 조병국수원 FC로 보낸 것을 시작으로 브라질 용병 파울리뉴를 영입했다. 이 때 크로아티아 용병 이반 헤르첵을 서울 이랜드 FC로 보냈고, 울산 현대에서 뛰고 있는 조영철을 영입했다. 그리고 권용현을 수원 FC와의 이광진과 맞교환하였고, 안성빈 역시 서울 이랜드 FC로 보냈다. 뒤이어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뛰고 있는 좌준협을 영입했다. 그리고 이현성을 서울 이랜드로 보냈다.

7월 7일 후반기 시작하면서 김해 홈 이전경기를 했다. 상대는 포항 스틸러스였고 경기 시작한지 2분만에 조재철이 골을 넣고 뒤이어 후반에 네게바가 골을 성공시키며 2:0으로 이겼다. 이 날 이적생인 이광진, 조영철, 파울리뉴가 첫 경기를 가졌다. 11일 제주 원정에서는 0:0으로 비겼다. 그리고 14일 인천과의 경기에서 쿠니모토와 말컹의 골로 3:0(말컹 2골)으로 승리를 했고, 이 날 구단주 겸 신임 경남 도지사인 김경수 도시자가 방문을 했다. 4일 후 상주 원정에서 0:1로 이기며 2위 수성에 성공했다. 뒤이은 수원과의 2위 사수전에서 2:2로 비기며 2위를 유지하는데 또 성공했다.

지방선거가 끝나고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취임해서 당에 따라 예전과 똑같이 프런트가 갈려지는 시민구단 특유의 문제점이 반복되는 사태가 일어나는가 싶었지만 다행이도 조기호 대표이사는 그대로 대표이사직을 유지하게 되었다.

2018년 7월 말 발표된 상반기 관중집계에서 1부리그 승격과 월드컵 버프를 모두 받아서 유료관중 2,400명을 기록했다(...) 참고로 17시즌에는 유료관중 900명으로 1,000명이 채 안되었다.

이 후 FA컵과 리그에서 서울과 2연전을 치뤘는데 FA컵에서는 0:0 무 승부차기로 1:3으로 패하면서 탈락했지만 리그에서 3:2으로 승리를 했다. 뒤이은 전북전에서도 전북을 1:0로 이기는 대이변을 연출했다. 그 다음 주 전남을 3:0으로 이기고 같은 날 3위 수원이 울산에게 1:0으로 지면서 승점차이를 6점으로 벌려놓는데 성공했다. 15일 광복절 울산전 경기에서 0:3으로 지고 있다가 후반 종료 직전에 3골 연속 몰아붙이며 3:3으로 기적적인 무승부를 기록하며 무패행진을 이어가게 되었다. 뒤이은 18일 포항전에서도 말컹이 헤트트릭을 기록하며 0:3으로 승리를 하며 후반기 들어 10경기 연속 무패행진을 기록중이다. 22일 강원전에서 0:1로 지고 있다가 후반 들어서 2:1로 역전승을 거뒀고 동점골을 넣은 김현훈은 팀 통산 600호골을 기록하게 되었다. 하지만 말컹이 퇴장을 당하며 수원 전북전을 상대로 변수가 생겼다.

결국 수원전에서 곽광선의 중거리슛이 골로 들어가면서 1:0으로 패하며 11경기만에 무패행진을 마감지었다. 뒤이은 전북전에서도 0:3으로 패했고, 전남전에서 전반에 0:2로 이기고 있다가 후반 들어서 3:2로 역전당했고 종료 직전 교체투입된 말컹이 동점골을 넣으며 3:3으로 경기를 마무리지었다. 스플릿까지 5경기를 남기고 현재 6~7위와 승점이 16점 차이가 나서 남은 5경기를 다 진다고 해도 하위로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일찌감치 상위스플릿 확정을 지었다. 2012년 첫 상위스플릿 들어간 이후 6년만이며, 12팀 체제에서는 처음으로 상위스플릿에 올라갔다. 동시에 시도민구단 최초 상위스플릿을 2번 간 팀은 덤.[27][28]9월 22일에는 서울에게 0:1로 지고 있다가 후반에 교체투입된 말컹의 동점골과 배기종의 역전골로 승리를 가져갔다. 뒤이은 대구전에서는 전반 종료 직전 말컹의 PK로 리드하다가 후반에 동점골을 내주고 말컹이 역전골을 넣었지만 종료 직전 PK를 허용하면서 2:2로 마무리지었다. 인천전에서도 0:2로 리드하다가 2:2로 무승부로 끝났다.

이 후 박지수가 벤투호에 발탁되면서 윤빛가람 이후 약 7년만에 성인 대표팀에 발탁되었다. 이 후 제주에게 후반 종료 직전 결승골을 내주며 통한의 패배를 맛보았고,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상주를 2:1로 이겼다. 스플릿 첫 경기는 10/28 울산 원정. 바로 밑인데다 2점 차인만큼 승점 6점과도 같은 경기를 치루게 된다. 그러나 1:0으로 울산에게 패하며 3개월만에 2위자리에서 내려오게 된다. 그리고 약 이틀 후 말컹의 중국 이적 루머가 나오기 시작했다.

다음 라운드에서 제주에게 0:1로 이기고 2위 자리를 다시 얻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전북이 울산을 3:1로 이기고 포항이 수원을 1:3으로 이기면서 최소 ACL PO를 확정지었다. 하지만 포항전에서 1:2로 패한데다가 같은 시각 울산이 수원에게 3:3으로 비기게 되면서 1점차이로 좁혀졌다. 11월 25일 마지막 홈 경기인 수원 삼성전에서 이기고 제주가 울산을 이겨주길 바래야만 2위로 본선에 직행할 수 있었는데 결국 리그 준우승과 ACL 본선 직행을 확정지었다. 그리고 마지막 전북과의 원정경기에서 1:1로 비겼다.

그 다음날 시상식에서 최영준 네게바 말컹이 베스트 11에 들어갔고 말컹은 추가로 득점왕과 MVP를 받았다.


11. 2019 시즌[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경남 FC/2019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018 시즌이 끝나자마자 말컹의 대체자를 찾고 있는데 우선 지난 시즌 인천에서 뛰었던 코스타리카 용병 아길라르를 영입 타깃으로 삼고 있었지만 제시가 맞지 않아서 무산되었다.

ACL에서는 우선 말레이시아의 조호르 다룰 탁짐과 같은 조가 되었고, PO에서 올라올 팀은 산둥 루넝 타이산과 2018 시즌 ACL 우승팀인 가시마 앤틀러스랑 한 조가 될 가능성이 있다.

팀의 중심이었던 최영준이 전북으로 이적하고 박지수가 중국 광저우 헝다로 가게 되었다. 이 때 광저우에서 뛰고 있는 김영권이 온다는 얘기가 있다. 팀의 골키퍼 중 하나인 이준희가 대구로 이적했다.

시즌을 앞두고 유니폼 메인 스폰서로 농협과 계약을 체결했다.[29]

1월 5일 울산의 젊은 미드필더 김승준이영재를 영입했다. 그리고 부산에서 고경민을, 성남에서 배승진을 영입했고, 신인 전승완, 정성준, 김태훈, 김현중을 영입했다. 뒤이어 수원에서 박기동을 영입했으며, 서울에서 방출된 곽태휘도 영입했다. 또한 전남에서 오른쪽 수비수 박광일과 말레이시아에서 뛰던 윙어 도동현도 영입하며 폭풍영입을 하고 있다. 그리고 알비렉스 니가타에서 송주훈을 영입하고 조영철을 보냈다.

2월 11일 카디프 시티, QPR, 크리스탈 팰리스에서 뛰던 조던 머치를 영입했다.

시즌 슬로건으로 경남 아이가! 로 결정했다. 영문으로 AIGA로도 해석이 가능하다.[30]

하지만 1월 30일 구단주인 김경수 도지사가 드루킹 의혹으로 구속되면서 팀 분위기에도 흩어질 위기가 왔다.

2월 17일에는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인터 밀란, 프랑크부르트 출신 네덜란드 용병 뤽 카스타이흐노스를 영입하면서 외국인 영입을 마감지었다.

홈 경기장에서도 변화를 줄 것으로 예고했는데 매점을 새로 개선하고 서포팅 구역을 스탠딩석으로 바꿀 것이라고 했으며, 소규모 테이블 이벤트석도 도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시즌이 종료된 후에는 LED 전광판을 추가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3월 30일, 뜬금없는 악재가 터졌다. 자유한국당 경남 FC 경기 난입사태로 인해 구단이 징계위기에 빠진 것이다.[31] 상벌위 결과 벌금 2,000만원으로 징계가 내려졌다.

7월 7일 조던 머치는 팀에 계약 해지를 요구했다. 구단은 잔여 기간 연봉 받지 않는 조건으로 해지 합의했다.

18시즌 말컹과 득점왕 경쟁 붙었던 제리치를 영입하였다.

시즌 중반 에이스인 네게바선수가 부상 당해 시즌 아웃 선언 받고 대체자로 오즈망 주니오르 영입했다.

시즌 내내 인경제 라인에서 강등권을 해메다 결국 리그 11위를 기록했고,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부산 아이파크에 1무[32] 1패[33]를 기록하며 K리그2로 강등당했다.

3년만에 다시 K리그2로 돌아가게 된 데는 기존 리그와 컵대회에 ACL까지 치르면서 벌어진 선수단의 피로 누적, 그에 의한 선수들의 부상과 부진, 그리고 조기호 대표와 김종부 감독의 연이은 실책과 서로간의 불화, 경남 구단 자체의 행정처리 미숙 등이 복합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12. 2020 시즌[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경남 FC/2020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김종부 감독이 강등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면서 후임자로 성남 FC 전력강화부장을 하던 설기현이 감독으로 내정되었다.

준플레이오프에서 대전과 비겼지만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막판 안병준의 PK 성공으로 인해 수원 FC와 1-1로 비기면서 승격에 실패했다.


13. 2021 시즌[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경남 FC/2021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021시즌 새해를 맞아 국내에서 프로구단으로는 처음으로 유소년 재단을 만들기로 결정하여 주목을 받았다.# 현재 경남이 운영하고 있는 초·중·고 유소년 3팀에 코치와 트레이너를 보강하고, 경남 지역 우수 선수를 장학금 지원 등으로 영입해 다른 지역 유출 방지하며 농촌지역 축구교실과 유소년 축구대회 개최 등 체계적인 선수 육성 프로그램을 통해 현재 경남 소속 선수중 3명으로 10%에 불과한 자체 유소년팀 출신 선수를 30%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또한 BNK경남은행의 스폰을 통해 구단 버스를 프리미엄 고속버스 모델로 교체하였고, 이는 국내 구단중 최초이다.

연승 테크를 타며 팀 분위기가 오를 때는 여러 변화를 겪었지만...
시즌 중반 부침에 빠져 순위가 급감하며 시즌 6위를 기록하는 데 그치고 만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1152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1152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14. 2022 시즌[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경남 FC/2022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지난 시즌의 실패를 디딤돌 삼아, 팀에서는 육성 위주로 진행을 하기로...
지난 시즌보다 언론에 노출되는 빈도마저 줄어, 시즌에 희망이 있을까 싶은 느낌 마저 든다.

감독과 불화도 있었지만, 화해 끝에 팀의 주축으로 세우기로 작정한 윌리안은 주장을, 배승진을 부주장으로 세워 시즌을 시작하기로 했다.

잠깐 반짝하며 순위가 치솟는가 했으나, 선수단이 전훈 시절부터 줄부상이 생긴 데다가 설기현 축구 본연의 약점이 그대로 노출되면서 최악의 시나리오에 빠져 한참 동안을 하위에 있었다 티아고의 득점 행진을 앞세워 패전의 멍에를 벗은 뒤로 쭉 6위에 머무르게 되었다.

몇 번의 게임에서 이변을 드러내면서 1부 승격에 대한 야심을 노골화하고 있었는데 그 상황에서 충격적으로
주장이었던 윌리안, 에르난데스까지 이탈하며 선수단이 동요하기도 했으나,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 카스트로, 엘리아르도, 원기종, 유용현을 영입하며 부족한 선수단을 보강했는데...엘리아르도는 10분 반짝, 유용현은 대체 왜 영입함?

카스트로가 나름대로 활약을 해주고 찬스를 만들어낸 장본인으로까지 작용하는 등 쏠쏠하게 활동량을 보여줬다.

국내 선수에선 원기종이 자기 포지션을 지키며 공격에 한 몫 보탬이 되었지만, 얼굴을 필드에 부딪혀 부상을 당하며 팀의 분위기가 상당히 나빠지게 되었다(...)

이후 득점력이 현저히 줄면서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득점이 나지 않게 되며, 감독이 수비적인 전술을 채용하기까지 하며 변화를 주고는 있었으나, 전경준과 설기현은 다르다 성공률이 약 20%(...)

우여곡절 끝에 안양을 홈에서 잡고 5위로 준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 부천을 라스트미닛골 한방에 꺾었지만, 안양과의 플레이오프에서 득점하지 못하고 탈락, 2부리그 잔류를 확정지었다.

15. 2023 시즌[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경남 FC/2023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11 19:47:21에 나무위키 경남 FC/역사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물론 어디까지나 우스갯 소리일 뿐이다. 하지만 골수 성남팬인 샤다라빠가 자신의 팀을 발라버린 상대팀을 3~4컷에 걸쳐 띄워준 것은 분명 의도가 있었을 터.[2] 경남과 조광래 감독은 축협에게 2010 시즌 마지막까지라도 경남 감독과 국대 감독을 겸임하게 해달라 했지만 만악의 근원 축협이 그딴 걸 허용해 줄리가...[3] 이렇게 꼬라박아도 6강에는 든건 무승부가 비교적 많았기 때문.[4] A B 네게바와 교체되어 투입되었다.[5] 마지막 홈 경기에서 평소 잘 잡던 FC 서울에 0-3으로 완패한 것이 흠. 사실 이 경기를 이겼어도 부산과 울산의 결과를 봐야하긴 했으나, 시즌 마지막 홈경기였던 탓에 더 씁슬함을 나았다.[6] 이는 대한민국 시도민구단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구단주가 바뀔때마다 전임 구단주가 데려다 놓은 감독이라는 이유때문에 감독의 입지가 위험해진다. 당장 강원 FC만 해도 구단주, 사장이 바뀔때마다 감독의 명줄이 왔다갔다 했다. 거기에 전임 구단주와 현직 구단주가 당이 다를 경우에는 프런트도 같이 갈려나가기 때문에 권력 싸움질이 일어나고 그로 인해 헬게이트가 열린다.[7] 근데 지난 시즌에도 5월까지 강등권에 있다가 구단 구조조정까지 들어간 상태였지만 13라운드 성남을 2:0으로 이긴 걸 시작으로 점차 승수를 쌓아가며 상위 스플릿에 올라갔다.[8] 지금이야 조광래는 국대에서 실패하고 파벌을 조장한 장본인으로 찍혀있지만 적어도 경남에서는 얇은 스쿼드로 괜찮은 성적을 내준 감독이었다. 그래서 경남에서 조광래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좋은 편이다.[9] 조용태는 이 시즌 여름 이적시장 때 경남에서 광주로 이적했다. 이적한 선수가 친정 팀에게 부메랑을 날린 것.[10] 박성화는 2007년 중반에 부산 감독에 부임했다가 2주만에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 도망가버렸기 때문에 부산팬들이 이를 갈고 있는 중이다.[11] 비슷한 사례를 찾자면 과거 부천SK가 있다. 무개념 구단주 때문에 주전 선수 다 팔아치우고 막장이 되었고, 결국 연고이전이라는 야반도주를 저질렀다.[12] 챌린지 꼴지 한다고 K3로 강등 되는 건 아니지만, 성적 저하로 구단 운영 사정이 열악해서 챌린지 리그 참가를 못하게 될 상황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13] 사실 이런경우는 전세계 축구리그서 왕왕 볼수있다. 지금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뛰고있는 케빈 오리스도 중국에 있을때 이 옵션장난질에 걸려서 시즌중반이후 제데로 출장이 힘들었을정도. 또한 동유럽 국가 리그에서도 옵션장난질이 너무 심하다.[14] 참고로 안종복이 2년간 가지급금 명목으로 횡령해먹은 금액이 4.2억이었다.[15] 단, 사비를 들여 선수를 영입하려 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의문인게 여름 이적 시장 후 경남의 외국인 선수는 결국 3명이 다 찼다. 스토야노비치(세르비아), 프랭크(브라질), 루아티(튀니지).[16] 물론 대전은 2014년에나 잘 굴러갔지 2015년 새 낙하산 이사가 오면서 도루묵이 됐다.[17] 그 중 3억 7천이 자신의 몫이었다고 한다.[18] 1위는 하태균이다.[19] 미디어데이에 강원 최진호가 경남은 강원의 승점자판기라고 디스했는데 이를 정의구현한 셈이 되었다.[20] 이 경기는 2골 리드하다 골키퍼 이범수의 자책골로 1-2 승리[21] 이 다음주 경남은 홈경기 승리 이후 경남 팬들과 이준희가 버스 막기 세레머니를 선보이며 부천을 디스한다.[22] 참고로 가장 최근인 2019년에 맞붙었던 경남과 부산 아이파크 제외하면 이 둘만 승강 플레이오프 이후 한 번도 만나지 못하고 있다.[23] 나머지 3명의 선수들은 대전 시티즌황인범, 부천 FC 1995문기한, 부산 아이파크이정협이다.[24] 또 다른 설로 동네 양아치들이랑 어울린다던가 음주도 자주한다는게 돌았다.[25] 경남이 우선 지명을 유지한 상태였기 때문에, 해외에서 뛰다가 돌아왔을 때는 경남에게 먼저 영입할 권리가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앞서 영입한 쿠니모토 타카히로와는 2016년 아비스파 후쿠오카에서 함께 뛰었던 인연이 있다.[26] 여성해는 과거 2009년 드래프트에서 경남의 번외 지명을 받았었지만, 여성해는 이 지명을 거부하고 J리그 진출을 추진하여 사간 도스에 입단하면서 논란이 있었다. 그러다가 2014년 여름 군경구단 입대를 위해 그제야 K리그 복귀를 추진했고, 이후 상주 상무에서 군 복무를 수행한 뒤 전역과 동시에 다시 일본으로 떠나 마쓰모토 야마가 FC에 입단했기 때문에 순전히 입대만을 위해 경남으로 온 것이냐면서 비판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27] 현재까지 상위스플릿에 1번이라도 들어간 적이 있는 구단은 4개 구단이며 2012년에 경남, 2013년에 인천, 2015년에 성남, 2017년에 강원이 주인공이었는데 매번 클래식에 남은 인천도 2번 이상 상위스플릿에 간 적이 없었고 2015년에도 마지막 경기에 성남에게 패하며 상위스플릿 티켓을 놓쳤다. 2016년에는 성남이 시즌 내내 상위권에 있다가 김학범 감독의 경질과 티아고의 이적 후 갑자기 성적이 내려가기 시작하더니 한끗 차이로 상위스플릿을 놓쳤다. 그리고 이것이 나비효과가 되어 챌린지로 강등당했다.[28] 상위스플릿에 올라간 적이 있는 다른 시도민구단 혹은 승격팀들은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나 1경기를 남겨놓고 상위스플릿을 확정지었지만 경남은 5경기를 남겨놓고 스플릿을 확정지었다. 참고로 2012년 처음 상위스플릿에 갔을 때도 마지막 30라운드에서 광주에게 2:1로 이긴 후 경우의 수를 따져야 했으며 같이 경쟁하던 인천과 대구 성남이 이기지 못해 상위스플릿에 갈 수 있었다.[29] ACL만 농협, 리그랑 FA컵까지 한다는 이야기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ACL 규정상 유니폼 스폰서는 하나만 부착이 가능해서 그렇다.[30] Attention! It's Gyeongnam FC Again(K리그, FA컵)/Asia Is where Gyeongam FC's Ambition lies(ACL)[31] 최악의 경우, 승점 10점 차감이라는 어마어마한 사태가 벌어질수도 있다! [32] 0:0[33] 0:2